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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34화 (134/252)

134화

성현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곧장 군대에 갔고 언론에 얼굴이 실린 것은 단 한 번, 마녀 뢰피크르의 사냥에 성공했을 때다.

계약자들이 성현의 얼굴을 알기는 어려웠고 낯선 인물의 등장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한 계약자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설마…… 나모르 아니야?”

성현은 사체를 앞세우고 그 뒤에 나타났다.

옆에는 거무튀튀한 낫을 들고 서 있는 마녀까지 보인다.

분명 죽은 자의 군주라 해도 모자라지 않았다.

곧 기겁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나모르가 나타났다!”

“아아아악!”

계약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벌거벗은 좀비들, 아니 광신도를 상대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 나모르라니.

“군대까지 끌고 왔어! 군주의 군대야!”

“젠장!”

성현이 나모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닌 착각이다.

하지만 착각은 실체처럼 다가왔고 공간은 공포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계약자들은 오합지졸처럼 뛰었다.

바닥에 흘린 피가 철퍽거렸다.

넘어지는 사람, 귀를 막고 발발 떠는 사람, 십자가를 손에 들고 기도하는 사람! 심지어 오줌을 지리는 사람도 보인다.

그렇게 겁먹은 계약자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아아아악!”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던 서은서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성현을 알아챘다.

그리고 성현을 다시 보게 된 것은 정말 반가웠다.

하지만 지금은 반가워할 시간이 없다.

계약자들이 이 상태면 될 것도 안 된다.

군주를 이기려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

‘어쩌지?’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이창민 중사에게 시선을 틀었다.

“총을 쏴 주세요!”

“네?”

“허공으로 어서!”

이창민 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은서의 뜻을 알아챈 거다.

곧바로 연사로 놓은 채 총구를 위로 올려 방아쇠를 당겼다.

드르르륵!

시끄러운 총소리에 계약자들의 비명 소리가 잠시 멎었다.

그들이 눈을 깜빡이며 서은서를 향했다.

서은서가 강하게 입을 열었다.

“나모르가 아니에요! 보세요! 군복을 입고 있잖아요! 우리 편입니다! 우리 편이에요!”

그제야 계약자들이 물끄러미 성현을 바라봤다.

군복, 그리고 상병 계급장.

인간의 탈을 쓴 게 아니라 정말 사람처럼 보인다.

서은서가 계속 외쳤다.

“그리고 좀비를 보세요!”

계약자들의 시선이 좀비에게 틀어졌다.

놈들은 성현이 부리는 사체들과 싸우고 있다.

“영새애앵!”

“끼이이익!”

그런데, 사체는 계약자를 건드리지 않는다.

오로지 좀비만 물어뜯는다.

팔이 떨어져 나가도 악착같이 좀비와 싸우고 있다.

-크에엑, 크엑.

이미 죽은 자였지만 사람들은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이길 수 있어요!”

서은서의 목소리가 구원처럼 들려왔다.

정말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계약자들이 몸을 일으키더니 함성을 내질렀다.

“우와아아아!”

공포를 이겨 내기 위해 악을 쓰는 거다.

“싸우자아아!”

사람들이 병장기를 들고 싸우기 시작했다.

망치를 들고 벌거벗은 자의 이마를 찍었다.

퍽! 퍽! 퍽!

피가 튀었다.

하지만 망치는 핏물까지 짓이기며 벌거벗은 자의 머리를 짓이겼다.

“죽으라고!”

칼을 움켜잡고 용감하게 돌진하는 계약자도 있었다.

“저 새끼는 내가 죽인다!”

공포를 이겨 낸 인간의 광기는 광신도보다 대단했다.

비명도 들렸지만 그보다 계약자들의 함성이 더 컸다.

“와아아아!”

그리고 성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동굴 안쪽을 둘러보고 있었다.

회귀 전 이곳에 왔을 때와 지금의 차이를 찾는 중이다.

‘다르지 않아.’

나모르의 성은 예전과 똑같았다.

‘그럼 나모르가 있는 곳은…….’

성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계속해서 불어오는 바람.

그것은 위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어두운 공간이었기에 천장이 얼마나 높은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바람은 분명 저곳에서 흘러오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나모르의 눈동자가 있을 것이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이곳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 전에…….’

