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58화 (158/252)

158화

* * *

“그래서, 코어의 기억을 보고 왔다고?”

“네.”

성현은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의 앞에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코어의 기억 속에서 며칠을 지냈는데, 현실의 시간은 2시간 정도가 흐른 뒤였다.

“보고 없이 다녀와서 죄송합니다.”

문제는 이곳이 군대, 그것도 짐승의 땅이라는 거다.

보고도 없이 갑자기 2시간이나 눈에 보이지 않았으니…….

이창민 중사가 긴장된 한숨을 내뱉었다.

“됐다. 위험한 일을 당했나 해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잘 돌아와서 다행이야.”

그리고 박상문 하사가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

“난 또 전역 얼마 안 남겨 두고 탈영한 줄 알았네.”

“아이고, 탈영을 왜 합니까? 이제 전역이 눈에 보이는데.”

성현의 말에 다들 낄낄 웃었다.

그리고 이창민 중사가 맥주를 소환해서 성현과 박상문 하사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나모르의 코어에서 뭘 본 거야?”

“……존재의 시작을 봤습니다.”

“존재의 시작?”

“네, 어쩌면 이 세상의 태초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가 마른침을 삼켰다.

인간인 이상 이 세상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말해 봐.”

이창민 중사가 멍석을 깔아 줬고 성현은 두 사람에게 기억 속에서 봤던 것을 전했다.

“먼저 창조주가 있고요. 먼저 중립자를 만들었어요. 이 중립자는 A와 B라고 할게요. 그다음 세상을 관리할 신을 만들었죠. 여신과 남신인데…….”

성현은 적절히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빼고, 적당히 MSG를 첨가하며 플로르를 죽일 년으로 만들었다.

“플로르가 생명체를 선동해서…….”

마법사의 아들을 죽였다는 이야기에 이창민 중사는 들고 있던 맥주를 집어 던졌고 박상문 하사는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쌍욕을 내뱉었다.

“플로르가 미쳤네. 제대로 돌았어. 또라이야, 또라이.”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나모르의 이야기에는 두 사람이 배를 잡고 웃었다.

이 두 사람도 나모르를 직접 봤고 목격한 사람들이다.

“와, 멋있는 척을 했다고? 그 얼굴에?”

“네.”

“하긴 그 정도 나르시시즘은 있어야 말이 되지. 그때 그 광신도들이 ‘영생! 영생!’하고 외치면서 뛰어다니게 만든 게 그 나모르잖아? 그것도 또라이야, 또라이.”

그렇게 성현은 하늘이 유리 조각처럼 떨어지며 세상이 폭발한 것까지, 모든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 박상문 하사가 가슴을 치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이 고생 하는 것도 다 플로르 때문이다, 이거지?”

“네.”

“와, 기억 속에서라도 좀 죽이고 오지 그랬냐? 그 입에 각목을 넣고 망치질 좀 하지 그랬어?”

“제가 탈출하기 바빠서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습니다.”

“아오!”

박상문 하사가 짜증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또 물었다.

“네 존재도 봤다고 했지? 어땠어?”

성현은 지르힐에 대한 이야기는 가볍게 ‘봤다’는 것까지만 전했다.

하지만 박상문 하사는 정말 궁금해하고 있다.

자신의 존재가 예전에 어떤 모습으로 있었는지, 그걸 마주했을 때의 기분이 어땠는지가 듣고 싶은 거다.

그래서 이야기하려 했는데.

-하지 마!

성현의 머릿속에 지르힐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왜?’

-아무것도 말하지 마.

지르힐은 아직도 기억 속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이 부끄러운 것 같았다.

성현이 끌끌끌 웃으며 박상문 하사에게 말했다.

“저도 정말 스치면서 본 거라 잘못 봤어요.”

“그래? 그건 좀 아쉽네.”

성현과 박상문 하사는 계속해서 맥주를 마시며 기억 속 이야기를 나눴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계속 이어 갔다.

이곳은 군대다.

특이한 무엇인가가 있으면 그 이야기로만 3박 4일이 갈 거다.

그런데 지금껏 조용했던 이창민 중사가 다시 캔 맥주 하나를 소환하며 입을 열었다.

