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66화 (166/252)

166화

그 말에 멍하니 있던 계약자들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와, 대박 오글거려. 지금 하는 말 들었어? 한 번에 오래.”

“이 미친 새끼! 죽으려고 작정한 거지.”

“혹시, 뒤에 있는 허접한 존재를 믿는 거야? 저거 마녀보다 못한 마인들이잖아? 우리는 200명이야!”

성현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들의 숫자는 이백.

세계 랭커 유리안 드 레이를 비롯해 각국의 랭커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성현은 고작 열다섯의 존재들과 꼬마 그리고 서은서가 전부였다.

“지나친 자만이고 오만이지. 저놈이 너한테 당한 이유는 방심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우리는 달라. 이제 그런 운은 통하지 않아.”

성현은 박승찬이 말을 하고 있을 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팔을 꺾었고 이어서 다리를 부쉈다.

놈들은 그 일련의 과정을 되짚으며 성현을 우습게 보고 있었다.

끝까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며 성현의 마력이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장비발이네.”

“나모르 죽이고 뭘 얻었나?”

“야, 페이트 길드에서 다 맞춰 줬겠지. 돈 많잖아?”

그들의 낄낄거리는 소리를 듣던 성현이 고개를 저었다.

“방심인지 실력인지, 싸워 보면 알겠지. 그러니까 길게 말하지 말고 와라. 아니면, 이번에도 내가 먼저 공격한다.”

성현이 창을 하늘로 뻗어 올렸다.

다시 먹구름이 몰려왔다.

이어서 꽈르르르릉!

잔혹한 번개가 번쩍이며 땅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계약자 200명이 성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여!”

“개새×!”

이번에는 서은서와 꼬마 그리고 열다섯의 존재들도 놈들이 움직이는 동시에 행동했다.

열다섯의 존재들, 아무리 약해도 존재는 존재다.

보통의 인간보다는 강하다.

존재들의 손에서 검은 마력이 일렁였고 사방으로 쏘아졌다.

파파파파팡!

하지만 이곳에 모인 계약자들 역시 만만치 않다.

날아오는 마력을 모두 쳐 냈다.

꽝! 꽝! 꽝! 꽈아앙!

모래가 자욱이 피어오르며 인간들의 시야를 가렸을 때, 꼬마가 기다렸다는 듯 움직였다.

그동안 성현에게 얻어맞으며, 끊이지 않는 짐승과 싸우며 호흡을 맞춘 전략이다.

꼬마의 작은 체구를 이용한 기습.

꼬마가 자세를 낮게 낮춰 모랫바닥을 스치듯 날아갔다.

이어서 한 계약자의 발목을 단도로 그었다.

“끄아아악!”

“아래! 발을 조심해!”

계약자들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사이 하늘에는 붉은 연기가 하나로 뭉치고 있었다.

거대하게 만들어진 붉은 연기.

서은서가 손가락을 아래로 향하자 그 연기가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강한 자들은 병장기를 휘둘러 막아 냈다.

하지만 권능이 약한 계약자들은 서은서의 마력을 이겨 낼 수 없었다.

그들의 머리가 퍽, 퍽, 퍽 터지기 시작했다.

서은서가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지난번, 성현이 준 알약을 먹은 후 마력이 2~3배 강해진 것은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며칠간 상대한 게 성현이다.

성현은 압도적이었고 거대한 벽처럼 생각됐다.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 수 없었는데, 지금은 알 수 있었다.

‘방금 죽은 박승찬보다는 내가 강한 것 같아.’

엄청난 크기의 마력을 쏟아 냈지만 서은서는 지치지 않았다.

그리고 붉은 안개가 송곳처럼 변했다.

‘가라.’

파파파파팡!

붉은 송곳이 계약자들의 몸을 꿰뚫었다.

눈과 코, 입, 그리고 귓구멍까지, 조금이라도 약한 부분은 어떻게든 파고들었다.

“끄아아아악!”

그리고 지금껏 조용히 있던 성현이 놈들을 향해 걸었다.

동시에 철컥, 철컥, 스르르릉, 성현의 앞에 서 있던 계약자들이 병장기를 뽑아냈다.

계약자들의 눈에 살기가 질질 흘러내렸고 그들의 시선은 성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성현은 그들과 3m의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그리고 천천히 그들의 얼굴을 살폈다.

‘50명.’

