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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30화 (130/252)

130화

* * *

“푸닥거리했네.”

복면인 2명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성현이 아니오스와 싸우던 곳이며 지르힐이 크렌데스의 머리를 폭파시켜 버린 장소였다.

“하…….”

복면인들의 입에서 한숨이 흘렀다.

말 그대로 끔찍했다.

언제나 전투 현장에 있었던 이들도 멀쩡히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사람들의 팔과 다리 그리고 내장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

시신을 물고 있는 짐승의 사체, 그 사체에 박힌 인간의 이빨.

이들은 강령술로 움직이던 사체였다.

내장이 쏟아진다고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다리가 잘렸다면 팔로 기어 다니며 싸웠을 거다.

그리고 팔까지 없었다면 입으로 상대를 물어뜯었을 게 분명하다.

그 덕에 갈기갈기 찢긴 시체가 가득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 거다.

“젠장.”

복면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품에서 무전기를 꺼냈다.

버튼을 꾹 누르며 입을 연다.

“전투 흔적 발견. 짐승과 인간의 사체 수백여 구가 존재.”

-유성현은 찾았는가?

“아직, 계속 수색해 보겠다.”

-수신 양호.

복면인이 무전기를 집어넣으며 다른 복면인을 향했다.

“가자.”

이런 곳에서 1초도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피를 밟는 발소리가 철퍽철퍽 울렸다.

피를 머금은 모래는 퍼석퍼석했다.

“그런데, 어디까지 간 거야?”

두 사람은 성현을 쫓아 계속해서 이동해야 한다.

같은 시각.

서은서와 일행은 협곡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령이 무전기를 품에 넣으며 서은서를 향했다.

“전투 현장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사체가 수백여 구 있다고 한 것을 보면…….”

서은서가 다급히 물었다.

“그럼 유성현 씨가 그쪽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크잖아?”

무령이 고개를 저었다.

“아가씨, 가능성일 뿐입니다.”

“그곳에서 싸울 사람이 있다고?”

“군대와 함께 있던 용병단에는 공을 세우고 싶어서 환장한 놈들이 많이 있습니다.”

용병단은 이곳에 싸우러 왔고 짐승을 죽여 돈을 벌고 싶어 했다.

그런데 본대와 떨어져 군대를 가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불만을 갖고 있었을 거다.

“그래서 군대를 향해 짐승이 밀려왔을 때, 기회라고 생각한 놈도 있었을 겁니다. 놈들이 작전지역을 이탈해 나모르의 성으로 진입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

“유성현을 찾으면 연락이 올 테니, 우리는 일단 계속 추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쨌든 목적지는 나모르의 성일 테니까요.”

이곳은 이계다.

처음 세웠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른다.

서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는 계속 앞으로 전진하자.”

서은서의 시선이 협곡으로 향했다.

협곡으로 진입할 때까지 아직 2시간은 남아 있다.

‘그런데…….’

분위기가 지난번 왔을 때와 다르다.

저 멀리에서 피 냄새가 흐르는 것 같다.

* * *

“미치겠네.”

백작 조한의 장남 라덴이 이마를 손으로 짚은 채 어이없다는 듯 웃고 있었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인간을 토벌하러 올 때만 해도 장난으로 생각했다.

그저 모기 때려잡듯 짓밟으면 된다고 여겼다.

그런데, 예상과 달랐다.

라덴의 몸에는 화살이 고슴도치처럼 박혀 있었고 피가 주르륵 흘렀다.

“젠장.”

라덴이 옆구리에 박힌 창을 쑥 뽑아내며 앞을 바라봤다.

인간의 시체와 늑대의 사체가 가득하다.

‘늑대는 모두 죽었고 계약자는 300명 정도 죽였나?’

하지만 아직도 3,700명이라는 숫자가 남아 있다.

아무리 백작의 아들이라 해도 저 숫자는 무시할 수 없었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쉽게 죽였을 거다.

하지만 저들 모두는 권능 이해도가 10%를 넘는다.

‘하…….’

라덴은 한숨을 내뱉었다.

인간의 힘을 얕잡아 본 결과였다.

라덴의 시선이 틀어졌다.

그 눈에 가장 앞서 있는 지연우가 담긴다.

