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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204화 (204/252)

204화

“……!”

“내가 너희 편이라고 생각했어?”

성현의 느긋한 목소리에 계약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고 보니, 성현은 자신들의 편이 아니다.

그들은 성현을 죽이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지 지연우의 지시만은 아니었다.

그들의 뒤에 있는 존재.

그 존재들이 지시했다.

-유성현을 죽여라.

그 존재들은 플로르와 손을 잡은 자들.

얼마 후 있을 대전쟁에 성현은 눈엣가시다.

플로르를 도와 성현을 죽여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성현 역시 마찬가지다.

성현은 회귀자.

지연우와 함께 손을 잡은 자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벌일지 뻔히 알고 있다.

“너희는…… 오늘 죽는다.”

그들은 지연우의 아래서 권력의 단꿀을 빨았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을 외면했다.

지연우가 악(惡)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권력에 취해 모른 척 살아갔다.

여자를 겁탈하고 남자를 죽이고 갓난애를 잡아 플로르에게 바쳤다.

‘그리고…….’

이서아는 미래를 봤다.

저들이 살아 있을 경우 벌어질 끔찍한 일.

성현이 창을 꽉 쥐었다.

“도망가도 상관없어. 세상 끝까지 쫓아가 죽일 테니까.”

성현의 몸에서 폭력적인 살기가 피어올랐다.

* * *

그런 성현을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조금 떨어진 산, 그 능선에 서 있던 남자.

대한민국 랭킹 1위 하우치였다.

그 역시 플로르와 손을 잡은 존재와 계약한 자.

이곳에 존재의 부탁을 받고 찾아왔다.

아니, 존재의 부탁이 아니었어도 한번쯤 성현을 만나고 싶었다.

최근 하우치의 전투력을 의심하는 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1위라는 이름값에 비해 저조한 활약, 단지 귀찮다는 이유였는데, 사람들은 그걸 알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로 그 의심은 다시 사그라질 거다.

성현이 지연우를 죽였다.

지연우의 랭킹이 20~30위권으로 저조하기는 하지만 놈은 영웅이라는 이름의 상징성을 갖고 있다.

“지연우를 죽인 성현을 박살 내면…….”

한동안 이런저런 말을 내뱉을 호사가는 없을 거다.

그런데 성현을 지켜보던 하우치의 눈빛에 흥미가 돋았다.

성현은 포위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분위기가 다르다.

성현은 포식자, 주변을 둘러싼 계약자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물러서고 있다.

하우치가 입술을 움직였다.

“슬슬 시작할 테니, 마력을 전해 주시죠.”

하우치 역시 존재의 마력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존재의 순수한 마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그 능력이 대한민국의 탑에 설 수 있던 이유다.

그리고 마력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하우치는 입맛을 다셨다.

온몸에 꿈틀대는 마력이 피를 원하기 시작한 거다.

“일단, 가볍게 인사부터 하지.”

하우치가 허리를 굽혀 돌멩이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집어 던졌다.

손을 떠난 돌멩이가 성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쐐애애애액!

* * *

성현은 창을 빙빙 돌리며 계약자들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저벅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점차 거리가 좁혀지는 중이다.

그때 성현의 눈썹이 꿈틀댔다.

귀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마치 탄알이 공기를 가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소리가 향하는 곳은 분명하다.

성현이다.

성현은 시선을 틀어 창을 휘둘렀다.

텅!

막아 낸 성현의 눈이 찌푸려졌다.

날아왔던 것은 평범한 돌멩이, 그런데 손에 찌릿한 느낌이 들고 있어서다.

성현의 시선이 돌멩이가 날아온 곳으로 향했다.

‘하우치…….’

상대가 누군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우치다.

회귀 전, 성현은 하우치와 마주했던 적이 없다.

대한민국 최고라 일컬어졌던 하우치는 성현이 계약자가 되기 전, 플로르의 마력을 온전히 사용하게 된 지연우와 싸우다 비참할 정도로 찢겨 죽었다고 들었다.

그 하우치가 허공을 밟으며 성현의 앞으로 다가왔다.

