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하지만 꼬마는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
“고객님? 어디를 가는지 말씀을 하셔야 엉덩이를 떼죠. 그냥 가자고 하면, 거기가 어딘 줄 알고 따라가겠어요? 고객님이 휴양지를 가는 성격은 아니잖아요? 분명히 지옥 같은 곳을 찾아갈 텐데, 제가 어떻게 바로 일어서겠어요?”
성현은 꼬마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지금껏 성현이 향했던 곳에 천국은 없었다.
죽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곳만 찾아다녔다.
“그리고 고객님의 목에 붙은 현상금이 얼마인지 알아요? 지금 당장 현상금 사냥꾼이 나타나서 습격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마냥 따라오라고요?”
“……내 목에 현상금이 붙었어?”
“아이고, 나모르도 군주이긴 했어요. 그 아래에 백작만 있었겠어요? 공작도 있고 자작도 있고 남작도 있었겠죠? 그런데 고객님이 그 군주를 죽였죠? 그렇다면 남은 귀족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꼬마의 목소리엔 조금의 비아냥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 볼 때만 그런 거다.
혹시 모를 누군가가 지켜보는 것을 대비하고 있어서다.
꼬마는 은근히 정보를 알려 주는 중이었다.
현상금이 붙었으니 조심하라고.
그런데 성현은 슬쩍 웃었다.
얼굴에 심각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재밌네.’
회귀 전에도 성현의 목에는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지연우가 막대한 돈을 걸고 성현을 죽이려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존재다.
‘목 씻고 기다려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성현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꼬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건 그렇고…… 어디를 갈지 궁금하다는 거지?”
“네.”
“소멸의 바다에 갈 거야.”
“소멸의 바다요?”
“어.”
“죄송합니다. 전 안 갑니다.”
꼬마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이번엔 장난기가 붙어 있지 않았다.
얼굴에 남아 있던 웃음마저 싹 사라져 있었다.
“소멸의 바다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있어요. 거기는 위험해요.”
그곳에 가려면 자신도 소멸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죄송합니다. 거기는 안 갑니다.”
하지만 성현은 꼬마의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꼬마와 함께 가는 곳은 소멸의 바다가 아니다. 그 중간 지점, 왕가의 계곡이다.
“끝까지 들어. 소멸의 바다에 가려면 왕가의 계곡을 지나야 하잖아? 거기까지만 안내를 부탁하고 싶어.”
이번엔 꼬마가 진심으로 놀랐다.
“……왕가의 계곡이요?”
“이곳은 이계고, 나보다는 네가 더 잘 알잖아? 게다가 정보 상인이니까 위험 요소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때? 같이 갈래? 수고비는 충분히 지불할게.”
왕가의 계곡은 역대 왕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곳 역시 위험하다.
꼬마가 입을 열었다.
“……지금껏 많은 존재들이 도굴을 시도했었어요. 하지만 실패로 끝났죠. 아니, 대부분은 무덤은커녕 계곡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죽고 말았어요. 그곳에 설치된 저주와 함정은 웬만한 권능으로 이겨 낼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간다고요?”
“어.”
꼬마는 멍한 눈으로 성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성현이라면 계곡의 입구를 뚫고 무덤까지 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정말 왕가를 재건할 수도 있을지 몰라.’
꼬마의 가문에만 전해져 오는 예언이 있었다.
마지막 왕 카심이 죽기 전에 신하에게 남겼던 말.
기록에 따르면 카심은 몇날 며칠 동안 물 한 잔 입에 대지 못하고 말라 죽어 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에 어떤 환상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빌어먹을 마법사가 내 무덤을 찾아오고 있어. 그리고 내 아들이 마법사에게 옥새를 전해 받아! 뭐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높은 확률로 죽기 전에 본다는 착각 또는 환영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꼬마는 몰락한 왕가의 자식, 아버지의 말을 유언을 넘어선 예언처럼 여기고 있었다.
