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63화 (163/252)

163화

* * *

“다 했네? 도와주려고 했는데.”

성현과 서은서가 돌아왔다.

성현의 목소리가 들리자 저녁 준비를 하던 꼬마와 열다섯의 존재가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 꼬마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노점 상인에게 텐트를 치는 것이야 일도 아니…… 어?”

꼬마는 성현과 서은서를 보고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뭐지?’

갑자기 서은서가 강해졌다.

방금만 해도 서은서의 수준은 꼬마가 가볍게 짓밟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정도면…….’

마녀 하나를 상대로 버틸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운이 좋아 이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왕가의 계곡을 노리는 입장에서 서은서가 강해진 것은 반길 만했다.

그런데 꼬마는 마냥 좋아할 수 없었다.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성현…….’

성현도 뭔가 이상했다.

‘약해졌어.’

방금만 해도 성현의 마력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스포츠카처럼 사정없이 날뛰고 있었다.

‘그런데 뭐야?’

지금 성현에게는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막 계약한 계약자보다도 약할 것 같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꼬마가 텐트를 치고 있을 때, 성현과 서은서는 할 말이 있다며 잠시 빠졌다.

그리고 창고로 이동해 마력을 증폭시켜 주는 알약을 먹었다.

하지만 꼬마가 그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창고의 시간은 이곳보다 더디게 흐르고, 성현과 서은서가 다시 돌아온 것은 약 4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 40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꼬마의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그때 성현이 꼬마를 보며 입을 열었다.

“꼬마, 가볍게 한번 붙어 볼까?”

“네?”

“왕가의 계곡으로 들어가기 전에 몸을 풀어야 하지 않아? 싸워 본 지 오래되지 않았어?”

“아뇨, 괜찮은데요.”

꼬마가 어색하게 웃으며 거절했다.

꼬마의 권능은 마녀보다 조금 더 강하다.

그래서 성현이 목걸이의 펜던트를 끊어 내지 않는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성현은 그런 마력조차 없다.

말 그대로 약하다.

‘저 상태로는 펜던트를 끊어도 나를 이길 수 없을 거어.’

꼬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여쭤볼게요. 왕가의 계곡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왜?”

“그……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마력이 없는 것 같아서요.”

“그래?”

“혹시, 저 여자…… 아니, 저 누나한테 마력을 나눠 주기라도 했나요?”

성현이 마력을 나눠 준 게 아니라면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성현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꼬마의 추측은 더 확실해졌다.

“……정말이에요? 미쳤어요? 왕가의 계곡이 장난인 줄 알아요? 원래의 마력이었어도 힘들었을 거라고요.”

“저기?”

“하…….”

꼬마는 한숨을 내뱉었다.

꼬마가 왕가의 계곡 탐사에 쫓아온 이유는 하나였다.

아버지가 했던 말, 마법사가 옥새를 넘겨준다던 그 예언.

그거 하나만 믿고 사망 가능성이 99%에 가깝다고 알려진 왕가의 계곡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제 사망 가능성이 99%를 넘어 100%가 되었네요.”

꼬마는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성현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알았으니까, 몸이나 풀자.”

“고객님? 전 일단 시작하면 살살 안 해요.”

성현이 꼬마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열다섯 명의 존재들과 서은서도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열다섯 명의 존재들은 흥미로 가득한 눈으로 성현과 꼬마를 지켜보며 떠들었다.

“저 꼬마, 나보다 센 것 같지?”

“어. 마녀는 넘을 것 같은데?”

“우리 4명 정도는 덤벼야 저 꼬마와 비슷할걸.”

“그런데 싸우자고 하는 거야? 저 인간 죽는 거 아니야?”

이들은 성현의 이름과 얼굴을 모르고 있었다.

도적질로 약한 상대를 골라 털어 먹고사는 게 전부인, 존재 중에서도 정말 하찮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현이 열다섯의 존재들을 향해 고개를 틀어 입을 열었다.

“다음은 너희야. 준비하고 있어.”

존재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웃음소리가 정말 천박했다.

한 놈이 칼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인간을 상대로 싸운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오랜만에 인간고기를 맛보겠어.”

