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그리고 ‘쿠당탕탕!’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수십 미터를 굴러갔다.
지연우가 스쳐 간 곳의 땅이 움푹 팼고 지나간 바위는 모래처럼 부서지며 사방으로 튀었다.
심지어 꽉 쥐고 있던 검은 놓쳐 버렸고 왼팔이 기형적으로 꺾였다.
겨우 멈춰 선 지연우가 일어나기 위해 손으로 땅을 짚었다.
하지만 비틀거리며 제대로 일어설 수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손이 바르르 떨린다. 핏발 선 눈은 참기 어려운 고통을 알려 주고 있었다.
‘뭐, 뭐야…….’
지연우는 빠르게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한 후 크게 당황했다.
성현에게 단 한 대를 맞았을 뿐이다.
그것도 복부.
그런데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배 속의 모든 장기가 비명을 지르며 피를 쏟아 내는 것 같다.
게다가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던 마력이 손에 쥔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중이다.
‘이게 뭐냐고!’
지연우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플로르에게 수련을 받으며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존재와 가까워졌다고 믿었다.
옮기는 발걸음만으로 지진을 일으킬 수 있었고 넘치는 활력은 인류 역사상 최강이라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지연우의 꼴은 최악이었다.
‘미치겠네…….’
지연우가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에 저 멀리에 있는 성현이 담겼다.
성현이 입은 거무튀튀한 갑주에서는 세상을 얼려 버릴 것 같은 살기가 퍼져 나오는 중이다.
그 움직임은 눈으로 좇을 수도 없을 만큼 빠르다.
마력은 비할 것도 없다.
지연우는 성현의 앞에서 넘을 수 없는 벽과 함께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죽음이 다가왔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죽는다고?’
민심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 가식의 가면을 쓰고 불편하게 살아왔다.
한계를 모르는 권력을 손에 쥐고 세상 모든 것을 발밑에 두고 싶었다.
그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유성현이라는 놈이 지연우의 앞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지연우가 피를 토하며 비명 같은 욕설을 토해 냈다.
“씨×!”
성현은 지연우가 욕을 내뱉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까딱까딱 움직였다.
성현은 몸이 풀리는 소리가 뚜두둑, 시원스레 들려오는 것을 들으며 느긋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꼽아 봤다.
‘지금까지…….’
지연우에게 맞고 베인 것을 세는 거다.
적어도 그보다는 많이 때린 후 죽여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다.
성현은 슬쩍 웃었다.
지연우가 오즈를 뒤로 물리고 전면에 나선 후 성현의 몸에 새겨진 상처는 가볍지 않았다.
놈의 칼에 화상을 입고 베이고 찔린 것만 세도 수십 여 곳이다.
지연우를 그대로 갈아 마셔도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간다.’
성현은 발을 박차며 지연우에게 달려들었다.
콰아아아아! 공기가 찢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성현은 지연우의 눈앞에 섰다.
“그럼, 시작한다.”
성현의 주먹이 지연우의 콧등과 광대, 턱을 노리며 사정없이 처박혔다.
꽈직! 꽈직! 콰지지직!
지연우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이어졌다.
지연우는 허우적거리며 성현의 공격 거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성현은 잔발을 이용해 계속해서 다가섰고 놈에게 거리를 주지 않았다.
바짝 붙은 상태로 쉬지 않고 주먹을 뻗었다.
파파파파팍!
성현의 주먹이 지연우의 옆구리에 꽂혔다.
콰자자작!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확실한 소리가 들려오며 지연우의 몸이 휘어졌다.
성현은 놈의 다리를 걸어 중심을 무너뜨린 후 자빠진 놈의 얼굴을 향해 곧바로 발을 날렸다.
꽈아아앙!
지연우의 몸이 붕 떠올랐다.
몇 바퀴를 나뒹굴며 온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커헉!”
지연우의 코에서 걸쭉한 핏물이 떨어져 내렸다.
