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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20화 (120/252)

120화

* * *

요동치는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사막의 모래를 짓밟고 자주포 수백여 대가 멈춰 선 거다.

이어서 무전기 소리가 적막한 사막에 들려왔다.

-편각 3128, 사각 478!

재원이 하달되고 자주포의 포신이 ‘지이잉’ 소리와 함께 움직였다.

그리고.

-쏴!

포탄 쏘아지는 소리가 사막을 울렸다.

사막의 모래가 치솟았고 짐승의 비명 소리가 함께했다.

성현이 오즈와 싸운 지 이틀째였다.

인간은 최초의 작전대로 착착착 움직이고 있었다.

포탄으로 화력전을 벌인 후 초토화된 지역을 계약자가 가서 마무리 짓는 것.

이계의 문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보급은 문제가 없었다.

군대의 보급대가 계속해서 인간과 이계를 오가며 물량에 문제가 없도록 애를 쓰는 중이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갔고 그들은 이제야 성현과 오즈가 싸운 지역에 도달했다.

“지금까지 전사자가 넷, 실종자는 열 셋이래.”

성현이 주머니에 있던 펜던트를 다시 목걸이에 꿰고 있을 때 회의를 다녀온 이창민 중사가 입을 열었다.

최초 첨병을 나섰던 10명은 소식이 없다.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실종자로 처리되어 있다.

이후 성현과 함께 나섰던 용병 중 4명이 오즈와 짐승에게 죽었고.

“우리와 헤어진 2명은 실종이다.”

마지막에 박상문 하사와 시비가 붙었던 2명은 실종되었다.

그리고.

“오즈라고 했나?”

성현은 이창민 중사에게 미군, 그러니까 오즈의 정체를 이야기했었다.

이창민 중사가 수첩을 품에 넣으며 입을 열었다.

“그놈도 실종이다.”

오즈도 소식이 없다.

스크롤을 찢고 도망친 놈이 죽었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오즈는 지금껏 지연우의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은 이상했다.

회귀 전을 떠올려 보면 오즈는 언제나 지연우의 곁에 찰싹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아직 오지 않았지?’

성현의 시선이 멀리 떨어진 지연우를 찾았다.

오즈가 돌아오지 않아서인지 놈의 표정이 어둡다.

하지만 사람을 잃어버린 얼굴은 아니다.

놈의 얼굴에 슬픔이나 걱정은 없다.

그저 귀하게 쓰던 아이템을 빼앗긴 것 같은 표정.

눈에 분노가 서려 있다.

성현이 그를 바라보고 있을 때, 이창민 중사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작전이 변경될 거야.”

모든 게 완벽한데 갑자기 작전을 바꾼다니.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성현의 눈이 찌푸려졌다.

“……변경이라고요?”

이창민 중사가 담배를 입에 물며 계속 말했다.

“계약자 연맹에서 자존심이 상했나 봐.”

계약자는 화력전이 끝난 후 뒤처리를 하고 있다.

살아남은 짐승을 죽이고 토벌하는 게 전부.

의기양양하게 이계의 땅에 들어왔는데 국방부의 똘마니 짓이나 하고 있으니, 자존심이 박살 나는 중이다.

그리고 이대로 전쟁이 끝난다면…….

“전쟁의 주인공은 계약자가 아니라 국방부가 되겠지.”

국방부의 높은 양반이 모든 인터뷰를 잡고 자랑스럽게 떠들 것은 당연하다.

‘우리 때문에 이겼다. 계약자는 하는 게 없었다.’라고.

그럼 국민은 계약자는 뒤로하고 군대를 향해 박수를 보낼 거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계약자는 우회하기로 했고.”

군대는 이곳에서 대기하며 계약자들의 화력 요청을 기다린다.

성현의 눈이 찌푸려졌다.

‘이러면 회귀 전과 달라진 게 없잖아.’

그때도 이랬다.

국방부의 높은 양반들은 목에 힘을 줬었다.

“던전이니 뭐니, 그동안 계약자들이 으스댔지? 그런데 그 이유가 뭐야? 현대 무기가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여기에 현대 무기가 들어오니까 어때? 다 쓸어버리잖아? 계약자 저 새끼들은 하는 것 없이 손가락이나 빨고 있고.”