“누님 정도가 아니면 우리는 인간을 벌레 취급하지.”

놈들은 이 상황에서도 서은서에 대한 예의는 갖추고 있었다.

괜히 심기를 건드렸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꼬마가 입을 열었다.

“먼저 공격하세요. 다섯 번의 공격은 봐줄게요.”

성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섯 번이나?”

“네. 그 고객님네 세상에 있는 무협지 보면 나오죠? 뭐, 그 정도는 양보한다고. 그렇게 하죠.”

꼬마는 지금의 성현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서은서도 마찬가지다.

불안한 눈으로 성현과 꼬마를 지켜봤다.

그녀 역시 성현의 능력이 다운그레이드 됐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번이라……. 좋아. 그럼 시작한다.”

“눼, 눼. 오세요.”

쩌억!

꼬마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어느새 앞에 다가온 성현이 뺨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꼬마가 ‘어?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했지만 늦었다.

“배가 비었어.”

뻐억!

성현이 꼬마의 복부를 가격했다.

“컥!”

꼬마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내장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에 털썩 무릎을 꿇고 괴로워했다.

다섯 번을 양보한다고 했는데, 단 두 번의 공격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마력은커녕 어떤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일방적인 구타.

‘이거 사기잖아…….’

그저 육체적인 능력만으로 꼬마를 무릎 꿇렸다.

이것은 사기다.

있어서는 안 될 인간이다.

하지만 꼬마는 더 생각하기 어려웠다.

“꾸웨웩!”

내장이 뒤집히는 기분을 느끼며 먹은 것을 다 게워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성현이 꼬마의 앞에 다가서서 입을 열었다.

“쉬고 있어.”

“네? 쉬고 있으라고요?”

“다시 부를 때까지 체력 회복해 두고.”

“그게 무슨……?”

성현의 시선이 열다섯의 존재들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중 대장인 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음은 너. 이름은 1번이라고 하자.”

“하! 내 이름은 발칸이다!”

“아니야, 이제부터 넌 1번이야. 이름 외우기 힘들어. 어쨌든, 나와.”

그다음은 정말 무자비한 구타였다.

열다섯의 존재들 그리고 꼬마는 돌아가며 얻어맞았다.

물론 폭력을 위한 구타가 아니었다.

성현은 놈들을 때리며 친절히 설명해 줬다.

다리가 노출됐다. 지금은 복부를 막아라. 얼굴을 대놓고 방어하면 다른 쪽이 텅 빈다.

뻐버버버벅!

꼬마는 전투 경험이 거의 없다. 열다섯의 존재들도 약한 놈들만 학살해 본 것이 전부, 강자와 싸워 본 적이 없다.

경험의 부재는 위기 상황에서 극단적으로 갈린다.

성현은 짧은 시간에 그들의 전투 능력을 최대한 끌어 올리고 있었다.

“다음은 15번.”

열다섯 번째 존재가 울상을 지었다.

벌써 성현 앞에 선 게 여섯 번이나 된다.

놈이 몸을 굽실거리며 말했다.

“나으리, 오늘은 그만 쉬…….”

콰직!

성현은 15번이 말하는 중에 때렸다.

“봐 달라고 빌기 전에 주먹을 쥐고 싸워라. 상대에게 손바닥을 비비는 순간 목이 날아가는 것은 당연한 거야.”

그렇게 1시간, 꼬마와 열다섯의 존재들은 피떡이 되어 사막에 누워 버렸다.

숨을 헐떡이지 않았다면 시체로 봐도 무관했을 거다.

그리고 성현의 시선이 서은서에게 닿았다.

서은서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억지로 웃었다.

“……저도요?”

“네.”

죽음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짐승은 여자의 살이 부드럽다며 더 좋아한다.

서은서가 품에서 빵을 꺼냈다.

“빵…… 드실래요?”

“아뇨. 오세요. 대신 서은서 씨는 주먹으로 안 할 겁니다.”

“그럼…… 발로 하나요?”

성현이 고개를 저었다.

“저한테 공격하세요, 카디르버의 권능으로.”