일어서려 했지만 이미 풀린 다리는 말을 듣지 않는다. 일어서기까지 주저앉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야 했다.
지금이라면 지연우의 목을 손쉽게 꺾을 수 있지만 성현은 놈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정말 친절히 놈이 일어서서 자세를 잡을 시간까지 주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 이런 상황일수록 침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놈을 보며 방심했다가 또는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예상하지 못한 변수에 당하는 것은 피해야 했다.
놈은 성현과 싸우기 위해 몇 개의 계략을 세웠다.
수천 명의 계약자들을 끌고 왔으며 오즈를 배치했고 마약을 먹이려 했다.
마지막 순간에도 또 뭔 짓을 계획했을지 모른다.
지연우같이 음흉한 놈은 천천히 말려 죽여야 한다.
“일어서, 서른 대는 더 맞아야 하니까.”
지연우의 표정은 완벽할 정도로 무너져 있었다.
이런 고통은 물론 치욕을 받는 것도 살면서 처음이었다.
아니, 저런 눈빛도 마찬가지로 처음 겪는 경험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였고 감사를 전했다.
그런데 성현은 다르다. 자신을 향한 시선이 벌레를 보는 것처럼 혐오스럽다.
‘벌레? 내가 벌레라고?’
지연우가 피를 닦아 내며 미친놈처럼 끌끌끌 웃기 시작했다.
저런 눈빛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이 타인을 바라볼 때뿐이다.
타인이 자신을 향해 저런 눈빛을 보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미치겠어! 크핫핫핫핫!”
놈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성현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럼, 죽자.”
성현의 말에 지연우는 뭔가가 생각났는지 다급히 손을 흔들었다.
“잠깐, 잠깐만!”
성현이 멈칫 거리자 지연우가 히죽 웃었다. 그리고 느릿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생각해 보니까 웃기네. 너 정말 멍청한 놈이구나?”
“……?”
뜬금없는 말에 성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지연우를 바라봤다.
지연우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계속 말했다.
“나를 죽이면 끝이라고 생각해? 설마, 그런 멍청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 뭐야, 정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거야? 미안한데, 그 생각은 틀렸어. 날 죽이면, 앞으로 남은 네 인생이 편하지 않을 거야.”
“…….”
“너같이 어린애들은 싸움만 잘하면 최고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짐승이나 하는 생각이야. 하나 가르쳐 줄까? 세상은 힘이 전부가 아니야.”
“…….”
“내가 여기서 죽게 되면, 2시간 안에 세상에 알려지겠지. 속보라는 이름으로 텔레비전과 포털 사이트를 장악할 거야.”
지연우가 손에 쥔 검을 성현을 향해 겨누며 스산하게 웃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했다.
“그럼 정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 거야. 각 언론사의 댓글은 내 이름은 연호하며 추모의 목소리를 높이겠지. 그리고 사람들은 날 죽인 놈이 누군지 찾기 시작할 거야. 네 이름이 드러나는 것은 1분도 걸리지 않겠지.”
“…….”
“모든 SNS에 네 이름과 얼굴이 노출될 거야. 심지어 집 주소와 휴대폰 번호, 네가 다니는 편의점까지 뿌려질 거야. 그런데도 네가 편하게 살 수 있을까? 아니, 너만 고생하면 다행이지. 네 부모, 네 친구, 네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은 마녀사냥을 당하게 될 거야. 네 엄마가 테러를 당할 수 있어. 네 엄마라는 이유로 길을 걷다 돌에 맞고 칼부림을 당하는 거야.”
지연우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놈은 정말 재미있다는 듯 목소리를 높여 웃었다.
그리고 뚝 웃음을 그치며 성현을 노려봤다.
“그러니까 죽여 봐, 이 새끼야!”
성현이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죽여 보라고?”
“그래! 이 책임감 없는 새끼야! 너 때문에 네 주변의 모든 사람이 괴로울 거야!”
성현은 천천히 지연우의 모습을 살폈다.
