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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99화 (199/252)

199화

“비켜!”

오즈의 목소리가 세상을 울렸다.

그러자 성현에게 도륙당하던 계약자들의 시선이 모두 오즈에게 향했다.

오즈는 지연우의 호위 무사, 그 실력은 최상위 랭커와 견줄 만하다. 그런데 그런 오즈의 등장에도 계약자들은 기뻐하지 않았다.

수천 명의 계약자가 박살 나는 중이다.

찢겨 죽고 터져 죽는다.

아무리 오즈라 해도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는 없다.

모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

오즈가 다가올수록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오즈의 몸에서 느껴지는 폭발적인 마력, 게다가 짐승 같은 살기. 성현에게 비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벌레처럼 당할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일로 오즈가 갑자기 강해졌는지 몰라도 지금 그들에게 그런 이유는 상관없었다.

“오즈다! 오즈야!”

죽기만을 기다리던 그들에게 오즈의 등장은 구원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성현 역시 잠시 행동을 멈췄다.

‘확실히, 봉인이 풀렸다고 하더니…….’

지난번 싸웠던 것보다 몇 배나 강해진 것 같다.

‘쉽지는 않겠네.’

오즈는 지연우를 배신했다. 그리고 지연우를 방심하게 만들기 위해 성현과 싸우려 한다.

그 싸움에서 오즈의 단도에 죽지 않으려면 지금보다 더 집중해야 한다.

성현은 창을 단도로 바꾸며 앞으로 일어날 전투에 대비했다.

죽이지 않고 죽지 않으며, 상대를 속이기 위한 싸움, 쉽지 않을 거다.

그리고 오즈가 앞에 도착한 순간 성현은 오즈의 목을 찢어 버릴 것처럼 단도를 휘둘렀다.

부아아아악!

공기가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지만 오즈는 가볍게 창끝을 피했다. 이어서 엄청난 속도로 성현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시작한다.

오즈의 메시지가 머릿속을 울릴 때, 성현은 마른침을 삼켰다.

-와라.

오즈의 공격이 시작됐다.

짧게 그리고 길게, 다시 짧게.

쉬쉬쉬쉭!

숨 쉴 시간도 없을 정도로 고속으로 이어지는 공격과 방어.

칼이 마주했고 불꽃이 튄다. 그 뒤에야 단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파파파파팍!

성현은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며 세포 하나하나까지 긴장을 유지했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을 잃는 순간 계획이고 뭐고 오즈의 단도에 베여 죽을 거다.

하지만 이렇게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눈치 빠른 지연우가 알아차릴 거다.

성현과 오즈가 어떤 싸움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성현과 오즈가 남기고 지나간 잔상만을 보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것도 대단한 일이다.

몇몇은 잔상조차 보지 못하고 이어지는 소리만 듣고 있다.

하지만 지연우는 달랐다.

성현과 오즈의 모든 몸짓을 두 눈에 담고 있었다.

‘됐어.’

오즈가 이 정도로 해낼 줄은 몰랐다.

비록 성현이 약물에 중독된 상황이지만 오즈의 싸움은 기대 이상, 성현의 몸에 자잘한 상처까지 생기고 있다.

지금도 오즈의 단도가 성현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성현이 오즈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지만 무리다.

오즈는 집요할 정도로, 마치 자석처럼 달라붙어 공격을 이어 갔다.

‘어쩌면…….’

지연우는 오즈가 성현을 이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돼.’

성현을 무릎 꿇리는 것은 지연우 본인이 해야 할 일이다.

‘네가 할 일은 유성현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거야. 그게 끝이야.’

지연우가 마른 입술을 핥으며 천천히 칼을 빼 들었다.

칼날에서 시뻘건 불꽃이 화르륵 솟아났다.

‘유성현의 목을 베는 것은 네가 아니야. 바로 나다.’

지금의 지연우는 봉인이 해제된 오즈보다 강하다.