성현에게 붙은 놈만 50명이다.

그 하나하나가 약하지 않다.

성현이 슬쩍 웃었다.

‘즐겁네.’

강자들과 싸운다는 게 즐거웠다.

심장이 두근거렸고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꿈틀댔다.

이어서 무의식을 잠식한 마력이 파도처럼 휘몰아쳤다.

머릿속에 남은 단어는 단 하나, ‘살인’이다.

“와라.”

“죽어!”

“개새×야!”

계약자들이 외쳤고 성현을 향해 병장기가 휘둘렸다.

칼과 창, 도끼와 망치 그리고 낫과 철퇴 등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든 병장기가 섬뜩한 광채를 뿌렸다.

하지만 성현은 창을 좌우로 툭툭 쳐 내는 것만으로 놈들의 공격 방향을 비틀었다.

카카카카캉!

병장기가 부딪치는 쇠붙이 소리가 울렸을 때 계약자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야 느낀 거다.

‘가, 강해…….’

성현의 창술에는 어디에도 빈틈이 없었다.

“한 번에 몰아붙여!”

“죽여 버려!”

“저 새끼가 계속 살아 있으면 안 돼!”

계약자들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성현을 지금 당장 죽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없다.

성현은 어리고 성장 가능성은 무한하다.

천재에 대한 질투.

절대자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 복잡한 감정.

이제 그들은 성현을 죽여야 한다는 퀘스트와 그로 인한 보상은 기억하지 않았다.

그저 본능적으로 성현을 향해 달렸다.

“죽으라고!”

하지만.

촤악!

성현의 창에 두 명의 뱃가죽이 갈라졌다.

접근도 하지 못한 채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차, 창이야! 거리를 좁히면 이길 수 있어!”

“품속으로 파고들어라! 그럼 창은 무용지물…….”

작전은 훌륭했다.

창은 거리가 있어야 하는 무기.

초근접전에서는 모든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도 실력이 비슷했을 때의 이야기다.

실력의 차이가 컸다.

서걱! 서걱!

놈들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점차 두려움에 떨며 뒤로 물러섰다.

“물러서지 마!”

“×새끼야!”

어느 누구도 성현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다가가는 순간 팔과 다리, 어깨와 허리가 갈라졌다.

긴 창이 자유자재로, 좌에서 우로 그리고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촤아아악!

피가 모래에 스며들었다.

성현의 움직임은 고요했지만 달려드는 계약자는 발버둥을 쳤다.

“끄아아악!”

“내 팔! 내 파아알!”

그리고 계약자들의 얼굴은 처음과 달랐다. 싹 바뀌었다.

병장기를 치켜세우고 있지만 가늘게 떨리는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과 눈동자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이, 이게…… 유성현?”

성현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200명이면 충분히 잡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모르를 죽이러 갔던 토벌대의 숫자가 수천이었지만 대부분은 용병.

제대로 된 실력자는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죽은 나모르조차 우습게 여겼다.

‘이 정도라는 말은 없었잖아?’

계약자들 사이에서 성현의 실력은 평가절하 되어 있었다.

토벌대의 지휘관이었던 지연우가 올린 보고서에 성현의 활약이 축소되어 있어서다.

순간, 성현의 목소리가 그들에게 들렸다.

“비켜.”

“……!”

“너희에게는 관심 없어.”

놈들은 이미 겁을 집어먹었다.

이런 놈들과 싸워 봤자 그저 학살일 뿐이다.

마법사가 말하는 것처럼 그저 살인을 위한 살인귀가 되는 게 전부다.

성현의 시선은 놈들의 뒤에 가 있었다.

세계 랭커 유리안 드 레이 그리고 각국의 랭커들, 그 숫자가 삼십.

저들 정도는 씹어 먹어야 배가 부를 거다.

성현이 모래를 밟고 저벅저벅 걸었다.

겁에 질린 놈들을 지나 정확히 유리안 드 레이를 향해 갔다.

그때 성현이 스쳐 간, 겁에 질려 떨고 있던 계약자의 눈동자가 스르륵 움직였다.

놈의 눈동자에 성현의 등이 보인다.

지금 공격하면 죽일 수 있다.

놈이 칼을 치켜세웠다.

‘씨× 새끼, 죽어!’

놈은 성현의 관심이 자신에게 끊겼다고 생각한 순간 칼을 휘둘렀다.

