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성현의 손짓에 죽은 용병들이 움직였다.
포탄에 맞아 죽은 짐승들이 꿈틀거린다.
갈기갈기 찢기지 않은 사체들은 모두 일어서고 있다.
그 숫자가 수백이다.
그리고.
-카아아악!
놈들이 악을 질러 댔고 비틀비틀 움직인다.
움직일 때마다 사막의 모래는 사체의 피로 적셔졌다.
덜그럭덜그럭, 두꺼운 갑옷 부딪치는 소리가 음산하게 들려왔다.
그 모습에 살아 있는 용병들은 경악했다.
‘가, 강령술!’
죽은 자를 움직이는 저주받은 권능, 강령술.
용병 중에 강령술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애초에 죽은 동료의 시체로 장난질하는 놈을 받아들이는 용병단은 없다.
그럼, 이들이 추측하는 것은 하나.
“나, 나모르!”
“나모르가 나타났다!”
“젠장!”
죽은 자의 군주 나모르.
놈은 강령술을 사용하는 군주다.
놈이 나타났다면 사체가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
용병들은 자신도 모르게 사지를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이계에 오기 전까지는 군주의 목을 베어 많은 돈을 버는 상상을 했었지만…….
“주, 죽을 거야.”
“죽고 말 거야.”
“아아아악!”
지평선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짐승, 거기다 강령술까지 사용하는 것을 보며 전의를 상실했다.
용병대장이 다급히 외쳤다.
“정신 똑바로 차려! 강령술로 일어난 놈들은 더 이상 우리 동료가 아니야! 옛 기억은 잊어! 그냥 죽이는 거야!”
강령술이 두려운 점은 자신의 동료와 싸워야 한다는 것.
사체에 감정을 갖는 순간 쓸려 버리고 말 거다.
이들은 전멸당할 거다.
용병대장은 더 거칠게 외쳤다.
“무전병은 본진에 연락해! 이곳에 나모르가 나타났다고! 어서!”
이곳에 있는 용병은 약 천 명.
그것도 수준이 가장 떨어지는 사람만 남아 있다.
“본진이 올 때까지만 견디자!”
용병대장도 본진이 올 때까지 견디자고 말한 게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싸워야 한다.
“겁먹지 마! 싸우면 이길 수 있……!”
그런데.
‘어?’
용병대장이 눈을 깜빡였다.
사체는 짐승을 향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덜그럭덜그럭, 앞으로 걸어갔다.
심지어 짐승과 붙어 싸우기까지 한다.
염소 형태의 짐승에게 달라붙어 그 다리를 향해 칼을 휘두르고 도끼를 찍어 넣었다.
염소 형태의 짐승이 그 사체를 짓밟았다.
콱! 콱! 콱!
사체가 잔혹하게 짓이겨진다.
피가 튀고 살점이 찢어졌다.
하지만 사체의 장점은 두려움이 없다는 것.
술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
또 다른 사체가 짐승의 다리에 칼을 쑤셔 넣었고 수백의 사체가 개미처럼 달라붙었다.
–카아악!
급기야 염소 형태의 짐승이 고통의 비명을 질러 대다가 쿠웅, 땅으로 무너져 내렸다.
사체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염소의 목을 찔러 댔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사체의 몸을 적셨다.
헐떡대던 염소의 숨이 멎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용병들은 눈을 깜박거렸다.
거대한 염소가 죽었다.
그런데 그 염소가 강령술에 의해 일어나더니 다른 염소와 싸운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강령술이 우리 편이었나?’
용병대장의 시선이 뒤에 선 군대로 향했다.
사단급 병력, 저 많은 사람 중에 강령술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누구지?’
어쨌든, 지금 그 사람을 찾아낼 시간은 없다.
지금은.
“시체와 함께 싸워!”
용병들이 짐승을 향해 달려갔다.
“와!”
성현의 코에 피가 주르륵 흘렀다.
수백의 사체들을 움직이며 무리했고 며칠 전 오즈와 싸우며 망가진 몸이 완벽히 회복되지 않아서다.
체력 회복과 마력 회복 알약을 연이어 씹어도 쉽게 보충되지 않는다.
결국 성현이 선택한 것은 펜던트를 하나씩 뜯는 것이었다.
‘지르힐한테 또 혼나겠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성현이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강령술은 마력으로만 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사용하는지 알아채기 어렵다.
게다가 지금 사람들은 성현을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여전히 익룡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중이다.
제공권이 장악되어 있고 놈들이 쏘는 불꽃에 사람들이 타 죽는다.
성현의 시선도 하늘로 향했다.
수백의 익룡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빙빙 돌고 있었다.
‘하나만…….’
성현은 익룡 중 딱 1마리만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그놈을 강령술로 움직여 하나씩, 하나씩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갈겨!”
투투투투투!
군인들이 기관총을 들고 하늘을 향해 쏘아 댔지만 쉽게 맞지 않는다.
놈들은 인간을 비웃듯 날개를 퍼덕이며 또 불꽃을 쏘아 댔다.
콰아아아!
살이 타는 냄새와 비명 소리가 세상을 울렸다.
이대로 두면 군인들이 전멸할 것 같다.
성현이 한숨을 내뱉었다.
‘딱 하나.’
성현이 펜던트를 뜯기 위해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 * *
“여기가 나모르의 영역이 맞기는 맞는 거지?”
그 시각, 계약자 본진.
지연우를 중심으로 10명의 사람이 빙 둘러앉아 있었다.
그 10명은 저승사자라 불리는 한지혁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하다.
한지혁은 성현의 고등학교 친구인 한아성의 오빠.
그 역시 이번 전쟁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서은서도 포함되어 있다.