“잠깐만, 존재는 그렇다 치고. 짐승은 뭐지? 가서 짐승을 본 적은 없지?”

성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서서 움직이는 늑대를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주술사가 움직였던 것이고 수 미터를 육박하는 거대한 짐승은 본 적이 없다.

“네, 생각해 보니까 못 봤어요.”

“그럼, 저것들은 뭐지? 어디서 오는 거야?”

이창민 중사가 고개를 틀어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어디선가 움직이고 있을 짐승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저것도 신이 만든 거야?”

“글쎄요.”

기억을 보고 왔지만 아직도 이 세상에는 미스터리한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됐다. 마시자.”

박상문 하사가 복잡한 생각은 싫다는 듯 캔 맥주를 내밀었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테이블에 캔 맥주가 가득 쌓였을 때, 박상문 하사는 간이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이창민 중사가 성현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전역해도 난 계속 반란군을 준비할 거야. 군복을 입고 이런 말을 하면 좀 그렇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성현의 회귀 전, 이창민 중사는 반란군의 수장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이창민 중사의 삶은 똑같이 흘러가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은.

“도울게요.”

성현이 이창민 중사의 편에 섰다는 거다.

지금 정부는 국민의 삶에 관심이 없다.

짐승과 계약자를 이용해서 어떻게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까 그 생각만 하고 있다.

심지어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자리는 지연우의 패거리로 채워질 거다.

‘지연우 하나만 죽여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전부 들어엎어야 한다.

성현과 이창민 중사는 그렇게 생각하며 캔 맥주를 부딪쳤다.

* * *

그 시각, 한국 짐승 연구소.

스크린에 성현의 얼굴이 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흰 가운을 입은 금발의 여자가 섰다.

그녀가 레이저 포인터로 성현의 얼굴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우리의 실험은 끝났습니다. 이제 실전 테스트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 이 사람을 골랐죠. 이름, 유성현. 최초로 마녀와 군주를 제압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까지 학생이었고 군인 신분이기에 랭킹은 없습니다.”

여자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테이블의 좌우로 연구소의 고위 간부들과 정부의 고위 공직자가 앉아 있었다.

여자가 그들을 보며 계속 말했다.

“페이트 길드에 소속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아직 정식적인 절차는 밟지 않았습니다.”

여자가 말하는 것은 간단했다.

성현은 백이 없고 권력도 없다. 게다가 보호받을 단체도 없다.

철저히 혼자다.

“최악의 경우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거죠. 즉, 우리의 테스트에 최적화된 사람입니다.”

상석에 앉은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군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곧 전역합니다. 더 이상 군인 신분이 아니죠. 그리고 유성현의 근무지는 짐승의 땅. 그 역시 테스트 장소로 최적화된 지역입니다. 추진해도 되겠습니까?”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

“다시 말씀드리지만 최악의 경우 사망할 수도…….”

“이봐, 백도 없고 권력도 없으며 소속도 없다는 게 누구지? 상관 말고 시작해. 우리는 더 이상 계약자들의 단체가 거들먹거리는 것을 볼 수 없어.”

* * *

“그럼, 가겠습니다.”

“잘 가라.”

“건강하고!”

성현이 전역하는 날이 되었다.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에게 손을 흔들며 더블 백을 등에 짊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그동안 몸담았던 초소를 떠났다.

초소는 짐승의 땅에 있다.

당연히 이곳을 오가는 교통수단은 없고 차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했다.

가는 도중에 짐승을 만날 수도 있지만 성현은 상관없었다.

이곳에 있는 짐승은 간식거리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성현은 걸음을 옮기며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단.’

이 주일 정도는 집에 있으며 어머니께 효도한다.

‘다음은 페이트 길드와 계약.’

사실 성현의 입장에서 페이트 길드와 계약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성현은 계약자, 단체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어머니가 걱정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계약을 끝낸 후에 곧장 이계로 넘어갈 생각이었고 넘어간 후에는 소멸의 바다를 찾을 계획이다.

그곳에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이서아와, 구악의 멤버였던, 강화도에서 만났던 이유미의 아기를 찾아 줄 거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찾아야 할 게 있었다.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 그가 입고 있었던 갑주.