‘마법사…….’
게다가 성현은 마법사의 호칭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예언이 정말 사실처럼 생각되었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꼬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광장에서 기다려 주세요. 노점을 정리하고 갈 테니까.”
“오케이.”
성현이 몸을 틀었다.
그리고 성현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꼬마가 바닥을 툭툭툭 세 번 두들겼다.
동시에 스르륵 꼬마의 뒤로 검은 로브를 쓴 노파가 나타났다.
꼬마가 노점을 정리하며, 로브를 쓴 노파에게는 시선조차 두지 않고 입을 열었다.
“들었지?”
“네, 들었습니다.”
“아리한테도 전해 줘.”
“왕자님…… 정말 가실 겁니까?”
노파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한가득이다.
하지만 꼬마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지. 왕가를 재건할 수만 있다면 난 죽어도 괜찮아.”
* * *
며칠 후.
성현은 서은서 그리고 꼬마와 함께 사막을 걷고 있었다.
모래에 발이 푹푹 빠졌고 건조한 바람에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그들은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꼬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왕가의 계곡에 간다고 했잖아요?”
“어.”
“그런데요, 이쪽은 서쪽인데요? 왕가의 계곡은 북쪽에 있어요.”
“아, 잠깐 들를 곳이 있어.”
꼬마가 황당한 눈으로 성현을 향했다.
“그럼 어디로 가는지 알려 주세요. 여기는 이계예요. 생각 없이 가다가 죽을 수도 있어요. 존재의 마을이라도 만나면 어떻게 하려고요? 그중에 현상금 사냥꾼이라도 있으면 진짜 큰일 나요.”
존재도 인간의 마을처럼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성현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꼬마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성현은 느긋했다.
“거의 다 왔어.”
“그러니까 어디가요?”
“잠깐만…… 다시 한번 길을 확인할게.”
성현은 코어를 꺼내 바닥에 내려 둔 후 단도로 손가락에 피를 내 코어에 흩뿌렸다.
피를 머금은 코어가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서은서는 물론이고 꼬마도 코어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게 코어라고요?”
“어.”
성현은 코어를 손바닥 위에 올렸다.
머릿속에 코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하는 정보가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바위 7개가 모여 있는 곳이 어디지?’
-검색에 성공했습니다. 당신의 시야에 지도가 펼쳐질 겁니다. 바위 7개가 있는 곳은…….
시스템 알림음과 함께 성현의 눈에 홀로그램처럼 지도가 펼쳐졌다.
그리고 바위 7개가 모여 있는 곳이 정확히 표시되었다.
이곳에서 약 3시간 정도 걸어야 할 것 같다.
성현이 고개를 틀어 서은서를 향했다.
“거의 다 왔어요. 이제 3시간 정도만 더 가면 되니까 조금만 더 힘내세요.”
서은서가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3시간이면 가깝네요.”
성현과 일행은 지금껏 3일을 걸었다. 남은 것은 3시간, 그 정도는 일도 아니다.
그리고 꼬마가 성현의 옆에 섰다.
“3시간? 목적지가 어디예요?”
정말 궁금하다는 눈빛이다.
잠시 꼬마를 보던 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위 7개가 있는 곳, 거기에 뱀의 땅이라고 있어.”
뱀의 땅, 그곳에 성현이 찾는 것이 있다.
매개체가 없어도 권능을 증폭시켜 줄 수 있는 알약.
회귀 전에는 지연우가 먹었던 거다.
하지만 이번에는 성현이 찾을 생각이다.
꼬마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입으로는 ‘뱀의 땅? 뱀? 여기서 3시간 거리에 그런 곳이 있다고?’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꼬마의 직업은 정보 상인, 하지만 그런 꼬마도 뱀의 땅이란 곳은 처음 들은 표정이다.
“그런 곳이 있다고요?”
“어. 넌 모를 거야.”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이 시기에 뱀의 땅을 아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
그곳은 정말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때가…….’