‘특히 저 새끼…….’

무심한 눈으로 서 있는 지연우, 저놈은 보통의 인간과 달랐다.

‘어쩌면 마녀 이상?’

아무리 우수한 계약자가 몰려왔다 해도 인간일 뿐이다.

고작 300명밖에 죽이지 못한 것은 이 자리에 지연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라덴이 다른 계약자를 죽이려 할 때, 놈의 공격이 불쑥불쑥 들어왔다.

그 공격 하나하나가 치명타.

우습게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지연우부터 죽이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실패였다.

시선을 지연우에게 돌린 순간 수천 명의 공격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시간을 끈 결과가 지금 이 꼴이었다.

라덴이 칼에 묻은 피를 툭툭 털며 지연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하나 묻자. 네 존재가 누구냐?”

“그게 중요한가?”

“중요하지는 않는데 궁금하지.”

인간을 넘어서는 공격력.

그 뒤를 봐주고 있는 존재가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연우는 느긋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알려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라덴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난 가르쳐 줄 생각이었는데, 혼자 비밀로 한다고?”

지연우의 눈에 의문이 채워졌다.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고? 뭘?”

“내 계약자.”

지연우가 눈을 찌푸릴 때, 라덴이 끌끌끌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번쩍 칼을 들어 올렸다.

놈이 등장했을 때의 첫 공격과 같다.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하늘에서 돌덩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꽈르르르릉!

돌덩이가 포탄처럼 처박혔다.

“일단 피해!”

지연우가 외쳤다.

백작의 아들이라 해도 이 정도의 공격을 몇 시간이고 뽑아낼 수는 없다.

그 전에 마력이 바닥날 거다.

“금방 없어질 거다! 최대한 피해라! 할 수 없다면 시신을 방패로 사용해라!”

지연우의 명령이 공간을 울렸다.

꽝! 꽝! 꽝!

무서운 것은 떨어지는 돌덩이가 아니다.

땅으로 떨어져 사방으로 튀는 돌의 파편이다.

잘게 쪼개진 돌이 탄알처럼 사람들의 몸에 처박혔다.

“끄아아악!”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이곳저곳으로 숨었다.

지연우의 지시대로 짐승의 사체와 인간의 시체를 방패로 삼았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8명의 인간은 숨지 않았다.

그들이 다른 인간을 찾아 공격하기 시작했다.

숨어 있는 인간을 향해 창을 쑤셨다.

“컥!”

단번에 사망했다.

죽은 자들은 그들을 같은 편이라 여겼다.

어떤 대비도 할 수 없었고 너무도 쉽게 창에 찔려 죽었다.

그리고 그 비명은 떨어지는 돌덩이의 소리에 파묻혔다.

꽈아아아앙!

땅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인간들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조용히 있다가 놈들의 창에 척추가 끊어질 뿐이다.

“컥!”

라덴이 끌끌끌 웃었다.

“내 계약자들이여! 죽여라! 나를 도와라! 내가 너희에게 마음껏 기회를 주마!”

그 8명은 라덴의 계약자들이었다.

계약서에 적힌 것처럼 서로를 도와야 했다.

한참을 웃던 라덴이 지연우를 바라봤다.

“인간아, 내 계약자가 누군지 찾아봐라!”

돌덩이가 떨어져 내리며 모래 먼지가 자욱하다.

세상을 눈으로 바라보는 인간이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그때 지연우의 옆으로 한 남자가 다급히 달려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지연우의 시선이 남자에게 옮겨졌다.

“뭐지?”

“뒤에서 우리 편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어요!”

남자는 울 것처럼 말했다.

같은 편끼리 죽일 것처럼 싸우는 지금이 무척 두려워 보였다.

하지만 스걱, 지연우의 칼이 휘둘렸다.

망설임 없이 남자의 목을 베어 버렸다.

남자는 어떤 말도 못하고 목에서 피를 뿜으며 비틀대다가 풀썩 쓰러졌다.

지켜보던 라덴이 눈을 깜빡였다.

“어떻게 알았지?”

남자는 라덴이 보낸 계약자다.

지연우를 방심하게 만든 후 심장에 칼을 꽂으려 했다.