마법사는 그 갑주가 소멸의 바다에 있다고 말했다.

그 갑주를 손에 얻으면 성현은 더욱 강해질 게 분명하다.

‘어쩌면, 마법사와 버금가는 힘을 얻을 수도 있어.’

물론 마법사의 힘을 얻기는 어려울 거다.

성현은 인간, 신체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성현의 목표는 종말의 어머니 플로르와 존재의 단체 ‘교’를 없애는 것이다.

어떻게든 강해져야 했다.

존재보다 강해질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었다.

‘그런데, 그다음은?’

성현은 문뜩 생각했다.

‘이 싸움이 끝나면, 뭘 해야 할까?’

성현이 회귀한 이유는 플로르와 교 그리고 지연우를 막는 것이었다.

그게 성현이 이 시간에서 살 수 있는 존재의 이유였다.

그런데, 그 싸움이 끝나면.

‘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미 ‘인간성’이라는 게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는 중이다.

사람을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고 죽음의 문턱을 오가도 감흥이 없다.

수십 년 동안 지독한 싸움을 해 왔는데, 평화로운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살 수 있을까.

생각을 이어 가던 성현은 씁쓸히 웃었다.

‘됐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자.’

지금은 최선을 다해 플로르를 잡아야 한다.

기억 속 세상에서는 플로르를 막는 것에 실패했다.

만약 성현이 나모르를 죽이지 않고 계속해서 그 시간에 남아 있었다 해도 플로르를 막을 수는 없었을 거다.

수많은 여왕과 군주,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강했던 지르힐마저 탑으로 향했지만 결국 가짜 에느가인이 폭발했던 것처럼.

‘지금은 이를 악물고 싸워야 해.’

성현은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생각을 이어 갈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기억 속이라…….’

나모르의 코어, 그 기억은 탄생과 멸망을 반복하는 세상이었다.

마치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하고 되감는 것처럼 끊임없이 같은 세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의 생명체들은 반복되는 사실을 모르고 계속해서 싸우고 또 싸웠다. 그리고 멸망하고 또 멸망했다.

카심은 계속해서 아들을 못 만났으며 마법사는 계속해서 아들을 잃고 또 잃었다.

성현은 어쩌면 지금 세상도 그런 기억의 반복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 혼자만 반복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성현이 픽 웃었다.

‘망상이야. 망상.’

그때였다.

성현의 바로 앞, 사람 키보다 높은 갈대밭 안에서 이질적인 느낌이 흐르고 있었다.

성현이 풀숲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인간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기운.

‘아직 몇 년이 남았을 텐데?’

성현은 고등학교 시절, 한아성이라는 친구의 아버지가 일하는 ‘대짐승 진압 부대’에 견학을 간 적이 있다.

그때 친구의 아버지는 말했었다.

“견학하고 싶다고? 그래, 그럼 둘러봐. 단, 5층은 가지 마. 거기는 포획된 짐승을 연구하는 곳이라 위험해.”

정부는 계약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권력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그들은 계약자가 필요했다.

짐승과 싸우는 데 계약자만 한 무기가 없어서다.

계약자가 짐승과 싸우는 동안 정부가 넋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계약자가 잡아 온 짐승을 연구했다.

그리고 그들은 사형수와 짐승을 믹스해서 생체 병기를 만들어 냈다.

신체는 인간인데 짐승의 권능을 가진 것들.

정부는 그 실험체의 전투력을 측정할 상대가 필요했고 그 대상이 성현이었다.

갈대가 흔들렸다.

그리고 놈들이 튀어나왔다.

쉬이이이익!

-어떻게 됐어?

“이제 싸움이 시작됐어요.”

금발의 여자가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며 답했다.

그녀는 먼 곳에서 쌍안경을 손에 든 채 성현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몇 마리 보냈지?

“6마리요. 지금은 유성현이 피하기만 하네요. 당황했나 봐요. 인간도 아닌 것이 짐승도 아니니까.”

그녀가 담배를 입에 물고 무심한 눈으로 성현을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유성현, 생각보다 별것…….”

그런데, 그 순간이다.

말을 이어 가던 그녀의 눈이 부릅떠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