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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97화 (197/252)

197화

“뭐?”

“됐고. 찢는다.”

성현에게 자비는 없었다.

지연우의 귀를 잡은 손에 힘을 주는 순간 찌이이익, 잔인한 소리가 울렸다.

“끄아아아악!”

회귀 전부터 정말 간절히 듣고 싶었던 게 지연우의 비명 소리다.

하지만 성현은 지연우의 귀를 끝까지 찢지 않았다.

너덜너덜해지는 것으로 멈추며 귀를 잡지 않은 다른 손의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성현은 지연우의 상처 입은 귀를 타깃으로 잡았다.

꽈앙! 꽈앙! 꽈앙!

성현은 다른 곳은 상관하지 않고 놈의 너덜거리는 귀만 때렸다.

귀에서 흐른 피가 철철 흘렀지만 성현은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성현의 주먹이 지연우의 피로 물들었고 지연우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 댔다.

그리고 그곳에 모인 수천 명의 계약자, 그들은 임무를 잊은 채 성현과 지연우의 충격적인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연우가?”

“지금 당하는 것 맞지?”

“아무리 기습을 당했다고 해도 저건 너무 하잖아?”

“그런데…… 저놈 뭐야?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데, 어떻게?”

지연우는 대한민국 최강자 중 하나, 랭킹은 20위에서 30위권을 오가지만 실제 전투 능력을 따지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게 분명하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지연우는 그동안 갖가지 S급 짐승을 잡았고 불가능할 것이라 일컬어지던 던전을 클리어한 사람, 일방적인 폭행을 당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스피드.

파괴적인 힘과 기세.

어떤 것을 봐도 성현이 한 수 위다.

콰직! 콰직! 콰직!

성현의 주먹이 지연우의 복부에 꽂히며 갈빗대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지연우는 서 있던 언덕에서 밀려나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지연우는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얼굴은 피투성이였고 데굴데굴 구르며 땅바닥의 흙이 진흙처럼 얼굴에 묻었다.

찢어진 귀는 여전히 덜렁거리고 있다.

언제나 깔끔하고 여유 넘치던 모습은 지연우의 얼굴에 없다.

초조한 눈동자와 함께 초라해 보일 뿐이다.

하지만 지연우는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아프지 않았다.

언덕 높은 곳에서 밑바닥으로 떨어진 게 불쾌할 뿐이다.

그 이유는 바로 지켜보는 계약자들.

수천 명이 모인 곳이지만 적막했다.

그만큼 지연우가 일방적으로 당한 것은 그들에게 지금도 충격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지연우는 그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며 입술을 씹어야 했다.

그리고 이어진 성현의 도발.

성현이 언덕에서 지연우를 내려다보며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역시, 넌 밑바닥이 어울려.”

그 말과 동시에 지연우의 몸에서 미친 것 같은 살기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너…… 반드시 죽여야겠다.”

“할 수 있으면 해 보라니까.”

지연우는 지금당장 성현의 입을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계획대로 간다. 계획대로……. 아직은 아니야. 약효가 오르기 전이야.’

성현이 이곳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지연우는 한지혁에게 연락을 받았다.

-한아성이 내민 음료를 성현이 받아 마셨습니다. 30분 정도면 약효가 돌기 시작할 겁니다.

그 음료에는 마약이 섞여 있었다.

약효는 마력의 제한, 성현의 능력은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지연우는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 갔다.

‘저 움직임이라면…….’

성현이 지연우의 귀를 찢고 일방적으로 폭행을 이어 가던 몸짓.

물론 대단했다. 그리고 지연우는 인정했다.

‘내 힘으로 이길 수 없어.’

성현의 공격은 눈으로 좇기도 어려운 스피드를 지녔고 파괴력은 의식의 한계를 맛볼 정도였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약효가 돌면 성현의 모든 스텟은 떨어질 거다.

절반의 속도, 절반의 힘이라면 지연우는 성현을 충분히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싸움은 강한 자가 이기는 게 아니야.’

지연우가 잔인하게 웃으며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계약자들을 향해 외쳤다.