성현의 시선에 동굴 한쪽 벽에 만들어진 발코니가 보였다.

저곳에 이 좀비들을 움직이는 놈이 있다.

그리고 좀비들은 그 놈을 마법사라 부른다.

‘마법사?’

성현은 픽 웃었다.

성현이 가진 권능이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다.

진짜 마법사의 앞에서 저런 가짜 마법사는 우스울 뿐이다.

성현의 살기가 발코니를 향해 쏘아지기 시작했다.

‘난 널 알고 있다.’

놈 역시 인간이다.

나모르와 계약을 맺은 한낱 계약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인간이 인간을 제물로 삼고 있는 거다.

이유는 하나, 자신의 영생을 위해 인간의 생명력을 빨아먹기 위해서다.

용서할 수 없었다.

성현은 당장 놈의 목을 치기 위해 창을 잡고 뛰어오를 준비를 했다.

‘죽여 주마.’

그때 발코니에서 불빛이 번쩍였다.

후우우우웅!

불덩어리가 날아온다.

“피해!”

성현이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그 전에 불덩이는 이미 땅에 처박혔다.

콰아아앙!

그런데 불덩이는 하나가 아니었다.

쾅! 쾅! 쾅!

포탄처럼 떨어져 내렸다.

계약자는 물론이고 벌거벗은 좀비도 불덩이에 휩쓸렸다.

“아아악!”

인간의 피부는 연약하다.

아무리 계약자가 되었어도 피부가 강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불덩이에 맞으면 피부가 녹아내린다.

흉측해진 얼굴로 바동거려야 한다.

“끼아아악!”

비명이 들려올 때 불덩이가 이글거리며 동굴 안이 훤해졌다.

동시에 동굴 벽, 수많은 구멍에서 좀비들이 뛰쳐나왔다.

“영생! 영생! 영생!”

모두 벌거벗고 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지만 여자도 남자도 부끄러운 것을 모른다.

벽을 타고 내려오고 뛰어내리기도 하고.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숫자다.

그들이 계약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깨를 잡고 물어뜯는다.

손에 들고 있는 죽창으로 계약자의 가슴을 쑤셔 박았다.

퍽!

핏물이 튀고 내장이 쏟아졌다.

시체가 튕겨 나가고 사지가 찢겨 팔과 다리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아아아…….”

창을 잡은 계약자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턱에 힘을 꽉 주고 있지만 눈은 또다시 공포에 물들고 있다.

조금 전 희망을 담아 “우와아아!”하고 외쳤던 기억이 아주 오래전 추억처럼 여겨졌다.

그때.

쿵! 쿵!

발코니에서 이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틀어졌을 때, 로브를 입은 자가 등장했다.

그가 지팡이로 발코니 바닥을 쿵쿵, 찍었다.

그러자 발코니에 불꽃이 화르륵 붙어 올랐다.

놈이 입을 연다.

“죄지은 자들은 들어라. 우리는 나모르 님께 선택된 자들이다. 그리고 나모르 님이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나모르 님은 죄지은 너희까지 품겠다 말씀하셨으니 나약한 마음은 죽음에 담아 버리고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어라! 나모르 님을 경배하고!”

놈의 목소리는 마력이 짙었다.

듣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려 왔다.

사람들이 비틀거린다.

그런데 모두가 울상을 지을 때 지연우는 슬쩍 웃었다.

드디어 간부급의 놈이 나타났다고 생각하며 즐거워하는 중이다.

‘됐네.’

지연우는 저놈의 목을 베고 화려하게 등장해 자신의 존재를 알릴 생각이다.

성현의 등장으로 자신의 존재감이 살짝 묻힐 법도 했지만.

‘저놈이 가만히 있잖아?’

지연우는 성현이 가소로웠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어.’

지연우가 성현을 처음 봤을 때, 그때도 성현은 뭔가 꿍꿍이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죽였어야 했는데.’

이렇게 빠른 시간에 강해질 줄 알았다면 진작 처리했을 거다.

상대를 우습게 본 것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자책했다.

‘아쉽네.’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들러리다.

자신의 옆에서 손뼉을 칠 인간이 저 정도의 능력을 펼쳐 주는 것은 아 주 좋다.

‘땡큐.’

지연우가 손을 허리로 가져갔다.

