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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36화 (136/252)

136화

그 말과 함께 세상에 쩍 금이 갔다.

유리가 깨지듯 세상의 조각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뿐만 아니라 사방을 뒤덮었던 하얀 눈도, 화산의 분화구도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콰르르르!

성현은 달렸다.

이곳에 있으면 지금껏 기어 올라왔던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는다.

조금이라도 멀리 벗어나야 한다.

‘싸우는 것은 이후의 일이야.’

아무리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도 마력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조만간 바닥을 드러낼 거다.

쾅! 쾅! 쾅!

그사이에도 세상이 조각나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쩌적!

땅이 갈라지고 용암이 콸콸콸 흘렀다.

시뻘건 용암이 꿈틀대더니 생명을 가진 손처럼 움직여 성현을 향했다.

성현이 용암의 손을 피하자 ‘철퍽!’ 소리와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인간! 진실을 외면 마라!

나모르의 눈동자가 성현에게 외쳤다.

-똑똑히 마주하라! 인간의 주제를 알라!

성현은 시끄럽게 지껄이는 나모르의 입을 당장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참는다.

피하는 게 우선이다.

어느새 용암이 세상을 뒤덮었다.

이곳과 저곳을 살펴도 온통 시뻘건 용암이 꿈틀댔고 한 쪽에서는 폭발한다.

심지어 쪼개진 하늘의 틈에서도 용암이 침처럼 뚝뚝 떨어졌다.

‘지옥.’

성현은 지옥을 떠올렸다.

갈라진 땅, 그 틈을 타고 흐르는 용암!

천둥과 번개가 요동치며 하늘에서 불꽃이 떨어지는 곳.

지옥밖에 없을 거다.

그런데 그때.

‘젠장!’

성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늘이 무너졌고 불길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피할 곳을 찾았지만 없다.

지평선 끝까지 불길이 치솟는다.

있는 힘껏 달린다 해도 모든 공간이 놈의 공격 범위.

도망칠 수 없다.

이제는 싸워야 한다.

‘하…… 덥네.’

성현이 품에서 진통제를 꺼내 씹었다.

스텟을 끄집어 올리기 위해 있는 대로 약을 꺼내 입에 욱여넣었다.

‘와라.’

성현이 자세를 낮췄다.

허벅지에 힘을 주며 나모르를 향해 튀어 나갈 준비를 끝냈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성현이 튀어 나갔다.

동시에 하늘에서 쏟아진 용암이 성현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고통을 참고 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 순간이었다.

세상이 갑자기 암흑으로 변했다.

쏟아지던 용암도 갈라지는 땅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나모르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진실을 마주하라.

그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눈을 피하지 마라.

그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인간은 미물일 뿐이다.

그리고 모든 게 사라지더니 주변에 도시가 나타났다.

가득 찬 빌딩과 오가는 자동차.

익숙한 공간, 서울의 한복판이다.

수백억의 빌딩, 수십억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

또는 최저임금을 받기 위해 오늘을 있는 힘껏 사는 사람들.

곧 성현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의지와 상관없이 하늘로 오르고 있다.

사람들은 개미처럼 보였고 빌딩은 장난감처럼 여겨졌다.

하늘에서 본 각양각색의 사람은 똑같았다.

누가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착하든 나쁘든, 똑같은 인간이었다.

구름을 뚫고 더 위로 오르자 이제 지구가 보인다.

하지만 지구조차 점점 작아진다.

우주에서 지구는 그저 한낱 행성일 뿐이다.

성현은 계속해서 작아지는 지구를 응시했다.

지구는 점처럼 작아졌고 잠시 후에는 그 모습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어느 과학자는 말했다.

저 작은 지구에서 인간은 작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또 싸운다고.

수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잊혔으며 지금도 살고 있다고.

성현은 드넓은 우주에 버려진 것처럼 텅 빈 어둠에 홀로 서 있었다.

순간 성현의 눈동자에 과거가 보이기 시작했다.

최초의 우주.

어떤 것도 없는 세상에 창조주는 우주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대신할 신을 2명 빚었다.

어둠과 빛, 노인과 처녀.

창조주는 흡족했고 두 신을 남겨 둔 채 모습을 감췄다.

