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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76화 (176/252)

176화

* * *

성현은 마법사가 건넨 여섯 번째 책을 찢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나모르와 싸우는 중이다.

지난번과 다른 것은 지르힐의 권능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

전투에서 마법사의 권능만 사용해서 존재를 이길 수 없다.

적재적소에 지르힐과 마법사의 권능을 사용해야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

쾅! 쾅! 쾅!

성현과 나모르가 싸우는 무의식의 공간이 요란하게 울렸다.

사방에 흩어진 마력이 쉬지 않고 꿈틀댄다.

나모르를 상대로 싸운 것이 이제 1년.

마법사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성현의 싸움을 지켜봤다.

-어쩌면…….

마법사가 중얼거렸다.

그는 인간이 존재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태어난 순간부터 정해진 일이라고 판단했다.

인간은 존재와 계약하지 않으면 마력을 사용할 수 없다.

즉, 처음부터 하위 생명체로 결정지어진 거다.

그런데 그 생각을 조금씩 바꾸는 중이다.

-이길 수는 없어도 버틸 수는 있겠어.

지난 1년간 성현의 실력은 또 한 번 성장했다.

이제는 제법 나모르에게 치명타를 먹이기도 한다.

콰직!

지금도 성현의 팔꿈치가 나모르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확실히 빨라…….

처음 마법사는 성현이 나모르에게 아홉 번의 정타를 먹이는 것을 목표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모르를 상대로 1시간 이상 버티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그 시간 동안 성현은 수차례 나모르를 궁지에 몰기도 했다.

비록 인간의 신체와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의 한계 때문에 패배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성장은 놀라운 일이었다.

-노력이라…….

성현은 천재가 아니다.

이를 악물고 독하게 버텨 낼 뿐이다.

맞고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매일같이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그것을 정의 내릴 수 있는 단어는 단 하나, 노력.

마법사는 긴 시간 동안 각 종족에서의 많은 천재를 지켜봤다.

천재들은 죽음 앞에서 물러섰고 두려움을 느꼈으며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그들은 그 뛰어난 실력과 두뇌 때문에 스스로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고 그 한계를 돌파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현은 달랐다.

한계를 마주했지만 그 한계를 향해 주먹을 뻗는다.

나모르를 상대로 버티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이기기 위해 마력을 쏘아 댔다.

-그래서 안타까워.

마법사는 혀를 쯧 찾다.

세상에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 되는 일이 있다.

극복하고자 노력해도 넘어설 수 없는 것이 존재했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영생을 누릴 수 없고 하늘을 날고자 하지만 비행기에 의존한다.

존재와의 싸움 역시 마찬가지.

최상위 존재란 인간에게 자연과 같은 것.

지진 앞에서 인간의 문명은 처참하게 박살 나고 해일 앞에서 찬란한 삶이 잠겨 버린다.

성현 역시 나모르나 세트리아니를 넘어선 최상위 존재를 만나면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을 느낄 거다.

-그래서, 갑주가 필요한 게야.

마법사의 눈이 시퍼렇게 빛났다.

그렇게 또 1년이 지났다.

그 시간을 바깥세상과 비교하면 고작 2초.

그동안 성현은 잠을 잘 때를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나모르와 싸웠다.

싸우다 죽고 또 죽고 또 죽었다.

그리고 싸움이 끝나면 자신의 전투를 되짚었다.

왜 거기서 주먹을 뻗었을까? 그 자리에서 주먹이 아니라 발을 썼다면? 아니, 창으로 옆구리를 노렸다면?

성현은 지금도 발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3년. 성현은 지금도 나모르와 싸우며 엉망으로 얻어맞는 중이다.

쾅! 쾅! 쾅! 콰직!

코뼈가 함몰되었고 팔이 기형적으로 꺾여 있다.

그저 봤을 때는 움직이는 것도 신기했지만 마법사는 눈을 부릅뜬 채 성현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중이다.

-치명타는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내고 있어.

