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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32화 (132/252)

132화

지연우의 시선도 길잡이가 가리킨 곳을 향해 틀어졌다.

영화 속에서 많이 본 것 같은 실루엣.

온통 검은색으로 가득한 것이 꼭 흡혈귀의 성처럼 여겨졌다.

보기만 해도 섬뜩한 기분이 느껴졌다.

계약자들이 움찔거렸고 공포를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지연우는 달랐다.

그는 묘하게 웃고 있었다.

자신의 신화가 지금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연우는 한참 동안 홀린 것처럼 나모르의 성을 바라봤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앞으로의 계획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있었다.

언론을 움직여 여론의 관심과 칭송을 받는 꿈.

연맹의 최고 자리에 올라 정부까지 손에 얻는 미래.

‘사람들은 내 이름을 연호할 거야.’

지연우는 눈을 감았다.

그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외치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이제 머지않았어.’

역사상 최고의 지도자란 이름을 듣게 될 거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지연우의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그날이 가까워졌다.

지연우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 모든 미래는 나모르의 성을 부숴야 가능한 거다.

지연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10분간 휴식.”

지연우는 지금 당장이라도 나모르의 성에 뛰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휴식을 취한 이유는 하나다.

팀장들을 집합시키고 실력이 뛰어난 자들을 선별하기 위해서다.

“권능 이해도가 20% 이상인 자들을 모아라. 성격은 상관없다. 그리고 그들은 나와 함께 마지막에 진입한다.”

지연우는 지금껏 가장 앞서 이동했다.

하지만 나모르의 성을 앞두고 가장 뒤로 물러섰다.

‘상대는 군주야.’

어느 정도로 강할지, 저 성에 어떤 짐승이 있을지 예상할 수 없었다.

섣불리 뛰어드는 것은 죽고 싶어 환장한 것이나 마찬가지.

지연우는 먼저 출발한 계약자들을 미끼로 삼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죽든 말든 상관없었다.

‘나 혼자 살아남아도 되는 거야. 나모르만 내 칼에 찢겨 죽으면 되니까.’

보통의 사람들은 리더가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뛰어들어야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 위험한 곳에서 가장 늦게 나와야 존경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연우는 그런 리더를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인간미?’

헛소리다.

그런 자들은 금방 죽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리더를 순식간에 잊어버린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오직 하나.

‘퍼포먼스.’

사람들은 이 전쟁에서 몇 명이 부상을 당했는지, 죽었는지 관심 없다.

애도는 조금 할 거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한 달.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부상자와 죽은 자들은 모두 철저하게 잊힐 거다.

역사상 전쟁을 떠올려도 그렇다.

사람들은 죽은 자에 관심을 갖기보다 누가 승리를 이끌었는지에 주목한다.

‘그래서 나모르는 내가 죽인다.’

생각을 마친 지연우가 칼을 번쩍 들어 올렸다.

“전원, 무장하라!”

지연우의 외침에 사람들이 군장을 풀고 갑옷을 입기 시작했다.

절그럭거리며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계약자들이 주사기를 들고 팔에 꽂는다.

공포를 이기기 위한 마약이었다.

나모르와의 전투에 맞춰 이들을 대상으로 일시적으로 허용된 마약.

주사를 맞은 계약자들의 눈이 폭력적으로 변해 갔다.

그때 지연우의 옆으로 한아성의 오빠 한지혁이 섰다.

“지원사격을 요청한 후에 들어가는 게 어떨까요?”

수십 킬로미터 뒤에 군부대가 준비하고 있다.

짐승의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서은서를 비롯한 페이트 길드가 지원하러 갔기 때문에 위기에서 벗어났을 거다.

“일단 포사격으로 한번 쓸어버린 후에 들어가면 조금 더 편할 것 같은데요.”

한지혁의 말에 지연우는 고개를 저었다.

“무리야. 라덴과 전투할 때 관측병과 무전병이 죽었어.”

관측병이 있어야 표적의 위치 좌표를 선정할 수 있고 무전병이 있어야 선정된 좌표를 알릴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둘 다 죽은 상태.

군부대의 지원은 포기해야 한다.

지연우도 그 두 사람이 죽은 것이 아쉽기는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큰 관심은 없었다.

