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약효가 돌기 전에 끝나 버리겠어!’
지연우는 입술을 씹었다.
약효가 도는 것은 30분, 성현이 음료를 받아 마신 것은 약 10분 전.
아직도 20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누군가에게는 짧다고 느껴질 시간.
하지만 지연우는 아니었다.
그 시간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여겨졌다.
쉬지 않고 떨어지는 번개.
밝아졌다 어두워지는 세상.
번개에 맞아 타들어 가는 시체의 역겨운 냄새.
수천 명이었던 계약자의 숫자가 빠르게 줄고 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 거다.
성현의 능력은 정말 악마 같았다.
“으아아아악!”
“제발 살려 줘!”
살기 위해 도망치는 놈이 30%, 공포에 짓눌려 멍하니 있는 놈이 30%.
그 외는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이성을 잃었다. 마구잡이로 병장기를 휘두르는 게 전부다.
지금도 그랬다.
“이 개새×야!”
한 계약자가 성현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긴장된 상태에서 휘두른 공격에 예리함은 없었다.
부우우웅!
성현은 놈의 도끼를 가볍게 피한 뒤 그 손목을 잡아챘다.
놈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물들었다.
“어?”
하지만 성현은 놈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대로 놈의 손목을 뒤틀었다.
우드드득!
놈의 팔꿈치에서 뼈가 튀어나오는 동시에 놈의 눈에 핏발이 섰다.
“끼아아아악!”
“시끄럽네.”
성현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이어서 손에 든 창을 단도로 바꾼 뒤 놈의 목을 빠르게 그어 냈다.
주우우욱!
너덜너덜해진 놈의 목에서 검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고 성현의 몸으로 쏟아졌다.
성현의 몸은 시뻘건 핏물로 범벅이 될 때였다.
“지, 지금이야!”
몇몇의 계약자가 성현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쉬쉬쉭!
화살이 날아왔다.
하지만 성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죽은 놈을 방패 삼아 화살을 막으며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퍽! 퍽! 퍽!
죽은 자의 몸뚱이에 계속해서 화살이 박혔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고 화살을 당겼다.
이어서 총을 꺼낸 놈도 보였다.
타타타타타탕!
생각 없이 휘갈기는 난사.
성현이 들고 있는 시체가 너덜너덜해졌다.
이제는 그가 인간이었는지 알기도 힘들 정도다.
그저 고깃덩이.
고기 방패.
한때는 그들의 동료.
놈들은 이를 악물고 공격을 이어 갔다.
그런데 공격의 이유는 성현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 역시 이런 멍청한 공격으로 성현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는 미끼야!’
상대는 괴물 같은 성현이다.
국내 랭킹 1위가 온다 해도 싸움이 되지 않을 거다.
인간이 아니라 존재라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압도적인 강함.
그래서 그들은 결심했다, 성현을 죽이기 위해 스스로 미끼가 되기로.
성현이 자신들을 공격하는 순간, 성현이 자신들에게 집중하는 그때, 원거리 공격자들이 움직일 거다.
‘우리는 신경 쓰지 마.’
‘우린 죽어도 괜찮아!’
‘괜찮으니까, 우리 머리 위로 마력을 떨어뜨려!’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이 개죽음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성현이 자신들을 공격할 때, 나타날 틈.
다른 동료들이 그 틈을 노려 주기를 바랐다.
‘저놈도 인간이야.’
‘마력의 한계가 있어. 상처가 나고 피도 나!’
‘계속된 공격을 받으면 고통에 몸부림치며 쓰러지고 말 거야!’
그리고 성현이 그들 앞에 섰다.
지금껏 들고 있던 고기 방패를 집어 던지며 단도를 창으로 바꿔 들었다.
부우우우웅!
창이 엄청난 풍압을 만들어 내며 빙글빙글 돌았다.
사람이 썰리고 비명이 울린다.
“지금이야!”
미끼가 되기로 결심한 자들이 외쳤다.
그리고 동료들은 그들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다.
