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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24화 (124/252)

124화

“부탁을 좀 하고 싶은데.”

성현은 물끄러미 용병대장을 바라봤다.

눈만 보이는 투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가려져 있지만, 성현은 알 수 있었다.

‘이영한?’

놈의 몸에서 흐르는 살기 넘치는 마력은 바로 이영한의 것이다.

조잡한 암살꾼이며 지연우의 똘마니 중 하나.

하지만 성현은 모른 척 물었다.

“부탁요?”

“그래, 짐승의 중심부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수 있을까?”

성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지금은 앞서 나오는 놈을 하나하나 처리하는 게 좋은 전략이다.

중심부로 들어가는 순간 짐승에게 포위당해 일제히 몰살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왜?’

성현은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성현은 볼 수 없었지만 투구 속 이영한은 마른 입술을 혀로 핥고 있었다.

놈이 이곳에 남기 전 지연우에게 들은 말이 있어서다.

지연우가 검은 모래로 들어가기 전.

지연우는 은밀히 이영한을 불러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영한아.”

그 목소리는 따듯했고 부드러웠다.

이영한은 곧장 허리를 굽혔다.

“네, 말씀하십시오.”

“유성현이라는 사람이 있어.”

“유성현요?”

이영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이름이 기억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연우는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이영한에게 보였다.

성현이 서은서와 함께 인터뷰를 했던 기사, 거기에 나온 성현의 얼굴이다.

그제야 이영한이 손뼉을 짝 쳤다.

“아, 본 적 있습니다.”

서은서가 워낙 유명해서 보이지 않았던 계약자.

마녀를 죽였다고 유명했지만 등급이 높은 계약자 중에 그 말을 온전히 믿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은…….

“페이트 길드가 나서서 했겠지.”

“그럴 거야. 유성현이라는 놈은 페이트가 키우려는 얼굴 마담인가?”

“어리네. 그럼, 지금부터 충분히 키울 수 있지. 그래서 이놈이 다 잡은 것처럼 선전하고 있는 걸 거야.”

등급 높은 계약자들은 성현의 이름을 머릿속에 쑤셔 넣지 않았다.

그런데, 지연우가 이놈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

이영한은 눈을 깜빡이며 지연우를 바라봤다.

지연우가 말을 이었다.

“만약 짐승이 들어와서 싸우게 된다면, 그래서 정신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기회를 봐서 이놈을 죽여라.”

성현을 관찰하러 떠난 오즈가 돌아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연우는 오즈가 성현에게 당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혹시 모를 일.

만약 오즈가 당했다면 성현을 계속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성현과 만난 게 고작 1년 전.

그사이 오즈를 이길 정도로 강해졌다면.

‘죽여야지.’

그럼, 앞으로 얼마나 강해질지 모른다.

세상에 떠야 할 태양은 하나.

지연우는 성현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넌 할 수 있을 거야.”

이영한은 암살에 능한 자다.

싸움이 벌어지는 전투 상황에서 이영한이 마음먹고 칼을 들이대면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몇 되지 않는다.

게다가 정식적으로 지연우의 휘하에 있지 않다.

그래서 작전이 실패한다 해도 유성현은 지연우를 의심하지 않을 거다.

지연우가 이영한의 어깨를 가볍게 짚었다.

“할 수 있겠지?”

이영한은 성현을 왜 죽여야 하는지 이유도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영한의 머릿속에는 유성현을 죽였을 때 떨어질 달콤한 보상만 떠오르는 중이다.

‘지연우는 앞으로 크게 될 사람이야. 여기서 잘만 보인다면 나도 그 옆에 설 수 있어.’

이영한이 허리를 굽혔다.

“죽이겠습니다.”

“그래, 부탁하지. 그럼, 이 전쟁이 끝나고 서울에서 술 한잔하자고.”

“네!”

이영한은 기뻐했다.

벌써부터 지연우의 소속에 들어간 것처럼 느껴졌다.

이영한의 눈앞에 다시 성현이 보였다.

성현은 눈을 깜빡이고 있다.

왜 짐승의 중심부로 들어가야 하는지 이해 못 하겠다는 얼굴이다.

이영한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전면전을 펼치면 우리의 숫자가 지나치게 부족하잖아. 저놈들은 수만이야. 하지만 우리는 고작 천 명이지. 그리고 우리가 뚫리면 군인들이 피곤해져. 그 전에 놈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군인들에게 화력을 지원해 달라고 부탁할 거야.”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그럴듯하게 늘어놨다.

