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 * *
며칠 후.
성현과 서은서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언론에서는 연이어 서은서를 칭송하는 중이다.
-각국의 랭커들이 페이트 길드와 계약을 위해 내한하는 중입니다. 이들은 이계에서 서은서 본부장을 만났고…….
그들은 이계에서 만났던 자들이다.
독이 든 빵을 두려워했기에 페이트 길드와 계약한 것이지만 언론이 그것까지 알기는 어려웠다.
-페이트 길드는 단숨에 세계적인 길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 덕에 서은서의 페이트 길드 내에서 위상은 훨씬 높아졌다.
그녀의 오빠 서준식이 갖고 있던 본부장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어 냈을 정도.
서은서의 페이트 길드 장악 계획은 착착 이어지는 중이다.
그리고 새롭게 이름을 얻은 꼬마, 그는 왕가의 계곡을 거점으로 삼고 그곳에서 왕실을 일으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물론 그의 아버지 카심은 아들이 행복하기를 살았으면 했지만, 억겁의 시간 동안 꼬마가 이어 온 야심은 아버지의 유언만으로 포기하기 어려웠다.
꼬마는 아버지 시대의 영광을 다시 이룩하고 카심의 왕국이 있었음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한다.
물론 혼자 하는 것은 아니다. 약탈을 업으로 삼았던 열다섯의 최하급 존재는 꼬마와 함께하기로 했다.
비록 큰 전력을 될 수 없지만 혼자 아등바등하는 것보다는 훨씬 유리할 거다.
* * *
성현은 집에 있었다.
이계에서 있었던 시간, 서은서와 꼬마에게는 며칠이었지만 성현은 수십 년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전투를 하지 않을 뿐, 가만히 있던 것은 아니다.
어머니와 식사하고 영화도 봤다.
백화점에 가서 비싼 옷도 사 드리려 했지만 어머니는 한사코 손을 저었다.
똑같은 옷인데 수백만 원이나 주며 입을 필요가 없다고 하시며.
그렇게 며칠.
성현은 오늘도 아침 일찍 눈을 떴다.
그런데, 오늘 성현의 눈빛은 지난 며칠과 달랐다.
‘해야지.’
지금껏 미루고 있었으며 망설이고 있던 것.
‘확인해야지.’
샤워를 하고 나온 성현은 옷을 입고 책상에 놓인 차 키를 손에 들었다.
서은서가 사용하라고 준 자동차.
처음 서은서가 가져왔던 자동차는 새빨간 스포츠카였다.
자신의 취향대로 가져온 거다.
서은서는 뚜껑을 열고 다니면 기분이 좋아질 거라며 키를 내밀었지만 성현은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한다.
절대 탈 수 없다며 거부했고 서은서는 입술을 삐죽이며 몸을 틀었다.
그다음 가져온 게 최고급 세단이었다.
물론 이것 역시 흔한 자동차는 아니다.
이걸 타도 눈길을 받겠지만 다음에 어떤 자동차를 들고나올지 모르니 적당히 타협해야 했다.
“다녀올게요.”
“어디 가?”
어머니가 서둘러 현관으로 나왔다.
성현이 계약자가 된 후로 어머니는 매일 걱정이다.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서다.
성현이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길드에 가는 것 아니고요. 약속이 있어서요.”
“약속?”
“네, 늦어질 수도 있으니까 먼저 주무세요.”
“약속 맞지?”
“네.”
성현은 몇 번이나 어머니를 안심시킨 후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그리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올랐다.
목적지는 이유미의 집.
이유미는 구악의 동료였던 자이며 유산했던 아기를 살려 보겠다고 함께 소멸의 바다로 가기를 원했던 사람.
그녀의 집은 양평의 작은 단독주택이었다.
성현은 그녀의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주차한 후 그 집의 마당을 살폈다.
‘소멸의 바다에서 네 아기를 찾았어.’
관리자로 활동한 이서아의 도움으로 이유미의 아기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기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은 마법사의 힘이었다.
성현은 이유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언제나 우울했던 그녀.
피를 뒤집어쓰고 미친 사람처럼 깔깔깔 웃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녀가 정상적으로 맑게 웃을 수 있다면, 생각했던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하지만 초인종을 누르고 집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성현의 미래가 뻔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지옥 같은 삶을 살 게 분명하다.
앞으로 행복해져야 할 구악의 동료가 성현의 운명에 휩쓸려 그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것은 싫었다.
그리고 이곳까지 온 이유는 또 하나가 있었다.
