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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59화 (159/252)

159화

“저…… 저게 가능해?”

금발의 여자는 당황했다.

눈앞에서 보이는 현실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돼.”

그녀가 데려온 것은 6마리의 생체 병기.

모두 S등급 이상의 던전에서 찾은 주인을 베이스로 만들어졌다.

‘S등급이라고!’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지금껏 생체 병기를 시험하기 위해 계약자와 짐승, 각 던전을 오가며 숱하게 많은 전투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 결과는 모두 승리였다.

특히 저 6마리가 모였을 때에는 100위권 랭커도 손쉽게 이겼다.

‘30위권이라고 하지 않았어?’

내부적으로 검토한 결과 성현의 실력은 약 30위권의 랭커.

마녀와 군주를 잡았지만 현장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전투에는 그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며 계약자들이 부르짖었다.

그래서 이들은 성현을 상대로 최종 시뮬레이션을 준비했다.

‘그런데 저게 30위권이라고?’

그녀는 눈을 깜빡거렸다.

성현은 6마리의 생체 병기와 싸우고 있었다.

아니, 일방적으로 구타하는 중이었다.

쩍! 쩍! 쩍!

놈들이 칼과 도끼 해머를 휘둘렀지만.

‘느려.’

몸을 살짝 비트는 것으로 공격을 흘려 버렸다.

그리고 곧장 손바닥으로 놈들의 뺨을 가격했다.

쩍!

부채를 펼치지도 않았다. 오직 놈들의 뺨만 때리는 중이다.

그런데 그 공격만으로 생체 병기가 비틀거렸다.

성현이 다시 팔을 휘둘렀다.

쩌억!

1마리가 10여 미터 날아갔고 땅에 처박혔다.

그리고 기절했는지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음.”

성현이 나머지 생체 병기를 향해 말했다.

“다음!”

남은 5마리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생체 병기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명령 외에는 어떤 생각도 할 수 없도록 지성조차 끊어 놓았다.

그런데 놈들이 성현을 보며 공포를 느끼고 있다.

본능이다.

죽음을 마주하면 도망치고 살고 싶은 본능.

성현이 처음으로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씁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쩌면 너희가 나보다 더 인간다울 수도 있겠어.”

생체 병기조차 생존 본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성현은 그런 것 따위 잊은 지 오래다.

그저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살아 있을 뿐이다.

“일단 쉬고 있어라.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는 말고.”

성현이 생체 병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꽈앙!

둔탁한 타격 소리에 생체 병기의 뼈가 으깨졌다.

땅에 처박히며 더 일어서지 못했다.

뻐억!

다른 생체 병기도 흐느적거리다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하나둘 땅에 처박히고 쓰러졌다.

모두 한순간에 일어난 일었다.

성현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시선이 향한 곳은 약 100여 미터 밖,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금발의 여자.

성현은 그녀를 알고 있었다.

‘파이.’

진짜 이름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파이라 불렀고 인류 마지막 천재 과학자 또는 생체 병기의 어머니라 칭했다.

무엇이 되었든 그녀의 삶이 영광스러울 것처럼 보였지만 성현은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알고 있다.

그녀는 생체 병기를 세상에 공개한 후 암살되어 죽고 만다.

그것도 비참하게, 발가벗겨진 채 퇴폐적인 유흥가에 던져진 채로.

그런데 그녀의 죽음을 안쓰러워하는 사람은 단 1명도 없었다.

생체 병기를 만들기 위해 그녀가 앗아 간 생명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게 회귀 전에는 몇 년 후였는데…….’

벌써 이렇게 완성도 높은 생체 병기가 만들어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인사나 해야지.’

성현이 땅을 박찼다.

이어서 쉬이이익! 그녀를 향해 빠르게 향했다.

그녀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안 돼!’

그녀는 생체 병기를 통해 성현을 공격했다.

그 앞에서 구경까지 하고 있었다.

