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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64화 (164/252)

164화

* * *

왕가의 계곡에는 예측하지 못한 함정이 도사렸다.

땅을 밟는 순간 바위가 떨어졌고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갈라졌다.

세상에 불이 붙었고 여기저기 독 묻은 화살이 쏘아진다.

게다가 갖가지 짐승들이 튀어나왔다.

짐승이 악을 쓰며 성현과 일행을 달려들었다.

서은서는 물론 꼬마와 열다섯의 존재들조차 셀 수 없이 몰아치는 짐승의 등장에 기겁했다.

하지만 성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1번부터 7번. 너희가 가서 막아.”

“네?”

존재 일곱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달려오는 짐승 모두는 살기를 질질 흘리는 중이다.

그리고 그 한 마리 한 마리의 마력도 만만치 않다.

던전의 등급으로 따지면 S급에서나 볼법한 짐승.

그것도 수백 마리. 아니, 짐승이 달려오며 일으킨 모래 먼지 때문에 그 숫자가 가늠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은 최하위 등급의 존재였다.

게다가 고작 일곱의 숫자로 저 많은 짐승을 해결하기는 어려웠다.

8번부터 15번까지의 존재는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정된 일곱의 존재는 서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 우리만 가요?”

성현의 말이 곧 죽으라는 말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현은 정말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가.”

존재 일곱은 발을 떼지 않았다.

죽어도 못 가겠다는, 결의로 가득한 눈빛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성현의 손에 전기가 파직거렸다.

“3초 안에 안 가면 내가 죽일 거야.”

존재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제 두들겨 맞은 게 떠올라서다.

그때는 맨주먹이었는데, 권능까지 사용하면 반드시 죽는다.

이래 죽나 저래 죽나, 조금은 생존 가능성이 높은 곳을 향해 움직여야 한다고 다짐했다.

“젠장!”

존재 일곱이 짐승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리고 성현은 팔짱을 낀 채 그들을 지켜봤다.

당연히 죽게 할 생각은 아니었다.

왕가의 계곡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강한 능력이 필요했는데, 그것을 끌어 올리는 방법으로는 실전만한 것이 없다.

경험이 곧 능력이다.

성현의 생각이었다.

‘제법.’

그리고 일곱의 존재는 생각보다 꽤 잘 싸웠다.

그래도 배운 게 도적질이라고, 그동안 자잘한 전투는 무수히 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숫자가 문제였다.

놈들은 점차 짐승에게 밀리기 시작했고.

“다음은 8에서 15번까지 나가.”

“……네.”

안심하고 있던 나머지 존재들도 전장으로 투입됐다.

이어서.

“꼬마.”

“아이고…… 알겠습니다.”

다들 성현의 말을 순순히 듣고 있었다.

이곳은 이계, 힘 센 놈이 왕이 되는 곳이다.

“서은서 씨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엄호를 부탁해요.”

“네.”

서은서의 권능은 원거리 능력에 특화되어 있다.

붉은 연기를 쏘아 대며 존재의 전투를 지원했다.

그렇게 전투에 전투.

위험한 것 같으면 성현이 나서서 막아 줬고 체력이 고갈된 존재는 꼬마가 가져온 알약을 먹으며 회복했다.

그렇게 전투에 전투를 이어 가며 보름이 지났다.

이들은 이전보다 강해졌고 호흡 역시 좋아졌다.

서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치고 빠졌고 서은서의 전투 지원을 적절히 이용했다.

‘이 정도면…….’

쓸 만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어? 어?’ 하다가 아무것도 못한 채 병신처럼 죽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됐다.

그날 밤.

“도대체 이 계곡은 언제 끝나는 거야?”

1번 존재가 구시렁댔다.

쉬지 않고 왔지만 아직도 끝이 안 보인다.

계속해서 제자리를 돌고 또 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맞았다.

성현이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 맞아.”

“네?”

왕가의 계곡, 그 입구.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뫼비우스의띠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항상 그 자리.

그래서 왕가의 계곡의 사망률이 99%라는 것이다.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맴돌다가 죽고 마는 곳.