소멸의 바다에서 밖으로 끄집어낸 아기가 정말 돌아오게 됐는지 궁금해서다.
성현의 머릿속에 당시 마법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확률은 반반이다. 돌아갈 수도 있고 영원히 망각되어 사라질 수도 있다.
어쩌면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말.
성현은 제발 그 아기가 돌아왔기를 바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그때, 이유미의 집 앞으로 SUV 차량이 멈춰 섰다.
‘어?’
이유미인가 했는데, 내린 것은 추영민.
추영민 역시 구악의 동료.
회귀 후, 군에서 휴가를 나와 들렀던 강화도 던전.
성현은 그곳에서 이유미와 추영민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두 사람이 같이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집까지 드나들 사이는 아니었다.
‘추영민이 여기를 왜?’
성현은 잠시 회귀 전을 떠올렸다.
이유미와 추영민, 두 사람은 구악의 동료였고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다.
하지만 각자의 이유로 서로를 멀리했다.
추영민에게는 짐승에게 잡아먹히며 사망한 아내, 이유미는 유산한 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삶에서만큼은 두 사람이 잘되기를 바랐는데, 같이 있다니.
성현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뱄다.
그리고 계속해서 추영민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추영민이 조수석으로 이동하더니 매너 있게 문을 연다. 그곳에서 이유미가 내리고 있다.
성현은 마력을 이용해 청각을 극대화했다.
이유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신 게 먹고 싶네.”
“뭐? 말해. 다 사 줄게.”
“글쎄…… 딸기?”
추영민이 가슴을 탕탕! 두들기며 자신 있게 말했다.
“내가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딸기를 가져올게. 하하하!”
이유미의 손에는 산부인과에서 찍은 아기집 사진이 들려 있었다.
임신을 한 거다.
멀리서 들었을 때,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아기를 가질 수 없었다.
그런데 덜컥 임신을 한 것은 소멸의 바다에서 건너온 그 아기일 게 분명하다.
물론 유전자적인 문제는 없을 거다.
새로이 몸을 구성하며 지금의 상황에 맞게 되었을 테니까.
성현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빙긋이 미소를 그렸다.
‘행복해라, 두 사람 모두.’
성현은 두 사람이 계속해서 행복하기를 바라며 차량의 시동을 걸고 핸들을 틀었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병원이었다.
고등학교 친구 한아성의 동생이 입원한 곳.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에서 내린 성현은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한아성의 동생이 입원한 병실에 섰다.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언론에서 몇 년간 의식이 없던 식물인간이 깨어났다고 대서특필해서다.
성현은 병실 내부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마력을 이용해 확인했다.
문이 닫혀 있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예상하기로 침대에 앉아 있는 사람은 하나.
아마 한아성의 동생일 거다.
성현이 병실의 문고리를 돌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소멸의 바다에서 봤던 한아성의 동생이 눈을 깜빡이며 성현을 바라본다.
“……누구세요?”
한아성의 동생은 성현을 기억하지 못한다.
정말 처음 보는 시선으로 성현을 경계하고 있다.
성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들고 온 음료를 테이블에 올렸다.
“기억 못할 거야. 어릴 때 봤으니까.”
“……네?”
한아성의 동생은 성현을 더 경계했다.
또래처럼 보이는데, 어릴 때 봤다니.
그래서 기억을 못할 거라니.
이런 미친놈이 있나 하는 표정이다.
“건강하면 됐어. 그거 확인하러 온 거니까.”
성현은 그 말을 남긴 채 몸을 틀었다.
한아성의 동생은 끝까지 성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이거…….’
문을 닫고 복도로 나온 성현의 표정이 씁쓸하게 변했다.
한아성의 동생이 건강한 것은 다행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문제는 기억.
‘이서아도…….’
이서아도 성현을 기억 못할 가능성이 높다.
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기억 못해도 돼. 돌아와 있기만 해라.’
소멸의 바다에서 관리자로 활동했던 이서아.
마지막에 인간으로 돌아왔지만 그녀를 바깥세상으로 빼내기 위해 엄청난 마력이 필요했다.
문제는 그 마력을 쓰고도 마법사가 확신을 갖지 못했다는 거다.
그때 마법사는 더 절망적인 이야기를 전했었다.
-확률은 10%. 이곳의 관리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바깥세상에서 그녀의 존재가 없기 때문에 빼내는 데 장애가 많다. 그게 이곳의 룰인 것 같다.
게다가 회귀 후 이서아의 존재는 성현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조차 이서아라는 딸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
이서아는 성현보다 더 먼 과거로 회귀했고 창조주의 뜻에 따라 관리자로 활동했다.
