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성현이 곧바로 부채를 펼쳤다.
부채는 순식간에 창으로 변했고.
쉬이익!
휘둘러진 창끝에 썩둑, 썩둑 뱀의 머리가 잘렸다.
하지만 신경이 남아 있는지 잘린 몸뚱이가 꿈틀댄다.
날카로운 이빨로 성현의 발목을 물려 한다.
하지만 성현은 상관하지 않았다.
뱀 머리를 밟으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동굴의 끝에서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주인공은 성현이 찾던 것, ‘여’라는 이름의 구렁이였다.
상체는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다. 하지만 하체는 뱀, 퍼런 비늘이 징그럽게 보였다.
성현은 창을 꽉 잡았다.
여는 죽여야 할 대상, 놈을 죽여야 알약을 얻을 수 있다.
“넌 누구냐!”
여가 물었지만 성현은 이런저런 말을 내뱉지 않았다.
그저 더 빠르게 움직였고 곧 그 모습이 스르륵 사라졌다.
하지만 여는 당황하지 않았다.
성현의 움직임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고작!”
여의 손에서 검은 마력이 뻗어졌다.
순간 여를 향해 달려들던 성현이 멈칫거렸다.
흙이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인간의 형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놈들을 보며 성현이 한숨을 내뱉었다.
‘쉬운 것이 없네.’
회귀 전, 성현은 여에 관한 것을 지연우를 통해 들었다.
지연우는 어렵지 않다고 했는데…….
‘짜증나네.’
성현의 손에서 전기가 파직거렸다.
* * *
성현이 안으로 들어가고 약 30분쯤 지났을 때다.
서은서와 꼬마는 여전히 호수 앞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처음 만났을 때의 인사말이 전부였다.
그리고 지금껏 침묵.
꼬마의 시선이 서은서에게 틀어졌다.
“카디르버의 계약자인가?”
“네.”
“페이트 길드의 후계?”
서은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꼬마의 눈에 흥미가 생겨났다.
꼬마는 정보 상인이지만 인간사에는 약하다.
그런데 서은서 같은 고위직이 앞에 있으니 정보에 대한 욕심이 듬뿍 생기고 있었다.
그래서 꼬마가 물었다.
“길드에서 제일 센 사람이 누구야? 역시 그 길드의 마스터인가?”
서은서가 물끄러미 꼬마를 바라봤다.
그리고 서은서는 꼬마가 뭔가를 알아내려 한다는 의도를 파악했다.
서은서가 페이트 길드의 후계로 키워지며 배웠던 게 하나 있다.
정보는 주는 게 아니다.
남에게 듣는 거다.
서은서가 대답하지 않자 꼬마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왜? 반말하니까 기분 나빠? 그러지 마. 난 존재야. 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성현 씨에게는 다르게 대하던데요?”
“그건 저놈이 특별한 인간이니까 그런 거지. 넌 아니잖아?”
“그런데, 성현 씨랑은 무슨 관계죠?”
꼬마가 어깨를 으쓱했다.
“못 들었어? 단골이야.”
“성현 씨 정도면 시장의 위층에서도 거래할 수 있을 텐데, 왜 노점을 찾는 거죠?”
꼬마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대답했으니까, 이제 네가 답할 차례지. 길드에서 제일 센 사람이 누구야?”
서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틀어 성현이 들어간 호수만 바라봤다.
꼬마는 그 행동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꼈다.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취급하는 물건 중에 정보도 있거든. 정보 거래에는 이런 말이 있어. 하나를 말해 줬으면 하나를 들어야 한다. 난 유성현이 내 단골이라는 말을 해 줬고 그다음으로 너에게 물었어. 너희 길드에서 누가 가장 세냐고.”
꼬마의 분위기는 성현이 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금발의 귀여운 소년은 순식간에 사라진 상태였다.
눈에서는 살기가 뚝뚝 떨어졌고 이빨이 날카롭게 변했다.
“인간, 내 겉모습만 보고 우습게 보지 마라. 너 따위는 지금 당장 죽여 버릴 수도 있어.”
서은서의 시선이 다시 꼬마에게 틀어졌다. 그리고 냉랭한 눈빛으로 꼬마를 바라봤다.
서은서, 회귀 전 성현은 그녀를 소시오패스로 기억하고 있었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여자.
페이트 길드의 직원들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즐겁게 웃으며 와인을 마셨던 성격.
하지만 그녀는 지금껏 착한 모습만 보여 왔다.
친절했고 모두를 향해 웃어 줬다.
이유는 하나, 성현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성현이 호수에 들어가 있는 동안에는 내숭을 떨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도 웃고 있다.