성현의 계급은 상병.

전술을 생각할 계급이 아니다.

게다가 아직 나이가 어리다.

숱한 전투 경험 없이는 지금 이영한이 말한 전술을 이해할 수 없다.

“할 수 있겠어?”

이영한은 최대한 간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아니면 안 돼.’, ‘너만이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부탁할게.’ 같은 감정을 담아서.

어린 놈일수록 공명심이 크다.

타인의 간절함이 어깨에 올라가면 앞뒤 가리지 않고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나댈 게 분명하다.

‘어린 놈을 뒤흔드는 거야, 갓난애 팔을 비트는 것만큼 쉽지.’

이영한은 마른침을 삼키며 성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게 하죠.”

이영한은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그 감정을 숨긴 채 정말 감사한 듯이 입을 열었다.

“전쟁이 끝나면 보답은 확실히 하지!”

“네.”

성현은 대답 후 창을 손에 쥐었다.

이어서 ‘파아아앙!’ 하고 짐승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이영한은 미소를 그리며 단도를 손에 쥐었다.

‘죽여 주마.’

그리고 이영한 역시 성현을 쫓아 짐승을 향해 뛰어 들어갔다.

두 사람의 모습은 곧 아무도 볼 수 없었다.

모래 위에선 용병과 짐승이 싸우는 소리만 잔인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쉬이이이익!

성현의 뒤를 쫓던 이영한은 눈을 찌푸렸다.

성현은 엄청난 속도로 짐승의 사이를 파고들고 있었다.

조금만 한눈팔아도 성현의 몸놀림을 놓칠 정도였다.

‘속도도 빠르고 창을 쓰는 방법도 알아.’

이영한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저 나이에 저 정도 권능을 보이다니, 제법이야.’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이영한에게 성현의 전투 능력은 애초에 관심 밖이었다.

이영한은 암살자.

상대가 얼마나 강하든 상관없다.

눈치채지 못하게 뒤를 밟아 칼을 쑤셔 넣으면 끝이다.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급소를 베이고 찔리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대로 죽는 게 전부다.

‘너도 곧 그렇게 될 거다.’

이영한의 눈에 죽어 가는 성현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이영한이 몸에 두르고 있던 갑옷과 투구를 툭툭 던져 버렸다.

그러자 그의 몸이 변하기 시작한다.

형태부터 색까지.

혀가 땅에 닿을 정도로 길게 늘어졌고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짐승형 권능을 가진 자들의 특징.

그 모습을 짐승처럼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놈이 갖고 있는 짐승형 권능은 바로 카멜레온.

주변과 색을 같이한다.

‘지금은 어두운 밤이고 사막이야.’

게다가 짐승이 얽히고설킨 곳이다.

이영한은 투명 인간이 된 것처럼 몸을 숨겨 버렸다.

‘죽인다!’

이영한이 네 발로 모래를 밟으며 성현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어?’

앞에 성현이 서 있었다.

조용히 서서 이영한을 보고 있다.

마치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뭐지?”

“긴말할 것 없잖아?”

성현의 말은 그게 끝이었다.

콰아아앙!

이영한을 향해 뛰었다.

이영한이 크게 웃는다.

“내 모습이 보인다 해서 핫바지로 보이냐!”

이영한은 암살자이지만 격투에도 능하다.

높은 등급의 계약자와의 싸움은 피하지만 성현처럼 어린놈의 새끼야 충분히 요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영한의 생각보다 성현은 더 빨랐다.

순식간에 품으로 파고들었고.

퍼퍼퍼퍼퍽!

성현은 이영한의 몸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쿨럭!”

이영한이 괴로움을 토하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곳 역시 성현의 거리다.

성현이 창을 들어 휘둘렀다.

콰직! 콰직! 콰직!

성현이 놈을 사정없이 구타하며 입을 열었다.

“누가 사주했지?”

이영한은 짜증이 났다.

“죽어!”

이영한이 아가리를 쫙 벌리자 긴 혓바닥이 성현을 향해 움직였다.

천천히 꿈틀대더니.

확!

끔찍한 속도로 성현을 향해 쏘아진다.

닿으면 벗어날 수 없다.

