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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53화 (153/252)

153화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마법사는 어느 편도 아니다.

단지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해 움직일 뿐이다.

그런데 그 마법사가 이곳에 나타난다면 성현과도 싸워야 할 거다.

문제는.

‘내 힘으로 마법사를 이길 수 있을까?’

답은 곧바로 나왔다.

무리다.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얼마 전, 지르힐이 장난처럼 한 손가락질에도 성현은 처참하게 당했었다.

그런데 지르힐과 비슷한 수준의 마법사가 진심으로 주먹을 쥔다면…… 반드시 죽고 만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곳은 현실이 아니라 코어의 기억 속 세상이다.

이 세상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는 것처럼, 멸망과 탄생을 반복하고 있다.

성현이 나서도, 나서지 않아도 세상은 멸망한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성현의 목표는 코어의 기억 장악.

마법사와 굳이 싸우지 않아도 퀘스트를 통과하면 성현을 주인으로 인식할 거다.

‘하지만…….’

성현의 시선이 카심에게 틀어졌다.

저놈에게 단 한 번이라도 아들을 안겨 주고 싶다.

‘하…….’

이번 헤그네스 왕국과의 전쟁 중 카심의 아버지가 사망 한다고 들었다.

카심은 자동적으로 왕위를 계승하지만 왕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전장을 누비다 망령이 된다고 했다.

그 이유가 모두 마법사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곳에 마법사가 나타나 병사들이 돌아갈 길을 끊어 버렸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법사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존재다.

성현이 깊은 생각에 빠진 그 순간에도 머릿속의 시스템 알림음은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퀘스트 ‘헤그네스 왕국과의 전쟁에서 100명을 죽여라’…….

‘일단 퀘스트부터 해결한다.’

성현이 부채를 펼쳤다.

부채가 검은 연기로 일렁거리더니 곧 창으로 변했다.

그리고 천천히 앞을 바라봤다.

전투가 한창이다.

벌판을 가득 메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병력이 성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좋아.’

성현의 허벅지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쉬이이이익, 놈들의 성벽을 향해 달렸다.

* * *

성벽 위, 헤그네스 왕국의 지휘관은 인상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 헤그네스 왕국의 대광장에서 지금 로안의 탄생을 축복하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이곳이 뚫리면 축제는 끝이다.

그럼 축제를 망친 지휘관은 여신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삶의 행복보다 죽음 뒤의 영원한 축복을 위해서다.

“쏴라! 쏴! 모두를 죽여라!”

여신 로안의 신도들이 지휘관의 지시에 활시위를 당겼다 놓았다.

파파파팍!

수만 개의 화살이 하늘을 채운 후 땅으로 쏟아졌다.

화살은 성벽을 향해 달려가던 게히얼의 병사들 몸에 송곳처럼 꿰어졌다.

뇌수가 튀었고 핏물이 쏟아졌다.

화살에 맞아 바닥에 쓰러진 병사가 중얼거린다.

“게히얼을 위해…….”

헤그네스 왕국의 지휘관은 계속 외친다.

“기름을 부어라! 기름!”

뜨거운 기름이 성벽 아래로 쏟아졌다.

열린 성문을 향해 들어오던 병력들이 기름을 맞았다.

뜨거운 기름에 살이 익어 갔다. 흉측하게 변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하지만 끝이 아니다.

“불을 붙여!”

기름을 타고 불이 번졌다.

한 병사가 불타오르며 바동댄다.

“살려 줘, 살려 줘…….”

죽고 싶지 않았다.

집에 가서 가족을 만나고 싶었다.

“제발!”

하지만 이 상황에서 도와줄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미안하다!”

병사의 동료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불타오른 병사의 목을 그었다.

촤아악!

핏물이 동료의 얼굴에 튀었다.

불타오른 병사가 휘청이며 바닥에 쓰러졌고 동료가 침울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반드시 복수해 줄게!”

동료가 입술을 씹었다.

하지만 그 순간, 동료의 얼굴에 철퇴가 날아왔다.

퍼억!

그 머리가 수박처럼 박살 났다.

“나가라! 나가서 게히얼의 신자를 모두 죽여 버려라! 이 모든 것은 로안, 우리의 어머니를 위해서다!”

