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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48화 (148/252)

148화

짐승과 싸울 수 있는 무기와 방어구 등을 아이템이라 부르며 편의상 레어, 레전더리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고대의 유물은 성현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뭐지?’

성현은 창고로 이동해 당장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잠시 참았다.

지금은 주변에 병사들이 많다.

‘혼자 있을 때를 기다리자.’

조급할 필요는 없다.

아이템이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느긋이 기다리면 때는 올 거다.

그리고 카심이 외쳤다.

“죽여라! 겁탈하라! 이단을 믿는 로안의 신자에게 공포를 알려 줘라!”

카심의 병력들이 움직였다.

마을을 상대로 약탈을 시작한 거다.

이들의 손에 자비는 없다.

여신 로안의 신자를 얼마나 잔인하게 죽이느냐에 따라 그 신앙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없습니다!”

“젠장! 다 도망갔어!”

“보석이라도 있나 확인해 봐!”

문을 열어 봤지만 모두 빈집, 마을은 텅 비어 있었다.

술사가 미리 알리며 마을에 있던 자들은 모두 도망쳤기 때문이다.

카심의 부하들은 입술을 씹었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전투, 상대를 죽여야 하는 전쟁, 그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들에게 약탈과 겁탈은 그 스트레스의 해소법이었다.

하지만 어이없을 정도로 마을은 비어 있었다.

“불놀이나 하자!”

놈들이 마을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몇몇은 죽은 술사의 몸에 창을 꽂고 칼질했으며 목을 베어 나무에 걸었다.

나무에 걸린 술사의 얼굴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그러자 병력들이 하늘로 손을 올리며 방방 뛰었다.

“게히얼 님을 위하여!”

“게히얼 님!”

그때 성현은 자신의 손가락에서 가늘게 떨리는 움직임을 느꼈다.

정령이다.

두려운 듯이 몸을 웅크리고 겁먹은 눈동자로 병사들을 보고 있다.

정령이 입을 열었다.

-저들은 저게 죄악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몰라. 저래서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도 몰라. 저게 정의라고 생각하고 있어.

성현은 정령의 말을 들으며 호칭을 얻던 날, 마법사를 통해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신에게는 감정이 없어. 단지 피스를 움직일 뿐이야. 단순한 재미에 인간은 죽어 가지.

마법사의 말과 함께 시작된 기억.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신선, 남신 게히얼이 체스의 백색 피스를 들어 옮겼다.

-피할 텐가, 싸울 텐가?

날카로운 목소리가 향한 곳은 맞은편이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아름다운 여신 로안이 검은색 피스를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싸워야죠.

두 피스가 만난 곳은 전장이 되었다.

각자의 광신도는 서로의 신앙을 외치며 서로를 죽였다.

벌판은 시체로 가득했으며 내리는 비조차 핏물을 머금고 있었다.

반항하는 소녀의 가슴에 창을 찌르며 낄낄낄 웃는 병사.

건물에 갇힌 아기들이 살려 달라 외치는데 불을 지르는 병사.

그때 한 여자가 외쳤다.

“사, 살려 주세요! 제발요!”

여자는 발발발 떨며 손을 비벼 댔다.

하지만 병사는 히죽 웃으며 여자의 머리채를 콱 잡았다.

“죽기 전에 최고의 쾌락을 선물하지! 따라와!”

그들에게 도덕은 없었다. 오직 쾌락과 야만만이 존재했다.

성현의 시선이 병사들에게 틀어졌다.

술사의 몸에서 내장을 뜯어 하늘로 던지는 자들.

만약 마을에 생명체가 존재했다면 마법사의 기억이 그대로 재현되었을 거다.

‘그 꼴은 안 봐서 다행이네.’

성현이 정령을 향해 입을 열었다.

“보고 싶지 않으면 눈 감고 있어. 죄악이니 뭐니, 상관하지 말고.”

그리고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창을 툭 던져뒀다.

이어서 마을을 불태우는 병사들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저들은 분명 성현이 알고 있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과 똑같이 생겼지만 풍기는 기운이 전혀 다르다.