애초에 이계의 문이 군사 지역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군부대와 함께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지연우는 이곳에서 세운 공을 혼자 꿀꺽할 생각이었다.

“들어가지.”

지연우가 다시 칼을 번쩍 들어 올렸다.

준비된 계약자들이 몸을 일으킨다.

그들의 숫자는 약 3,700.

모두 얼굴 전체를 가리는 투구까지 쓰고 있다.

움직임은 불편하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공격이 날아올지 모르는 전쟁에서는 공격력보다 방어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절그럭절그럭.

두꺼운 갑옷을 입은 그들이 나모르의 성을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나모르의 성 앞에 도착했다.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성벽을 보며 묘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게다가 굳게 닫힌 문은 30층 아파트보다 높아 보인다.

“……이걸 뚫어야 하는 거지?”

딱 봐도 공성전이 시작될 것 같다.

문을 부수는 동안 저 높은 성벽에서 뭐가 떨어질지 예상도 안 됐다.

“젠장.”

계약자들은 꼴깍꼴깍 긴장된 침을 삼켰다.

그런데 끼이이익, 음산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이 열렸다.

마치 이들을 기다렸다는 듯.

어서 들어와 죽으라는 듯.

그리고 열린 문 안으로 보이는 시커먼 공간은 마치 동굴 같았다.

선발대를 지휘하는 팀장마저도 긴장으로 움츠러들 정도로 음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마약까지 주사했지만 마음에는 생존 본능이 샘솟고 두려움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하지만 들어가야 한다.

이들이 이곳까지 온 목적이다.

“들어간다.”

팀장이 앞서 들어갔다.

순간 팀장은 낯선 소리를 들었다.

쉬익!

이 소리는 분명……!

“화살이다! 숙여!”

어둠 속에서 화살이 날아오고 있었다.

퍼퍼퍽!

화살이 돌을 꿰뚫고 박힌다.

팀장의 빠른 판단이 아니었다면 안으로 들어온 팀원들은 모두 사망했을 거다.

팀장이 이를 꽉 씹었다.

‘쉽지는 않다는 거지?’

이어서 동굴의 어둠 속에서 이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원숭이가 웃는 것처럼.

“끽! 끽! 끼!”

하지만 원숭이는 아니다.

그 뒤에 들리는 목소리.

“영생! 영생! 영생!”

화살을 피하기 위해 땅에 엎드린 팀장은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천천히 앞을 바라봤다.

동시에 눈을 부릅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들이 달려오고 있다,

양팔을 흔들면서 기괴한 몸짓으로 춤을 추며.

원시 부족이라 해도 하반신은 가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놈들은 발가벗고 있다.

몸에 징그러운 문신을 한 놈들이 혓바닥을 내밀며 달려오는 중이다.

“끼이이익!”

“영생! 영생! 영생!”

“나모르 님을 믿어라! 나모르! 나모르! 나모르!”

팀장은 잠시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다가 소리를 질렀다.

“다 죽여! 놈들은 맨몸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어두웠기 때문에 자세히 볼 수 없었다.

놈들은 인간과 똑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빨은 달랐다.

짐승처럼 송곳니가 날카롭게 뻗어 나와 있었다.

문신을 한 피부 역시 자세히 보면 썩어 문드러지는 중이다.

“카아아아악!”

가장 앞서 있던 벌거벗은 인간이 땅을 박차고 뛰었다.

팀장까지 거리는 약 30여 미터였는데 단숨에 다가섰다.

“새끼가!”

팀장이 칼을 휘둘렀다.

퍽!

‘잡았어!’

팀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벌거벗은 인간의 팔이 잘려 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놈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끼이이익!”

남은 한 팔로 팀장을 끌어안고 입을 크게 벌렸다.

콱! 콱! 콱!

거듭 팀장의 어깨를 물었다.

팀장이 악을 질렀다.

“쇳덩이야, 새끼야!”

팀장은 갑옷을 입고 있었다.

말 그대로 무쇠, 인간의 이빨로 쑤실 수 없다.

그런데.

“어? 어? 티, 팀장님?”

뒤에서 팀원들의 목소리가 불안했다.

“왜? 왜?”

놈의 이빨에 갑옷이 쩍쩍 갈라지는 중이다.