성현은 잠시 그 땅이 발견되었던 상황을 떠올렸다.
몇 년 후, 존재의 전쟁이 있었던 시기다.
존재와 존재가 싸웠고 계약자들이 동원되었던 그때.
한 계약자가 사막에서 길을 잃었다.
사막을 탈출하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바위 7개가 있는 곳, 그리고 그곳에 숨은 뱀의 땅.
“가자.”
성현은 눈앞에 펼쳐진 지도를 보며 몸을 틀었다.
* * *
“여기를 뱀의 땅이라고 부른 거였어요?”
잠시 후, 성현과 서은서 그리고 꼬마는 7개의 바위 앞에 도착했다.
꼬마의 눈빛은 황당 그 자체였다.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이곳은 그저 바위 7개가 모여 있는 곳이다.
그리고 꼬마도 이곳을 알고 있었다.
바위 7개라는 특징 덕에 존재의 상인들이 거점으로 삼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를 올 거라면 코어가 아니라 저한테 이야기하지 그러셨어요.”
“그건 코어의 길잡이 능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거든.”
“아이고…… 그건 그렇고 여기를 왜 뱀의 땅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네요. 이곳을 제 영역으로 두고 활동하는 짐승은 뱀이 아니라 사막의 전갈이에요.”
하지만 성현은 꼬마의 말을 상관하지 않고 천천히 바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순서가…….’
뱀의 땅은 숨어 있다.
이 7개의 바위를 순서대로 접촉해야 나타난다.
성현은 그 순서를 알고 있었고 손에 마력을 집중했다.
이어서 기억했던 그 순서 그대로 바위를 하나하나 건드렸다.
땅이 드드드, 진동하기 시작했다.
가뭄이 든 논두렁처럼 모래가 쩍쩍 갈라지더니 그 사이에서 검은 마력이 연기처럼 흘러나왔다.
꼬마도, 서은서도 놀랐다.
하지만 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됐어.’
예전부터 이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제야 찾아온 이유는 하나다.
이제야 뱀의 땅을 토벌할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전의 성현이었다면 뱀의 땅을 오픈하는 순간, 이곳에 있는 짐승에게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 죽었을 거다.
그리고 쿠르르릉 소리와 함께 땅이 무너져 내렸다.
무너진 곳에 호수처럼 물이 생겼고 7개의 바위가 가라앉았다.
동시에 성현이 메고 있던 가방을 툭 던지며 서은서에게 말했다.
“2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다녀오겠습니다.”
“……어딜 간다는 거예요?”
서은서의 눈은 동그랗게 커져 있었다.
땅이 무너지더니 갑자기 드넓은 호수가 생겼다.
아무리 상식 밖의 세상이라 해도 이것은 좀 너무했다.
하지만 성현은 그대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수심은 깊었다.
언뜻 봐도 20~30m 정도.
성현이 알약을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10분 동안 물속에서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는 알약이다.
‘좋아.’
성현은 계속해서 밑바닥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가장 아래에서 문을 발견했다.
문에는 뱀 문양이 떡하니 그려져 있었다.
‘뱀의 땅으로 들어가는 문.’
성현이 문을 잡고 당겼다.
수압 때문에 쉽게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성현이 온 마력을 집중하자 결국은 열리고 말았다.
문 안은 긴 동굴과 같았다.
역시 물이 가득했고 이제는 빛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성현이 다시 알약을 하나 집어 먹은 후 수영했다.
그리고 잠시 후, 성현은 숨을 토해 내며 물 밖으로 나섰다.
드디어 도착했다.
뱀의 땅.
이곳에 ‘여’라는 이름의 구렁이가 있고 놈을 잡으면 알약을 얻을 수 있다.
‘들어간다.’
성현이 곧장 몸을 물 밖으로 빼냈다.
순간.
‘젠장.’
동굴의 벽 위에 매달려 있던 뱀 수백 마리가 성현을 향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