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내, 내가 인간 따위에게 당할 것 같아!”
아니오스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성현의 주먹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거침없이.
콰직!
이어서 한 번, 두 번, 세 번!
뻑! 뻑! 뻑!
아니오스는 발악했고 맞지 않으려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무리다.
퍼퍼퍼퍼퍽!
“아아아아악!”
이번엔 자존심을 버려두고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창에 박힌 드레스가 끊어지지 않는다.
용의 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하더니, 마력으로도 끊어지지 않을 만큼 질기다.
“제발! 찢어지라고!”
그사이 성현의 주먹은 계속해서 그녀의 몸을 난타했다.
쾅! 쾅! 쾅! 쾅!
콰직!
결국, 아니오스의 코에서 붉은 핏물이 쏟아져 내렸다.
“하악, 하악.”
성현의 폭력이 잠시 멈추자 아니오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앞을 바라봤다.
“죽여 버릴 거야!”
아니오스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런 협박에 겁먹을 성현이 아니다.
성현은 끌끌 웃으며 다시 주먹을 쥐었다.
“할 수 있으면 해 봐.”
“어?”
“그리고 이빨 꽉 다물어라.”
콰직! 콰직!
아니오스의 몸이 출렁거렸다.
그 순간 성현이 들고 있던 단도를 휘둘렀다.
쉬익!
단숨에 목을 베어 죽이려는 거다.
하지만 아니오스는 있는 힘껏 몸을 비틀어 단도를 피했다.
아직 치명상을 피할 정도의 여력은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니오스가 입술을 비틀었다.
“이제 내 차례야. 죽여 버린다고 했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두들겨 맞던 아니오스에게 잠시 생각할 시간이 생겼다.
그리고 그 시간은 그녀가 마력을 준비하기에 충분했다.
아니오스의 뒤에서 검은 마력이 일렁거렸고 그 안에서 좀비가 쑥쑥 쏟아져 나왔다.
-끄어어어.
한때는 인간이었던 것들, 하지만 지금은 아니오스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숫자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
놈들이 몸을 비틀거리며 성현을 향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다.
성현이 슬쩍 웃었다.
‘예상했다.’
성현은 아니오스가 모든 힘을 쏘아 내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도 먹어 주마.’
성현은 마녀 뢰피크르의 힘을 흡수한 것처럼 아니오스의 피를 흡수하려 한다.
그러려면 아니오스의 모든 힘을 끌어내야 하고.
‘바닥까지 절망하게 만들어야 하지.’
성현이 아니오스를 앞에 두고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을 보던 아니오스가 깔깔거렸다.
“이제야 현실이 파악되나?”
아니오스는 성현이 물러난 이유를 오해했다.
겁을 먹고 꼬리를 말아 버린 개와 같다고 생각한 거다.
“죽여! 저 새끼를 죽이라고!”
아니오스가 성현을 향해 삿대질하며 외쳤다.
그러자 비틀비틀 움직이던 좀비들이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성현을 향해 내달렸다.
쐐애애애액!
아니오스를 처음 만난 사람이라면, 그래서 저 좀비를 처음 봤다면, 평범한 좀비와 다른 능력에 깜짝 놀랐을 거다.
하지만 성현은 회귀 전 아니오스를 겪어 봤다.
‘약해.’
회귀 전 만났을 때 보다 훨씬 약하다.
그때의 그녀는 끔찍했지만 지금은 곱게 자란 막내딸일 뿐이다.
‘몸에 담긴 마력은 여전히 엄청나네.’
물론 귀족이다.
가지고 있는 마력과 재능은 엄청나다.
하지만 실전으로 따지면.
‘뢰피크르보다도 약해.’
저렇게 마력을 펑펑 써 대다 보면 어느 순간 바닥을 보일 거다.
성현은 그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죽여 주마.’
성현이 단도를 잡고 몸을 낮추며 입을 열었다.
“가라!”
지금껏 멈춰 있던 사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좀비와 사체가 맞붙었다.
눈으로 보기 싫을 정도의 살육이 이어진다.
좀비의 내장이 쏟아지고 짐승의 눈알이 뽑힌다.
“죽여! 다 죽이라고!”
아니오스의 외침이 사막을 울렸다.
그리고 아니오스는 자신의 치마 밑단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껏 그녀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던 성현의 창이 보였다.
그녀가 하얀 손을 뻗어 성현의 창을 잡고 뽑았다.
