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성현이 칼을 비틀었다.
그녀의 가슴에 꽂힌 칼이 서걱, 소리를 내며 살을 베었고 카드라는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끼아아아아악!”
그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주변에 있던 계약자들이 다급히 귀를 막았지만 고막이 찢어졌는지 피가 줄줄줄 흘러내렸다.
“그만! 그만 닥치라고!”
“제발!”
“아아악!”
계약자들이 카드라를 향해 고통으로 가득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카드라의 비명은 끊이지 않았다.
그녀가 계속해서 악을 질렀다.
“죽일 거야! 죽여 버릴 거야! 아아아악!”
카드라가 성현을 떼어 내기 위해 팔을 휘둘렀다.
퍽! 퍽! 퍽!
몇 번이나 때렸지만 성현은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
여전히 칼을 비틀며 그녀의 살을 도려내고 있다.
창이 있었다면 카드라의 심장을 쉽게 끄집어낼 수 있었겠지만 성현의 창은 나모르와 싸우며 부서졌다.
지금 사용하는 것은 계약자가 쓰던 칼, 저들의 무기는 카드라의 살을 베기에 무뎠다.
그리고 카드라가 분노했다.
“인간 따위가!”
그녀의 눈에 힘이 들어갔고 손톱이 길게 자라났다.
약 30cm!
그 손톱이 칼날처럼 번뜩이더니 성현의 뺨을 향했다.
쉬이이익!
베이면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성현은 심장을 도려내던 것을 멈추고 가볍게 뒤로 물러섰다.
후우우웅!
카드라의 손톱은 허공을 가를 뿐이다.
성현이 분노한 카드라를 보며 건조하게 입을 열었다.
“심장만 가져간다니까.”
“하!”
“그리고…… 옷 좀 입으면 안 되나? 아무리 짐승이어도 그렇게 다니면 민망하지 않아?”
카드라는 가죽 가터벨트에 상체는 속옷만 입고 있다.
육감적인 몸매를 뽐내며 남자의 정기를 뽑아 먹는 짐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슴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다.
게다가 길게 뻗은 손톱을 보면 아름답기보다는 섬뜩하기만 하다.
그리고 성현의 말에 카드라는 어이가 없었다.
최근 인간이 건방져졌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기는 했다.
그런데 이따위라니.
카드라가 성현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인간, 넌 죽이지 않을 거야. 죽고 싶어도 계속 살게 되겠지. 네 살을 새들이 쪼아 먹을 테고 네 팔과 다리는 골렘이 짓이길 거야. 애원해도 소용없어.”
“능력 있으면 해 봐.”
“언제까지 이죽대나 궁금하네.”
카드라의 입술이 뒤틀렸다.
그 말이 끝나자 카드라가 데려온 병사 천 마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들이 절그럭절그럭, 금속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성현을 향해 다가왔다.
카드라는 자신만만했다.
방심해서 당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마력도 한껏 끌어 올렸고 손톱도 뽑아냈다.
‘약해.’
게다가 성현은 약해 보인다.
풍겨지는 마력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성현의 목에 걸린 목걸이의 펜던트가 모든 마력을 억제하고 있는 것뿐이지만 카드라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성현의 겉모습만 보며 우습게 생각했다.
‘스피드는 빨라. 신체 능력을 강화한 놈인가? 그것만 조심하면 되겠네.’
카드라가 붉은 입술을 핥았다.
그런데 그 생각은 곧 접어야 했다.
꽈아아앙!
성현의 주먹이 휘둘리며 병사의 갑주가 으그러졌다.
투구 안에서 머리가 으깨지며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마력을 쓰지 않은 순수한 힘.
카드라는 물론 지켜보던 계약자들도 놀랐다.
“저…… 저게 가능해?”
계약자들은 또 한 번 입을 벌렸다.
그들은 지금껏 성현을 지켜보며 계속해서 놀랐다.
하지만 순수한 힘으로 갑주를 박살 내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그리고 다른 병사가 성현을 향해 대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마구잡이식의 공격에 성현이 당할 리 없었다.
가볍게 피하며 쥐고 있던 칼로 병사의 복부를 쑤셨고 아래로 확 그었다.
배가 갈리며 피가 뿜어졌고 내장이 후드득 쏟아졌다.
-카아아아악!
병사의 입에서 고통으로 가득한 소리가 울렸다.
비틀비틀 앞으로 걸어가다가 쿵, 쓰러진다.