최후의 순간을 위한 다른 꿍꿍이를 준비해 뒀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것은 없어 보였다.
성현은 어이없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내가 널 과대평가했구나.”
회귀 전, 지연우는 철두철미했다.
최악의 최악까지 생각하며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은 거미줄처럼 상대를 옭아맸었다.
하지만 그것은 약 10여 년 후의 지연우다.
놈은 아직 어렸고 할 줄 아는 것은 그저 발악이다.
성현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멎었다.
놈이 어떤 꼼수를 숨겨 뒀을 것이라 생각했던 자신이 순간적으로 우스워 보였다.
성현은 고개를 저은 후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끝을 볼 때다.
“서아야! 이서아!”
성현의 외침과 동시에 허공에서 휙 휴대폰이 날아왔다.
멀리 숨어 있던 이서아가 성현을 향해 휴대폰을 던진 거다.
성현이 손을 뻗어 휴대폰을 잡았다.
그리고 곧바로 지연우를 향해 툭 던졌다.
“봐.”
건조한 목소리에 지연우가 눈을 깜빡이며 휴대폰과 성현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 이게 뭐야?”
평범한 휴대폰, 아무리 살펴봐도 포탄 같은 것이 장착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지연우는 섬뜩함을 느꼈다.
봐서는 안 될 게 담겨 있다는 그 예감이 소름 끼칠 정도로 머리를 헤집고 있었다.
“보라고.”
성현이 재촉하자 지연우는 마른 입술을 살피며 눈동자만 움직였다.
그리고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
개인 방송 채널이 보인다.
그곳에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다.
“……어?”
지연우는 눈을 깜빡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정말 다급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털 사이트로 이동해서 실검을 확인하는 거다.
곧 눈을 질끈 감았다.
-지연우 방송.
-지연우 실체.
-지연우 벌레.
-지연우 싸움.
-유성현이 누구?
지연우의 이마에 핏줄이 솟아났다.
눈은 충혈됐고 몸은 바들바들 떨려 왔다.
그리고 놈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
“뭐, 뭐야?”
“뭐긴, 네 가면이 벗겨졌다는 거지.”
“사, 사람들이 이걸 믿을 것 같아?”
“믿는지 아닌지, 댓글 한번 봐.”
지연우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다.
표정은 갈라졌고 메마른 눈빛은 불쌍할 정도다.
얼굴에 엿 됐다는 표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놈이 마른 한숨을 쉬지 않고 내뱉으며 댓글을 확인했다.
전부가 욕.
그 누구도 지연우의 편을 들어 주지 않는다.
성현을 쏘아보는 지연우의 눈이 번뜩였다.
“개새×야!”
성현을 향해 세차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은 추했다.
영웅 놀이를 하던 모습은 없었다.
피를 질질 흘리며 발버둥을 치는 게 전부다.
그리고 성현은 놈에게 당해 줄 생각이 없었다.
콰직! 콰직! 콰직! 콰직!
둔탁한 소리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커흑!”
비명 소리가 세상을 울렸다.
하지만 성현은 놈을 죽이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통증만 주며 뼈를 으스러뜨릴 뿐이다.
그리고 놈의 머리채를 꽉 잡았다.
“네 마지막은 여기가 아니야.”
성현은 그대로 지연우를 집어 던졌다.
한참을 날아가 땅에 구른 놈이 다시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인다.
계약자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지연우의 눈이 다시 분노로 채워졌고 눈빛에 시퍼런 불길이 치솟았다.
“뭐 하는 거야! 저 새끼를 죽여야지! 왜 가만히 있어! 왜 가만히 있냐고, 이 새끼들아!”
지연우는 계약자들은 영상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전투 중에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보는 놈이 어디 있을까 여겼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이곳에 있는 계약자들은 이미 지연우의 실체를 봤다.
그들이 저벅저벅 지연우를 향해 다가섰다.
지연우는 이유를 모른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