그리고 그 창을 내동댕이치며 싱긋 웃었다.
‘이제야 자유의 몸이 되었어. 잠시 당황했지만…….’
그녀의 시선이 성현을 향했다.
짐승의 중심에 서서 지휘를 하고 있는 인간.
‘그래 봤자 인간이야.’
인간은 존재의 상대가 될 수 없다.
그게 세상이고 자연의 법칙이다.
‘하…….’
아니오스는 한숨을 내뱉으며 몇 시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죽은 자의 군주 나모르 님을 뵙습니다!”
군주 나모르가 백작가를 찾았다.
나모르의 지시는 하나.
“내 성으로 찾아오는 인간을 멸하라.”
군주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백작가의 숨통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백작가는 난리가 났고 조한 백작은 곧바로 10명의 자식을 소집했다.
조한 백작, 전장의 비명을 관장하는 귀족이다.
그가 높은 의자에 앉아 자식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누가 가겠느냐?”
자식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이유는 하나.
귀찮은 일이었고 인간과 싸워 이긴다 해서 얻을 것도 없다.
그러던 중 장남이 앞으로 나와 허리를 굽히며 입을 열었다.
“아니오스를 보내는 게 어떨까 합니다.”
아니오스는 뒤늦게 태어난 자식.
지긋지긋한 평화가 계속되며 전쟁과 싸움을 경험한 적이 없다.
게다가 이중에 가장 발언권이 없다.
장남은 귀찮은 일을 아니오스에게 미루기 위해 애를 썼다.
“어차피 인간입니다. 가볍게 싸워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좋다.”
그 한마디에 검은 사막에 가는 것이 아니오스로 결정 났다.
그리고.
“그럼, 협곡에는 누가 갈 것인가?”
군주의 땅으로 들어가는 길은 두 갈래다.
검은 사막을 통해 곧장 들어가는 방법이 있고 우회해서 가는 길이 있다.
자식들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조한 백작은 자식들을 둘러보다 가장 앞서 있던 장남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가 가라.”
“……제가요?”
아니오스를 보내려던 장남이 졸지에 협곡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협곡은 지연우와 4천 명의 계약자가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장남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기억을 떠올리던 아니오스는 방긋 웃었다.
‘그동안 날 무시했지?’
실전 경험이 없다며 무시받던 날.
이제는 끝일 거다.
‘마법사잖아.’
아니오스는 평범한 계약자가 이곳으로 올 줄 알았다.
그런데, 마법사의 권능을 가진 성현이 온 것이다.
‘럭키.’
놈을 죽이면 마법사를 죽인 존재로 이름이 기억될 게 분명하다.
다른 형제들이 가지지 못한 명성을 얻게 되는 거다.
아니오스가 붉은 혀로 입술을 핥았다.
‘가장 잔인하게 죽여 줄게.’
그리고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자 하늘에 박힌 존재들의 눈, 그들이 쑥덕대기 시작했다.
귀족과 싸우는 인간의 등장에 관심도가 집중된 거다.
-드디어 인간이 귀족도 잡는 건가?
-미친, 귀족이 괜히 귀족이냐?
-그런데, 아니오스가 누군지 들어 본 분?
-그러게? 귀족인데 처음 들어 봐.
-전장의 비명, 그 집안이라고 들었음.
-비명 소리를 듣고 쾌락을 느끼는 변태 같은 새끼들 ㅋㅋㅋ
-막내딸이라잖아. 곱게 자란 난초지.
-아무리 그래도 귀족이야. 마녀랑은 달라.
-어그로나 개 끄는 거지. 저 인간, 이번엔 죽겠네.
-난 저 인간한테 선물해 주고 왔어. 노잣돈으로 쓰라고 1골드. 캬!
-2222
-333333
그리고 성현의 주변에 수십 개의 라이트닝 볼트가 솟아올랐다.
이어서 군장을 열어 준비했던 물병을 꺼냈다.
물론 내용물은 물이 아니라 휘발유다.
좀비에게는 극악의 상성.
성현이 좀비를 향해 물병을 던졌다.
1개, 2개, 3개!
포물선을 그린 물병이 좀비의 중심, 그들의 머리 위에 섰을 때, 곧바로 라이트닝 볼이 쏘아졌다.
라이트닝 볼이 물병에 맞고 팡, 팡, 팡, 터진다.