그 명령에 로안의 신자들이 튀어 나갔고 성문을 사이에 둔 채 처참한 싸움이 시작됐다.

“끄아아악!”

“팔! 내 팔!”

“살려 줘! 살려 줘!”

살기 위한 본능은 애처로운 비명 소리로 번졌다.

하지만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살기가 그 비명 소리를 덮었다.

“뒈져!”

“죽어! 죽어! 죽어!”

그때였다.

로안의 신자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질적인 힘, 그리고 먼 곳에서부터 벌레처럼 튕겨 나가는 로안의 병사들, 이어서 심각할 정도로 두려운 소리.

빠직! 콰직! 쩌엉! 꽝!

성현이 다가오고 있었다.

창을 휘두를 때마다 로안의 병사들이 이곳저곳으로 날아갔다.

팔이 찢어졌고 몸통이 반으로 갈렸다.

얼굴이 갈려진 병사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흉측했다.

로안을 상징하는 검은 복식이 피로 물들었고 병사의 몸이 파르르 떨리다가 멎었다.

“저, 저거 뭐야?”

로안의 신자들이 성현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

그들에게 성현은 악귀였다. 두려웠고 무서웠다. 주춤주춤 물러섰다.

하지만 성현의 눈빛은 무심했다.

창에 묻은 피를 툭툭 털며 앞을 바라봤다.

‘과연…….’

이곳에 있는 병사 하나하나는 현실에서 봤던 마녀보다 훨씬 강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마력을 사용할 줄 모르는 것 같다.

물론 누군가는 사용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적어도 눈에 보이는 생명체 중에 마력을 사용할 줄 아는 자는 없었다.

그럼 성능 좋은 엔진을 가졌지만 타이어가 터진 슈퍼카와 같은 거다.

달리지 못하는 슈퍼카는 자전거와 달려도 패배할 수밖에 없다.

어렵지 않은 상대다.

순간 한 병사의 칼이 성현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카카카캉!

성현은 가볍게 창을 휘둘러 녀석의 칼을 막아 낸 후 놈의 어깻죽지를 잘라 냈다.

촤아아아악!

성현의 얼굴에 놈의 핏물이 튀었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시스템 알림음이 울렸다.

-퀘스트 ‘헤그네스 왕국과의 전쟁에서 100명을 죽여라’ : 39/100.

아직도 61명을 더 죽여야 한다.

‘한 놈 더.’

성현의 창이 빙그르 돌았다.

뒤에서 달려오는 로안의 신자, 그 복부에 꽂혔다.

“컥!”

성현이 창을 빼내자 신자는 그대로 복부를 잡고 쓰러졌다.

그가 꿀렁거리며 흘러나오는 피를 막아 보려 할 때, 성현의 창이 놈의 목을 그었다.

툭.

놈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질 때였다.

“조, 조심해!”

누군가 외쳤다.

“위! 위!”

성현이 시선을 위로 향했다.

머리 위로 기름이 부어지고 있었다.

놈들이 깨달은 거다.

성현을 병장기로 죽일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불을 붙여 태워 죽이려 한다.

하지만.

‘우산.’

성현이 창을 위로 들어 올렸다.

창이 우산으로 변하며 성현의 몸을 보호했다.

촤아아아악!

기름은 우산에 맞고 사방으로 튀었다.

단 한 방울도 성현의 몸에 맞지 않았다.

그렇게 기름이 다 쏟아진 후 놈들이 불을 붙이려 할 때였다.

성현은 곧장 우산을 다시 부채로 바꾸었고 땅을 박찼다.

파아아앙!

성현이 벽을 밟고 위로 올라갔다.

세워진 벽을 땅처럼 밟아 이동하며 위로 향했다.

쉬이이이익!

성벽에 있던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저게……!”

동시에 성현이 벽 위로 뛰어올랐고, 들고 있던 부채가 다시 창으로 변했다.

“아아아……!”

놈들의 눈이 공포에 질려 갔다.

어떤 놈은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살려 달라고. 제발, 목숨만 살려 달라고!

하지만 성현의 창은 놈들의 목을 꿰뚫었다.

퍽!

게히얼의 신자들은 신이 났다.

“됐어!”

“드디어!”

로안의 신자들이 도망가고 있었다.