그대로 잡혀 이영한의 목구멍까지 처박혀야 한다.

성현이 몸을 틀어 혓바닥을 피했다.

팡!

공기 찢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어서.

팡! 팡! 팡!

성현은 계속 공격을 피했다.

오즈의 공격에 비하면 이영한은 슬로비디오, 우습지도 않다.

성현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누가 사주했냐고 물었는데.”

여유 가득한 목소리에 이영한의 눈빛이 일그러졌다.

“그걸 알아서 뭐 하게!”

“지연우냐?”

처음으로 이영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성현이 슬쩍 웃었다.

“맞구나?”

지연우가 오즈를 보냈고 이영한도 보냈다.

그것은 놈이 성현을 신경 쓰고 있다는 뜻.

성현은 끌끌끌 웃기 시작했다.

애초에 성현의 계획은 지연우의 옆에 있는 놈들을 하나하나 죽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일대일의 상황을 만들어 주다니.

‘미칠 정도로 감사하네.’

성현이 창을 콱 잡았고 빙그르르 돌렸다.

지연우의 의도를 안 이상 계속 놀아 줄 필요가 없었다.

곧바로 죽인다.

그리고 이영한은 헉헉거리며 혓바닥을 회수했다.

‘안 되겠어.’

성현의 속도는 압도적이다.

혓바닥으로 잡을 수 없다.

‘일단 허벅지부터 물어뜯자.’

일단 기동력을 없애야 한다.

그래야 성현의 목숨을 끊을 수 있다.

이영한은 그렇게 생각했고 다리에 모든 마력을 집중했다.

성현이 제아무리 빠르다 해도 모든 마력을 쏟아부은 속도는 감당할 수 없을 거다.

‘간다.’

쒜에에에엑!

이영한이 이빨을 드러낸 채 달려들었다.

계획대로 성현의 허벅지를 물어 기동력을 없애려는 거다.

하지만 성현의 속도는 이영한의 상상 이상이었다.

곧바로 창을 휘둘러 카멜레온처럼 변한 이영한의 대가리를 찍어 눌렀다.

퍽!

소리와 함께 붉은 피가 성현의 얼굴에 튀었다.

이영한이 비틀거린다.

하지만 성현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퍽! 퍽! 퍽!

계속해서 이영한의 얼굴을 내리찍었다.

“그, 그만……”

이영한의 마력이 다했다.

스르륵 카멜레온 같던 모습이 인간으로 돌아왔다.

벌거벗은 놈이 모랫바닥에 축 늘어진 채 쓰러졌고 애원한다.

“사, 살려 줘.”

이영한은 지금껏 수백 명을 암살했다.

그 안에는 애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다.

모두가 살려 달라고 목 놓아 외쳤다.

하지만 이영한은 봐주지 않고 죽였다.

그런데도 자신이 죽는 것은 두려웠다.

손을 들고 싹싹 빈다.

“제발, 제발……. 다 지연우가 시킨 거야. 난 아무것도 몰…….”

퍽!

성현의 창이 이영한의 심장을 꿰뚫었다.

놈이 힘없이 툭 모랫바닥으로 엎어졌다.

성현이 창을 회수한 뒤 주변을 둘러봤다.

빼곡할 정도로 많은 짐승이 성현을 노리고 있다.

죽여도 죽여도 끊이지 않고 오는 놈들.

‘중심으로 들어오기는 했는데…….’

성현의 머릿속에 이영한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이곳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다.

‘여기는…….’

군대와 꽤 멀리 떨어진 곳.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군대에서는 알 수 없다.

‘시험해 볼까?’

성현이 펜던트 하나를 툭 빼냈다.

그리고.

“일어서라.”

성현의 목소리에 모래가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악! 거대한 뱀과 콩벌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숫자가 수만이다.

치솟은 모래가 하늘을 가렸고 그 먼지가 지평선을 자욱하게 채울 정도였다.

성현의 주변에 있던 짐승들이 깜짝 놀랄 때, 성현의 병력이 포효한다.

-카아아아악!

동시에 존재들의 세상에서는 난리가 났다.

-마법사인지 뭔지 하는 놈이 강령술 해제함.

-와, 숨겨 둔 사체의 숫자 봐라.

-나모르 대신 저놈이 죽은 자의 군주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

-어울리네, 어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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