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박상문 하사의 그 표정을 본 용병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그저 착하게 생긴 줄 알았는데 아니다.
사람도 씹어 먹을 것 같은 악귀로 보인다.
“왜, 왜 그래…….”
용병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것은 살고 싶은 본능.
박상문 하사와 가까워지면 죽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박상문 하사의 앞을 이창민 중사가 슥 막아섰다.
“그만.”
이창민 중사의 얼굴을 빤히 보던 박상문 하사가 한숨을 내뱉는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
그게 끝이었다.
박상문 하사가 쥐었던 주먹을 풀었고 눈매 역시 평소처럼 돌아왔다.
박상문 하사가 이창민 중사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
이어서 박상문 하사는 몸을 돌렸다.
용병은 가슴을 쓸어내렸고 이창민 중사는 박상문 하사에게 다가가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잘 참았어. 그리고 여기서 이럴 시간 없어. 가자. 성현이 기다린다.”
“네.”
성현이 왜 오지 않는지 두 사람은 모른다.
하지만 이곳은 이계다.
지금껏 오지 않은 것은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거다.
두 사람은 용병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군장을 짊어진다.
용병들은 두 사람을 지켜보며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악귀 같은 박상문 하사와 다시 마주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후.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는 다시 검은 모래가 있는 사막을 향해 사라졌다.
그제야 용병은 긴장된 한숨을 토해 냈다.
“하…… 죽는 줄 알았네.”
진심이었다.
숱한 전장을 오갔던 용병이지만 그는 박상문 하사가 무서웠다.
그는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찌찔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미친 군바리 새끼들, 그냥 콱 죽어 버려라.”
그 시각,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는 사막을 걷고 있었다.
끝없이 붉은 모래, 해가 뜨며 뜨거운 열기가 이글거렸다.
사막의 한낮은 가혹하다.
숨을 쉴 때마다 들어오는 건조한 바람에 폐가 퍼석퍼석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잠깐만.”
이창민 중사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수건과 함께 1.5리터 생수가 나타났다.
이창민 중사가 물을 마신 후 박상문 하사에게 건넸다.
그리고 두 사람은 수건을 둘둘 말아 입과 머리를 가렸다.
박상문 하사가 낄낄 웃는다.
“초소장님이랑 있으니까 물 걱정은 없네요.”
“초소에 한 50통 쌓아 뒀어. 필요하면 말해.”
“맥주도요?”
“그건 유성현을 찾은 다음에 축하주로 마시자.”
박상문 하사의 얼굴에 용병을 바라봤던 그 표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평소의 그 모습이다.
이창민 중사가 박상문 하사를 보며 물었다.
“공격은 언제래?”
염소 형태의 짐승과 싸울 때였다.
박상문 하사는 무전기를 펼치고 짐승이 있는 위치를 부대에 알렸다.
부대는 155mm 포를 방열하고 포탄을 쏟아 낼 준비를 하고 있을 거다.
이계에서 인간이 사용할 전술은 간단하다.
짐승의 위치가 알려지면 곧장 포를 쏘아 댄다.
100발이고 200발이고 초토화될 때까지 쓸어버리는 거다.
그 후에는 계약자들을 움직여 남은 짐승들을 토벌하면 끝.
쉽게 말해 물량전.
간단하지만 가장 확실한 전술이다.
박상문 하사가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시라고 했습니다.”
이창민 중사는 한숨을 내뱉었다.
오후 1시, 이제 1시간 10분쯤 남았다.
성현을 바로 만날 수 있다면 차고 넘치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창민 중사는 고개를 저었다.
불길한 생각은 할 시간이 없다.
지금은 성현을 찾으러 갈 시간이다.
“가자.”
* * *
오즈가 모래를 툭툭 털며 몸을 일으켰다.
군복은 다 찢어져 있었고 팔꿈치에는 피가 흐른다.
하지만 오즈의 표정은 무심했다.
대수롭지 않는 눈으로 성현을 바라본다.
“마음에 들어. 최선을 다해야겠어.”
성현이 발로 모래를 툭툭 다지며 물었다.
“몇 살이냐?”
뜬금없는 말에 오즈가 눈을 가늘게 떴다.
“뭐?”
“여자냐, 남자냐? 이름은 뭐야? 오즈가 본명은 아니잖아? 한국 사람은 맞아?”
