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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21화 (121/252)

121화

“이런 벌레 같은 놈들을 왜 봐주고 있는 거지?”

소녀의 목소리는 냉랭했고 건조했다.

하지만 성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

처음 보는 얼굴인데 성현을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어서다.

그런데 그 순간, 소녀의 몸에 검은 기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살기가 엄청나다.

지켜보던 용병들이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후들거릴 정도다.

그리고.

파아아앙!

소녀의 몸에서 요동치던 검은 기운이 치솟아 오르더니 놈들을 휘감았다.

“커어어억!”

용병들은 벗어나려 했지만 무리다.

검은 기운이 그들을 옥죄어 죽이려 한다.

숨을 쉬지 못해 산소가 부족해진 놈들의 얼굴이 퍼렇게 변했고 피를 토하며 몸이 역으로 꺾였다.

검은 기운은 더 세게 그들을 휘감았다.

까드드득!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잔인하게 들려오며 모래는 놈들의 붉은 피를 빨아들인다.

그 소란 속에서 소녀의 눈동자는 성현을 살벌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성현의 시선 역시 천천히 그녀를 향했다.

그리고 그녀의 폭력적인 기운을 느꼈다.

익숙한 느낌에 성현이 더듬거리며 묻는다.

“오……즈?”

그 순간 소녀의 모습이 스르륵 사라졌다.

나타난 것은 성현의 앞.

곧바로 손에 들고 있던 단도를 휘두른다.

성현이 몸을 뒤틀며 가까스로 피했다.

그러자 공기 찢어지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쉬이이익!

지난번 싸웠던 오즈보다 몇 배는 빠르다.

게다가 오즈와 싸웠던 당시의 성현은 마법사 등 모든 힘을 개방한 상태였다.

지금 상태로는 오즈의 동작을 쫓기도 힘들다.

창을 뽑아 막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오즈의 공격을 막는 데 급급했다.

목걸이의 펜던트를 뜯을 시간이 없다.

손을 가져가는 순간 오즈의 단도에 목이 베일 거다.

오즈가 휘두른 단도와 성현의 창이 맞부딪쳤다.

불꽃이 튀고 굉음이 울린다.

파파파파팡!

성현은 발을 뒤로 빼며 기회를 보려 했지만 오즈는 틈을 주지 않았다.

끝까지 성현의 품에 파고들어 쉬지 않고 단도를 휘둘렀다.

그녀는 파괴적인 몸짓과 폭력적인 기운으로 성현을 밀어붙인다.

쩌엉! 쩌엉! 쩌엉!

작은 단도였지만 실린 힘은 포탄처럼 강했다.

성현의 집중력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창을 놓칠 거다.

‘젠장.’

보통의 계약자였다면 여기서 오즈의 힘에 휘말려 죽었을 거다.

하지만 성현은 평범한 계약자가 아니다.

숱한 전투 경험을 가진 회귀자다.

자신보다 훨씬 강한 자와 싸워 본 적이 있고 지옥의 어머니 플로르와 붙은 적도 있다.

이 정도 위기에서 죽을 생각은 없었다.

성현은 오즈의 공격을 막으며 라이트닝 볼을 만들었다.

그리고 발을 들어 모랫바닥을 박찼다.

꽈아아앙!

모래가 치솟아 오르며 오즈가 잠시 멈칫거렸다.

‘지금!’

성현이 준비한 라이트닝 볼이 그녀를 향해 쏟아졌다.

파지지지직!

전기가 그녀를 휘감으며 주변이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동시에 성현이 오즈를 향해 튀어 나갔다.

주먹을 꽉 쥐자 그 손에서 검은 마력이 일렁인다.

그 주먹을 오즈의 얼굴을 향해 뻗었다.

빠바바바박!

성현의 주먹은 하나하나가 묵직했다.

철퇴에 맞는 느낌일 거다.

그런데 오즈의 표정을 본 성현은 움찔거렸다.

오즈는 두들겨 맞으면서도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뭐지?’

뭔가 준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뒤로 빠지려 하는데 오즈가 성현의 주먹을 잡고 빙글 몸을 돌려 엎어 친다.

꽈아아앙!

“끕!”

성현은 그대로 땅에 누웠고 오즈가 재빨리 움직여 성현의 몸 위에 타고 올랐다.

