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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33화 (133/252)

133화

* * *

동굴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벽에 걸린 횃불이 없었다면 지척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운 공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수백 명이 걸어도 될 만큼 널찍하다는 거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은서는 복면인 2명과 만났다.

성현을 쫓아 이동했던 자들이다.

“유성현 씨는?”

서은서가 다급히 물었지만 복면인은 고개를 저었다.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먼저 안으로 이동한 것 같습니다.”

이곳으로 올 수 있는 길은 협곡과 사막, 두 곳이다.

양쪽으로 찢어져 수색했는데도 찾지 못했다면 두 가지 경우만 남는다.

죽었거나, 더 깊은 동굴로 들어갔거나.

하지만 서은서는 성현의 죽음을 상상할 수 없었다.

성현은 강화도의 스페셜 던전에서도 살아남은 자다.

지옥에서도 기어 올라올 것 같았다.

서은서의 시선이 동굴의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용히 어두운 공간을 살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스산한 적막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안으로부터 불어온 바람에서 피 냄새가 맡아지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최악,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섣불리 걸음을 옮기기 두려웠다.

무령이 그녀의 옆에 섰다.

“아가씨? 들어가시죠.”

“그래, 들어가야지.”

그녀는 긴장을 이겨 내며 앞으로 향했다.

저벅저벅, 그들의 발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그리고 일행의 가장 뒤에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가 있었다.

박상문 하사가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숨 쉬기 힘든 것 맞죠?”

“어, 맞아.”

나모르의 마력이 더욱 짙어졌다.

몸은 심해를 걷는 것처럼 무거웠고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웠다.

실력이 떨어진 자라면 이곳에서 산소 부족으로 죽고 말 거다.

그 예로 곳곳에 쓰러진 시신들이 그랬다.

대부분은 갑옷을 벗은 채 죽어 있었다.

무거운 갑옷을 입고 들어왔다가 숨 쉬기가 불편해 벗어던졌을 거다.

“힘들 것 같으면 말해.”

“힘들긴요. 막내를 구해야죠. 그리고 아시잖아요? 저는 필살기가 있어요, 하하하.”

박상문 하사의 말에 이창민 중사가 픽 웃었다.

그렇게 일행은 더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동굴 전체가 피범벅이었고 바닥은 철퍽거렸다.

얼마나 걸었을까, 서은서는 핏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뚝, 뚝.

시선을 돌리자 동굴 벽에 발가벗겨진 시신이 걸려 있었다.

창에 꽂힌 시신은 눈도 감지 못하고 죽어 있다.

“내려 드려.”

서은서의 말에 무령이 성큼성큼 걸어가 창을 쑥 뽑았다.

쿵!

시신이 떨어졌다.

그 순간이었다.

시신이 꿈틀댔다.

“영생! 영생! 영새애앵!”

놈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무령을 향해 뛰어올랐다.

콰악!

하지만 무령이 빨랐다.

곧바로 칼을 꺼내 놈의 입에 쑤셔 박았다.

“컥!”

놈의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그런데 놈이 히죽 웃는다.

“사실이었어! 난 영생을 얻었다! 너도 얻으라! 영생! 나모르 님을 믿으라! 하하하하!”

“미친!”

무령이 칼을 비틀어 다급히 뽑아냈다.

그리고 칼을 휘둘러 놈의 허리를 썰어 버렸다.

‘퍼석!’ 소리와 함께 놈이 반으로 갈라져 쓰러진다.

그런데 놈은 죽지 않는다.

반으로 갈라진 상태로도 움직인다.

내장을 질질 흘리면서 팔로 땅을 짚는다.

이어서 거미처럼 다가왔다.

파파파팍!

“나모르 님! 제게 영생을 주시옵고!”

놈의 누런 이빨이 날카롭게 빛났다.

하지만.

콰직!

다른 복면인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칼과 창 그리고 도끼로 놈의 몸을 으깼다.

퍽! 퍽! 퍽! 퍽!

한참을 찌르고 잘랐다.

그제야 영생을 외치던 놈이 생명력을 잃었는지 더 움직이지 못했다.

아니, 살아 있다 해도 이미 잘게 썰린 고깃덩이가 되었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무령이 입술을 씹으며 서은서를 바라봤다.

“아가씨, 지능이 있는 좀비형 짐승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까워졌습니다.”

일행은 동굴 안쪽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 그리고 희미하게 들리는…….

“영생! 영생! 영생!”

공기가 서늘해졌다.

피비린내와 함께 시체 썩은 내가 흉측하게 흘러온다.

일행은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그때 한 복면인이 농담처럼 말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가 저렇게 되면 망설이지 말고 죽여라. 저런 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 목은 내가 잘라 줄게.”