즉, 마력을 잃은 성현 정도는 자신도 충분히 죽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지연우는 나서지 않았다.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성현의 마력이 한계에 도달하기를 기다렸다.

전쟁은 이기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이긴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말이 있다.

지연우는 그 말을 따르는 중이다.

그리고 지연우의 시선이 천천히 틀어졌다.

성현과 오즈의 싸움에서 벗어나 죽은 계약자들을 향했다.

바닥을 굴러다니는 머리와 팔다리, 처참하게 찢긴 시신,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내장.

그 참혹한 현장을 보며 지연우는 애도를 보냈다.

‘헛되지 않을 거다.’

이곳에 탑을 세워 죽은 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어서라도 그 희생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연우에게 그들의 희생은 새로운 역사를 알리는 시작이다.

그리고 지연우의 눈동자가 다시 성현과 오즈의 싸움으로 옮겨졌다.

성현과 오즈는 여전히 말도 안 되는 몸짓으로 싸우는 중이었다.

성현이 단도를 휘둘러 오즈의 목을 노렸고, 오즈는 그 공격을 피하며 성현의 눈동자를 노렸다.

성현이 가까스로 고개를 틀며 오즈의 단도를 스쳐 보내는 그 긴박한 순간, 성현의 머릿속에 오즈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더 해야 할까?

성현은 힐끗 지연우를 살폈다.

자신만만한 기세가 여기까지 느껴진다.

이 정도면 충분히 방심했고 성현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날 것 같다.

‘저 정도면 됐고.’

이번엔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온몸이 피투성이기는 하지만 모두 타인의 피다.

자잘한 상처가 있기는 하지만 오즈의 단도를 피해 내며 만들어진 것, 치명상은 없었다.

‘근육은 멀쩡하고, 마력도 괜찮고.’

성현은 아직 전력으로 싸운 적이 없다.

혈관을 타고 도는 마력이 끊임없이 느껴진다.

전투력은 떨어지지 않은 상태.

-괜찮네. 지연우가 설칠 수 있도록 옆구리나 한번 찔러 줘. 급소는 피하고.

오즈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잔발을 빠르게 움직여 성현의 품에 더 바짝 붙었다.

-아플 거야.

오즈의 손에 들린 단도가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푸우우욱!

오즈의 단도가 성현의 옆구리를 쑤시고 들어갔다.

셀 수 없이 일어난 공방 속에 얻어진 상처.

오즈의 공격이 성공했다 해서 지금의 상황을 연출이라며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지연우도 마찬가지.

성현은 지연우의 미소를 확인하며 비틀비틀 뒤로 물러섰다.

-괜찮아?

오즈가 성현의 핏물이 떨어지는 칼을 털어 내며 물었다.

성현의 옆구리에서는 벌건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중이었다.

-참을 만하네. 한 번 더 들어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즈가 달려들었다.

지연우를 속이려는 공격.

타인의 눈에는 성현이 밀려난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죽어!”

그렇게 성현의 목을 향해 단도를 그을 때.

-멈춰.

지연우의 목소리에 오즈의 행동이 정지됐다.

-그 정도면 네 할 일은 됐다.

오즈의 시선이 천천히 지연우가 있는 곳을 향해 틀어졌다.

-유성현을 죽여야 자유를 준다고…….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일단 물러서 있어.

지연우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오즈의 입가에 허망한 미소가 올랐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5분 전에 한 이야기를 뻔뻔하게 뒤집는 것을 직접 보고 있으니 역겹기만 했다.

오즈는 그 자리에 굳은 것처럼 멈춰 있었다.

-물러서라는 말 못 들었나?

-…….

-물러서라고 했다!

지연우의 메시지에는 분노가 가득했고 오즈는 그 명령을 따랐다.

-알겠습니다.

오즈는 더 이상 성현을 공격하지 않고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계약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그만두는 거지?”