겨우 발견한 곳도 처음의 입구일 뿐이다.

하지만 성현은 코어를 통해 알고 있었다.

어느 곳이 진짜 입구인지,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는지 이미 파악한 뒤였다.

하지만 계속 걸었던 이유는 하나.

이들에게 실전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제는 뫼비우스의띠를 지나 본격적으로 안에 들어가야 했다.

“꼬마, 체력 회복제를 나눠 줘. 그리고 내일이 되면 오늘을 그리워할 만큼의 지옥으로 향할 거야.”

“지금을 그리워할 거라고요?”

존재들이 물었다.

이미 죽을 것 같은데, 더 심한 지옥이라니.

존재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성현은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다음 날이 되었다.

성현은 부채를 펄럭이며 마실을 나온 것처럼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짐승이 튀어나왔다.

그 순간 성현이 부채를 창으로 바꿔 땅에 꽂았다.

문을 여는 입구.

그 열쇠는 마력이다.

성현이 창에 마력을 집어넣자 공간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달려오던 짐승이 스르륵 사라졌다.

동시에 모든 이의 귀에 시스템 음성이 들려왔다.

-들어오지 말라. 이곳은 신성한 땅이니, 불순한 자의 침입을 불허한다.

“닥치고 열어라.”

성현의 말에 땅이 뒤흔들렸다.

메마른 논두렁처럼 쫙쫙 갈라졌다.

그 틈에서 검은 마력이 일렁였다.

밝았던 하늘이 검게 변하는 순간 세상의 모습이 바뀌었다.

어두침침한 공간.

“준비해!”

성현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긴장이 서려 있었고 열다섯의 존재들과 꼬마 그리고 서은서는 바짝 긴장했다.

그리고 해골의 병사들이 나타났다.

왕의 무덤을 지키는 병사다.

놈들이 절그럭절그럭,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성현은 그들의 기운을 느꼈다.

코어의 기억 속에서 만났던 자들.

함께 술을 마시고 싸웠던 병사들.

그들이 지금도 카심을 지키고 있었다.

‘하…….’

성현의 입에서 씁쓸한 한숨이 흘렀다.

인연이 있던 자들을 또다시 죽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억 속의 만남이며 저들은 망령일 뿐,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었다.

‘편히 보내 주지. 이제 그만 쉬어라.’

성현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왕가의 계곡입니다.”

카심의 망령이 살아 있는 곳이다.

* * *

그 시각, 플로르의 성.

다급한 표정으로 한 마녀가 달려왔다.

그녀가 플로르의 앞에 무릎을 꿇고 긴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위대한 어머니께 고합니다. 마법사의 권능을 가진 유성현이 왕가의 계곡으로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플로르가 벌떡 일어섰다.

“유성현이?”

플로르의 고운 미간이 찌푸려졌다.

와좌를 서성거리며 생각에 빠진다.

“……무슨 생각이지?”

최근 플로르에게 관심사가 생겼다.

그 관심은 애착을 갖고 키우는 지연우가 아니다.

바로 성현이다.

성현은 지르힐과 계약했으며 마법사의 호칭을 갖고 있다.

그 둘은 플로르가 가장 두렵게 생각하는 중립된 자들.

한 사람에게 두 권능이 합쳐졌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왕가의 계곡까지 들어갔다.

“그곳에 뭐가 있다고?”

지금껏 성현이 지나온 길은 평범하지 않았다.

벼랑 끝을 달려가는 것 같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무엇인가가 존재했다.

그리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빠른 속도로 강해지는 중이었다.

물론 그 힘이 플로르나 다른 어머니급에 미칠 수는 없다.

하지만 불안했다.

다시 말하지만 성현의 뒤에는 지르힐과 마법사가 있기 때문이다.

플로르가 입술을 씹으며 물었다.

“……최근에 지르힐이 봉인 하나를 풀었다고 했지?”

“네.”

지르힐이 권능을 회복하고 있다는 첩보를 들었다.

만약 지르힐이 힘을 완전히 복구하고 다시 세상에 나온다면, 이 세상은 다시 피로 물들 것이며 끊이지 않는 비명이 하늘까지 차오를 거다.