서은서 역시 경험 부족이다.

페이트 길드의 딸로 키워지며 마력은 높았지만 죽기 직전까지 싸워 본 것은 성현을 만나 경험한 게 전부였다.

그래서 카디르버의 권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

평범한 계약자들 사이에서는 강한 축에 들겠지만 랭커에는 이름도 못 올리는 이유였다.

서은서가 한숨을 내뱉었다.

성현의 표정을 보면 봐 달라고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녀의 손에서 붉은 연기가 일렁였다.

“그럼, 갑니다.”

붉은 연기가 성현을 향해 사정없이 쏘아졌다.

쾅! 쾅! 쾅!

지면을 때렸고 모래가 날렸다.

“권능이 날아오는 동작이 커요. 오기 전에 예측할 수 있어요. 이런 원거리 공격은 예측해 버리면 소용이 없어요.”

1번부터 15번의 존재들과 꼬마는 두 사람의 전투를 지켜봤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독을 선물한 서은서가 제대로 한 방 얻어맞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이 기다리는 상황이 됐다.

성현이 서은서의 붉은 연기를 지그재그로 피하며 빠르게 돌진하고 있었다.

‘팝콘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들 모두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성현이 서은서의 앞에 섰다.

서은서가 눈을 질끈 감았고 존재들이 ‘오오오오!’ 하고 속으로 몰래 기대에 찬 함성을 내질렀다.

그런데 성현이 서은서의 이마에 딱밤을 톡 치며 부드럽게 말했다.

“예측 못하게 해야 해요. 더 할 수 있죠?”

“아, 네.”

그 모습을 본 존재들이 모래를 쥐고 집어 던졌다.

“아니, 이거 남녀 차별 아닙니까!”

성현이 픽 웃었다.

“남녀 차별이 아니라, 내가 다니는 회사 사장님이야. 너희들로 따지면 군주고 어머니라고. 그런데, 때릴 수 있겠어?”

“아…….”

* * *

다음 날.

성현과 일행은 다시 왕가의 계곡으로 향했다.

열다섯의 존재들은 꼬마에게 성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계속 감탄하고 있었다.

“들었어! 나모르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나모르를 잡은 게 진짜 저 인간, 아니 저분이라고?”

“그래.”

꼬마는 괜히 우쭐해졌다.

어깨에 힘을 주고 당당히 걸었다.

“와 씨, 어쩐지……. 저 정도 되니까 마력도 없이 맨주먹으로 줘 패는 거구나.”

“어제 맞은 이 얼굴, 평생 안 씻고 가보로 보관할 거야. 내 권능이 몸 분리거든, 흐흐.”

하지만 그 목소리는 점차 줄어들었다.

사막의 모래바람이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건조하고 서늘하다.

퍼석퍼석한 모래에 한이 담겨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드디어 왕가의 계곡의 영역에 들어온 거다.

그때 성현의 머릿속에 오랜만에 시스템 알림음이 들려왔다.

-왕가의 계곡에서 카심의 망령을 찾으세요.

-보상 : 왕의 가면.

성현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꼬마를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꼬마, 솔직히 말할게. 내가 여기에 널 데려온 이유는 하나야.”

“뭐죠?”

“카심, 네 아버지의 망령을 찾을 거야. 그리고 너와 만나게 해 줄 거야.”

꼬마의 눈이 부릅떠졌다.

자신의 속마음을 들켰다고 생각해서다.

아니, 그 전에 자신의 아버지를 성현이 어떻게 아는지 그게 의아했다.

성현이 말을 이었다.

“망령이라는 것은 어떤 모습일지 몰라. 그러니까 충격 받지 마라.”

꼬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또 생각했다.

아버지의 유언이 정말 예언이 맞을 거라고.

그런데 궁금한 게 생겼다.

“저기…… 고객님?”

꼬마는 성현이 어떻게 아버지를 아는지 물으려 했다.

하지만 성현이 꼬마의 말을 끊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 일이 끝나면 나도 부탁 하나 하자.”

“뭐죠?”

“지르힐이 갇힌 탑에 데려다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