118화
오즈의 시선이 성현을 향해 틀어졌다.
왜 가지 않고 저러고 있는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다가.
“왜 안 가요?”
오즈는 생긋 웃으며 가증스러울 정도로 친절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성현은 웃지 않는다.
무거운 한숨을 내뱉으며 손을 품에 넣더니 창을 꺼내 길게 뽑아냈다.
“우리 가식 떨지 말자.”
성현의 말에 오즈의 표정이 확 변하더니 미친놈처럼 웃기 시작했다.
갑자기 성현의 앞으로 다가가 얼굴을 훅 들이민다.
“알고 있었어?”
“어.”
“정말? 언제부터?”
“네 몸에서 피 냄새 나.”
오즈가 깔깔 웃으며 자신의 냄새를 맡아 봤다.
그러더니 “안 나는데?”라고 중얼거리며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성현은 오즈의 너머를 바라봤다.
거대한 짐승이 아직 인간을 씹어 먹는 중이다.
다른 짐승이 쿵쿵, 다리를 움직이며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
이곳에서 싸울 수는 없다.
“조용한 곳으로 갈까?”
성현의 말에 오즈가 고개를 다급히 움직이며 말했다.
“이거 네가 싸우자고 한 거야. 알지?”
오즈는 지연우에게 지시를 받았다.
“유성현을 관찰해라.”
그 안에 죽이라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성현이 먼저 싸움을 걸었다면 상관없다.
오즈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권능을 뽑아낸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었다.
성현은 오즈의 생각을 읽었고 친절하게 말해 줬다.
“만약 내가 죽으면 짐승에게 잡아먹혔다고 해. 나도 너를 죽이고 그렇게 보고할 테니까.”
성현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오즈가 이마에 손을 대고 크게 웃었다.
“네가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어.”
“정말 마음에 들어. 그 얼굴을 뜯어내고 싶어!”
오즈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와 함께 노골적인 살기를 내뿜었다.
평범한 계약자였다면 지금의 살기에 오줌을 지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현도 충분히 강해졌다.
이 정도 살기는 견딜 수 있다.
성현은 조용히 오즈를 바라봤다.
이곳에 있는 짐승과 오즈, 무엇이 다를까.
인간 같은 외모 말고는 짐승이나 오즈나 똑같다.
오즈는 피에 중독되었고 피를 위해 싸운다.
인간을 인간처럼 생각하지 않고 짓밟는 것을 즐긴다.
‘오즈…….’
한때는 인간이었겠지만 지금의 오즈는 짐승이다.
그리고 성현은 지금부터 그 짐승을 죽일 생각이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자.”
성현은 몸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오즈가 깔깔깔 웃으며 뒤쫓는다.
성현이 슬쩍 고개를 돌려 오즈를 바라봤다.
정령은 성현이 오즈와 싸우면 질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가는 곳은 성현이 짐승의 사체를 묻어 둔 곳.
즉, 성현의 홈그라운드나 마찬가지다.
지금의 오즈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지만.
‘지금부터 지옥을 보게 될 거다.’
쇄애애애액!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성현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 * *
붉은 모래와 검은 모래가 뒤섞여 있는 곳.
성현은 자리에 서서 오즈를 기다렸다.
목에 걸린 펜던트를 투투툭 뜯어내며 마법사의 권능을 끄집어냈다.
이어서 폭주하는 마녀의 피를 내버려 뒀다.
성현의 얼굴과 몸에 징그러울 정도로 핏줄이 솟아났다.
몸에 깃든 힘이 서로를 경계하며 폭탄처럼 터지기를 기다린다.
이 힘을 제어하지 못하면 성현의 몸이 터져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현은 언제나 벼랑 끝을 달려왔다.
죽는 것을 무서워했다면 지금처럼 짧은 시간에 강해질 수 없었을 거다.
그리고 이번에도 성현은 벼랑 끝에 섰다.
‘오즈를 죽이면 지연우의 전력은 반으로 준다.’
회귀 전부터 있던 말이다.
오즈는 조용한 암살자.
미치광이 살인마.
많은 계약자가 지연우보다 오즈를 더 두려워했다.