성현은 거기서 머물지 않았다.

빙글 몸을 돌려 나모르의 복부에 전기를 쏘기까지 한다.

파지지지직!

-큽!

나모르가 비틀비틀 물러섰다.

성현은 망설이지 않고 나모르를 향해 뛰어 들어갔다.

‘단도!’

손에 들린 부채가 단도로 변했다.

쉭! 쉭! 쉭!

나모르는 피하려 했지만 몸에 새겨지는 작은 상처는 어쩔 수 없다.

성현이 나모르의 몸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서는 갑자기 멈춰 섰다.

동시에 손바닥을 펼쳐 마법사의 권능을 사용했다.

피를 얼어붙게 하는 것.

작은 혈액으로 나모르급의 존재에게 치명타를 줄 수는 없지만 행동이 느려지게 만들 수는 있다.

나모르가 움찔거리는 순간 성현은 단도를 창으로 바꿨다.

이어서 나모르의 급소를 향해 창을 파파파팍, 쑤셔 넣었다.

-끄어어어!

나모르의 비명.

성현이 빠르게 다리를 움직여 나모르의 품으로 파고들더니 창이 만들어 낸 상처에 손가락을 쑤셨다.

이제 번개를 끌어모아 나모르의 신체에 집어넣으면.

‘이길 수 있…….’

순간 나모르의 신체가 재생했다.

신체를 파고들었던 성현의 손가락이 썩둑 잘린다.

“끕!”

성현이 인상을 구길 때, 나모르가 주먹을 휘둘렀다.

꽈앙!

성현의 머리가 날아갔다.

* * *

성현은 뗏목에 누워 있었다.

‘아, 또 졌네. 이번에는 이길 줄 알았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됐어.”

성현은 숨을 고르며 상체를 일으켰다.

아무리 다치지 않는 무의식의 공간에서 싸운다 해도 정신적 피로감은 느낄 수밖에 없다.

“다시 불러내, 이번에는 이겨 보게.”

-나모르와 더 싸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성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넌 나모르를 이길 수 없다.

성현이 막대한 양의 마력을 몸에 심고 있다 해도 뽑아낼 수 있는 한계가 명확하다.

경차에 스포츠카의 엔진을 심었다 해서 고속으로 이동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네 공격에 당했다 해도 나모르는 계속 재생될 거다. 네가 통제할 수 있는 마력의 한계이며 그 정도로 치명타는 줄 수 없다는 거지.

“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야.”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야 아나?

성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나모르와 싸운 지 3년, 그동안 마법사가 가진 많은 권능을 익혔고 자유롭게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럴수록 마법사의 목소리가 명확해진다.

이전에는 쇠 긁는 소리였다면 지금은 보통의 사람과 다르지 않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예상은 됐다.

존재란 그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놈들.

성현이 마법사의 권능을 사용하며 놈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조금이지만 알리기 시작했고 망령이 실체화되는 중인 거다.

그리고 그 실체화가 완벽해지는 순간 마법사는 본격적으로 성현의 몸을 탐할 거다.

하지만 성현은 그 의도를 알면서도 모른 척 넘어갔다.

지금은 마법사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벼랑 끝을 오가는 것이라 생각해서다.

“됐고…….”

-더 이상의 대련은 의미가 없다. 이제 갑주를 찾으러 갈 시간이다.

성현은 마법사의 확정적인 말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갑주를 찾으러 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3년, 바깥세상의 3초.

하지만 바깥세상의 서은서와 꼬마는 이계에 있다.

3초는 극단적으로 짧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기엔 충분히 긴 시간이다.

성현이 몸을 일으키며 마력을 손에 담았고, 뗏목은 다시 마물이 사는 섬으로 이동했다.

그사이 마법사가 계속 입을 열었다.

-갑주를 얻으면, 어쩌면 나모르 정도는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갑주는 인간이라는 종족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게 만들 거다. 넌 충분히 강해졌고…….

* * *

성현의 무의식 속.

