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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68화 (168/252)

168화

플로르는 왕좌에서 내려와 서성이기 시작했다.

부릅뜬 눈이 초조하다.

‘갑주…… 마법사의 갑주! 그래, 소멸의 바다에 있다고 들었어.’

갑주가 가진 의미는 크다.

등급으로 따질 수 없는 아이템, 말 그대로 신급. 창조주가 직접 만들어 마법사에게 전해 준 것.

성현이 지금 손에 쥔 고대의 유물인 부채는 마법사의 갑주에 비하면 극단적일 정도로 초라하다.

‘어쩌면…….’

플로르는 성현이 마법사가 가진 본래의 힘을 고스란히 이어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하는 순간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마법사의 힘을 얻는 것은 존재의 세상에 재앙이다.

폭주한 그 힘을 막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존재가 갈려 나갈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물론 인간의 몸은 한계가 분명하고 마법사가 가진 본래의 힘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다.

지금까지 성현의 성장 속도만 봐도 플로르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 어떤 생명체도 성현과 같은 성장을 보인 적이 없다.

그래서 불길했다.

어쩌면 마법사의 힘을 고스란히 얻을지 모른다는 예상이 압박해 왔다.

게다가 버림받은 악, 신의 분노라 불리는 지르힐.

그녀의 힘이 돌아오는 중이다.

‘하…….’

플로르가 한숨을 내뱉었다.

플로르의 힘 역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법사와 지르힐, 두 존재가 힘을 합치면 버거울 게 분명하다.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플로르가 신하들을 향했다.

“고개를 들라.”

그 말과 동시에 지금껏 고개를 숙이고 있던 신하들이 천천히 상체를 폈다.

하지만 그들이 허리를 두들기며 휴식을 취할 시간은 없었다.

플로르가 곧바로 말을 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시기가 앞당겨질지도 모르겠구나.”

“……!”

신하들의 눈에 긴장이 서렸다.

‘전쟁?’

성현의 회귀 전에도 존재의 전쟁은 있었다.

플로르를 주축으로 한 존재의 단체 ‘교’ 그리고 그 반대에 서 있는 군주들의 연합군.

그들의 싸움.

목적은 에느가인.

오랜 시간동안 이어진 거짓된 평화가 사라졌고 세상은 상상할 수 없는 많은 피로 채워졌다.

죽고 죽이고.

산 자가 죽은 자를 부러워하는 그런 세상.

그런데, 몇 년은 더 지난 뒤에 일어나야 한다.

회귀 전의 상황만 보면 아직은 전쟁과 무관한 세상이다.

하지만 미래는 바뀌고 있다.

성현의 빠른 성장과 마법사의 호칭.

그 덕에 그 전쟁의 시간이 앞당겨지는 중이다.

그리고 플로르는 언제나 생각했다.

될성부른 떡잎은 빨리 뜯어내야 한다고.

성현이 더 성장하기 전에 짓밟아야 한다고.

“유성현을 죽이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어!”

물론, 인간 하나 죽이려다 존재들의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꽤 복잡하게 꼬인 상황이다.

나모르가 죽으며 주인 없는 영역이 생겨났다.

모든 존재가 그 영역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는 중이다.

이미 유르라헬의 딸인 그리피네가 그곳을 노린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존재는 이기적인 생명체.

남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한다.

누군가 나모르의 영역을 차지해 세력을 불리는 순간 불만이 터져 나올 거다.

쌓인 불만을 오랜 평화에 돌리며 병장기를 들고 일어날 수도 있다.

일촉즉발의 상황.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 째깍째깍 전쟁의 시간을 알려 오고 있다.

그리고 성현을 죽이기 위해 신하를 보내는 순간 그게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왜 귀족급 존재를 왕가의 계곡에 보냈느냐?

귀족급 존재는 영역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잊었느냐?

혹시 왕가의 계곡에서 아이템을 얻어 전투 물자를 준비하는 게 아니냐?

도대체 무슨 꿍꿍이냐!

물론 플로르는 존재들을 향해 변명할 거다.

유성현만 죽일 생각이었다고.