오즈가 성현을 빤히 내려다본다.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하얀 피부에 핏물이 뚝뚝 떨어지면서도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마음에 들어.”

성현은 그 미소가 섬뜩했다.

‘진짜 미쳤어.’

빠져나가려 하는데 오즈의 손에 스르륵 단도가 나타났다.

“죽어!”

그 단도가 성현의 심장을 향해 일직선으로 떨어졌다.

퍼어어억!

하지만 그녀의 단도는 심장을 쑤시지 못했다.

모래를 파냈을 뿐이다.

성현은 이미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 뒤로 빠져 있었다.

성현이 손을 목에 가져다 댔다.

‘어쩔 수 없겠어.’

성현이 펜던트를 뜯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말 뜯을 틈이 없었던 거고.

또 하나는 며칠 전 힘을 개방하며 몸 상태가 최악으로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지르힐의 말에 의하면 힘이 폭주하며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뜯어졌다고 했다.

그때도 지르힐에게 상당히 욕을 먹었었는데.

‘또 먹겠네.’

지르힐의 잔소리는 참 듣기 힘들었다.

하지만 죽는 것보다 낫다.

성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오즈가 마녀보다 더 무서운 눈으로 성현을 노려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단도를 혀로 핥으며 말한다.

“마음에 든다고 했잖아? 그 말, 거짓말 아니야. 정말이야.”

“하나 묻자. 오즈가 맞나?”

“그렇게들 부르더라고.”

“이번에는 소녀 코스프레? 적어도 그런 변태 같은 취미는 없다고 들었는데.”

“이런 모습이 변태 같은 취미인가?”

오즈가 멈춰 서서 자신의 몸을 살폈다.

오즈의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그 성별도 마찬가지.

심지어 지연우조차 모른다는 소문이 있다.

자신의 몸을 살피던 오즈가 활짝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이 얼굴 어때? 마음에 들어?”

그때였다.

타아아앙!

총소리가 적막을 깼다.

두 사람이 다급히 고개를 틀었다.

어둠 속에서 박상문 하사가 총을 겨누고 있었다.

박상문 하사의 목소리가 무겁게 들려왔다.

“그만하지?”

오즈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총으로 날 쏘겠다고?”

“쏜다.”

박상문 하사가 단호히 말하자 오즈가 손을 흔들었다.

검은 마력이 일렁였고 박상문 하사를 죽이기 위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기 시작했다.

“쏴 봐, 누가 먼저 죽을지 궁금하네.”

일촉즉발의 상황.

“잠깐.”

낯선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남자, 이창민 중사였다.

그가 박상문 하사의 옆에 서며 입을 열었다.

“소총은 피할 수 있다고 쳐도, 기관총도 피할 수 있을까?”

이창민 중사는 기관총을 들고 있었다.

그가 기관총을 툭툭 치며 슬쩍 웃는다.

그리고 총을 장전하며 말했다.

“피할 수 있을지 없을지 궁금한데 한번 갈겨 봐?”

보통 이 상황에서는 물러나는 게 정상이다.

아무리 계약자라 해도 기관총을 맞고 멀쩡할 수는 없다.

게다가 성현을 포함한 3명을 상대로는 오즈라 해도 승률이 떨어진다.

그런데 오즈는 활짝 웃었다.

“정말 궁금한데? 해 봐? 어서, 해 봐!”

진심마저 느껴진다.

자신이 빠른지 기관총이 빠른지 상당히 궁금한 표정이다.

“어서!”

이창민 중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또라이가!’

박상문 하사가 앞으로 나섰다.

“초소장님, 제가 하겠습니다.”

“야!”

“어쩔 수 없잖습니까?”

박상문 하사가 깍지 낀 손을 우드득거리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박상문 하사의 몸에서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러자 오즈가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깔깔깔 웃는다.

“셋이 덤빈다는 거지? 좋아. 뭐든 해 봐. 나 가끔은 정말 죽고 싶거든. 여기라면 괜찮을 것 같아.”

오즈의 온몸에서 폭력적인 기운이 살벌하게 흘렀다.

지금껏 느꼈던 정도와 다르다.

땅이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

성현이 펜던트를 꽉 쥐었다.

‘하…….’

성현의 머릿속에 정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아저씨, 이창민 중사라고 했나? 이 사람을 방패로 쓸 수 있어? 이 사람의 시체가 칼에 베이고 창에 찔려도 방패로 사용하며 싸울 수 있어?