겁에 질려 우왕좌왕한다.

게히얼의 신자들은 그들의 뒤를 쫓아 등을 베고 찔렀다.

여기저기서 살육의 시간이 시작된 거다.

그리고 카심이 외쳤다.

“지르힐 님의 신자가 우리를 돕는다! 가라! 가서 적의 생명을 끊고 이 전쟁을 끝내자!”

그 말과 함께 병력들이 성현의 이름을 피가 터질 듯 외쳤다.

“유성현! 유성현! 유성현!”

카심이 성벽에 오른 성현을 바라봤다.

‘정말 고마운 자야.’

* * *

성벽을 점령했다.

게히얼의 신자들이 로안의 신자들의 목을 베어 벽에 걸고 있었다.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성현은 상관하지 않았다.

‘저 행동은 저들의 문화다. 어차피 기억 속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퀘스트 ‘헤그네스 왕국과의 전쟁에서 100명을 죽여라.’ : 100/100.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수십만 명의 병사들이 당신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코어의 기억이 당신을 원래 있었던 것처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상으로 고대의 유물에 추가 능력이 부여됩니다.

-추가 능력 : 하루에 5회, ‘1초 전으로 가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성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1초 전으로 가기?’

성현의 앞으로 카심이 다가오고 있었다.

빙긋이 웃으며 앞에 서서 입을 연다.

“고맙군.”

성현이 카심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방금 얻은 추가 능력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1초 전으로’

동시에 카심이 멀리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다가온다, 빙긋이 웃으며.

“고맙군.”

성현이 끌끌 웃었다.

‘이거 미친 능력이잖아?’

전투 상황에서 1초를 장악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사기적인 능력, 그 짧은 1초가 억겁의 시간과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주식 투자를 한다면,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성현은 부채를 품에 넣으며 ‘제발, 현실로 돌아갔을 때도 가지고 갈 수 있었으면.’ 하고 이곳의 신, 로안과 게히얼을 향해 기도했다.

그때 성현의 머릿속에 다시 퀘스트 알림음이 울렸다.

[퀘스트 : 나모르를 찾아 죽여라]

-보상 1 : 코어의 기억 장악.

-보상 2 :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을 찾을 수 있음.

성현이 턱을 쓸며 얼마 전, 나모르와 싸울 때를 기억했다.

당시 성현의 몸을 차지했던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가 말했었다.

“오랜만이지? 그때, 죽였어야 했는데, 비겁하게 도망친 새끼가 군주? 예전이었다면 일개 마녀보다 못한 권능으로 군주라니. 세상 참 우스워졌어.”

‘그 말에 따르면…….’

성현의 시선이 성벽 아래로 틀어졌다.

이곳저곳에 불을 지르는 병사들이 보인다.

‘저들 중의 하나가 나모르인가?’

그때 시스템 알림음이 들려왔다.

-이곳은 코어의 기억입니다.

-코어는 나모르의 몸속에서 오랜 시간 기억 보정을 당했습니다.

-이곳의 주인공은 나모르이고, 나모르에 대해서는 원래의 역사와 다릅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카심이 성현의 등을 가볍게 두들기며 입을 열었다.

“아, 저기 나모르 왕국의 왕이 오셨네.”

이곳은 게히얼을 추종하는 많은 왕국들이 연합한 전장이다.

당연히 나모르도 이곳에 와 있었다.

성현의 시선이 틀어졌다.

‘나모르?’

앞에는 정말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

성현이 알고 있는 징그럽게 생긴 얼굴과는 전혀 달랐다.

그리고 마법사가 말했던 ‘마녀보다 못한 권능’이 아니었다.

멀리서도 느껴질 정도로 놈의 몸에서는 마력이 철철 흐르고 있다.

성현은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군주도 추억을 보정하는 생명이었구나.’라는 생각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어쨌든, 저놈을 죽이라는 거지?’

성현이 부채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놈에게 다가가려는 순간이었다.

“기습! 기습이다!”

병사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성현의 시선도 그곳을 향했다.

사방에 병사들의 시체가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그 가운데에 검은 갑주를 입은 마법사가 서 있었다.

마법사의 시선이 틀어진다.

놈의 입에서 쇠가 갈리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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