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 * *
사자의 입안으로 들어오자 성현의 귓가에 시스템 알림음이 들려왔다.
-소멸의 바다에 진입했습니다.
성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여기서부터 소멸의 바다?’
-네, 지금부터 바다의 영역입니다.
시스템 알림음의 친절한 설명이 흘렀지만, 바다 같은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어둠으로 가득한 복도가 이어질 뿐, 심지어 어떤 마력도 위험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성현의 눈빛에 방심은 없었다.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곳이 이계이며 소멸의 바다는 존재들조차 두려워하는 곳이다.
성현은 긴장을 풀지 않은 채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순간, 시스템 알림음이 또 들려왔다.
-퀘스트, ‘왕가의 계곡에서 카심의 망령을 찾으세요’를 클리어 했습니다.
‘아…….’
성현은 손뼉을 짝 쳤다.
분명, 카심을 찾으라는 퀘스트가 있었다.
갑자기 세트리아니가 난입했기 때문에 잊고 있었지만 보상으로 왕의 가면을 준다고 했었다.
‘왕의 가면?’
성현이 손을 뻗자 흰색에 어떤 문양도 없는 가면이 스르륵 나타났다.
이 가면을 쓰면 가족조차도 사용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완벽한 타인으로 여기게 된다.
대중 앞에 섰을 때와 평소의 모습이 완전히 다른 왕의 괴로움이 만들어 낸 아이템.
성현은 이 가면을 회귀 전에 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암살로 유명한 계약자가 즐겨 쓰던 것.
놈은 지연우의 아래에 있었고 이 가면을 쓴 채 각국의 권력자를 죽이고 다녔다.
그런데 그 아이템이 성현의 손에 들어왔다.
성현은 놈들의 전력이 한 단계 낮아진 것에 기뻐하며 물끄러미 가면을 바라봤다.
‘어디에 써야 하나?’
적어도 소멸의 바다에서 쓸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 신분을 숨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면 유용하게 잘 쓰겠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성현은 곧 복도의 끝에 도착했다.
문고리가 보였고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쏴아아,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하얀 백사장이 발에 밟혔다.
‘뭐야…….’
성현은 황당한 듯 웃었다.
소멸의 바다라는 명칭이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소멸한 모든 생명체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거다.
하지만 예측은 틀렸다.
소멸의 바다는 정말 바다였다.
그것도 수평선과 파도 소리가 아름답게 들리는 곳.
그때였다.
성현이 들어왔던 문이 ‘쾅!’ 소리와 함께 닫히더니 곧바로 투명해졌다. 곧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이제 도망칠 길은 없다.
소멸의 바다에 갇힌 거다.
성현이 눈을 가늘게 뜰 때, 마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멸의 바다, 이곳은 소멸된 모든 것들이 있는 곳. 이곳에도 존재가 있고 짐승이 있으며 인간이 있다. 또한 네가 지금껏 보지 못한, 인간들이 말하는 외계 생명체도 존재한다.
“아, 대충 예상하고 있어.”
-놈들은 소멸되지 않은 너를 질투할 테고, 찾아와 네 생명력을 빼앗으려 할 거다. 그런데 이곳에서 너를 위협할 가장 큰 상대는 소멸된 것들이 아니다. 바로 저 바다다.
성현이 마법사의 말을 들으며 바다를 바라봤다.
바다가 위험하다는 마법사의 말이 과언은 아니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은 암담한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지금껏 만난 그 어떤 적도 성현에게 이런 느낌을 준 적이 없었다.
마법사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네가 알고 있는 지구의 바다를 생각하지 마라. 이 바다는 네 상식을 넘어선 크기, 우주와 비슷할 수도 있다. 각각의 섬을 통해 이동해야 하고 어쩌면 영원히 저 바다에 갇힐 수도 있다.
“…….”
-너는 저 바다 어느 곳에 떨어져 있을 내 갑주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갑주가 어디에 있을지 걱정할 것은 없다. 난 지금도 갑주를 느끼고 있고 그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
-그리고 이곳을 탈출할 방법은 하나. 내 갑주를 찾는 것이다.
마법사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쫙 깔려 있었다.
성현을 잔뜩 겁주려 한 거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조금이라도 긴장하지 않으면 곧바로 사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현은 예상외로 평온했다.
바다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간 후 파도와 함께 밀려온 바닷물에 손가락을 찍어 맛을 봤다.
‘짜네.’