허리에 감긴 검을 뽑아내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성현이 움직였다.

파아아앙!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간다.

곧 다리로 땅을 박찼다.

좀비와 계약자의 머리를 밟으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성현의 손에 들린 창이 빙그르르 돈다.

그리고 단숨에 발코니에 올랐다.

그 모습을 이곳에 모인 모든 계약자가 보고 있었다.

“어? 어?”

“강령술사가 움직였어!”

서은서는 물론이고 계약자들도 생각했다.

성현이 무엇을 보여 줄 거라고.

그리고 그 생각은 맞았다.

성현이 창을 휘두르자 로브를 쓴 놈이 다급히 피했다.

그러자 집중력이 흐트러졌는지 포탄처럼 쏘아지던 불꽃이 멎었다.

“이놈! 내가 누군 줄 알고!”

로브를 쓴 놈이 버럭 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성현의 눈빛은 무심했다.

천천히 창을 움직였다.

창끝으로 놈의 로브를 벗겨 낸다.

소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고작 열세 살쯤 되었을까?

피부는 곱고 눈망울은 깊다.

소녀가 다시 호통쳤다.

“난 나모르 님을 모시는……!”

“개소리하지 말고.”

“뭐?”

“그만 본모습을 드러내라.”

소녀는 아흔 살이 넘은 노인이다.

죽기 직전 나모르를 만나 사람의 생명력을 빨아들였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자식을 물었고 손자를 뜯었다.

“넌 괴물이야.”

성현의 창이 소녀의 가슴을 찍었다.

퍽!

가벼운 소리와 함께 창이 꿰뚫었고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지켜보던 계약자는 물론 좀비들이 기겁했다.

“마법사님!”

“안 돼!”

“저 악마 새끼!”

좀비들이 성현을 욕했다.

소녀는 비틀대며 발코니의 난간에 기댔다.

입에서는 핏물이 흐른다.

그리고 소녀가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알고 있었어?”

“어.”

“신기하네……. 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소녀는 쿨럭거리며 피를 토했다.

생명력이 핏물과 함께 쑥쑥 빠져나오고 있었지만 성현은 자세를 풀지 않았다.

창을 들고 몸을 낮추며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소녀의 뚫린 가슴에서 머리카락처럼 촉수가 튀어 나왔다.

그 촉수가 성현의 창을 덥석 휘감는다.

성현이 재빨리 창을 빼어 뒤로 물러나자 소녀가 깔깔깔 웃는다.

“원했던 게 본모습이라고?”

광기가 동굴을 휘감았다.

바람처럼 휭휭 돌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가슴에서 튀어나온 촉수가 그녀의 몸을 감쌌다.

입만 남기고 온몸을 검은 촉수가 둘둘 옭아맸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나모르 님이 영생을 주신다 했으니 자식들아 나에게 오라…….”

콰아아앙!

소녀의 몸이 폭발했다.

사방으로 핏덩이와 머리카락 같은 촉수가 덩어리째 떨어져 나갔다.

기괴한 현상에 사람들이 거친 호흡을 내뱉을 때 성현이 나직이 말했다.

“긴장 풀지 마. 이제 시작이야.”

동시에 떨어져 나간 덩어리가 꿈틀대더니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좀비들이 홀린 것처럼 몰려간다.

한 덩어리가 되어 점점 거대해진다.

그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느낀 감정은 하나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포식자를 만났을 때와 같은 절망.

심장이 덜컥거려 움직일 수도 없고 그저 목을 내놓은 채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덩어리가 20여 미터로 솟더니 거대한 거인이 되었다.

얼굴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녹아내렸고 숨을 쉴 때마다 시체 썩는 내가 진동했다.

“젠자아앙!”

계약자 한 명이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칼을 들고 거인을 찍었다.

탱!

그런데 칼이 박히지 않는다.

단단한 돌덩이를 친 것처럼 칼날이 부서져 땅에 떨어졌다.

거인이 팔을 휘둘렀다.

분명 가벼운 몸짓이었는데 계약자가 튕겨 날아간다.

거인은 파리를 잡듯 인간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털이 흩날릴 때 놈의 눈동자가 성현을 향했다.

-인간…… 내 본모습을 원했다고? 보니까 어때? 예쁘지?

성현이 활짝 웃었다.

“어, 마음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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