지연우가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들이 모인 지 한참이었지만 지연우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지연우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붉은 모래를 지나 검은 모래도 끝이 났다.
이들은 사막의 협곡 같은 곳에 들어와 있었다.
벼랑 사이에 만들어진 좁은 길, 걷고 또 걸었지만 지금껏 짐승 1마리보지 못했다.
어디 숨어 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마력만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계속 이동하는 것은 찝찝하다.
나모르가 어떤 함정을 파고 있을지 도무지 예상이 안 되기 때문이다.
존재 플로르에게 물어봐도 답을 주지 않는다.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나는 네가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플로르는 냉랭했다.
지연우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했다.
검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존재의 눈동자.
놈들은 분명 피를 원하고 있다.
그 피는 분명 인간들의 피다.
지연우가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여기서 숙영하고 내일 계속 이동하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시간 걸었고 피곤했다.
계속 행군하는 것은 아무리 계약자라 해도 힘든 일이다.
그때 무전기를 등에 멘 남자가 앞으로 다가왔다.
그가 심각한 얼굴로 주변을 살피다가 조심스레 입을 연다.
“군부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
“짐승의 공격을 받고 있답니다.”
지연우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이게 과장이 좀 섞인 것 같기는 해도…….”
남자는 보고했다.
지평선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짐승들이 군부대를 공격했고 하늘에는 불을 뿜는 날짐승까지 있다는 것.
계약자의 절반이 죽었고 이대로 두면 군부대에도 타격이 크다는 것.
“포의 지원사격을 받기가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분명 절망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지연우는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기회야.’
이계에 들어온 것은 크게 두 세력이다.
계약자와 군부대.
그리고 군부대는 이곳의 성과를 자신들이 꿀꺽하려 한다.
그런데 여기서 군부대가 전멸한다면?
그 상황에 계약자가 나모르의 목을 벤다면?
모든 관심은 지연우에게 쏠릴 거다.
지금껏 짐승을 만나지 못한 이유도 한 번에 해결되었다.
‘나모르가 모든 짐승을 그쪽으로 보냈구나.’
그 정도의 짐승이 군부대를 향했다면 나모르의 성은 최소의 방어 병력만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럼, 빈집털이나 마찬가지다.
지연우가 손을 툭툭 털며 일어섰다.
환희에 찬 표정은 숨기고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서은서 씨?”
“네?”
“서은서 씨는 길드원과 함께 복귀해서 군대를 도와주세요.”
서은서와 함께 온 페이트 길드의 길드원은 30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이 복귀해서 합류한다 해도 언 발에 오줌 누기.
하지만 지연우가 서은서를 보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연우는 애초에 서은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최초로 온전한 마녀를 잡은 사람 중 하나로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군대를 돕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웅은 1명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지연우의 목소리는 본심과 달리 애절했다.
“군대와 연결된 스크롤을 드리겠습니다. 어서 가서 그들을 도와주십시오.”
“아, 네.”
서은서는 흔쾌히 대답했다.
그녀 역시 지연우와 함께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나모르의 목을 베는 것은 성현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생만 하느니 성현의 옆에서 기회를 기다리고 싶었다.
지연우의 시선이 다른 계약자에게 향했다.
“말했던 것을 번복하겠습니다. 휴식을 취하기보다 나모르의 성으로 향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짐승이 1마리라도 없을 때를 노려야죠.”
한 계약자가 손을 들었다.
“저기…… 지금 너무 지쳐 있어요. 이건 무리한 강행이에요. 그리고 나모르의 성까지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르잖아요.”
하지만 지연우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가야 합니다. 지금이 기회예요. 그리고 나모르의 성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연우는 다시 하늘을 바라봤다.
존재의 눈동자를 보면 광기가 가득하다.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는 거다.
놈들은 곧 살육이 벌어질 것을 알고 있다.
‘나모르의 성이 가깝다는 거지.’
지연우가 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10분 후 이동하겠습니다.”
계약자들은 한숨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연우의 곁으로 저승사자 한지혁이 붙어 섰다.
“저기…….”
“왜?”
“아직 오즈의 연락이 없어요.”
“오즈?”
“네.”
한지혁은 오즈를 걱정했다.
오즈의 본모습이 어떤지는 몰라도 오랜 시간 함께하며 나름의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연우가 고개를 저었다.
“오겠지.”
그 말을 끝으로 지연우는 한지혁의 곁을 떠났다.
한지혁은 물끄러미 지연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평소에는 한없이 좋은 사람이다.
이 사람이라면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가끔씩 보여 주는 차가운 모습은…… 두렵다.
* * *
하늘을 가득 채운 익룡이 땅에 불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성현은 지금을 기다리고 있었다.
놈들이 불을 뿜을 때 지상과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지금!’
성현은 발에 힘을 주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파아아앙!
그리고 노리고 있던 익룡의 발을 잡았다.
-카아아악!
단도를 꺼내 익룡의 발을 찍었지만 놈은 비명을 지르며 하늘로 솟구쳤다.
순식간에 구름 위로 올라간다.
지상에 있는 인간이 장난감처럼 보인다.
“끅!”
아무리 성현이라 해도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죽는다.
성현을 떨쳐내기 위해 익룡이 몸을 흔들었다.
날개를 펄럭이며 좌로 우로 급격한 비행을 이어 갔다.
하지만 성현은 이를 악물었다.
놈의 다리를 잡은 채 조금씩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 익룡에 달라붙은 성현을 이창민 중사가 봤다.
“또 뭘 하려는 거야?”
이창민 중사는 성현의 계획이 무엇인지 예측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미친놈.”
성현은 또 벼랑 끝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