“미친.”

서은서의 가드를 맡은 복면인 30명.

이들은 페이트 길드 내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자들이다.

무수히 많은 전투를 경험했다.

하지만 지금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내가 죽으면 우리 마누라한테 딱 한마디만 전해 줘.”

“뭐라고?”

“재혼하면 꿈에 나타날 거라고.”

“야, 야. 재수 없는 소리 말고 집에 가면 맥주나 한잔하자. 내가 살게.”

어색한 웃음이 끌끌끌 흘렀다.

하지만 서은서는 그들의 말을 막지 않았다.

유언일 수도 있어서다.

그사이 무령은 가장 구석에 선 복면인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지난번, 강화도 던전에 들어갔을 때도 함께했던 복면인이다.

앞에 선 무령이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분명 무령이 상급자다.

그는 서은서를 가드하는 경호대의 대장이다.

하지만 존대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깍듯하게.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복면인이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미워도 내 동생이니까.”

“감사합니다.”

그들이 저벅저벅, 안으로 향했다.

그 시각.

동굴의 중심, 이곳은 넓었다.

인간 수천 명과 좀비 떼가 싸워도 공간이 한참 남을 정도였다.

그리고 마력이 쏟아지는 소리가 쾅, 쾅, 쾅, 요란하게 들렸다.

가운데에 놓인 치솟은 불꽃으로 인해 동굴 벽에는 온갖 그림자들이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죽어!”

“영생! 영생! 나는 안 죽어! 너도 나모르 님을 믿어라!”

인간이 마력을 쏘았다.

공격을 받은 좀비가 땅을 데굴데굴 구른다.

그런데 그사이 다른 좀비가 그 인간에게 달려들었다.

1마리, 2마리, 3마리!

놈들이 인간에게 매달려 계속해서 물어뜯는다.

또 하나를 공격하면 또 다른 놈이 달려든다.

끊임없는 물량전.

공포와 고통을 모르는 광신도 앞에서 인간은 무력했다.

엄청난 권능을 갖고 있어도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한계는 존재한다.

마력은 금방 바닥나고…….

“아아아악! 살려 줘!”

좀비의 손에 갑옷이 뜯겼다.

맨살이 드러나자 놈들의 이빨이 거칠게 살점을 물어뜯는다.

콱! 콱! 콱!

“질기지 않아! 맛있어!”

“영새애앵!”

어떤 계약자는 바동거리며 도망가고 있었다.

“살려 줘! 살려 줘!”

눈물까지 흘린다.

“제발! 제바알!”

하지만 놈의 어깨가 좀비에게 잡혔다.

“이놈을 제물로!”

“끼익! 끼이이이익!”

계약자가 땅에 엎어졌다.

그 위로 좀비들이 입맛을 다시며 올라탄다.

그리고 서은서와 일행이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는 눈을 크게 뜨고 경악했다.

인간이 밀리고 있었다.

끝이 아니다.

동굴 벽을 타고 계속해서 좀비들이 내려오고 있다.

이곳은 지옥, 그 자체였다.

“어, 어떻게…….”

서은서는 어떤 지시를 내려야 할지 고민했다.

인간과 좀비가 엉켜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때.

“K-2.”

이창민 중사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K-2 소총이 나타났다.

그가 무심한 목소리로 복면인을 향해 총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쏠 줄 알죠? 받으세요. 좀비들은 지금 우리를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기회예요. 점사 놓지 말고 단발로 조준 사격합니다. 영점 잡을 기회는 없으니까 그건 알아서 하시고.”

이창민 중사의 손에서는 계속해서 K-2 소총이 나타났다.

복면인 전체가 받을 정도였다.

탕! 탕! 탕!

복면인들이 사격을 시작했다.

좀비의 등과 어깨에 탄이 박혀 들어갔다.

머리가 터지고 팔이 떨어졌다.

화력이 지원되자 좀비가 밀려난다.

다시 인간들이 우세해졌다.

“새끼들! 죽여 버린다!”

탕! 탕! 타타탕!

총열이 붉게 변할 때까지 복면인들은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탄은 부족하지 않았다.

이창민 중사가 계속해서 옮겨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은서의 시선은 지연우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을 수 있었다.

지연우는 동굴 한쪽에 등을 기댄 채 느긋하게 서 있다.

그는 싸움에 동참하지 않는다.

자신을 향해 가까이 다가온 좀비만 죽일 뿐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관찰하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인간이 죽든 말든 상관없어 보였다.

서은서가 입술을 씹었다.

‘왜?’

페이트는 독을 베이스로 시작된 길드다.

그래서 국민에게 손가락질도 받고 욕도 먹는다.

나쁜 회사라면서…….

그리고 서은서는 그 말에 동의한다.