성현과 20여 미터 거리를 두고 사뿐히 땅에 내려선 하우치가 창을 빙글 돌렸다.

“서로 얼굴을 알고 있는 데, 인사를 할 필요는 없겠지?”

하우치의 등장에 계약자들은 눈을 반짝이며 길을 터 줬다.

그들은 다시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거다.

하우치가 성현을 향해 창을 겨누며 중얼거렸다.

“아직 어린 것 같은데, 제법이야.”

성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창끝을 하우치에게 돌렸다.

서로의 창끝이 마주한다.

그 살기가 찌릿찌릿 느껴질 정도다.

“나를 상대로 겁을 먹지 않는…….”

“너도 죽인다.”

“뭐? 나를 죽인다고?”

하우치가 가소롭다는 듯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런데.

“죽을 것 같은데.”

낯선 목소리에 하우치의 웃음소리가 뚝 끊어졌다.

그 목소리는 성현이 아니다.

성현의 옆으로 다가가는 자, 오즈였다.

계약자들은 오즈가 성현과 싸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즈는 성현의 등 뒤에 서며 칼을 뽑아 들었다.

그 칼이 노리는 곳은 명확하다.

계약자들이다.

하우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즈? 주인이 죽었다고 바로 그쪽에 붙었나?”

“처음부터 지연우의 편은 아니었어.”

그 말을 끝으로 오즈가 계약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차피 서로 죽이기 위해 이곳에 모인 자들이다.

긴말할 것은 없다.

“오즈가 배신했어!”

“미친!”

채채채챙!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성현의 시선은 다시 하우치를 향했다.

“우리도 혓바닥이 길 필요는 없잖아?”

“건방지게!”

하우치가 인상을 일그러뜨릴 때였다.

성현은 빠르게 거리를 좁히며 창을 찔러 넣었다.

후우우웅!

한 발 물러선 하우치는 거친 풍압을 느꼈다.

그리고 인상을 구겼다.

풍압만으로 콧등이 찢긴 거다.

선혈이 튀는 것을 느끼며 하우치가 자세를 낮춘 채 창을 움직여 성현의 명치를 노렸다.

쉬이익!

하우치의 창이 곧게 찔러 들어왔다.

그때 성현의 창이 빙그르르 돌더니 급박하게 방향을 바꾸며 하우치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쩡!

하우치는 엄청난 충격을 받으며 붕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미친, 무슨 힘이…….’

창이 아니라 바윗덩이가 휘둘린 것 같았다.

게다가 문제는 더 있었다.

하우치는 사람들에게 신창(神槍)이라 불리는 자다.

창술로만 따진다면 세계 최고라 자부할 수 있었다.

그 창 아래에 쓰러져 죽은 자들의 피가 강이 되어 흐를 정도다.

하지만 성현의 창은 달랐다.

파파파팍!

패턴이 없다.

단순한 공격처럼 보이지만 좌로 들어오는 듯 우로 틀어지고 위에서 휘둘리다가 아래에서 솟구친다.

쒜에에에엑!

속도 역시 미친 것 같았다.

뻐어억!

결국, 성현의 창대에 어깨를 내줘야 했다.

마력을 쏟으며 방어했지만 금이 간 것만 같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선 하우치가 히죽 웃었다.

“그 창술은 어디서 배운 거지?”

“지르힐.”

“……지르힐?”

“지르힐의 창술이다.”

성현이 다시 움직였다.

지르힐의 창은 번개, 번개는 형태가 없다.

방애물을 피하며 최단거리로 이동할 뿐이다.

쩌어어엉!

하우치는 가까스로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옆으로 구르며 창을 피했다.

하지만 성현은 창만 쓰는 게 아니다.

콱!

땅에 구른 후 일어나던 하우치의 머리를 잡아챘다.

하우치는 단도를 빼내 휘두르려 했지만 성현이 더 빨랐다.

놈의 머리를 그대로 땅에 처박았다.

꽝! 꽝! 꽝!

코뼈가 으스러지고 피부가 모두 찢겼다.

계약자들은 경악했다.

지연우가 당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이번 상대는 하우치다.