“그게 왜 궁금하지?”
성현이 창으로 오즈를 겨눴다.
“죽은 사람 이름은 기억해 주려고 한다.”
“미친!”
동시에 오즈의 옆으로 검은 구체가 수십 개 떠올랐다.
파파팡!
구체가 성현을 향해 쏘아졌다.
“안 통한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성현이 창을 휘둘렀다.
파바박!
창에 닿은 검은 구체가 연기처럼 사라졌고 성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가짜?’
성현의 눈동자가 앞으로 향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오즈는 다가와 있었다.
곧장 성현의 목을 향해 단도를 휘두른다.
쉭! 쉭! 쉭! 쉭!
오즈의 단도가 노리는 곳은 목울대와 동맥 같은 급소다.
스치기만 해도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올 거다.
그리고 오즈의 단도가 성현의 빈틈을 봤고 심장을 쑤셔 들어갔다.
‘잡았다!’
오즈의 단도가 성현의 몸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성현은 허리를 뒤로 꺾으며 오즈의 공격을 피해 버렸다.
오즈가 다시 단도를 아래로 그었다.
이번에도 성현은 피했고 단도는 모래 바닥을 파고들었다.
그사이 성현은 창을 휘둘렀다.
부아아악!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채애앵!
스파크가 번쩍 튀며 오즈가 들고 있던 짧은 단도와 창이 맞부딪쳤다.
힘은 성현이 우위다.
오즈는 성현의 힘에 밀려 모래바닥을 데굴데굴 10여 미터나 굴렀다.
성현이 창으로 모래를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일어나.”
그 말에 오즈가 환하게 웃는다.
“그럼, 다시 간다.”
오즈의 몸놀림은 가벼웠고 빠르다.
게다가 싸움이 이어질수록 점점 더 빨라진다.
쉬이이이익!
잠깐이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움직임을 놓쳐 버린다.
만약 이곳이 사막이 아니라 도시였다면 성현은 놈의 움직임을 좇을 수 없었을 거다.
‘하!’
그런데 성현의 입에도 미소가 걸렸다.
오즈와 싸우며 점점 강해지는 것을 느낀 거다.
-권능 이해도가 상승했습니다.
-스피드가 상승했습니다.
-숨겨진 퀘스트 ‘호적을 만나다’를 달성했습니다. 스텟 포인트 3을 드립니다.
성현은 잠시 회귀 전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처음으로 계약자가 되었을 때, 당시 성현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돈도 부모님도 그 어떤 것도.
즉, 세상의 약자였다.
그래서 성현의 목표는 하나였다.
강해지는 것, 순수한 강함.
하지만 그 순수함은 지연우를 만나며 퇴색되었다.
정의라는 보잘 것 없는 신념.
인류를 위해 힘을 써야 한다는 얽매임.
그것은 이서아에 의해 회귀되며 정점에 이르렀다.
‘인류’를 위해.
‘이서아’를 위해.
‘구악’을 위해.
위해, 위해, 위해.
그것들이 성현을 올가미처럼 가뒀다.
그리고 성현은 다른 사람을 위해 지금의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순수하게 오즈를 죽이고 싶다.
‘죽어!’
성현이 계약한 지르힐은 선이 아니다.
세상을 공포에 떨게 했던 번개이며 악이다.
그 피가 꿈틀댄다.
동시에 마법사의 권능이 외친다.
-신을 죽여라.
이어서 뢰피크르의 피가 날뛰었다.
그 피가 말하는 것 같다.
-내 피를 가진 놈이 고작 인간 하나를 베지 못한다고?
성현은 자신의 몸에 담긴 힘을 통제하지 않기로 했다.
몸속의 폭탄이 터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싸움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성현의 몸이 더 빨라졌다.
오즈보다 빠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힘에서 차이가 났고 오즈는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성현의 창이 오즈의 머리에 닿았다.
꽈앙!
충격을 받은 오즈가 휘정거렸다.
“끅!”
급기야 오즈의 입에서 신음 소리마저 흘렀다.
얼굴에 뒤집어쓴 인면피가 찢어지고 있었다.
“얼굴을 찢어 버리면 원래의 얼굴이 나오는가?”
성현의 창은 멈추지 않았다.
빠바바바박!