“이길 수 있는 거 아니었어?”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오즈가 밀어붙이는 중이었다.

그리고 성현은 비틀거리기까지 한다.

지금은 누가 봐도 찬스, 물러설 때가 아니다.

이를 악물고 공격을 이어 가도 모자란 시간이다.

“그런데 왜?”

계약자들의 시선을 느낀 오즈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미안, 이게 끝이네. 마력이 바닥났거든. 칼을 쥐고 있을 힘도 없어.”

급기야 오즈의 손에서 단도가 뚝 떨어졌다.

바닥에 닿은 단도가 허무하게 보일 정도다.

계약자들은 입술을 씹었다.

하지만 오즈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의 몸으로 그런 속도, 그런 파괴력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서다.

지금껏 성현과 대등하게 싸운 것도 대단하다고 여겨서다.

그저 잠깐 가졌던 삶의 희망이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는 게 두려울 뿐이다.

“젠장…….”

계약자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렀다.

성현의 상처가 깊다고 해도 이곳에 있는 계약자 정도는 몰살시킬 마력과 번개를 만들어 낼 권능이 있다.

게다가 그들은 성현을 상대로 감히 싸울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 죽는 시간이 가까워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뒤에서 저벅저벅 들리는 발소리.

화르륵, 불이 타들어 가는 소리.

몸이 떨릴 정도의 마력.

지금껏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지연우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계약자들은 지연우에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 싸움이 시작된 순간을 기억하고 있어서다.

지연우가 엉망진창으로 두들겨 맞던 그 모습.

귀를 찢기고 처절할 정도로 당하던 그 장면.

지연우도 그들의 낮은 기대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면 그 눈빛이 돌변할 거다.

그들의 입은 다시 지연우를 칭송할 게 분명하다.

저벅저벅 걸어오던 지연우가 약 50m의 거리를 두고 걸음을 멈췄다.

싸움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으로 성현의 능력을 가늠하기 위해서다.

성현은 마력을 떨어뜨리는 마약을 마셨고 지금의 능력은 오즈와 비슷한 급.

게다가 오즈와의 싸움에서 큰 상처를 입었다.

옆구리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는 중이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눈에 보인다.

마력은 얼마 남지 않았고 버티는 게 전부일 거다.

지연우는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는 싸움이라고 판단했다.

‘좋네.’

지연우의 입에 히죽 미소가 흘렀다.

성현 역시 핏물이 흐르는 배를 부여잡은 채 지연우와 시선을 마주쳤다.

두 사람 사이에 별다른 말은 없었다.

그저 서로를 노려볼 뿐이다. 그리고 성현은 단도를 창으로 바꿨다.

침묵이 이어지는 순간, 먼저 입을 연 것은 성현이었다.

“귀는 괜찮냐?”

지연우의 눈이 부릅떠졌다.

성현에게 당한 귀가 지금도 너덜거린다.

그 통증을 느끼며 반드시 성현을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거들먹거릴 수 있나 보자.”

지연우가 발을 들어 땅을 박찼다.

꽈아아앙!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쪼개지며 불꽃이 솟아났다.

동시에 지연우가 빠르게 이동했다.

노리는 것은 성현의 목.

지금껏 보지 못한 속도로 불꽃에 휘감긴 칼이 휘둘린다.

성현의 창과 지연우의 검이 맞닿았다.

쩌어어어엉!

주변에 있던 계약자들은 그 충격음만으로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 * *

플로르의 성.

플로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성현과 지연우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밀어붙이는 지연우와 방어하기에 급급한 성현의 모습.

분명 플로르가 기뻐해야 할 일이다.

자신의 계약자가 지르힐의 계약자를 앞서고 있으니 소리를 쳐서 응원해도 모자라다.

그런데 플로르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지연우가 성현을 공격하면 할수록 그 표정은 더 심각해진다.

‘……유성현이 저렇게 약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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