하지만 전쟁은 명분이며, 그 명분은 언제나 하찮게 시작하는 법.

존재들은 피를 원하고 있었다.

억겁을 이어 온 삶에 지쳤고 더 강한 자극과 쾌락을 원했다.

그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는 것은 전쟁이다.

다른 이를 죽여도, 강간과 약탈도 허락되는 범죄의 세상.

생각을 이어 가던 플로르가 입술을 씹었다.

‘에느가인을 얻을 때까지는 전쟁을 피하려 했건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르힐과 마법사가 힘을 얻으면, 그들이 생각할 첫 번째 타깃은 당연히 플로르다.

혼자서 지르힐과 마법사를 상대하는 것보다 전쟁이라는 혼돈 속에서 모두의 힘을 합치는 게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전쟁 속에서 누가 죽든 말든, 세상이 멸망하든 말든 상관없다.

자신만 살아남으면 된다.

에느가인을 얻어 신이 된다면 이곳에 있는 모두를 다시 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플로르가 왕좌로 향하며 입을 열었다.

“물론 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지극히 낮다. 하지만 대비는 해야 한다. ‘교’에게 알려라. 언제든 칼을 들어야 한다고 전해라.”

플로르의 지시에 신하들이 일제히 “네!” 하고 대답했다.

플로르가 신하들의 얼굴을 천천히 살폈다.

그리고 한 여성에게서 시선이 멎었다.

“세트리아니?”

이름을 불린 신하가 앞으로 나왔다.

핏빛의 붉은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미인.

그녀가 플로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의 명령을 받겠습니다.”

플로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렸다.

“유성현의 목을 가져와라.”

“네.”

세트리아니는 거침없이 답했다.

그녀는 귀족, 지금의 성현이 세트리아니를 이길 확률은 제로다.

그렇게 세트리아니가 사라졌다.

플로르는 다시 왕좌에 앉았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연우? 잠시 창고로 오라. 내 너의 얼굴을 보고 싶구나.”

그리고 플로르는 지연우가 창고에 들어왔다는 기척을 느끼며 붉은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그 자리에 앉아 창고에 있는 지연우를 바라보는 중인 거다.

‘넌 내 그릇이 될 거야. 나를 담을 수 있을 만큼 커져야 할 게야. 한데, 아직 모자라. 유성현이라는 놈은 그리 빠르게 성장을 하고 있는데, 넌 대체 뭘 하는 게냐?’

하지만 플로르는 그 생각을 전하지 않았다.

지연우는 짓밟으며 키우는 잡초가 아니다.

섬세하게 물을 뿌리며 성장시켜야 한다.

플로르가 지연우를 보며 입을 열었다.

“계획을 조금 앞당겨야 하겠구나.”

* * *

꽝! 꽝!

그 시각, 카심과 싸우던 성현은 연속되는 주먹을 막아 내며 주춤주춤 물러섰다.

처음에는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는데, 지금은 제법 피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부아아악!

지금도 마찬가지.

카심의 주먹이 성현을 스치며 허공을 휘저었다.

이제는 성현도 느끼고 있었다.

카심의 망령이 성현의 성장을 돕고 있다는 것을.

성현은 지난번, 알약을 먹었고 마력이 몇 배로 성장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마력을 모두 쏟아 내며 극한의 전투를 경험하는 중이다.

그것도 폭주하지 않고 적절히 마력을 제어하면서.

압도적인 마력을 갖고 있는 상대와 이런 전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상대가 성현을 죽이려 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대련을 해 준다는 거다.

게다가 성현의 수준에 맞게 점차 전투의 난이도를 올리기까지 한다.

성현이 뒤로 물러서자 카심이 손바닥을 쫙 폈다.

그 손에서 검은 마력이 일렁이더니 곧 ‘파아아앙!’ 하고 성현을 향해 쏘아졌다.

그런데 성현의 모습이 스르륵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다.

검은 공간의 벽면을 타고 카심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카심의 눈이 반짝였다.

저런 식으로 공격을 피하고 달려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다.