“뭐 하는 거야! 저놈은 괴물이야! 죽여!”

“……!”

“저놈을 죽여야 우리 세계에 평화를 유지할 수 있어! 지금 봤잖아? 저 어린놈이 저 정도의 마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 저건 저놈의 존재가 전쟁을 위해 마력을 안배한 거야!”

“……!”

“가족을 생각하며 싸워!”

지금껏 멍하니 있던 계약자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이곳에 온 목적을 되새겼다.

성현을 죽이는 것, 그것을 위해 이곳에 온 거다.

“죽여!”

“저 개×끼!”

그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현은 여전히 언덕에 서 있었다.

미동도 없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들을 지켜보는 중이다.

그들을 보던 성현의 입가에 빙긋이 미소가 그려졌다.

‘지연우…… 내가 살려 줬다는 것을 모르네.’

성현은 조금 전의 공격에서 지연우를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살려 줬다. 일부러 놈을 밀치며 바닥으로 굴린 거다.

지연우는 선(善)의 이미지.

지금 당장 놈을 죽이면 성현은 악(惡)으로 기억된다.

어쩌면 회귀 전처럼 도망치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그 꼴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한 번 당했는데, 또 당할 수는 없잖아?’

놈을 죽이는 것은 놈의 악행이 세상에 알려질 때, 세상 모든 사람이 그 진실을 알게 될 때가 될 거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다가오는 불나방을 태워 죽인 후, 오즈와 싸운 후, 지연우가 성현을 이겼다고 착각했을 때, 그때가 타이밍이다.

성현이 부채를 펼쳤다. 부채는 순식간에 창으로 변했고 창에서는 스파크가 파직거렸다.

성현의 시선은 다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계약자들에게 옮겨졌다.

두두두두두! 수많은 사람들이 땅을 짓밟으며 일으킨 흙먼지가 보였다.

그들의 몸은 모두 검은 연기에 휘감겨 있다. 성현을 죽이기 위해 모든 마력을 끌어 올린 거다.

성현은 그들의 살기로 가득한 표정을 바라보며 마법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넌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다. 숱하게 많은 타인의 피를 뒤집어쓴 괴물이 평온한 세상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느냐? 본능을 숨긴 맹수의 마지막은 결국 피를 보는 것이야!”

성현은 평소 마법사의 말을 부정했다.

전쟁이 없는, 존재가 없는, 짐승이 없는 세상이라면 몸에 밴 피를 씻고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답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수천 명의 계약자를 앞에 두고 성현은 본능대로 행동할 것을 다짐했다.

성현의 몸에는 지르힐과 마법사의 마력이 뒤섞여 있다. 게다가 갖가지 마녀의 마력도 존재한다.

그 마력은 살아 있는 것처럼 서로의 존재감을 알리려 한다. 그것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살육.

혈관을 타고 꿈틀대는 그것이 본능이다.

‘전부 죽여 주마.’

저들은 플로르와 연관된 존재, 그들과 계약한 자들.

살려 두면 전쟁의 시간에 플로르의 옆에 붙어 설 거다.

본격적으로 존재의 순수한 마력을 얻으면 지금보다 더 껄끄러운 상대가 될 게 분명하다.

그 전에 죽인다.

될성부른 떡잎은 사전에 짓밟는 게 예의다.

성현이 창끝을 위로 세웠다.

그러자 하늘이 먹구름으로 가려지며 곧 천둥이 울렸고 하늘이 번쩍이며 세상이 어두워졌다가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지르힐의 권능.

수십 개의 번개가 낙하했다.

꽈르르르릉!

“끄아아아악!”

번개에 맞아 살이 타는 냄새가 역겹게 퍼졌다.

한순간에 시커멓게 변해 버린 계약자가 땅에 쓰러진다.

“사, 살려 줘! 살려 줘!”

“저 새끼는 정말 괴물이야!”

하지만 살아남은 계약자들은 멈추지 않았다.

꾸역꾸역 성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성현의 몸 역시 검은 마력으로 휘감겼다.

곧 순간 이동을 하는 것처럼 사라졌다.