이곳 역시 바다는 바다, 똑같이 짰다.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뭐 하는 거지? 죽는 게 두렵지 않나?
성현이 픽 웃었다.
“사는 게 더 무서워.”
성현은 이미 한 번 죽어 봤다.
그래서 삶의 무게를 알고 있다.
자신의 어깨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이 걸려 있는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데, 죽음?
죽으면 끝이다.
그런 고민과 삶의 무게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죽는 게 두렵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어떤 것도 얻지 못할 게 두려울 뿐이었다.
성현이 바닷물을 손에 담으며 마법사를 향해 중얼거렸다.
“10분 안에는 찾을 수 있겠지?”
-뭐?
“10분, 그 안에 찾아야 해.”
바깥세상의 시간을 말한 거다.
그곳의 10분은 이곳에서 600년.
“그 안에 못 찾으면 그냥 나갈 거야. 문이 없으면 때려 부숴서라도 만들면 되는 거고.”
그 말을 끝으로 성현은 부채를 펼쳤다.
부채가 변신할 수 있는 목록 중에 배가 있는지 확인하는 거다.
바다를 건너려면 배가 필요하다.
‘있다.’
다행히 배가 있었다.
비록 뗏목 정도의 작은 크기지만 이곳에서는 그것도 감지덕지.
성현이 부채를 바다 위로 던지자 부채는 훌륭한 뗏목이 되어 바다에 띄워졌다.
성현이 그 위에 올랐다.
아이템으로 만들어진 뗏목이라 노를 젓거나 바람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
동력은 마력이다.
뗏목이 바다를 거스르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람이 성현의 머리카락을 스칠 때,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이 속도면, 갑주가 있는 곳까지 30년 정도 걸릴 것 같다.
“30년?”
듣기에 따라 엄청난 시간이지만 성현은 이번에도 슬쩍 웃었다.
“30초네.”
* * *
쏴아아아.
파도 소리가 들리는 해안가에 뗏목이 멈춰 섰다.
성현이 뗏목을 툭 터치하자 곧 작은 부채로 변했다.
처음 소멸의 바다에 들어온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성현은 늙지 않았다.
다만 길게 자란 수염과 잘 씻지 못해 더러운 몰골은 마치 야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또 다른 점이 있었다.
성현은 강해졌다.
이곳에 들어온 후 매시간이 전투,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밥을 편히 먹은 적도 없었다.
그 시간은 회귀 전, 성현이 쌓아 왔던 전투보다 더 많은 극한의 싸움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갑주가 있다고?”
-정확히 말하면 이 섬의 주인이 가지고 있지.
뭍으로 나온 성현이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은 소멸의 바다 어느 곳에 있는 섬.
바로 앞에는 풀숲이 있고 조금 더 들어가면 넝쿨로 이뤄진 숲이 펼쳐진 것 같았다.
섬의 크기는 아직 예상할 수 없지만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마물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결코 작지 않을 거다.
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쉬고 들어가자.”
성현은 바다에서 물고기 1마리를 잡아 불을 지폈다.
물론 바다에 살기 때문에 성현이 임의로 물고기라 부를 뿐, 그 모습은 녹아 버린 촛농처럼 생겼고 맛은 참 더러웠다.
하지만 이곳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었다.
보통은 죽이면 먼지처럼 흩어지는데, 이 물고기를 비롯해 몇몇의 짐승만이 죽어서도 그 형태를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현은 살기 위해 먹으면서도 이 물고기에게는 조금 미안했다.
어떤 사연이 있을지는 몰라도 물고기 역시 소멸되어 이곳에 온 놈.
그런데 또 죽게 된다면 그다음은 완벽한 무(無).
성현은 언젠가 소멸과 무(無)에 대해 마법사에게 물어봤었다.
그리고 마법사는 친절히 설명했다.
-소멸은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난 영혼의 말살이지만 누군가는 그 이름을 기억한다. 하지만 무(無)는 과거의 존재 가치도 사라진다.
‘그럼 이서아는?’
성현은 마법사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자신을 과거로 돌려보낸 이서아를 떠올렸다.
성현을 과거로 보낸 대가는 이서아의 소멸.
하지만 그게 소멸이 아니라 무(無)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서아의 부모조차 그녀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현은 한숨을 내뱉으면서도 다시 고기를 씹었다.
살기 위해서는 일단 먹어야 한다.