그들은 권능을 무시했다. 당연하게도 그 말을 들은 지연우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지연우는 어떻게든 세상의 주인공이 되려 했고 그 스스로 군주의 목을 베어 세상의 박수를 받고 싶어 한다.

“하…….”

성현은 한숨을 내뱉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지연우의 표정이 왜 더러웠나 싶었더니 오즈를 잃어버려서가 아니다.

애초에 놈에게 오즈는 도구였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아쉽고.

놈은 국방부에 밀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쪽팔렸던 거다.

‘유치한 새끼.’

그날 밤, 사막의 더위가 사라졌을 때다.

계약자는 행군할 준비를 마쳤다.

물론 모두 떠나는 것은 아니다.

4천 명이 선발대로 이동하고 남은 1천 명이 이곳에 남아 혹시 모를 짐승의 습격에 대비한다.

“출발!”

각 지휘자의 목소리에 4천 명의 계약자가 저벅저벅 사막의 검은 모래를 향해 걸어갔다.

어둠 속에 흔들리는 그림자를 보며 성현은 몸을 틀었다.

‘나모르가 보고 있을 거야.’

지연우가 제멋대로 행동하고 군대의 수뇌부가 어깨에 힘을 주는 것은 지금껏 짐승의 공격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짐승은 포탄을 처맞으며 쓸려 버렸고 그 덕에 나모르까지 우습게 생각하고 있다.

그게 나모르가 기다리고 있던 순간인지도 모르고.

성현은 하늘을 보며 별처럼 박힌 존재들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저놈들은 알고 있겠지?’

놈들은 눈을 반짝이며 인간이 죽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성현이 놈들을 향해 슬쩍 웃었다.

‘기다려라. 너희도 다 죽여 줄게.’

* * *

그날 밤, 새벽 2시.

경계 근무를 서는 자들 외에는 텐트를 치고 잠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성현은 잠을 청하지 않았다.

나모르의 성격이라면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을 거다.

놈 역시 인간의 화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꼈을 테고 4천 명의 계약자와 떨어진 지금을 기다리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성현은 자주포에 기대서서 팔짱을 끼고 나모르의 성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막의 바람은 선선했고 멀리서 피 냄새가 맡아지는 것만 같았다.

“안 자냐?”

남은 천 명의 계약자 중 1명이었다.

주변을 돌며 경계하던 그가 성현의 앞에서 멈춰 섰다.

경계를 선다는 놈이 술을 쥐고 있고 담배를 물고 있다.

이놈들이 이계의 땅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다.

성현이 계약자의 가슴을 향했다.

요제스 용병단의 마크가 보인다.

요제스 역시 이름을 날리는 용병단 중 하나.

놈이 성현의 앞에서 담배를 입에 물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 짐승 보고 도망쳤다며?”

놈은 성현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성현은 첨병으로 나섰고 살아남은 3명 중 하나.

“제르날 애들은 다 뒈진 거냐? 넌 걔들 목숨으로 살아난 거고? 하긴, 군바리 새끼들이 전쟁을 치러 봤어야 목숨 걸고 싸우는 게 뭔지 알지. 일단 짐승이 나오니까 무서웠지? 도망치고 싶었고? 오줌 쌌냐?”

성현은 우습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용병의 위아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술 냄새 나는데, 경계나 섰으면 좋겠어.”

“뭐?”

용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성현은 무심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갑옷, 입고 있는 게 좋을 텐데.”

용병은 갑옷을 벗고 있었다.

처음 이계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잔뜩 겁을 먹고 두꺼운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훌훌 벗어 뒀다.

오랜 시간 사막에서 쇳덩이를 입고 있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

그래서 성현은 갑옷을 입으라고 친절하게 말해 줬는데 용병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오히려 크게 웃는다.

“새끼야, 짐승 안 오니까 쫄지 마.”

용병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건들거렸다.

이곳에 남은 것만 봐도 실력이 떨어지는 놈이다.

지연우는 센 놈만 데려갔다.

그런데 이놈은 어린 성현을 앞에 두고 센 척하고 싶었나 보다.