오즈의 온몸을 사정없이 구타했다.
하지만 치명상은 없었다.
오즈는 정신없이 두들겨 맞으면서도 창날이 다가오면 어떻게든 피하며 목숨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러다 오즈의 다리가 깊게 팬 모래를 디뎠다.
오즈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기회!’
성현은 왼손으로 오즈를 겨눈 후 창을 찔러 넣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성현의 공격이 뚝 멎었고 입과 코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쿨럭!”
성현의 몸에는 인간이 담을 수 없는 힘이 존재한다.
지금 쏟아 낸 피는 그것을 통제하지 않은 대가.
이번엔 오즈가 웃었다.
싸움에서 봐주는 것은 없다.
상대가 약점을 드러내면 어떻게든 칼질을 해야 하는 게 싸움이다.
오즈는 성현이 멈춤과 동시에 성현의 품으로 파고들었고 단도를 휘둘렀다.
그렇게 두 사람이 다시 맞붙었다.
모래가 흩날리고 꽝꽝 폭력적인 소리가 세상을 울렸다.
그런데 두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흘러나온 검은 마력이 춤을 추는 무희의 옷자락처럼 보인다.
누군가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 아니었다면 정말 아름다운 동작처럼 여겨졌다.
꽝! 꽝! 꽝! 꽝!
싸움이 길어질수록 오즈가 유리했다.
성현의 몸에 담긴 폭탄, 잠깐의 싸움에는 엄청난 마력을 쏟아 내며 도움을 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을 좀 먹는다.
성현의 몸은 젖은 스펀지처럼 무거워졌고 점차 오즈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급급해졌다.
크고 작은 상처가 몸에 새겨지며 핏방울이 튀었다.
하지만 성현은 노리는 게 있었다.
이 땅 곳곳에 짐승의 사체들이 묻혀 있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천 마리다.
지금 끄집어내면 오즈가 도망갈 수 있다.
그래서 기다린다.
도망칠 수 없을 때 사체를 끄집어내 저 심장을 꿰뚫을 생각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유성현!”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였다.
두 사람이 100여 미터 뒤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성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오즈가 웃었기 때문이다.
놈은 당장 두 사람을 인질로 삼아 성현을 괴롭히려 할 거다.
그리고 성현의 예상은 맞았다.
오즈가 입을 연다.
“살아남은 놈이 이긴 거란 말, 알지?”
오즈가 성현의 앞에서 벗어나 두 사람을 향하기 위해 다리에 힘을 줬다.
성현이 창으로 오즈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무리였다.
오즈는 가볍게 창을 피해 두 사람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박상문 하사의 목소리가 오즈의 귀에도 들려왔다.
“시간이 없어!”
“……!”
“포탄이 떨어질 거야! 도망가야 해!”
두 사람을 향하던 오즈의 걸음이 점차 느려졌다.
오즈의 시선이 하늘을 향한다.
숱하게 많은 포탄들이 하늘 가득 날아오는 게 보였다.
오즈가 한숨을 내뱉으며 성현을 향했다.
그리고 미련 없는 말투로 말한다.
“일단 살고 다음에 보자, 꼭.”
“뭐?”
그 말과 동시에 놈이 품에서 양피지를 꺼내더니 북 찢었다.
10km 밖으로 이동시켜 주는 스크롤.
놈의 몸은 곧 사라졌고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는 성현을 향해 달려왔다.
이창민 중사가 성현의 옷깃을 잡는다.
“왜 싸웠는지는 나중에 변명하고 일단 뛰어!”
이윽고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귀를 찢을 것 같은 굉음과 파편이 사방으로 튄다.
* * *
스르륵. 오즈가 다시 몸을 드러낸 곳은 사막의 한복판이었다.
오즈가 나침반을 꺼내더니 성현과 싸우던 방향을 향해 시선을 틀었다.
성현의 실력이라면 당연히 탈출에 성공했을 거다.
오즈는 그렇게 믿으며 수통을 꺼내 얼굴을 적셨다.
묻어 있던 핏물이 주르륵 흐른다.
얼굴을 슥슥 닦자 찢어진 인면피가 거슬렸다.
오즈는 손으로 인면피를 잡고 뜯어냈다.
얼굴과 머리를 가리고 있던 게 사라지자 검고 긴 머리가 찰랑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