플로르는 잠시 지르힐을 잡아넣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죽은 존재만 해도 수만.

어머니급과 군주급도 분노한 지르힐의 앞에서는 불나방과 같았다.

피로 물든 바다가 붉었고 토지는 사체로 가득했다.

‘물론, 그때보다 우리의 전력은 더 강해졌어.’

플로르는 어머니다. 끊임없는 출산으로 그 자식들의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동안 신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 힘은 과거에 비해 강해졌고 ‘종말’이라는 칭호에 어울릴 정도가 되었다.

‘지르힐이라 해도 나를 이길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마법사의 권능이라, 두 연놈이 힘을 합치면…….’

플로르는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검고 긴 머리카락을 넘기며 입을 열었다.

“안 되겠다. 왕가의 계곡에 마녀들의 계약자를 보내라.”

“……네?”

“그 길은 내가 안내해 줄 것이며 그들의 퀘스트는 유성현의 목이 될 것이다. 보상은 섭섭하지 않게 해 줄 것이며 존재들은 나서지 마라.”

플로르는 존재가 아닌 인간의 손으로 성현을 죽이기로 했다.

그 이유는 하나.

지금 성현은 많은 존재들의 시선을 받고 있다.

그런데 어머니급의 존재가 성현을 지목해 죽이라 말하면 어떤 분쟁이 생길지 모른다.

“될성싶은 떡잎은 잘라 버려야지. 그리고 우리가 괜히 나서는 것은 좋지 않다. 인간의 일은 인간이 해결하라고 하라. 성현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수백 명의 계약자들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마녀는 지시를 받았다.

유성현을 죽이는 데 자신의 계약자를 집어넣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따르겠습니다.”

마녀가 떠나자 플로르는 다시 생각에 빠졌다.

마법사와 지르힐.

그 이름이 주는 무거움은 컸다.

잠시 한숨을 내뱉던 플로르의 시선이 틀어졌다.

그곳에 거대한 시험관이 있었다.

그 안에 있는 것은 6개월 정도 돼 보이는 아기.

아기는 귀엽지 않았다. 불에 녹은 피부, 붙어 버린 손가락과 발가락이 징그러웠다.

하지만 플로르는 활짝 웃으며 시험관으로 다가가 유리를 쓸어 만졌다.

“혹시 몰라 보관해 두고 있었는데, 다행이구나. 어쩌면 방패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네 아비가 나를 죽이러 올지 몰라. 그때 나를 지켜 줄 수 있겠느냐?”

당연히 아기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고 플로르의 눈이 탐욕으로 일그러졌다.

그리고 곧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궁금해졌어, 너를 보면 네 아비가 어떻게 생각할까? 고통 속에서 죽지 못하고 사는 널 보면 얼마나 더 미쳐 버릴까? 그 모습을 보고 싶구나. 괜히 유성현을 죽이라 했어.”

* * *

후우우우웅!

성현이 휘두른 창에 수십 마리의 해골 병사들이 박살 났다.

그리고 그 모습에 일행은 눈만 깜빡였다.

자신들은 1마리를 상대하는 것도 어려운데, 성현은 정말 가볍게 쳐부수고 있었다.

특히 꼬마는 더욱 놀란 상태였다.

성현의 권능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강했다.

마력이 없다고 느낀 것은 큰 착각이었다.

인간이 지구가 회전하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꼬마의 능력으로 성현의 마력을 가늠할 수 없었던 것뿐이다.

꽈아아아앙!

성현이 휘두른 주먹에 해골 병사의 두개골이 으스러졌다.

그 순간, 성현을 향해 번쩍이는 빛이 난사됐다.

해골 병사도 이를 악물고 공격하는 거다.

하지만 성현은 가볍게 창을 휘두르는 것으로 놈들의 공격을 빗겨 내며 달려들었다.

‘……저게 인간이라고?’

꼬마는 고개를 저었다.

인간이 아니다.

저런 능력을 가진 생명체는 존재 외에 본 적이 없었다.

있다면…….

‘괴물이잖아.’

꼬마는 성현이 괴물이 되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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