휘발유는 곧바로 불꽃으로 변했고 좀비들의 몸에 떨어졌다.
그대로 불이 붙었다.
-끄어어어!
좀비들이 불타올랐다.
버둥거리며 다른 좀비를 붙잡는다.
불꽃이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성현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휘발유를 던졌다.
화르르륵!
놈들의 시체 타는 냄새가 진동했지만 아니오스는 오히려 윽박질렀다.
“뭐하는 거야!”
존재들의 세상은 난리가 났다.
-저 인간이 죽은 자의 군주와 싸우는데 불을 안 준비했을 리가 없지.
-치사하게 싸우는 것으로 유명한데, 아니오스는 몰랐나?
└모든 존재가 저 인간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잖아?
└인간에게 관심 없는 존재들도 많고.
-약점만 집요하게 파고드는 놈.
-꼼수쟁이.
-아니오스 표정 봐라. 저 인간이 누군지 연구도 안 하고 나왔네 ㅋㅋㅋ
-이러다가 귀족이 인간한테 밟히는 거 아니야?
성현은 쉬지 않고 준비해 온 휘발유를 집어 던졌다.
-끄어어어어!
그사이 강령술로 움직이는 짐승들이 가차 없이 달려들었다.
좀비는 불을 무서워하지만 강령술로 움직이는 짐승은 다르다.
성현의 명령이 있다면 지옥이라도 들어간다.
짐승들의 이빨이 좀비를 물어뜯었다.
팔이 잘리고 사막의 모래에 놈들의 내장이 떨어졌으며 불에 탄 좀비가 바동거렸다.
하지만 성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미로 베루스.”
불사의 존재 오미로 베루스까지 소환했다.
오랜만의 등장에 오미로 베루스가 포효한다.
-카아아아악!
“가라.”
성현의 지시에 오미로 베루스가 덜그럭덜그럭, 좀비를 향해 이동했다.
오미로 베루스를 향해 좀비들이 몰려들었지만.
쾅! 쾅!
놈의 주먹에 머리가 폭발한 것처럼 터질 뿐이었다.
그렇게 성현은 가진 전 병력을 끄집어냈다.
당황한 좀비는 그 상대가 될 수 없으니 전투가 끝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백작가의 막내딸 아니오스는 그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밀리는 상황.
“이익!”
경험이 충분했다면 이 상황에 좀비를 퇴각시키고 자신이 직접 움직였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대처 방법을 몰랐다.
그저 분노할 뿐이다.
“죽이라고!”
-아니오스가 밀리는 거 맞지?
-그래도 아직은 몰라. 마력 차이가 너무 커.
-싸움은 별로인 것 같은데?
-싸움 잘하는 개미 1마리가 발버둥 친다 해서 싸움 못하는 코끼리를 죽일 수 있어? 없잖아?
아니오스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가 직접 죽여 주마!”
그리고 그녀가 직접 나섰다.
주변에 수백 개의 검은 마력이 공처럼 뭉쳐진다.
파파파파팡!
마력이 성현을 향해 폭격처럼 쏘아졌다.
한 방, 한 방에 땅이 푹푹 팼고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울렸다.
꽈앙! 꽈앙! 꽈앙!
마력에 맞은 짐승은 단숨에 먼지가 되어 흩날릴 정도다.
성현도 이를 악물고 아니오스의 공격을 피해야 했다.
스치기만 해도 사망.
예상은 했지만 살벌할 정도로 거대한 마력이다.
이어서 그녀의 검은 마력이 꿈틀대더니 용과 같은 모양새로 변했다.
검은 용이 성현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며 달려간다.
-크르르르!
톱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성현의 다리를 물기 위해 움직였다.
텁! 텁! 텁!
성현은 용을 피해서 달렸다.
아니오스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아니오스는 그 모습이 얄미웠다.
“죽어! 죽으라고! 죽어어!”
그녀가 계속해서 외쳤다.
-와…… 저거 지금 마력으로 용 만든 것 맞지?
-귀족은 귀족이네.
-귀족이 고스톱 쳐서 될 수 있는 게 아니야.
-저 인간 오늘 죽겠네.
-노잣돈 1실버 넣었습니다만?
어떤 존재도 성현의 승리를 예상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만큼 힘의 차이가 크니까.
수천 명이 몰려와 궁지에 몰아넣으면 모를까, 인간 1명이 귀족을 이길 수는 없는 거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그 순간, 아니오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