꼬마를 향해 활짝 미소 지으며 말한다.
“죄송해요. 정보 상인에게 그런 룰이 있는 줄 몰랐어요.”
“알았으면 말해.”
“글쎄요. 누가 가장 셀까요?”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가방을 열고 물컵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비슷비슷한 사람이 많아서 생각 좀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기다려 주시겠어요?”
꼬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은서가 자리에 앉아 물을 따른 후 꼬마에게 말했다.
“물 마실래요? 빵도 있는데.”
“고작 그것과 정보를 바꾸려고?”
“페이트 길드의 딸이 고작 빵으로 때울 것 같아요?”
“하긴.”
꼬마가 손을 뻗었고 서은서가 꼬마의 작은 손에 빵을 올렸다.
그리고 서은서는 생각에 빠진 듯 호수를 바라봤다.
꼬마가 빵을 한입 베어 물며 물었다.
“그렇게 비슷한 사람이 많아? 마스터나 원로 후계 중 하나 아니야?”
“아뇨. 알 것 같아요. 제일 센 것은…… 그거요.”
“그거?”
“네.”
꼬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라니?”
“그 빵이요.”
꼬마가 빵을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서은서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꼬마는 끔찍한 복통을 느꼈다.
위장을 갈기갈기 찢는 통증.
“우웩!”
꼬마가 두 손으로 땅을 짚고 헛구역질을 내뱉을 때, 서은서가 호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페이트 길드는 크게 강한 사람이 없어. 우리는 독이 베이스니까. 아무리 강해도 독이면 끝나잖아. 그래서 우리는 독이 제일 강하다고 생각해. 독 앞에는 평등하지.”
“우웨엑!”
꼬마는 위액을 뱉어내며 서은서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제야 봤다.
서은서의 표정은 정말 싸늘했다. 세상에 그 어떤 어머니도 저런 눈빛을 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서은서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짐승에게만 사용해 봐서 존재에게 통할까 궁금했는데, 통하네.”
“…….”
“그 독이 곧 네 혈관을 녹일 거야. 다음은 피부, 마지막으로 뼈까지 녹이지. 무협지에 나오는 만독불침? 그거 다 거짓말이야. 만독불침이 나오면 그걸 깨기 위한 독이 금방 나오거든.”
꼬마의 눈에 불이 붙었다.
“씨×!”
서은서를 향해 달려들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그런데 서은서는 느긋했다.
그런 꼬마를 향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살려 줄까?”
“……뭐?”
“해독제가 있어. 그런데 해독제를 받으려면 앞으로 나한테 존댓말 해. 건방지게 굴지 마. 조건은 이 두 가지. 어때?”
꼬마의 이마에 혈관이 돋아났다.
하지만 지금은 서은서의 말을 따라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꼬마는 작은 주먹을 꽉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독제를 얻는 순간 죽여 버릴 거야.’
성현에게 댈 핑계는 많았다.
이곳은 이계였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은서는 그런 꼬마의 마음을 모르는지 품에서 알약을 꺼내 던졌다.
꼬마가 허겁지겁 알약을 삼켰다.
몸이 타 버리는 것 같은 통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
꼬마는 긴장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서은서를 향해 저벅저벅 다가갔다.
“……인간 따위가 감히 존재를 농락해? 넌 편하게 죽지 못할 거야.”
꼬마의 손에서 마력이 일렁였다. 체구가 작아도 오랜 시간 살아온 존재, 게다가 몰락한 왕가라 해도 왕자 출신이다.
인간은 순식간에 찢어 버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서은서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꼬마를 향해 비웃음을 담고 있었다.
꼬마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을 때, 서은서의 목소리가 꼬마의 귀에 쑤셔 박혔다.
“멍청하네, 독이 완벽히 해독된 것 같아? 이미 그 독은 네 혈관에 파고들었어. 하루에 한 번, 해독제를 먹지 않으면 녹아 죽는 거지. 그리고 그 독의 해독제는 내 창고에 있어. 자, 어떻게 할래? 녹아서 죽을래? 아니면 누나라고 부를래?”
“……!”
“아까 네가 말했지, 겉모습만 보고 우습게 생각하지 말라고. 똑같이 전해 주고 싶은데. 겉모습만 보고 날 판단하지 마. 살고 싶으면 누나라고 불러.”
“……!”
“잠깐, 아니야. 생각해 보니까 네가 누나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어. 녹아 죽는 모습을 한번쯤 보고 싶었거든. 비명을 지르나, 못 지르나 그게 궁금해서. 폐가 녹아 버리면 못 지르니까 그냥 입 닫고 죽으려나?”