회사를 키우기 위해 비리도 저지르고 권력자와 손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

‘하지만…….’

지연우는 다르다.

그는 정의의 편에 선 영웅이다.

영웅이라면 이곳에서 팔을 걷고 나서야 한다.

악의 축이라고 욕을 처먹는 페이트 길드조차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뭐지? 왜 저러고 있지?’

서은서는 봤다.

지연우는 웃고 있었다.

* * *

저벅저벅…….

성현은 동굴을 걷고 있었다.

그 뒤로 수백의 사체들이 따라오는 중이다.

모두 이곳에서 싸우다 죽은 계약자들.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것은 마법사의 권능으로 일으켜 끌고 오는 중이다.

비틀비틀.

온몸에서 피를 질질 흘리는 사체들이 성현의 종이 된 것처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동굴의 횃불에 비친 성현의 그림자는 말 그대로 마왕 같았다.

그때, 성현이 걸음을 멈췄다.

시선을 멈춘 곳에 흉측한 사체가 보였기 때문이다.

‘이건 누가 이렇게 한 거야?’

이미 인간의 형체가 아니었다.

마치 다진 고기.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몰려와 칼로 찌르고 도끼로 으깨지 않으면 이런 모양이 될 수 없다.

‘흠…….’

잠시 사체를 바라보던 성현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앞에서 전투 소리가 들려온다.

총소리도 들리는 것을 봐서 이창민 중사도 합류한 것 같다.

‘거의 다 왔네.’

성현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 옆으로 아리가 섰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 이건 대답해 줬으면 좋겠는데. 너…… 인간의 시체를 보고 아무 생각도 안 들어?”

정육점에 파는 고기와 다르다.

동족이다.

같은 인간이다.

그런데 성현의 감정은 어떤 동요도 없다.

아리는 그게 이상했다.

그리고 성현의 시선이 아리에게 옮겨졌다.

“들어.”

“어떤?”

“이 지랄맞은 세상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목표. 그래야 나도 괴물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

“어?”

성현은 더 대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뚝 멈추더니 천천히 창을 앞으로 내민다.

그리고.

“도착했다. 가라.”

그 말과 동시에 사체들이 절그럭절그럭, 성현의 옆을 스쳐 나가기 시작했다.

* * *

지연우는 팔짱을 끼고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나모르는 아직 나오지 않았어.’

좀비인지 광신도인지 몰라도 나모르의 권능으로 움직이는 것들이다.

나모르만 죽이면 다 해결된다.

괜히 지금부터 움직여 힘을 빼고 싶지 않았다.

끌고 온 계약자는 많고 저들을 데려온 목적은 하나, 나모르를 향한 미끼였다.

‘나모르가 미끼를 물고 나왔을 때…….’

그때가 지연우가 원하던 시간이다.

모두 절망으로 물들었을 때, 그는 움직일 거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모두의 앞에 설 생각이다.

그 파격적인 퍼포먼스는 신화의 첫 장에 적힐 거다.

그게 지금의 계획이다.

그런데 갑자기 총소리가 들렸다.

탕! 탕! 탕!

시선을 틀어 보니 서은서의 일행이다.

지연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군부대로 보냈던 애가 왜 이곳에 왔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총?’

서은서의 일행은 이를 악물고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그 발버둥을 보며 지연우는 슬쩍 웃었다.

‘까고 있네.’

총으로 좀비가 잠시 밀리고 있지만 그게 전부다.

전황을 뒤바꿀 정도의 위력은 없다.

그리고 예상대로였다.

좀비가 서은서의 일행을 향해 달려간다.

총에 맞아도 크게 웃으면서.

“끼이이익!”

“너희도 나모르 님을 믿으라!”

“영생!”

결국 서은서 일행은 흩어졌다.

산발적으로 도망치며 총을 쏘고 있다.

지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바뀌는 것은 없다.

천천히 나모르를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 그때였다.

음산한 기운이 이곳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모르의 좀비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사체들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동굴 안으로 들어와 죽은 계약자들이다.

그들이 사체가 되어 좀비와 싸운다.

-카아아악!

좀비가 밀린다.

똑같은 사체여도 인간이었을 때 가진 힘의 차이가 컸다.

퍽! 퍽! 퍽! 퍽!

두려움과 고통을 모르는 강령술 군단의 등장에 좀비는 도망가기 시작했다.

지연우의 눈이 일그러졌다.

그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움직이고 있어서다.

‘뭐지?’

하지만 계약자들은 달랐다.

그들의 눈은 희망으로 반짝였다.

“지, 지원군?”

“누구지?”

평소에는 경멸하던 강령술이다.

하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영웅이었다.

“누구야!”

계약자들의 외침이 울릴 때, 성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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