오즈의 타깃이 되면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심지어 화장실에 가는 것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런 오즈를 죽이면 미래는 또 한 번 뒤틀릴 거다.
그리고 20여 미터 앞에 오즈가 섰다.
주 무기로 사용하는 단도를 꺼내며 입을 연다.
“이렇게 다짜고짜 싸우는 것도 오랜만이야. 보통은 그냥 죽였으니까.”
“하나 묻자.”
“뭘?”
“지연우는 얼마나 강하지?”
오즈가 다시 깔깔대며 웃었다.
그리고 뚝 웃음을 그치며 입을 열었다.
“나보다 훨씬!”
성현은 오즈를 살폈다.
‘강해.’
확실히 오즈는 강하다.
검은 마력이 온몸을 휘감을 정도로 넘치는 권능을 자랑한다.
삐끗하는 순간 오즈의 단도가 성현의 목을 그을 수도 있다.
그런데 성현의 입에도 미소가 걸려 있었다.
신의 분노라 일컬어지는 지르힐의 감정이 성현의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실, 나도 너와 싸워 보고 싶었다.’
회귀 전, 오즈는 유명했고 성현 역시 강자를 보면 싸우고 싶은 본능이 존재했다.
지금까지 지연우를 막고 미래를 바꾸기 위해 싸웠다면.
지금은 성현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와라.’
성현이 창을 들고 자세를 낮췄다.
곧 오즈의 몸을 휘감았던 검은 연기가 공처럼 변했다.
그 숫자가 열둘!
그것이 파파파팡! 성현을 향해 쏘아진다.
성현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모래를 박차며 오즈를 향해 뛰어들었다.
창을 휘둘러 오즈가 쏘아 댄 검은 구체를 무력화한 후 순식간에 오즈의 앞에 당도했다.
“어?”
오즈는 당황하고 있었다.
지금껏 오즈의 상대는 뒤로 물러서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
오즈의 단도는 공격 범위가 짧기 때문에 거리를 벌리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거다.
그런데 창을 쥔 놈이 앞으로 달려들었다.
부아아악!
성현이 휘두른 창이 오즈를 향했고.
빠아아악!
오즈의 단도가 가까스로 공격을 막아 냈다.
오즈가 히죽 웃는다.
“제법이네? 예전과 확실히 달라졌어.”
성현이 여유를 부리는 오즈를 향해 창을 찔러 대기 시작했다.
쉭! 쉭! 쉭!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보이는 잔영만 해도 수십 개다.
오즈라 해도 저 공격을 모두 피하고 막아 낼 수는 없다.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빠르게 발을 움직여 뒤로 물러섰다.
그런데, 그것은 성현이 원하던 것.
성현은 발로 땅을 쾅 찼다.
땅이 흔들렸고 오즈가 비틀거렸다.
동시에 성현이 왼팔을 아래로 내렸다.
하늘에서 대기하고 있던 번개가 파직거리며 오즈를 향해 쏘아졌다.
오즈가 하늘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어?”
꽈아아아앙!
* * *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 그리고 2명의 용병은 검은 모래를 벗어나 다시 붉은 모래에 도달했다.
“헉, 헉, 헉.”
용병들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토해지고 있었다.
그나마 이곳이 안전하다고 느꼈는지 용병이 비틀거리며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죽는 줄 알았네.”
용병은 수통을 꺼내 꿀꺽꿀꺽 물을 마셨다.
이어서 대자로 땅에 누웠다.
검은 하늘과 함께 그곳에 박힌 존재의 눈동자가 보였다.
‘젠장.’
용병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늘에 박힌 존재의 눈동자가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다.
기껏 아이템을 지원받아 전투에 참여했는데 고작 보여 준 게 도망치는 거라니.
그리고 실제로 용병과 계약한 존재는 화를 내고 있었다.
용병의 머릿속에서 존재의 메시지가 계속 들어왔다.
-꼴사나운 모습 잘 봤다.
-다음에는 내가 직접 너를 움직이겠다.
-내가 다른 존재들에게 얼마나 망신을 당했는지 아느냐?
‘하…….’
용병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호흡이 정리된 용병이 고개를 틀었다.
그의 눈에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가 보인다.
그들도 용병과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 모랫바닥을 달렸다.