즉, 그녀는 태어나지 못했다는 것.
그런데 뜬금없이 다 큰 딸이 돌아온다?
성현은 한숨을 내뱉었다.
‘제발…… 돌아와 있기만 해라.’
이서아를 마지막에 확인하는 것도 그 이유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오른 성현의 표정은 심각할 정도로 굳어 있었다.
하지만 망설이지 않고 액셀을 꾹 밟았다.
-인간이 품고 있다는 연애 감정인가?
운전하는데 지르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은 아니야.’
-그럼 뭐지? 그렇게까지 찾으려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지르힐은 성현의 회귀 사실을 모르지만 성현이 이서아를 찾으려 한다는 그 자체는 알고 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성현은 속 시원하게 답해 주지 않았다.
‘글쎄…….’
모호하게 답하며 계속해서 운전에 집중할 뿐이다.
잠시 후, 성현은 한 주택가 앞에 도착했다.
오래된 자전거 가게.
한 중년의 남성이 자전거의 타이어 튜브를 교체하고 있다.
저분이 이서아의 아버지다.
성현은 잠시 멈춰 서서 그를 바라봤다.
날이 더워 그런지 등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던 이서아의 아버지가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틀었다.
“필요한 것 있으세요?”
“자전거 좀 보려고요.”
“편히 보세요.”
이서아의 아버지는 사람 좋게 웃어 보였고 성현은 자전거 앞에 섰다.
그리고 자전거를 보는 척, 가게 내부를 살폈다.
이서아가 돌아왔다면 어떤 흔적이라도 있을 게 분명하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없어.’
어떤 흔적도 없다.
‘돌아오지 못한 것인가?’
성현은 고개를 숙였다.
‘하…….’
잠시 한숨을 내뱉던 성현이 마법사에게 말을 걸었다.
‘마법사, 애초에 이서아는 태어나지 못했던 사람이잖아?’
-그렇지.
‘세상에 돌아왔어도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여길 수도 있겠네?’
다시 말하지만 이서아는 태초의 시대로 회귀했다.
그녀는 태어나지 못했고 이곳에 돌아와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부모를 마주했을 수 있다.
-그럴 가능성도 있다.
‘그럼, 어딘가에서 해매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다.
성현이 시선을 틀었다.
그 시선이 향한 곳은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있는 곳.
저 꼭대기에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면, 그리고 마력으로 모든 곳을 살피면, 이서아를 찾을 수도 있다.
물론 이곳으로 나오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일단 이곳에서 그녀를 찾아보는 게 우선이다.
기억을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제발 있어라…….’
성현이 몸을 돌렸다.
이서아가 없다는 것을 안 이상 이곳에 머물 시간이 아까웠다.
그런데 그 순간 성현의 몸이 굳은 것처럼 멎었다.
이서아가 있었다.
교복을 입은 채 빨간 가방을 메고 자신의 아버지와 대화하고 있다.
“공부 열심히 했어?”
“네. 오늘 모의고사 봤는데요. 1등급이에요.”
“그래?”
성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서아가 돌아오며 부모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기억이 뒤바뀐 것 같다.
이것 역시 창조주의 힘인지, 세상의 룰인지는 모르겠지만.
“서…….”
성현은 이서아를 부르려다 말았다.
기억을 못하는 게 더 잘된 일이다.
평범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
성현의 머릿속에서 지르힐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는 정말 미련하다. 왜 혼자 모든 것을 끌어안으려 하느냐? 남들의 행복을 위해 그대가 힘들면 된다는 것인가?
‘돌아온 걸 봤으면 됐어.’
성현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터벅터벅 걸었다.
‘그동안 고생했다. 너도 행복해라. 내가 너희의 행복을 지켜 줄게.’
성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유미와 추영민 그리고 이서아.
회귀 전 성현을 지키기 위해 죽었던 자들.
이번에는 성현이 그들을 지킬 생각이다.
그런데 쿡쿡, 누군가 어깨를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성현이 고개를 틀었다.
이서아가 눈을 깜빡이고 있다.
설마, 알아봤나 싶었는데.
“이거 떨어뜨렸어요.”
이서아가 성현의 차 키를 흔들었다.
방금 이서아를 보고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떨어뜨린 것.
당황한 것도 잠시, 성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 말했다.
“고맙습니다.”
성현은 차 키를 건네받은 후 다시 몸을 돌렸다.
기적은 없었다. 그녀는 성현을 알아보지 못했고 성현은 이대로 그녀의 행복을 빌 뿐이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이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