서은서가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마녀보다 더 마녀 같았고 그 모습이 살벌하다.
그리고 꼬마는 자존심을 세우지 않았다. 순식간에 금발의 귀여운 꼬마로 돌아가 최대한 앙증맞게 입을 열었다.
“누나, 농담이에요. 제가 어떻게 누나를 죽이겠어요. 헤헤.”
* * *
잠시 후.
서은서와 꼬마가 앉아 있는 호숫가.
“제가 1층의 노점에 있지만 없는 것 빼고 다 가지고 있거든요. 그걸 고객님이 딱 알아보고 저를 찾아온 거죠. 그때 처음 저한테 샀던 물건이…….”
꼬마는 서은서가 “심심해.”라는 말을 하자 쉬지 않고 떠벌리는 중이었다.
꼬마에게 꼬리가 있었다면 정말 최선을 다해 흔들고 있었을 거다.
그때였다.
조용했던 호수에 파문이 일었다.
성현이 나오는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쿵! 쿵! 쿵!
땅이 흔들렸다.
이어서 꼬마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꼬마는 존재다. 인간보다 먼 곳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먼 곳에서 다가오는 놈들을 확인했다.
거대한 말을 타고 달려오는 10여 명의 존재들.
“누, 누나…… 왔어요.”
“뭐가?”
“도적이요.”
이곳은 상인들이 거점으로 삼는 곳이며 도적으로 생활하는 존재가 타깃으로 삼는 지역이다.
그들을 보며 꼬마가 계속 말했다.
“한 놈, 한 놈은 저보다 약한데요.”
“그런데?”
“열다섯이라…….”
이길 수 없다.
꼬마의 힘은 기껏해야 마녀보다 조금 더 센 정도.
광범위 공격 스킬이라도 있다면 뭐든 해 보겠지만 꼬마는 일대일 전투에 특화되어 있었다.
즉, 존재 열다섯을 상대하기는 버거웠다.
꼬마의 시선이 서은서를 향했다.
서은서 역시 꽤 강하기는 하다. 하지만 인간의 수준에서 강한 거다.
저들과 싸운다면, 순식간에 갈려 나갈 거다.
꼬마의 시선이 호수로 틀어졌다.
‘유성현이 있었다면…….’
성현은 ‘전기’라는 광범위 스킬을 갖고 있고 사체를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다.
여러 놈을 상대할 때 성현의 스킬은 사기에 가깝다.
문제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언제 나올지 기약도 없다.
‘결국 우리 둘이 해결해야 하나?’
꼬마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도적 열다섯이 앞에 섰다.
그들이 싸늘한 눈으로 서은서와 꼬마를 번갈아 봤다.
“상인 하나에 인간? 인간이 여기에 왜 있어?”
꼬마가 손을 비비며 입을 열었다.
“시장의 손님인데요. 이계가 궁금하다고 해서 사례금을 받고 관광시켜 주는 중입니다. 헤헤.”
꼬마는 생각했다.
서은서는 이계의 경험이 없으니까 자신이 최대한 나서야 한다고.
그리고 꼬마는 알고 있었다.
도적을 상대할 때는 최대한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이계에서는 더 그렇다.
그래야 가진 것만 빼앗긴다. 자극하면 죽을 수도 있다.
꼬마는 물건만 주고 상황을 끝내기 위해 봇짐을 펼쳤다.
“괜찮은 물건이 있는…… 어?”
꼬마가 눈을 깜빡였다.
물건을 꺼내는 사이 서은서가 도적들에게 빵을 나눠 주고 있었다.
“가진 것이 이게 전부인데, 드실래요?”
독이 든 빵, 몸이 녹아내린다는 독, 먹으면 위장에서 칼이 돌아다니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바로 그 빵!
도적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빵을 처먹었고…….
잠시 후.
성현이 물 밖으로 나왔다.
참고 있던 숨을 내뱉으며 사막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머리를 털며 입을 열었다.
“별일 없었……. 저건 누구야?”
성현은 이제야 봤다.
꼬마의 뒤에 무릎을 꿇고 있는 열다섯 명의 존재들.
성현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수건이요.”
서은서가 다가와 성현에게 수건을 건넸다.
성현이 일단 수건을 받으며 물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들은 누구죠?”
서은서가 정말 순수한 미소를 그리며 답했다.
“우리한테 말을 빌려주겠대요. 목적지까지 호위도 해 주고요. 정말 좋은 분들이죠?”
꼬마는 멍하니 서은서를 바라봤다.
꼬마는 오늘 악마를 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