오즈는 주변을 이용하는 데 능숙하다.

사람이라도 짐승이라도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성현은 오즈와 단둘이 싸우려 했던 거다.

아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오히려…….

그때였다.

에에에에엥!

사이렌 소리가 급박하게 울렸다.

동시에.

-전방에 짐승 등장!

-다시 한번 말한다! 전방 1km 앞에 짐승 등장!

하늘로 조명탄이 쏘아졌다.

퍼퍼퍼펑!

대낮같이 밝아지며 모래 먼지가 지평선을 가득 채운 게 보였다.

갑자기 짐승이 등장했다.

염소 형태와 뱀, 전갈 등 놈들이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나모르가 움직였다.

놈은 계약자와 군대가 떨어지기를 기다렸고 지금 눈엣가시인 군대부터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지평선을 바라보던 군인과 계약자 들은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하늘을 향했다.

하늘에 박힌 존재의 눈동자.

그 끔찍한 것들이 눈을 깜빡이며 앞으로의 학살을 기대하고 있다.

이 중에는 분명 자신의 계약자도 있을 게 분명하지만 놈들은 그딴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계약자가 죽어도 또 다른 놈을 선택하면 되니까!

놈들에게 인간은 고작 그따위다.

“나중에 하지.”

성현이 오즈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즈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이 마지막이야. 다음에도 네가 살아 있다면 그때는…….”

“걱정하지 마. 죽여 줄게.”

정다운 목소리였지만 내용은 살벌했다.

오즈가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리고 스르륵,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성현의 시선은 다시 지평선으로 향했다.

남아 있던 용병들이 서둘러 갑옷을 걸치고 있다.

절그럭, 절그럭.

그사이 군대도 움직인다.

-자주포 직사 준비.

자주포의 포신이 짐승을 향했다.

이어서.

-쏴!

콰콰콰쾅!

포가 불을 뿜었고 지평선의 먼지는 더 자욱해진다.

하늘에서는 드론이 움직이며 전투 상황을 알려 온다.

-초탄 성공.

-준비된 포는 명령 없이 사격하라.

자주포의 포수들은 다급히 사격을 준비했다.

쾅! 쾅! 쾅!

이어서.

-전차 이동 준비.

전차가 굉음을 내며 짐승을 향해 움직였다.

인간은 승리를 확신했다.

현대 무기에 짐승의 살은 찢어진다.

뼈가 부서지고 피를 튀긴다.

“짐승도 별것 없어!”

“죽어라, 새끼들아!”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저건 뭐야?”

하늘을 채운 수백 마리의 짐승들.

크기는 7~8m.

머리에 닭처럼 볏이 있지만 새는 아니다.

기괴한 모습의 날짐승의 정체는 한 군인의 입에서 밝혀졌다.

“프, 프테라노돈.”

백악기에 살던 익룡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투기와 헬기가 있었다면 익룡을 제압할 수 있었겠지만…….

가져오지 못했고 곧 지옥이 시작됐다.

콰아아아악!

놈들의 입에서 불꽃이 쏘아졌다.

“엎드려!”

쾅! 쾅! 쾅! 쾅!

“으아아아악!”

불에 타 죽는 사람이 하나둘 나왔다.

공포에 질렸고 전선을 이탈한다.

제공권을 장악당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고개를 처박고 신께 기도하는 거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그때, 용병들이 일어섰다.

용병대장이 칼을 들고 외쳤다.

“군바리 새끼들이 짐승하고 싸워 봤어야지! 우리가 놈들을 죽인다! 놈들의 목을 벤다! 값은 후하게 쳐줄 테니 가서 눈깔을 빼 와라!”

용병들이 팔을 걷어 자신의 몸에 주사를 놓았다.

공포를 억누르고 쾌락만을 높여 주는 마약.

놈들은 그렇게 전장을 누벼 왔다.

“와!”

용병들이 짐승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성현은 창을 툭툭 휘두르며 앞을 바라봤다.

용병들이 갈려 나가는 게 보인다.

약 천 명이었지만 그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염소 형태의 짐승이 한 발 움직일 때마다 벌레처럼 밟혀 죽는다.

마약을 취했어도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발발발 떨고 있다.

이제 성현이 나갈 차례다.

성현이 손을 움직이자 죽었던 용병들이 몸을 일으켰다.

‘내 병사가 되어 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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