창조주가 어떤 세상을 원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두 신은 창조주를 대신할 유일한 신이 되기 위해 싸웠다.

그로 인해 모든 생명체가 광신도가 되었고, 자신들이 믿는 신을 위해 병장기를 손에 들었다.

싸움에 이유는 없었다.

자신이 믿는 신을 위해서라는 게 전부였다.

믿는 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이고 또 죽이고.

피가 강이 되어 흘렀고 하나로 모여 바다가 되었다.

세상에는 사체가 가득했고 남은 자는 그들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리고 복수를 위해 또 전장으로 나섰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죽어 갔다.

그런데 두 신은 그들의 죽음을 기뻐했다.

광신도의 신앙이 당연하다는 듯 손뼉을 쳤다.

그 자리에 나타난 게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

검은 갑주를 입은 마법사가 세상을 정리했다.

존재를 죽이고 인간을 죽였으며 모든 생명체를 땅에 묻었다.

그때 하늘이 번쩍였다.

신의 분노라 불리는 지르힐이 나타나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와 대치했다.

거대한 힘이 맞붙으며 세상이 흔들렸다.

지구는 폭발하고 또 폭발했다.

우주에 존재하는 운석이 지구에 떨어졌다.

하나의 문명이 그렇게 사라지고 있었다.

과거를 보던 성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뭐지?’

지금 성현이 응시한 과거는 영상처럼 흐르는 게 아니다.

사진첩을 넘기듯 단편적인 모습.

지르힐이 왜 나왔는지,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는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인간이 가진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다음으로 나타난 역사는 인간의 시간이었다.

세상을 지배하던 무수히 많은 지도자가 죽었다.

극한의 예술 작품을 남긴 예술가도 죽었다.

우주를 탐구하던 과학자, 신을 믿던 종교자도 죽음을 이길 수 없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0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자들이었지만 곧 땅에 묻혀 수천, 수만 년을 잠들어야 했다.

그리고 우주에서 바라본 인간은 티끌보다 못한 존재였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과거의 영상이 끝났고 성현은 다시 혼자가 됐다.

그리고 성현은 이질적인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틀어 보니 수천, 수억 개의 눈동자가 깜빡이며 성현을 응시하고 있다.

인간의 인지를 아득히 넘어선 절대적인 존재들.

우주의 탄생과 종말을 지켜보며 무한의 세상을 사는 자들.

그들이 성현을 빤히 바라본다.

눈을 깜빡이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 자체로 두려움에 떨었을 거다.

성현은 이제야 회귀 전, 지연우가 왜 변했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티끌보다 못한 자신이 존재와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거다.

나모르 하나도 끔찍할 정도로 강한데, 우주의 별만큼 많은 눈동자와 싸워야 한다는 사실에 손과 발을 떨었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지연우는 종말의 어머니 플로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머리가 좋은 만큼 현명한 판단.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릴 수 없다고 생각한 순간 남은 삶의 행복을 빌며 개처럼 꼬리를 흔든 거다.

‘그리고 나모르와 싸웠나?’

그것 역시 훌륭한 결정이었다.

플로르는 나모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현이 천천히 앞을 바라봤다.

저 앞에 시뻘건 눈동자가 보였다.

나모르의 눈동자다.

놈이 의기양양하게 성현을 바라봤다.

삶의 덧없음을 느꼈으니 자신의 발아래에 머리를 조아리고 광신도가 되라는 눈빛이다.

놈이 천천히 본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모습.

하지만 인체의 신비전에 나올 것처럼 피부가 벗겨져 있다.

그 징그러운 모습으로 양팔을 벌려 성현을 향했다.

“오라.”

자신의 신자가 되라는 뜻이다.

얼토당토않는 말에 성현이 슬쩍 웃었다.

그런데 그 미소에 나모르도 웃고 있다.

성현이 미지의 공포에 질렸다고 생각한 거다.

패닉 상태의 인간은 두려움을 이겨 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웃기도 한다.

“오라! 내 자식이 되어라! 나를 위해 살아라!”

그런데 상대는 성현이었다.

“미안한데, 약하네.”

“뭐라?”