“젠장!”

팀장이 손에 마력을 담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달라붙은 놈의 머리를 찍었다.

쩌엉! 쩌엉! 쩌엉!

세 번의 공격, 인간은 힘없이 쓰러졌다.

하지만 이건 시작이다.

어둠 속에서 벌거벗은 인간들이 계속 달려오고 있다.

“영생! 영생! 영생!”

팀장이 씹듯이 말을 내뱉었다.

“살아남자!”

그런데 순간 팀장은 발에 이상한 감촉을 느꼈다.

눈동자를 천천히 내려다보니.

‘어?’

방금 자신에게 달라붙었던 놈.

그놈이 팀장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안 죽었다고?’

팀장의 눈동자가 떨려 올 때 놈이 또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발목을 꽉 물었다.

콱!

“새끼야!”

팀장이 비명처럼 악을 지르며 칼로 놈의 등을 쑤셨다.

퍽! 퍽! 퍽!

하지만 놈은 멈추지 않고 팀장의 발목을 물고 있다.

발목을 감싼 갑옷이 쩍쩍 갈라진다.

“젠장!”

콰직!

갑옷이 부서졌다.

놈의 날카로운 이빨이 팀장의 발목을 찔러 들어갔다.

“으아아악!”

* * *

성현은 뱀의 머리에 올라 나모르의 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옆에는 아리가 허공에 떠서 나란히 함께하는 중이다.

둘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앞을 향할 뿐이다.

그사이 아리는 힐끗힐끗 성현을 살폈다.

‘뭐지?’

성현이 달라졌다.

불순했고 난잡했던 마력이 안정됐고 그 양도 확 늘어났다.

‘그 짧은 시간에?’

아리는 지금껏 쭉 성현을 지켜봤다.

잠시 놓친 것은 이계로 들어온 잠깐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성현이 확 바뀌었다.

성현의 성장 속도가 놀랍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뭐야?’

아리는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저기?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어떻게 해서 갑자기 안정된 거야?”

성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리가 다시 물었다.

“인간, 대답해 줬으면…….”

“다 왔다.”

“어?”

아리가 천천히 시선을 틀었다.

질척거리는 진흙 바닥.

나모르의 성이 앞에 보였다.

순간 아리의 얼굴에 긴장이 확 서렸다.

그녀는 존재다.

인간과 달리 군주의 힘을 잘 알고 있다.

‘하…….’

그녀가 긴장된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 물릴 수 없어.’

죽거나 아니면 군주가 되거나.

물론 죽을 확률이 더 크다.

하지만.

‘유성현이 뭔가를 보여 줄 거야.’

물론 성현도 군주의 힘에 비하면 벌레와 같다.

어쩌면 나모르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현은 지금껏 말도 안 되는 승리를 보여 줬다.

‘이번에도 뭔가 보여 줬으면…….’

아리는 긴장된 손을 쥐었다 펴며 시선을 성현에게 틀었다.

믿는 것이 있으면 성현이다.

아리는 성현이 나모르와 인간에게도 변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현의 눈에는 어떤 긴장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나칠 정도로 담담하다.

천천히 창을 꺼내더니 툭, 뱀의 머리에서 뛰어내려 땅에 섰다.

철퍽철퍽, 진흙을 밟으며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리가 그 뒤를 쫓았다.

성문 앞에 도착하자 썩은 내가 진동했고 곳곳에 시체가 쓰러져 있다.

성현이 슥 시체들을 둘러봤다.

어떤 시체는 짐승에게 물린 것처럼 갑옷이 깨져 있고, 또 다른 시체는 창에 찔려 고슴도치가 되어 있다.

생존을 위한 갑옷은 이곳에서 통하지 않았다.

성현이 천천히 동굴 안으로 향하며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그 말에 덜그럭거리며 죽은 자들이 몸을 일으켰다.

목에 화살이 박힌 시체가 피를 꿀렁이며 성현을 뒤쫓는다.

다리가 없는 시체가 팔로 기어가며 성현을 보좌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리가 마른침을 삼켰다.

‘이건 또 뭐야?’

지금 성현의 모습은 마치 ‘죽은 자의 군주’ 같았다.

곧 죽은 자의 영역의 주인이 될 자신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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