원거리 공격 능력을 가진 자들, 그들이 성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들의 손이 검은 연기로 휘감기는 동시에 화르르륵, 성현의 앞에서 뜨거운 불꽃이 솟구쳐 올랐고 하늘에서는 돌덩이가 떨어져 내렸다.
번쩍거리는 빛 줄기와 땅이 뒤집힐 것 같은 진동.
귀를 찢는 굉음이 세상을 울렸다.
쾅! 쾅! 쾅! 쾅!
성현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곳에 모인 계약자 중 상당수는 만만치 않은 마력을 가진 랭커, 그것도 수백 명!
그들의 공격은 매서웠다.
튕긴 돌멩이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계속! 멈추지 마!”
그리고 지금껏, 겁을 집어먹은 채 웅크려 있던 계약자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활이나 총 가진 놈들도 준비해!”
계약자들은 평소 총과 화살 같은 무기를 소지하기도 한다.
그들은 총을 꺼냈고 탄창을 삽입했다. 탄알을 장전하며 성현이 있는 곳을 향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역시 마찬가지, 흙먼지가 자욱한 곳으로 겨눠졌다.
“쏴!”
타타타타탕!
총구가 불꽃을 일으켰고 화살이 빠르게 날아갔다.
성현이 있던 자리는 말 그대로 초토화되고 있었다.
흙먼지가 자욱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멀쩡할 수는 없을 거다.
“이 정도 화력이면 존재라 해도 견딜 수 없을 거야!”
“저 개새×!”
계약자들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다음 준비해!”
근거리 능력의 계약자들이 각자의 병장기를 손에 쥔 채 마력을 끌어모았다.
시퍼런 칼날이 성현의 피를 머금기 위해 입맛을 다시는 것 같다.
원거리 공격이 끝나는 순간 이들이 투입될 거다.
상처투성이가 된 성현을 향해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며 잘근잘근 씹어 먹을 생각이다.
그런데 그 순간 불꽃을 쏘아 대던 계약자는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섬뜩한, 그러니까 죽음에 가까운 그 느낌.
계약자가 입술을 씹으며 천천히 눈동자를 뒤로 틀었다.
“……어?”
그 뒤에 성현이 서 있었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마력을 쏟아붓는 곳이 아닌, 그의 뒤에 성현이 귀신처럼 나타나 서 있다.
그것도 정말 멀쩡한 모습으로.
“어…… 어떻게……?”
계약자의 눈이 부릅떠지는 순간 성현이 주먹을 휘둘렀다.
콰직!
단 한 방에 계약자의 머리가 터지며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유, 유성현이 여기에 있다!”
“젠장!”
“미꾸라지 같은 새끼, 이미 도망쳤었어!”
놈들의 공격이 시작되던 순간, 성현은 이미 그 자리를 벗어났다.
놈들의 마력이 떨어질 때가지 조용히 기다렸다.
그리고 지금, 살육의 시간이 다시 시작된다.
성현이 손을 들자 번개가 쩌어어엉,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끄아아아악!”
성현은 번개를 떨어뜨림과 동시에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목을 베고 배를 갈랐다.
성현의 몸은 타인의 시뻘건 피로 물들었고 계약자들은 성현의 모습을 악귀처럼 바라봤다.
이제 성현을 향해 돌진하는 놈은 없다.
공격하는 놈도 당연히 없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살기 위해 도망쳤다.
성현은 땅을 박차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수십 미터의 상공, 성현은 그들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라이트닝 볼.”
성현의 몸 주변에 수백 개의 라이트닝 볼이 만들어졌다.
하나하나가 엄청나다. 압축된 에너지는 예전에 사용하던 것과 다르다.
파지지지직!
그것들이 계약자들의 머리 위로 폭격처럼 떨어졌다.
콰콰콰콰쾅!
살아남은 계약자들은 라이트닝 볼을 피하기 위해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씨, 씨×…….”
욕을 내뱉는 계약자의 앞에 어느새 성현이 서 있었다.
성현은 거침없이 단도를 움직여 계약자의 목을 잘라 냈다.