그런데 호흡 하나 흐트러져 있지 않다.
권능 이해도가 10%가 넘은 자신도 숨을 토해 내며 힘들어하는 중인데.
용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군인이잖아! 나도 힘들어하는데, 쟤들은 왜 멀쩡한 거지? 군인이 권능 이해도가 높을 리는 없고.’
권능이 높으면 입대 전에 공을 인정받아 면제를 받는다.
그러니까 진짜 센 놈들은 군대에 갈 이유가 없는 거다.
‘뭐지?’
용병은 답답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창민 중사의 체형은 제법 단단하다.
꾸준히 단련한 게 티가 난다.
하지만…….
‘저놈은 아니잖아?’
박상문 하사는 아니다.
동글동글한 외모가 권능은커녕 운동과도 전혀 상관없어 보인다.
딱 봐도 엄청나게 약하다.
게다가 무전기를 들고 다니며 전투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때, 그 약해 보이는 박상문 하사의 입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초소장님, 성현이가 안 보입니다.”
박상문 하사는 사막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입을 열었다.
이창민 중사도 마찬가지다.
담배 연기를 뱉어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어.”
“다시…… 갈까요? 구해야 하잖아요.”
박상문 하사의 말에 용병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미친 새끼! 거기가 어디라고 또 간다는 거야!’
짐승과의 싸움에서 용병 넷이 죽었다.
물론 오즈가 집어 던진 게 반이 넘었지만, 어쨌든 짐승은 끔찍할 정도로 강했고 지구에서 봤던 것과 차원이 달랐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전기만 만진 놈이 다시 들어가자고 말한다.
‘멍청한 놈!’
군인의 전우애고 뭐고 지금은 생존이 우선이라는 것을 모르는 거다.
용병의 시선이 이창민 중사에게 틀어졌다.
‘네가 고참이잖아. 넌 제대로 상황 파악을 하겠지.’
하지만 이창민 중사의 대답도 용병의 생각을 벗어났다.
“가자.”
이창민 중사는 망설이지 않았다.
담배꽁초를 툭 떨어뜨리더니 옷매무새를 고치고 있다.
진짜 가려는 모양이다.
용병이 한숨을 내쉬었다.
똥오줌 못 가리는 군인들에게 한마디 해 줘야겠다.
“저기……?”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의 시선이 용병에게 향했다.
용병이 담배를 입에 물며 거들먹거렸다.
“경험이 없는 것은 알겠는데 여기는 이계야. 동료를 잃은 것은 안타깝지만 우리도 넷이나 죽었어. 일단 산 놈은 살아야 해. 그게 전투다.”
“…….”
“가지 말라고. 여기서 살아야 하는 게 우선이라고!”
용병은 두 명의 군인이 이곳에 있기를 바랐다.
혹시 모를 짐승의 공격에 대비해서다.
‘그때는 저 새끼들을 미끼로 삼아야지.’
용병은 방금 인간을 던져 탈출구를 만든 오즈의 행동을 봤다.
분명 비인간적이고 사이코패스 같은 모습이었지만 결과는 확실했다.
이들이 살아 있는 게 그 결과다.
그러니까, 용병은 앞으로 짐승이 나타나면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를 미끼로 사용해 탈출할 생각이다.
그런데, 놈들이 이곳에서 사라지면?
‘그건 안 되지.’
용병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생각을 이어갔다.
‘만약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다시 돌아간다고 하면…… 다리를 박살 내서라도 데리고 있어야지.’
어차피 미끼다.
다리가 없어도 상관없다.
용병의 시선이 함께 도망쳐 온 다른 용병에게 향했다.
같은 생각을 했는지 놈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박상문 하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이 가자는 말 안 할 테니까 여기 있어요. 난 내 동생 구하러 갈 테니까.”
용병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어서 용병의 표정이 점점 사악해진다.
“이 새끼들이.”
용병은 숱한 전투를 치러 왔다.
그 경험은 군인보다 앞선다.
마음만 먹으면 목을 꺾어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다리를 끊어 버린다.”
용병은 살벌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 정도 협박했으면 알아들었을 거다.
그런데, 그때였다.
동글동글 어리바리하게 생겼던 박상문 하사의 얼굴이 돌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