‘저들이 존재가 되는 것인가?’

코어의 기억 속이면 아득한 옛날이다.

저들이 존재의 시초가 될 수도 있다.

지르힐과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보면 그럴 확률이 높다.

‘그럼 여기는 어디지? 이계? 아니면 과거? 그것도 아니면…….’

성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때 시스템 알림음이 울렸다.

-지구는 아닙니다.

성현이 슬쩍 웃었다.

평소 시스템 알림음은 퀘스트 또는 스텟에 관한 이야기 등만 전했는데, 코어의 기억 속이라 그런지 꽤 친절했다.

‘그럼? 우주 어디인가?’

-이 시기에 우주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 자체가 우주입니다. 낮은 게히얼이 다스리고 밤은 로안이 차지하고 있죠.

‘어?’

성현이 하늘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태양이 없다. 하지만 세상은 밝다.

-이곳은 태초의 세상이며 신들의 세계 그리고 시공간을 초월한 시기입니다. 당신들의 지성으로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그래도 설명해 드릴까요?

‘됐어.’

이해하기 힘들다는데 굳이 들어 복잡한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스템 알림음은 쓸데없이 말이 많았다.

-그래도 당신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 드리죠.

‘됐다니까?’

-인간의 이론으로 따지면 빅뱅 이전의 시대입니다.

‘아, 오래됐네.’

-오래된 게 아닙니다. 시공간을 초월한 시기이기 때문에 지금일 수도 있고 과거일 수도 있으며, 또 다른 차원의 움직임일 수도…….

성현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됐다니까.’

어차피 이해 못할 이야기를 듣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지금 성현에게 중요한 것은 코어를 장악하는 것.

정령이 저들의 행동을 보며 잔인하다 말하거나, 저들의 미래가 어떻게 되느냐는 관심 밖이다.

그리고 이들의 세상을 마음 깊이 두면 안 된다.

성현은 이들이 어떻게 될지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

카심은 저들의 마지막 왕으로 기억될 것이고 그 아들은 노점상 주인이 되어 돗자리를 펼쳐 두고 알약이나 팔게 될 거다.

그런데 그걸 바꾼다 해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어차피 지나간 일이며 코어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망령일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늘어놓으면 하나에 집중할 수 없다.

목표에 집중하며 최대한 건조하게, 그리고 온기 없이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그때 성현의 옆으로 카심이 섰다.

카심이 병사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전쟁은 피를 부르지. 난 전쟁을 원하지 않아.”

병사들의 앞에서 약탈과 겁탈을 부르짖던 모습이 아니었다.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고 있다.

그가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전쟁밖에 없어. 협상? 또는 휴전? 시도는 해 봤지. 하지만 로안의 신자들에게 그런 것은 통하지 않아. 막무가내거든, 그들은 어떤 말도 듣지 않아. 우리의 신, 게히얼을 죽여야 신의 세상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어.”

카심의 씁쓸했던 눈동자가 쓸쓸하게 바뀌었다.

“밤이 있어야 낮이 있고, 낮이 있어야 밤이 있는 법인데…….”

그사이에도 성현의 머릿속에는 시스템 알림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 시기의 세상은 여러 왕국으로 분열되어 있죠. 카심의 왕국을 비롯해, 익히 알고 있는 나모르의 왕국, 카디르버의 왕국 등 남성 위주의 사회는 게히얼을 믿고 있습니다.

‘그럼? 로안을 믿는 곳은?’

-여성 중심의 사회죠. 대표적으로 플로르와 유르라헬 등이 있어요.

성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조심스레 물었다.

‘잠깐만, 지금 플로르는 존재가 아닌가?’

-아직은 존재가 있기 전의 시기입니다. 존재는 조만간 만들어지게 됩니다.

성현은 시스템 알림음을 들으며 이 전쟁의 끝에 대한 가설을 세워 봤다.

존재의 등급을 결정할 때, 어머니급과 군주급을 나란히 두기는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머니급을 한 수 위의 존재로 여기고 있다.