뒤에서 다른 놈이 낫을 휘둘렀다.
캉!
성현이 칼을 뒤로 틀며 낫을 막았고 동시에 놈의 목을 베었다.
피가 질질 흐른다.
사방이 피투성이다.
병사들이 계속 달려들었지만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았다.
멍하니 지켜보던 계약자들의 귀에 성현의 목소리가 스쳤다.
“지켜만 볼 테냐?”
“……!”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카드라의 병력은 천 마리.
놈들은 성현만 노리는 게 아니다.
계약자들을 향하는 놈들도 분명 존재한다.
성현의 목소리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싸우면 살 수도 있다.”
성현의 말에 계약자들의 눈이 뒤집혔다.
“그래, 씨×! 싸워!”
“이길 수 있어!”
성현이 없었다면 넋 놓고 목이 베였을 운명이다.
하지만 성현이 이들의 편이다.
용기를 내며 병장기를 쥐었다.
성현은 계속해서 병사를 베고 찌르며 죽여 나갔다.
성현의 머릿속에서는 시스템 알림음이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올랐습니다.
-……보상받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현이 권능을 사용하지 않고 스텟만으로 짐승을 죽여 나갈 수 있는 이유였다.
더 강해질 수 있다.
지금까지도 세상 누구보다 빨리 강해진 성현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 강해질 거다.
콰지지직!
성현의 얼굴에 핏물이 튀었고 몸에는 병사들의 살점이 덕지덕지 묻었다.
하지만 성현은 망설이지 않았다.
땅에 떨어진 그들의 내장을 밟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질퍽거리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성현의 모습을 지켜보던 카드라는 기겁했다.
‘뭐, 뭐야…….’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다.
저건 괴물이다.
그런데 그 괴물이 카드라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성현은 악마 같았다.
“젠장!”
카드라가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그녀의 주변에 파이어 볼이 수백 개 나타났고 그 불꽃들이 성현을 향해 쏘아졌다.
콰콰콰쾅!
땅이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공격이었다.
카드라의 병사들은 물론이고 놈들과 싸우던 계약자들의 시선도 성현에게 틀어졌다.
“서, 설마…….”
계약자들이 울상을 지었다.
저런 불꽃 공격을 당한 인간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다.
멀리서도 얼굴이 불에 익는 것처럼 후끈거리는데 정면으로 공격에 맞았다면 살이 녹아 버릴 게 분명했다.
“제기랄!”
계약자가 외쳤다.
이제 끝이다.
그들은 병사들을 상대하는 것도 어려운 상태였다.
그런데 카드라까지 합세하면 생존 확률은 제로가 된다.
그때였다.
“저…… 저!”
카드라의 눈이 부릅떠져 있었다.
그녀는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이글거리는 불꽃 속에서 악마처럼 기어 나오는 성현이 담겼다.
성현이 정말 악마처럼 웃었다.
“그냥 심장만 줬으면 안 아프게 끝났을 거잖아.”
카드라가 마른침을 삼킬 때였다.
쩌엉!
성현의 주먹이 그녀의 입을 가격했다.
부러진 이빨이 사방으로 튀었고, 그녀의 입이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아악!”
카드라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성현은 거기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콰직!
카드라의 코를 가격했고 눈과 광대, 이마 등 가리지 않고 폭력을 행사했다.
꽝! 꽝! 꽝! 꽝!
아름다운 얼굴은 사라졌다.
퉁퉁 부어오르고 시커멓게 멍이 들었다.
코에서는 피가 주르르륵 흘렀다.
“사, 살려…….”
카드라가 손을 저었다.
성현은 그 모습이 가소로웠다.
회귀 전, 몇 명의 인간이 카드라를 향해 똑같이 빌었다.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카드라는 외면했고 인간의 피를 마셨다.
살점을 뜯어먹으며 인간을 우습게 봤다.
“살려 줘…….”
카드라는 간절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카드라는 진심이 아니었다.
단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마력을 모으면…….’
도망칠 수 있다.
이 던전은 자신의 것, 마음먹고 숨으면 군주나 어머니가 와도 찾기 어려울 거다.
‘마력이 모일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해.’
카드라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성현에게 입을 열었다.
“다…… 다 줄게. 보물? 아이템? 내가 다 줄게!”
성현은 대답이 없었다.
묵묵히 카드라를 향하고 있었다.
카드라가 다시 말했다.