그런데 잊고 있는 것이 있었다.

성현은 혼자가 아니었다.

놈의 발목을 붉은 연기가 휘감았다.

이어서 가까이 다가온 꼬마가 놈을 향해 단도를 휘둘렀다.

촤아아악!

놈의 어깨가 쩍 갈라졌다.

그리고 존재 열다섯이 달려들었다.

푹! 푹! 푹!

그들은 단 한 명도 놓치지 않았다.

사지가 차근차근 끊어졌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난도질당한 몸으로 죽어야 했다.

그리고 성현은 세계 랭커 유리안 드 레이 앞에 섰다.

유리안 드 레이, 세계 랭커 98위.

한국 랭킹으로 따지면 2위에서 3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 거다.

놈이 성현을 보며 눈을 부릅뜨고 있다.

그리고 성현이 창에 묻은 피를 툭툭 털며 입을 열었다.

“난 이곳에 온 너희를 단 하나도 살려 보낼 생각이 없고, 너희도 날 죽여야 하잖아? 피차 시간 낭비하지 말자. 와라.”

이들은 플로르의 부하, 그들과 계약한 자들이다.

언젠가 성현과 싸워야 할 자들.

이렇게 와 주니 고맙기만 했다.

그런데 유리안 드 레이가 끌끌끌 웃었다.

이어서 러시아 말로 뭐라 뭐라 말을 한다.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아니, 이해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죽을 놈이다.

“오라고.”

성현이 손을 까딱거리자 놈이 움직였다.

칼을 뽑더니 그대로 휘둘렀다.

성현의 눈에도 미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속도였다.

카가가가강!

성현이 다급히 창을 막은 후 뒤로 물러섰다.

‘균형을 잡아야 하는…….’

성현이 뒷발을 축으로 삼아 몸을 틀려 할 때, 유리안 드 레이의 칼이 좌측을 갈라 들어왔다.

성현은 창을 움직여 막으려 했다.

순간 놈의 칼이 휘리릭 틀어지며 우측을 노린다.

놈의 칼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성현을 공격했다.

쩌어어엉!

성현이 발을 움직여 뒤로 물러섰다.

칼과 창이 부딪친 공간은 그 힘의 여운이 남았는지 아직 일렁이고 있었다.

유리안 드 레이가 성현에게 다가오며 입술을 비틀었다.

성현을 비웃고 있는 거다.

그런데 이번엔 성현이 웃었다.

“고작…… 이거였어?”

말은 통하지 않아도 어감은 느낄 수 있다.

유리안 드 레이는 성현에게 여유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유리안 드 레이가 성현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는 순간이었다.

성현이 손가락을 까딱거렸고 죽어 있던 계약자 그리고 해골 병사 들이 몸을 일으켰다.

-크르르르르.

유리안 드 레이의 눈이 부릅떠졌다.

순간, 몸을 일으킨 수백의 사체가 유리안 드 레이를 향해 달려갔다.

수백 개의 날붙이가 유리안 드 레이에게 휘둘렸다.

카카카카캉!

유리안 드 레이가 공격을 막을 때, 이번엔 성현의 창이 놈의 옆구리를 쑤셔 들어갔다.

유리안 드 레이는 성현 하나만 상대하는 것도 벅찼다.

그런데 수백의 사체라니.

픽! 픽! 픽!

유리안 드 레이의 몸에 상처가 생겼다.

작은 상처가 이어지며 깊은 상처가 만들어졌다.

성현이 창을 꽉 잡았다.

‘죽어라.’

그런데 그때였다.

모래였던 땅은 진흙으로 질퍽이더니 알 수 없는 동물들의 울음소리와 그림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공간을 울리는 습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이 귀한하시니, 모두 무릎을 꿇어라. 명령을 받들지 않는 자의 생명은 앗아 가실 것이니.

그 말과 함께 성현은 느꼈다.

압도적인 마력, 지난번 마주했던 나모르는 지금의 마력에 비하면 귀여울 정도다.

‘카심이 나타나는가?’

이어서 귀를 찢을 것 같은 비명이 공간의 끝에서 들려왔다.

-키에에에에엑!

성현이 숨을 들이마시며 창을 꽉 잡았다.

기억 속에서 봤던 카심은 이상적인 왕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망령, 그것도 억겁의 시간을 죽은 채로 살아왔다.

예전과 다를 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