계약자들의 난폭한 성격을 생각하면 죽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때릴 테니까 무서워하지 마.”

“네?”

“진짜야, 눈 떠.”

그녀가 실눈을 떴다.

성현이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름이?”

“파이.”

“진짜 이름은?”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가르쳐 주기 싫다는 거다.

성현은 그 이유도 알고 있었다.

10여 년 전, 눈이 오던 날이다.

계약자들끼리 싸움이 났고 그 싸움에 일반인이 휘말려 사망하고 말았다.

그때 죽은 사람이 그녀의 부모, 하지만 사과하는 사람은커녕 법의 징계를 받은 사람조차 없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이 그랬다.

짐승에 의해 땅이 잠식되는 중이었고 단 1명의 계약자가 귀하던 시절이다.

그리고 그녀는 차가운 아스팔트에 싸늘히 식어 가는 부모를 보며 다짐했다.

반드시 계약자를 없애겠다고.

그래서 이름을 버린 후 계약자를 억누를 수 있는 생체 병기에 매달렸다고 한다.

물론 성현은 그녀의 행동을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을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성현에게 필요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생체 병기가 필요했다.

생체 병기는 지연우의 편이 아니다.

훗날 지연우가 계약자를 등에 업고 정부를 장악할 때, 가장 앞서 싸우는 게 생체 병기였기 때문이다.

생체 병기는 인간성을 잃었지만 인간을 위하라는 명령이 머릿속에 박혀 있다.

‘그리고…….’

지연우와 계약자가 아니더라도 앞으로의 계획에 필요하다.

생체 병기는 존재와의 전쟁에서도 크게 쓰일 거다.

그들은 짐승을 상대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래서 성현은 생체 병기를 보고 반가워했다.

성현이 고개를 틀어 쓰러진 생체 병기를 보며 입을 열었다.

“생체 병기의 숫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면 더 이상 계약자들이 거들먹거리는 꼴을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

“……꼭 생체 병기를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네요?”

“뭐…… 예전에 언뜻 들은 적이 있어. 그건 그렇고 인간을 베이스로 만든 이유가 뭐야? 계약자를 대신해서 경찰처럼 쓰려는 것인가? 짐승의 모습으로 던져두면 사람들이 무서워할 것 같아서?”

성현의 말투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아요.”

“그런데 내가 지금 저놈들을 상대해 봤잖아?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인간의 몸에는 한계가 있어. 발톱도 없고 날카로운 이빨도 없어. 그 장점을 버리면서까지 인간의 형태를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계약자를 대신해서 사람들을 지키려면 익숙한 모습이 좋잖아요. 시내에 끔찍한 모습의 짐승이 경찰처럼 서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파이는 계약자를 싫어한다. 하지만 그녀는 성현이 계약자란 것도 잊고 토론하고 있었다.

성현도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을 최대한 전했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한 후 성현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파이, 그쪽의 적은 짐승이 아니야. 계약자와 존재잖아. 다시 말하지만 인간의 형태로는 그 힘을 발휘할 수 없어. 그저 일반적인 계약자 정도의 수준이 한계야.”

“…….”

“차라리 모습이 기형적이라 해도 짐승과 짐승을 합쳐 봐. 날개가 없는 놈에게 날개를 만들어 주고 다리가 없는 놈에게 다리를 줘 봐. 2배, 3배는 강해질 거야. 그게 계약자를 이기는 법이야.”

성현은 그 말을 끝으로 파이의 곁을 스쳤다.

그녀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기, 기습한 것 죄송해요.”

“아, 즐거웠어.”

“나중에 한 번만 더 상대해 주겠어요?”

“뭐를? 생체 병기? 미안, 거절할게.”

“네?”

그녀는 성현이 허락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단호한 거절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성현이 빙긋이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를 상대할 정도의 병기를 만들려면 30년은 걸릴 거야.”