그런데 물고기를 씹던 성현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되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리는 법인데, 이곳의 마물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성현이 천천히 부채를 손에 들었다.
정체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짐승과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풀이 꺾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오직 소름 끼치는 마력만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1마리가 아니라 다수.
곧, 그것들이 정체를 드러냈다.
좀비와 같은 모습, 머리가 없는 놈이 있는가 하면 눈동자가 빠지다 말았는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놈도 있다.
‘인간이군.’
계약자들이다.
저들 역시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소멸당했고 죽었던 그 모습 그대로 이 섬에 오게 됐다.
그리고 놈들은 성현의 생명력을 탐하고 있다.
성현의 피를 마시면 다시 살아날 수 있지는 않을까 염원하는 거다.
‘와라.’
성현은 놈들에게 영원한 휴식을 선물하기로 했다.
그리고 성현의 눈에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소멸의 바다에 약한 놈은 없었다.
최소 하급 존재 이상이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을 잃으면 성현의 목이 땅에 떨어질 거다.
‘철컥’ 금속 소리와 함께 창이 손에 쥐였다.
이어서 성현의 깊은 눈빛이 놈들을 향해 고정됐다.
숫자는 총 아홉.
순간, 계약자 하나가 못이 박힌 해머를 냅다 집어 던졌다.
-카아아악!
성현은 곧장 창을 휘둘러 해머를 막아 냈다.
카앙!
해머가 힘없이 튕겨 나가자 다른 놈들이 기다렸다는 듯 성현에게 일제히 달려들었다.
동시에 성현의 창에 검은 연기가 일렁거렸다.
평범한 공격으로 놈들을 죽이기란 불가능하다.
놈들은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영혼이다.
영혼을 베고 찌르기 위해서는 창 전체에 마력을 집어넣고 휘둘러야 한다.
쉬이이익!
가장 앞서 달려들었던 계약자의 몸이 깔끔하게 절삭되어 두 동강 났다.
피가 촤아아악 퍼지며 백사장을 붉게 물들였다.
“다음.”
성현의 건조한 목소리에 다른 계약자들이 멈칫거렸다.
방금 죽은 놈의 능력은 세계 랭커로 따지면 90위급.
유리안 드 레이와 비슷한 실력이다.
하지만 성현의 앞에서 처참하게 박살 났다.
놈들이 눈을 깜빡였다.
성현의 실력이 예상보다 위라는 것을 이제야 느낀 거다.
하지만 성현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곧바로 죽여야 한다.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잠깐의 머뭇거림으로 성현이 죽을 뻔한 적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성현이 빠르게 다가가며 창을 가로로 그었다.
부아아악!
거친 바람 소리를 내며 휘둘린 창이 놈들의 몸을 난도질했다.
촤악! 촤악! 촤악!
순식간에 5마리의 계약자가 팔과 다리를 잃은 채 허우적거렸고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버둥거렸다.
그렇게 한 마리, 한 마리 모두가 쓰러졌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성현의 시선이 마지막 놈을 향했다.
-카아아악!
놈이 아가리를 벌리며 성난 목소리를 토해 냈다.
하지만 놈은 곧 눈을 껌뻑였다.
놈의 시야에서 성현이 사라진 거다.
놈이 성현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순간.
“여기.”
성현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놈의 정수리를 창으로 내리찍었다.
쩌엉!
창이 땅을 찍는 소리가 났다.
놈은 여전히 눈을 껌뻑거렸다.
성현의 창이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찔러 들어갔지만 놈은 꼬치처럼 꿰인 상태로 쓰러지지 않고 서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성현이 손목을 비틀자 그제야 세로로 갈라져 뇌와 장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투투툭, 놈의 신체 부위가 땅에 쏟아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학살.
성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피가 묻은 창을 들고 바다로 걸어갔다.
성현이 창을 물에 씻는 동안 공격했던 놈들은 먼지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
완벽한 무(無)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들의 가족도 친구도, 이제는 그 누구도 저들을 기억하지 못할 거다.
성현은 씁쓸히 웃으며 창을 툭툭 털어 냈다.
-확실히 강해졌군.
마법사의 말에 성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강해지지 않았다면 그게 이상한 일.
성현은 30년 동안 매일, 매순간을 싸워 왔다.
“됐고. 그 갑주나 찾으러 가자.”
-물고기는 안 먹나?
“입맛 버렸어. 갑주나 찾으러 가자.”
성현이 풀숲을 향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