하지만 지연우는 거침없이 놈을 죽였다.

라덴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어떻게 자신의 계약자를 알아봤는지.

그런데, 지연우가 태연히 입을 열었다.

“몰랐어.”

“뭐?”

“이런 상황에 내 옆으로 오는 사람은 모두 죽이는 게 당연한 거잖아?”

지연우의 눈빛은 무심했고 라덴은 자신과 같다고 생각했다.

인간을 벌레처럼 여기고 있었다.

라덴이 눈을 깜빡였다.

“정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너 지금 내 계약자를 죽이면서 무슨 생각을 했지?”

지연우가 왜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 픽 웃었다.

라덴이 다시 물었다.

“무슨 생각을 했냐고!”

“사막이 참 덥다는 생각을 했다. 됐나?”

“미친 새끼…….”

“됐고. 하나 더 가르쳐 줄까? 난 너와 싸우면서 권능을 사용하지 않았어.”

라덴의 눈이 커졌다.

지금까지의 몸놀림만 봐도 마녀급은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권능을 사용 안 한 거라고?”

“어, 너…… 생각보다 많이 약하더라?”

그 말을 끝으로 지연우가 라덴을 향해 튀어 나갔다.

지연우의 칼이 불꽃으로 휘감겼다.

* * *

그 시각.

성현이 창고에서 나와 이계로 돌아왔다.

‘몸 상태는 좋고.’

가장 먼저 몸을 살폈다.

지르힐이 들어왔다 나가며 컨디션이 확 올라갔다.

이 상태라면 지금 당장 나모르와 싸워도 괜찮을 것 같다.

‘좋아.’

성현은 천천히 움직였다.

사체를 지나며 사용할 수 있는 게 있는지 한참을 찾는 중이다.

이곳에 들어올 때만 해도 엄청난 숫자의 사체를 끌고 왔다.

콩벌레부터 뱀까지.

하지만 아니오스의 사체와 싸우며 전멸에 가깝게 박살 나고 말았다.

사용할 만한 것은 겨우 700여 개.

‘확실히 마력의 깊이가 달랐어.’

성현은 사용 가능한 사체를 골라 일으키며 생각에 빠졌다.

다음에 아니오스 같은 존재를 만나면 어떻게 싸워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다.

‘사체도 전술을 사용할 수 있을까?’

아니오스 역시 사체를 사용했다.

그리고 아니오스의 마력이 성현보다 깊었다.

사체와 사체의 싸움으로 갔다면 성현이 필패했을 거다.

‘그런데 정면으로 상대하지 않고 전술을 사용했다면?’

이렇게 큰 피해는 입지 않았을 거다.

‘존재는 마력을 믿고 물량전을 하는 경우가 많아.’

성현의 생각은 깊어졌다.

회귀 전 성현은 지르힐의 권능만 갖고 있었다.

그리고 지휘를 해 봤자 소수 정예인 구악과 함께한 것이 전부다.

‘공부를 좀 해야겠어.’

앞으로는 마법사의 권능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물량전으로 승부를 거는 존재와의 싸움에서 강령술을 사용하려면 대규모 전투의 전술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장 사용할 전술이 필요해.’

나모르는 죽은 자의 군주다.

사체를 이용한 전투에 능숙하다.

이번에 싸운 아니오스에 비해 몇 배는 더 강할 게 분명했다.

생각을 이어 가던 성현이 조용히 웃었다.

공부를 안 해서 그런지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 같은 것만 떠올라서다.

‘됐다.’

성현은 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손을 허공에 대고 휘저었다.

끌어냈던 700여 구의 사체들이 몸을 일으킨다.

몸이 성한 사체는 없다.

하나같이 팔이 없거나 다리가 사라졌다.

짐승은 이빨이 없거나 큰 부상을 입은 상태다.

“조금만 더 수고하자.”

성현이 가볍게 뛰어 뱀의 머리에 올랐다.

스르르륵.

뱀이 움직였고 그 뒤로 칠백의 사체들이 쫓았다.

검은 사막을 지나 나모르의 성으로 향하는 거다.

그런데.

“얘기 좀 하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성현이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낫을 든 마녀 아리가 뱀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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