마법사는 묘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마법사의 앞에 금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지르힐이 섰다.

지르힐을 보자 마법사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더 진해졌다.

하지만 눈빛은 살벌하다.

“무슨 꿍꿍이지?”

지르힐이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마법사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꿍꿍이라니?”

“갑주…… 도대체 뭐가 있는 거지?”

“봤잖나? 네 계약자가 강해질 뿐이야.”

지르힐은 믿지 않았다.

마법사는 망령.

그것도 생명체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찬 악령이다.

그 악령은 성현을 돕고 있지만 의도는 분명하다.

세상의 멸망, 그런데 그 멸망에는 성현과 그 지인, 가족도 포함되어 있다.

마법사가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입을 열었다.

“유성현이 내 권능을 쓸수록 내가 강해진다, 난 그게 좋다, 그뿐이야.”

지르힐이 마법사의 코앞에 섰다.

그리고 낮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나 묻지. 갑주가 의식을 빼앗을 수도 있나? 솔직히 대답하라, 그러지 않으면, 난 지금 당장 너를 지워 버릴 거야.”

마법사가 껄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난 망령이지만, 넌 갇혀 있지. 너 역시 제대로 된 권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데?”

“널 지우기에는 충분해.”

“그래, 솔직히 말하지, 갑주를 입으면 난 더 실체화될 거야. 그리고 유성현이 갑주의 힘에 의존하면 할수록 이 무의식의 공간은 내 것이 되겠지.”

마법사가 드넓은 공간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유성현의 의식을 내가 차지할 수도 있어. 그건 사실이야.”

“…….”

“그런데, 바꿔 생각하라. 유성현이 내 힘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난 이 영역을 차지할 수 없어.”

어쨌든, 성현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지르힐은 그 사실에 집중하며 손을 펼쳤다.

“상관없고.”

그녀의 손에 날카로운 창이 쥐였다.

하지만 마법사는 그녀의 행동에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모르는가? 여기서 너와 내가 싸우면 유성현은 식물인간이 될지도 몰라.”

“……!”

“그리고 유성현은 내 의도를 알고 있어. 알면서도 내 지시를 따르고 있어! 이유는 너도 알고 있잖아? 이놈은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악마에게도 영혼을 팔 놈이야.”

“…….”

“그러니까 유성현을 지키고 싶으면 네 알량한 권능이나 어서 넘겨. 내 힘에 의존하지 않고 존재를 이길 수 있도록 만들어 봐!”

마법사의 눈이 시퍼렇게 빛났다.

지르힐이 입술을 씹을 때, 마법사가 그녀의 옆을 스치며 말을 이었다.

“나도 궁금한 게 있다. 물어봐도 되나?”

“아니. 묻지 마.”

지르힐은 거절했지만 마법사는 피식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왜 인간 따위에게 감정을 느끼는 거지? 너에게 생명체는 그저 관리해야 할 대상 아니었나?”

* * *

성현은 뭍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3년 전 계약자 마물과 싸웠던 해변을 둘러봤다.

바뀐 것은 없다.

풀이 있고 그 앞에 숲이 있다.

성현은 부채를 창으로 만든 후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갔다.

성현의 생각은 하나다.

섬의 주인이든 뭐든, 나타나면 싸워 죽인다.

그리고 숲으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성현은 마물과 마주했다.

이런저런 대화는 없었다.

그저 유령처럼 변한 놈들이 일제히 달려들 뿐이다.

성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느려.’

이놈들의 수준은 3년 전 만났던 계약자 마물과 비슷했다.

하지만 성현은 3년 동안 발전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성현은 그 힘을 시험해 보고 싶었고 창을 툭 땅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가장 먼저 다가온 마물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앙!

성현의 주먹질 한 방에 마물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졌다.

비산했던 뇌수와 핏물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 한 번의 행동, 핏물을 뒤집어쓴 성현을 본 마물들은 공포를 느꼈다.

성현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약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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