“그게 아니면…… 여자? 여자구나! 그래, 여자! 여자를 줄게! 세상에서 느껴 보지 못한 쾌락을 안겨 줄 수 있어! 알겠지만 짐승의 쾌락은 인간과 달라! 느껴 보지 못……!”
그런데 성현의 표정이 이상했다.
조금은 비웃는 얼굴로 카드라를 보고 있다.
카드라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왜…… 왜 그렇게 보는 거지?”
“내가 원하는 것,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말했잖아.”
“어?”
“네 심장.”
카드라의 눈이 일그러졌다.
이놈은 또라이다.
미친 새끼다.
돈이나 아이템, 여자가 아니라 심장이라니.
“이 변태 새끼야!”
성현이 한숨을 내뱉었다.
“속옷만 입고 다니는 짐승한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하!”
그사이 카드라의 마력이 채워졌다.
카드라가 성현을 비웃으며 다리에 힘을 줬다.
“찾아봐! 이 병×아!”
콰아아앙!
카드라가 뛰어올랐다.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없다.
그래서 위로 도망친 후 던전의 어느 곳에 몸을 숨기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성현은 카드라의 생각을 이미 알고 있었다.
콱!
성현의 손이 카드라의 하얀 발목을 움켜잡았다.
카드라가 ‘어? 뭐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성현이 그녀의 몸뚱이를 바닥에 던졌다.
콰아아앙!
카드라가 사정없이 처박혔다.
“끄으으읍!”
카드라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어떻게든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늦었다.
성현의 손은 이미 그녀의 가슴팍을 쑤시고 들어갔다.
그리고 벌떡거리는 심장을 뽑아냈다.
“컥!”
카드라의 가슴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고, 그게 전부였다.
생명력을 잃은 그녀가 털썩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 * *
“그러니까요. 골렘이 나왔는데 유성현이라는 사람이 파파팍! 해서요.”
“네?”
던전 밖에는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나모르와의 전투 이후 성현의 공식적인 첫 움직임이었으니 관심이 많은 게 당연했다.
하지만 성현은 곧바로 초소로 돌아갔기에 기자들은 그 전투를 지켜본 계약자들에게 상황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몇 번을 들어도 이해가 안 됐다.
“미치겠네! 자, 들어 보세요. 인간형 짐승이 나왔고요. 여자였어요. 되게 예쁘고 변태처럼 속옷만 입었더라구요. 그런데 유성현이 ‘네 심장을 줄래?’라며 다가가서…….”
“그게 무슨…… 설마 고백한 건가요? 홀려서?”
“그게 아니고요! 그 여자의 인중을 주먹으로 팍! 치고 파파팍!”
“파파팍이요? 그런데 골렘이 나왔는데 갑옷을 입은 병사는 또 뭐죠?”
계약자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등급이 적어도 A급 던전이었다고요! 그걸 유성현 혼자 처리했다고요!”
그때 다른 기자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저기…… ‘심장을 줄래?’는 뭐죠? 유성현이 속옷만 입은 여성형 짐승과 사랑에 빠졌다는 건가요?”
-A급 던전에서 짐승과…….avi.
└미친 ㅋㅋㅋ
└인중은 왜 쳤냐?
└내가 이해한 이야기가 맞는 거지? 짐승한테 사랑 고백하다가 까이니까 존나 팬 거. 맞음?
└나쁜 남자!
기사가 올라가고 네티즌들은 난리가 났다.
성현의 일거수일투족은 세상의 관심사였다.
-됐고. 사실이겠냐? 저 계약자가 말을 못하는 거지.
-그런데 유성현 언제 제대함?
-젊고 실력 있는 계약자 나오니까 내가 다 뿌듯하네. 우리도 이제 세계 랭커에 들어갈 수 있음?
-이미 하우치가 세계 랭커잖아?
└톱은 아니잖아.
└유성현이 하우치 이김?
└거품일 듯.
└아무리 주제를 몰라도 그렇지, 군주&마녀를 잡은 앤데 거품이 껴도 작작 꼈겠지.
그 시각.
성현은 초소의 뒤에 있었다.
성현에게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세상의 눈이 아니다.
‘시작해야지.’
성현은 품에서 나모르의 코어를 꺼낸 후 땅에 내려 뒀다.
그리고 카드라의 심장을 꺼냈다.
카드라의 심장은 지금도 벌떡벌떡 뛰고 있다.
그 심장을 꽉 쥐자 피가 줄줄 흐르며 코어에 닿는다.
코어가 푸른 빛을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