하지만 생각 못 했다는 것이지 두려움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카심이 손바닥을 휘둘렀고 성현은 돌멩이처럼 튕겨 나갔다.

바닥을 구르며 저 멀리 떨어져 나간 성현이 재빨리 일어섰다.

“큽!”

뼈가 으스러진 것 같다.

자칫 갈비뼈가 부서져 내장을 찔렀다면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성현의 앞으로 카심이 저벅저벅 다가왔다.

-생명체,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다.

“…….”

-너도 느끼지 않았나? 우리가 싸울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지금 네 몸이 싸울 상태도 아닌 것 같고.

성현은 시선을 들어 카심을 향했다.

카심의 눈동자는 처음 봤을 때와 완벽히 달랐다.

마력에 잠식당한 마인이 아니다.

지금은 광기 없이 깨끗하다.

-그대는 마법사의 아들인가? 신기하군, 마법사가 또 아들을 갖게 되다니.

성현이 슬쩍 웃었다.

기억 속에서는 잡종 취급을 받았는데, 카심은 아들이라고 하다니.

‘뭐…….’

성현도 카심과 끝까지 주먹 다툼을 할 생각은 없었다.

정말 카심을 죽일 생각이었다면 마법사라도 끄집어냈겠지만 지금은 단지 자신이 가진 마력의 수준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아직은 약하지만, 쓸 만하네.’

평가는 여기까지였다.

이제는 약속을 지킬 시간이다.

성현이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넌 모르겠지만 우리가 약속을 한 적이 있어.”

약속이라는 말에 카심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성현의 말이 이어졌다.

“……약속대로 네 아들 데려왔다.”

카심의 행동이 멎었다.

마법사의 기운을 가진 성현이 아들을 데려왔을 것이란 예상은 했다.

하지만, 막상 그 말을 듣자 멈춰 있던 심장이 뛰기 시작한 거다.

망령으로 살아왔던 그 눈빛에 긴장이 채워졌다.

마른 입술을 핥으며 멍하니 앞을 바라본다.

‘아들…….’

카심은 기억했다.

아들이 태어났다고 전해졌던 연락.

전장에서 받았던 갓난 아들의 초상화.

어서 가서 이름도 지어 주고 안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결국 차가운 사막에서 죽고 말았다.

“가서 만나 봐.”

카심이 성현을 스쳐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3m에 가까웠던 카심의 키가 점차 줄었고 그렇게 1m 90쯤 되었을 때 멈췄다.

성현도 그 뒤를 쫓았다.

그렇게 잠시, 성현과 카심은 계약자들이 무릎을 꿇었고 서은서와 꼬마가 서 있는 그곳에 도착했다.

카심은 꼬마를 보자마자 알아봤다.

금발의 머리.

녹색의 눈빛.

아내와 똑같이 생긴 그 얼굴이 그곳에 서 있어서다.

카심은 꼬마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 어떤 말도 없었다.

그저 카심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카심이 처음 전한 말은 하나였다.

“……아빠가 잘못했다. 아빠가 잘못했어.”

카심은 사과했다.

가족을 놓고 전장에 나간 죄.

국가를 위해 가족을 뒤로한 죄.

적들의 손에 아내가 유린당했고 왕실이 짓밟혔다.

하지만 카심은 그곳에 없었다.

카심은 왕이었고 가장 위험한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카심은 꼬마와 자신의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다.

꼬마는 멍한 눈으로 허공을 보고 있었다.

이미 죽어 망령이 된 아버지.

가슴에는 심장 뛰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아…… 이게 아버지구나.’

그런데 부자지간의 상봉은 계속될 수 없었다.

“미안한데, 언제까지 기다려 줘야 할까?”

갑작스레 도도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성현의 시선이 목소리를 향해 틀어졌다.

그리고 눈에 힘이 들어갔다.

‘세트리아니가?’

플로르에게는 아홉 딸이라는 이름의 호위 부대가 있다.

플로르의 영역에서도 가장 강하다 알려진 존재.

세트리아니는 그 아홉 번째 딸이었다.

그녀가 붉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입을 열었다.

“누구 먼저 잡아먹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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