“몽골에서 있던 새벽의 전투 들어 봤어? 특수 던전이 열려서 3천 명이 갈렸던 전투. 어?”

성현은 놈의 허세에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놈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나모르의 성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틀었다.

용병은 성현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인상을 찌푸렸다.

성현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툭툭 쑤시며 말한다.

“내 말 씹냐?”

성현의 시선이 놈의 손가락으로 향했다.

용병의 얼굴이 더 일그러진다.

“이 새끼 표정 봐라? 내가 너한테 시비라도 걸었냐? 어?”

잠깐의 소란.

주변에 경계를 서던 계약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낄낄거린다.

“야, 왜 애를 괴롭혀?”

“그만해라. 울겠다.”

모두 용병이다.

그것도 제대로 된 놈은 없다.

다시 말하지만 실력 있는 놈은 모두 지연우가 끌고 갔다.

이곳에 남은 사람 중 길드원은 1명도 없고 용병 중에서도 쩌리들.

호랑이가 없으면 여우가 왕이라고, 이놈들은 자신들이 강자라도 된 것처럼 목에 기브스를 하고 있다.

하지만 성현은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용병들이 더 크게 비웃기 시작한다.

“와! 눈에서 레이저 나가겠네.”

“네가 약해 보이니까 군바리도 무시하는 거잖아!”

“푸하하하!”

성현에게 시비를 걸었던 용병이 인상을 구기며 담배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리고 발로 담배를 콱콱 비벼 끄며 험악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 새끼가.”

애초에 이놈은 순순히 갈 생각이 없었다.

본진 합류에 탈락하고 경계나 서고 있으니 그 화를 풀 상대가 필요했던 거다.

그 와중에 자주포에 기대서 있던 성현을 발견한 거고.

놈이 주먹으로 성현의 가슴을 팍팍 때리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하면 봐줄게. 말해 봐, 새끼야.”

성현이 눈동자만 틀어 다시 놈을 바라봤다.

어차피 짐승의 밥이 될 놈, 조용히 넘어가려 했는데 안 되겠다.

손가락이라도 꺾어 놔야 입을 다물 것 같았다.

그런데 성현의 표정을 본 놈이 더 환하게 웃었다.

“왜? 해보게? 싸우게? 이런 미친놈을 봤나!”

놈이 손바닥으로 성현의 뺨을 치려 했다.

하지만 성현은 가볍게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 놈의 공격을 피했다.

허공을 휘두른 놈이 균형을 잃고 모랫바닥에 엎어졌다.

술을 마시기도 했고 애초에 성현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넘어지며 입에 모래를 한 움큼 담은 놈이 “퉤! 퉤!” 하며 일어섰다.

주변에 있던 용병들이 배를 잡고 웃는다.

“멍청한 새끼!”

“그걸 못 때려?”

“와, 군인한테 맞는 용병도 보네. 크핫핫핫!”

용병들의 비아냥을 들으며 놈의 눈에 살기가 담겼다.

자존심이 상한 거다.

놈이 날 길이 30cm의 칼을 꺼내며 무서운 눈으로 성현을 쏘아 봤다.

“이 새끼, 넌 뒈졌다.”

그때였다.

스각!

검광이 번쩍이며 성현에게 칼을 겨눴던 용병이 비틀비틀.

이어서 용병의 머리가 땅으로 툭 떨어졌고 곧 피가 솟아올랐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엄청난 속도의 공격이었다.

구경하던 용병들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부릅떴다.

“뭐, 뭐야?”

그리고 그것은 성현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자신에게 칼을 겨눴던 용병이 죽었다.

그것도 목이 떨어져 나가며.

성현의 공격은 아니었다.

성현은 가볍게 손가락만 꺾을 생각이었으니까.

‘누구야?’

성현은 용병을 죽인 자의 정체가 궁금했고 그 정체는 곧 드러났다.

머리가 사라진 용병이 비틀대다가 드디어 쿵, 무너지듯 쓰러진 거다.

그리고 그 뒤에 선 소녀가 성현의 눈에 들어왔다.

하얀 피부가 눈에 띈다.

그 소녀가 검고 긴 머리를 흩날리며 성현을 노려봤다.

그리고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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