서걱!
그리고 그 시각.
지연우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눈으로 전장을 살피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지연우는 성현의 능력을 과소평가했음을 인정했다.
‘젠장, 준비가 부족했어.’
완벽한 계획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준비 과정이 짧았음을 아쉬워했다.
계약자는 보통 혼자만의 전술로 싸우는 자들, 개개인의 힘으로 성현을 이길 수 없다.
군부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켰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 와서 작전을 변경할 수는 없다.
전투는 시작됐고 건조했던 흙은 피로 적셔지는 중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어?’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지연우는 성현의 몸에 어떤 이상이 생겼음을 느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와 몸짓, 그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번개의 크기는 줄어들었고 성현의 몸짓은 어딘지 둔해졌다. 물론, 여전히 입이 벌어질 정도로 그 능력은 무시무시하지만 방금과 분명 다르다.
‘약효가 돌고 있어.’
지연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드디어 성현의 능력을 절반으로 만드는 약효가 그 힘을 발휘한 거다.
시간으로 따진다면 10분 정도 남았지만, 성현이 계약자들을 상대로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 덕에 약효가 생각보다 빨리 돈 것 같다.
‘됐어!’
어차피 계약자들은 시간을 벌어 주는 수단이었다.
그들이 성현을 잡아 죽일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오즈!”
지연우는 거침없이 오즈를 호출했다.
이제 다음 단계다.
성현의 마력이 떨어지는 순간 오즈를 투입해서 치명상을 입히는 것.
지연우의 옆으로 오즈가 섰다.
오늘 역시 중년인의 모습이다.
오즈는 검은 눈동자로 핏물로 가득한 전장을 바라보며 지연우의 지시를 기다렸다.
그리고 지연우가 오즈를 향해 입을 열었다.
“가라. 가서 유성현을 죽여라.”
오즈의 봉인은 풀렸다. 아무리 성현이라 해도 오즈를 상대로 말끔할 수는 없을 거다.
‘잘하면…….’
팔 하나는 잘라 버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지연우가 손가락으로 성현을 가리키며 계속해서 말했다.
“유성현을 죽이면 내 너에게 자유를 주마. 나를 떠나 살 수 있도록 약속하마. 약에 의지할 필요 없는 삶을 보답하겠다.”
오즈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지연우가 알약 하나를 꺼내 오즈의 손에 올렸다.
“이게 네가 먹는 마지막 약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오즈는 자신의 손바닥에 올라온 알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입에 넣었다.
이 약 역시 마약이다. 살인을 광적으로 즐기며 미치광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
오즈의 눈동자에 광기가 서리고 입꼬리가 미친놈처럼 말려 올라갈 때, 지연우가 입을 열었다.
“가라.”
지연우의 말에 오즈가 발을 한 걸음 옮겼다.
오즈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지더니 콰아아앙, 성현을 향해 뛰어올랐다.
쐐애애애액!
봉인이 풀린 오즈의 몸짓은 달랐다. 말 그대로 존재에 가까운 짐승. 어지간한 마녀는 오즈의 손에 반 토막이 나 버리고 말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지연우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오즈의 표정은 달랐다.
지연우와 멀리 떨어졌을 때, 오즈는 입속에 있던 마약을 꺼냈다.
삼키는 척만 했던 것.
오즈는 마약을 먹지 않았다.
오즈는 손에 쥔 마약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며 얼마 전, 성현을 만나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성현은 말했었다.
지연우를 죽여 주겠다고.
그러려면 오즈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오즈는 힐끗 지연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금 전 지연우가 한 말을 떠올렸다.
성현을 죽이면 자유를 돌려주겠다고.
오즈에게 넘어온 두 가지 제안.
성현을 죽이는 것과 지연우를 죽이는 것.
오즈의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지연우는 탐욕 그 자체, 거짓을 진실처럼 포장하는 재주가 있으며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거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계속해서 오즈를 손에 쥐고 흔들 게 분명하다.
지금은 성현의 말을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