고속으로 이동하는 것이지만 계약자들은 그렇게 느꼈다.

“어, 없어졌어.”

동시에 푹, 잔혹한 소리가 들려왔다.

계약자의 등을 찌르고 들어간 성현의 손이 배를 뚫고 튀어나온 거다.

‘컥!’ 하는 소리조차 없었다.

폐를 찢긴 계약자는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고통을 느껴야 했다.

이어서 성현의 창이 휘둘렸다.

달려들던 계약자들의 머리가 몸과 분리되며 하늘로 치솟았다.

“달라붙어! 창을 갖고 있잖아!”

놈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놈의 지시에 검과 단도를 쓰는 자들이 성현에게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성현은 웃고 있었다.

‘가까이 붙으면, 뭐?’

성현은 창술만 능숙한 게 아니다. 근접전에서 이뤄지는 주먹다짐도 잔인하게 해낼 수 있다.

아니, 살육은 근접전이 가장 즐거운 거다.

피를 머금을 수 있으니까.

“컥!”

“억!”

“아아악!”

성현은 다가오는 모든 자들의 몸에 손을 쑤셔 넣으며 잡히는 대로 뽑았다.

계약자들의 팔과 다리가 찢겼고 간과 쓸개, 심장, 심지어 대장과 소장, 부러진 갈비뼈가 하늘로 치솟았다.

성현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눈으로 손가락을 넣고 눈동자를 파 버렸으며 창을 단도로 바꿔 입을 찢어 버렸다.

이어지는 비명과 절규, 장악하는 공포.

비처럼 피와 뇌수 그리고 각 장기가 떨어져 내렸다.

정말 찰나의 시간.

성현을 향해 달려들었던 계약자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찢겨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성현뿐이다.

성현이 손에 들고 있던 어느 계약자의 심장을 땅에 툭 버리며 입을 열었다.

“다음.”

성현의 건조한 목소리에 계약자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숫자는 그들이 성현을 압도하고 있다. 순식간에 수백 명이 죽었지만 그들은 아직 수천 명.

하지만 기세는 이미 밀렸다.

모두의 머릿속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새겨졌고 공포라는 단어가 다리를 붙들었다.

심장이 폭발할 것 같은 두려움.

진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

갈기갈기 찢겨 죽은 동료를 통해 알 수 있는 자신의 미래.

“씨×! 가까이 붙지 마! 원거리! 원거리에서 공격해야 해!”

지휘자의 말과 함께 계약자들의 눈이 반짝였다.

전장을 지배하는 것은 원거리 공격 능력이다.

현대전에서도 포병을 향해 전장의 신이라 말할 정도다.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는 계약자들이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놈은 하나야! 원거리 공격을 당해 부상을 입었을 때, 공격하면……!”

거침없이 지시를 내리던 지휘자가 순간 뒷말을 줄였다. 그리고 눈을 깜빡였다.

‘……원거리? 잠깐만.’

지휘자는 성현의 전투 스타일을 기억했다.

창을 들어 주변을 썰고 가까이 붙으면 주먹다짐으로 내장을 뽑는 모습.

그 모습이 경악스러웠기에 잠시 놓치고 있었던 게 있다.

‘저놈의 본질은 근접 전투가 아니잖아?’

성현은 지르힐과 계약한 자.

그 권능은 번개.

그러니까 ‘원거리 공격’이다.

지휘자가 다급히 외쳤다.

“피, 피해!”

하지만 늦었다.

검은 하늘에서 번개가 쏟아지며 원거리 능력을 가진 계약자들을 태워 죽이고 있었다.

콰르르르릉! 세상을 울리는 천둥소리.

지휘자는 지금 이 세상이 지옥처럼 느끼며 껄껄껄 헛웃음을 터뜨렸다.

근접전은 물론이고 원거리 공격도 불가능하다.

마력조차 압도적으로 차이 난다.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미 그들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약점이 없다. 방법도 보이지 않는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죽을 것이다.

지휘자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후우우웅!

성현이 휘두른 창에 지휘자의 머리가 땅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연우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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