“난 이미 종말을 봤어. 그리고 잘못 봤어.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기는 하지만…….”

죽음을 알고서도 최선을 다하는 게 인간이다.

자신의 삶이 아니라 후손을 위해 사는 것도 인간이다.

그런 인간의 삶은 덧없지 않다.

게다가 성현은 이미 플로르라는 절대적인 존재와 마주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종말이었고 모든 세상의 끝처럼 여겨졌었다.

그에 비하면 나모르는 약했다.

“넌 쓸데없는 짓을 한 거야.”

성현이 창을 콱 쥐었다.

그리고 나모르를 향해 거침없이 창을 집어 던졌다.

쉬이이익!

날아간 창이 나모르의 앞, 투명한 보호벽에 박혔다.

쩌어어엉!

귀를 찢을 것 같은 소리가 들렸고, 나모르를 지키고 있던 보호벽에 금이 갔다.

나모르의 눈이 부릅떠졌다.

“인간!”

놀란 놈의 표정을 보며 성현이 손에 마력을 끌어모았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야.”

파지지지직!

성현의 손에서 전기가 일었다.

그 전기가 성현의 온몸을 타고 흐르더니 머리카락까지 스파크가 파직거렸다.

“영원히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성현은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

그리고 다시 사는 삶의 이유는 하나다.

이서아가 자신의 영혼을 희생해 다시 마주한 세상, 지연우를 막고 존재의 개가 된 세상을 바꾼다.

그게 전부다.

“그럼, 죽어도 상관없어.”

성현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죽어도 상관없다고?”

나모르는 죽은 자의 군주다.

지금껏 나모르의 앞에 선 모든 인간은 발발 떨며 영생을 구걸했다.

죽음이라는 공포를 피하기 위해 좀비가 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납작 엎드렸다.

그런데 눈앞에 선 성현은 달랐다.

수억 개의 눈동자들이 바라보고 있지만 겁먹지 않는다.

그 모든 존재를 씹어 먹을 것 같은 눈동자로 나모르를 노려보고 있다.

정말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모르가 당황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되더라고.”

성현이 그 말과 함께 전기를 쏘았다.

공간 전체에 번개가 번쩍였다.

위에서 떨어지고 바닥에서 솟구쳤다.

쩡! 쩡! 쩡!

공간에 금이 갔다.

공간이 깨어지고 또 유리 가루처럼 쏟아진다.

그러면서 설원과 분화구가 보였다.

다시 원래의 세상이다.

깨어졌던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했다.

성현이 스산한 바람을 맞으며 시선을 틀었다.

분화구의 한가운데에 나모르가 입술을 씹으며 서 있었다.

성현이 손가락을 까딱 거렸다.

“그러니까 혓바닥 길게 놀리지 말고, 와라. 죽여 줄 게.”

나모르가 분노했다.

그는 군주다.

어떤 생명체도 이렇게까지 건방진 적이 없었다.

“죽여 주마!”

“죽여 봐, 할 수 있으면.”

성현이 목걸이에 걸린 펜던트를 투투툭 뜯었다.

순간 지르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펜던트를 뜯으면…….

하지만 성현은 그녀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이미 펜던트는 뜯어졌고 온몸에 있던 난잡한 힘이 요동쳤다.

심줄이 불룩불룩 올라오며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법사의 권능이 말한다.

-죽여라. 멸하라. 놈의 피를 마셔라.

그 폭력적인 기운에 성현의 눈동자가 붉어졌다.

당장이라도 나모르를 죽이고 그 피를 흡수하고 싶은 욕망이 갈증처럼 느껴졌다.

성현이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나모르가 팔을 휘둘러 막으려 했지만 성현의 속도는 예상을 넘어섰다.

쉬익!

어느새 절벽을 넘어 분화구 한가운데 떠 있는 나모르의 얼굴에 올라탔다.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 나모르는 당황했고 성현은 사정없이 놈의 눈동자에 창을 쑤셔 박았다.

‘처음부터 눈알이 마음에 안 들었어.’

콰지지지직!

아스팔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끄어어어억!” 하고 놈의 비명 소리가 찢어지듯 들려왔다.

피가 튀어 올랐고 성현의 뺨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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