‘로안의 신자들이 이긴 건가?’

이유 없는 결론은 없다.

어머니급의 존재가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은 로안의 광신도가 전쟁의 승자가 되었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는데…….

‘잠깐만, 마지막에 마법사가 나섰잖아? 마법사가 두 신을 봉인한 게 아니었나? 젠장, 뭐가 뭔지 모르겠네.’

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과거의 단편을 들여다보는 것은 골치 아픈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산에서부터 불어오던 바람이 멎었다.

바람을 타고 흔들리던 나뭇잎이 조용하다.

순간, 철퍼덕!

나무에 걸려 있던 술사의 머리가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떨어진 술사의 머리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있어서는 안 될 자가 세상을 바꾸려 한다!

병사들의 창에 난도질을 당한 술사의 몸이 벌떡 일어섰다.

비틀비틀 머리를 향해 다가가더니 두 손으로 머리를 잡고 자신의 목 위에 올렸다.

카심의 눈이 부릅떠졌다.

게히얼의 이름을 외치며 방방 뛰던 병사들도 마찬가지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술사는 이미 죽었다.

그런데 죽은 자가 일어나 소름 끼치게 웃고 있다.

술사가 손을 치켜들었다.

이어서 땅에 떨어진 자신의 내장을 손에 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며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술사가 자신의 내장을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벌건 눈이 도깨비 같았고 입에 묻은 피는 흉측스러웠다.

그리고 술사는 내장을 씹으며 포효했다.

“있어서는 안 될 자! 신이여! 저자를 죽여 주소서!”

세상이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 악귀가 나타났다.

검은 갑주를 입은 사내들.

그들이 삐꺼덕거리며 병장기를 들었다.

성현의 눈이 찌푸려졌다.

머릿속에서 시스템 알림음이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어가 당신을 바이러스로 인식했습니다.

-저들이 노리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없애야 시스템이 온전히 돌아간다고 믿습니다.

‘젠장.’

성현이 시선을 틀었다.

전투가 끝났다고 생각해서 던져뒀던 창, 그것을 다시 손에 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콰직!

그 위로 검은 갑주를 입은 사내가 나타나 창을 짓밟았다.

창은 허무할 정도로 부서졌고 성현은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카심이 외쳤다.

“로안이 술수를 부렸다! 싸워라!”

병사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에게 검은 갑주를 입은 사내들은 미지의 존재였다.

밤하늘보다 검은 갑주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크르르르!

검은 갑주를 입은 사내들이 움직였다.

그들의 칼은 빨랐고 병사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촤아아악!

“끄아아아악!”

비명이 어둠을 채울 때였다.

성현의 머릿속에서는 다시 시스템 알림음이 울려 왔다.

-무기가 없습니다.

-고대의 유물 스크롤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보통 이런 식의 아이템은 창고에 놓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꺼내 볼 수 없는 거다.

하지만 이곳이 코어의 기억 속이라 그런지 시스템 알림음은 평소의 규칙을 따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성현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뭐가 나오나 보자.’

검은 갑주를 입은 사내들, 그 숫자가 지금까지 약 500.

실력도 만만찮다.

전투를 하려면 무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사용하겠습니다.

성현의 눈앞에 양피지로 만든 스크롤이 나타났다.

주변을 살폈지만 다른 사람은 스크롤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오직 성현만 스크롤을 보고 있다.

‘어서!’

스크롤이 촤아악 찢어졌다.

찢어진 곳에서 금빛이 흐르며 그 사이로 아이템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현이 마른침을 삼켰다.

예상하건대 고대의 유물은 이 세상을 만든 신과 가장 가까운 시대에 만들어진 아이템이다.

즉, 완성도로 따진다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도 이만큼의 아이템은 없을 거다.

적어도 지연우가 가진 아이템 정도는 되어야 비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성현은 기대했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성현 역시 고대의 유물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 봤다.

그래서 그저 그렇게 예상하고 기대할 뿐이다.

금빛이 사라지며 아이템의 형체가 드러났다.

동시에 성현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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