다른 사람이 했다면 오만방자한 말, 하지만 그녀는 성현의 실력을 봤다.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었다.

본 실력도 쓰지 않고 무기도 들지 않은 채, 주먹질만으로 6마리를 보내 버렸으니까.

성현이 고개를 틀어 그녀를 보며 말했다.

“나중에 내가 널 찾아가는 날이 있을 거야. 그때를 대비해서 딱 100마리만 센 놈으로 만들어 봐.”

“네?”

“200마리면 더 좋고.”

“그게 무슨……?”

성현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 권능 중에 하나가 예언이거든?”

“……그래서요?”

“지금 예언 하나 할게. 조만간 존재와의 대대적인 전쟁이 일어날 거야.”

회귀 전에도 있던 일.

하지만 이번에 일어날 전쟁은 회귀 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할 거다.

성현이 그렇게 만들 생각이다.

성현이 계속 말했다.

“그 전쟁에서 그쪽이 만든 생체 병기가 활약할 거야.”

성현은 그 말을 끝으로 그녀를 떠나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성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 * *

전역 후, 성현의 삶은 어머니와 함께였다.

함께 장을 보고 집에서 요리도 하고 외식도 했다.

영화도 보고 백화점에 들어가 쇼핑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돈은 충분했다.

페이트 길드에서 수십억의 계약금을 전해 줬기 때문이다.

지르힐도 성현이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는 말을 걸지 않았다.

이따금 창고에 들어가면 흐뭇한 눈길로 “부모님께는 잘 해야지.”라는 말을 전했을 뿐이다.

그때마다 성현은 “암, 네가 마음에 들어 한 남자잖아. 효도는 당연하지.”라고 응대했고 지르힐은 며칠 동안 삐졌다.

그리고 약속한 날이 되었다.

성현이 이계로 떠나야 할 날, 성현은 소멸의 바다로 갈 계획을 세웠다.

“다녀올게요.”

“이번엔 얼마나 걸려?”

“금방 올 거예요. 한 2주? 그 정도 걸릴 것 같은데요?”

어머니의 눈에는 걱정이 한가득이다.

텔레비전에서 성현이 떠오르는 신예니 뭐니 떠들어도 어머니 앞에서는 그저 어린애다.

“다치지만 마. 응?”

“네.”

어머니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현관에는 서은서가 서 있었다.

서은서는 이번 여행에 동참하기로 했다.

정말 혼자 가겠다고 간절히 이야기했지만 그녀가 끝끝내 버텼고 결국 이렇게 됐다.

어머니의 시선을 느낀 서은서가 최대한 안심시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어머니. 성현 씨는 제가 꼭 지킬게요!”

그녀가 오른손 주먹을 쥐어 보이자 그제야 어머니는 조금 안심한 모습이었다.

성현은 서은서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언제 봐도 민망한 슈퍼카가 주차되어 있다.

서은서는 뚜껑을 열고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고속도로면 모를까, 시내에서는 금방 횡단보도에 멈춰서고 그럼 사람들이 힐끔힐끔 본다.

그게 참 민망했다.

서은서가 운전석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갈까요?”

사실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

창고로 이동해서 이계 시장에서 만나 이동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서은서가 시동을 걸며 말했다.

“그럼, 우리 회사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가죠. 어때요?”

“좋네요. 오랜만에 드라이브도 해 보고.”

“그럼, 출발할게요.”

* * *

잠시 후, 성현은 이계 시장에서 노점을 차리고 앉은 꼬마를 찾았다.

“아이고, 또 어디를 가시려고요? 필요한 것이 있나요?”

“꼬마, 너도 가자.”

“네? 어디를요?”

“있어. 가 보면 알아.”

코어의 기억 속에서 성현은 다짐했었다.

카심이 망령이 되어 있더라도 아들을 만나게 해 주겠다고.

그리고 성현은 꼬마의 능력을 안다.

보기와 달리 제법 강하고 꽤 많은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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