오랜 시간 1위의 자리를 내주지 않은 대한민국의 절대 강자.

그 강자 역시 악마 같은 성현의 앞에 비참하게 두들겨 맞고 있었다.

“안 돼!”

“젠장!”

그때 후웅! 성현은 자신을 노리고 들어온 마력을 느꼈다.

누군가 하우치를 구하기 위해 싸움에 끼어든 거다.

성현은 하우치를 집어 던진 후 몸을 틀었다.

그렇게 마력을 피하며 마력이 쏘아진 곳을 향해 달렸다.

“이 개×끼가 나에게 등을 보여?”

몇 바퀴를 땅에 구른 하우치가 성현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

그 목소리에는 수치심이 가득했다.

“씨×!”

하우치는 얼굴이 엉망이 된 상태에서 창을 지팡이 삼아 일어났다.

그사이 성현은 계약자들을 찌르고 베며 죽이고 있었다.

하우치에게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

1위? 그런 허명은 필요 없다. 그 역시 이곳에 있는 계약자 중 한 명일 뿐이다.

“오, 오즈부터 죽여!”

“유성현이다!”

계약자들은 비명을 질렀다.

오즈를 상대하는 것도 버거운데, 성현까지 뛰어들었다.

“막아! 방패로 막아!”

“죽지 마!”

하지만 방패로 막아도 소용없다.

촤아아아악!

성현이 가른 창에 몸뚱이가 피를 튀기며 질척하게 갈라졌다.

성현이 지나가는 모든 곳에 계약자들의 신체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팔과 다리, 그들의 원통한 얼굴.

땅에 떨어진 머리는 입을 벌린 채 눈을 껌뻑인다.

“한꺼번에! 한꺼번에 죽여!”

계약자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고 성현은 건조한 표정과 함께 창을 쥐고 휘둘렀다.

“끄아아아악!”

수십 명의 허리가 단숨에 찢겼다.

하반신이 없어졌어도 살기 위해, 내장을 질질 흘리며 도망치려는 자도 보인다.

멀리서 성현의 전투를 지켜보던 이서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성현의 전투는 말 그대로 처절하다.

플로르라는 악을 처단하기 위해 창을 휘두르고 있지만, 저대로 두면 성현 역시 괴물이 될 것만 같다.

이서아는 두 손을 모아 어디에 있는지 모를 신에게 기도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이 끝나고 평화가 오기를.

성현이 괴물이 되지 않기를.

콰아아앙!

꽝! 꽝!

퍼어엉!

이곳저곳에서 포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성현의 손에서 검은 마력이 계속해서 솟구쳤고 살기 위한 계약자의 발악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성현의 시선이 옆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갑자기 날아든 단도 때문이다.

하우치가 던진 것.

퍽!

그 단도가 성현의 어깨에 꽂혀 있었다.

물론 갑주가 막아줬기 때문에 상처는 없다.

성현이 단도를 뽑아내며 자신을 향해 단도를 집어 던진 하우치를 조용히 바라봤다.

“건방진 새끼가, 등을 보여? 갈기갈기 찢어 죽여 주마. 네 대갈통은 돼지 밥으로, 몸뚱이는 개밥으로 던져 주마!”

하우치가 하늘을 향해 손을 올렸다.

그러자 놈의 몸에 검은 마력이 안개처럼 타고 올랐다.

이내 그 몸이 스르륵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우치와 계약한 존재는 망상의 군주.

그 권능은 투명인간이 되는 것.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성현이 움직였다.

놈의 모습이 완벽히 사라지기 전에 손목을 틀어잡았다.

이어서 반대로 꺾었다.

“컥!”

이내 놈의 모습은 완벽히 사라졌지만 이미 잡혔다.

벗어나기 위해 바동거렸지만 성현은 놈의 손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놔! 놓으라고!”

성현은 무심한 눈으로 놈이 던졌던 단도를 빙글 돌리며 놈의 목을 갈랐다.

촤아아아악!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동시에 모든 계약자의 행동이 멎었다.

대한민국 랭킹 1위에 오른 후 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하우치의 마지막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대한민국 1위가 바뀌는 순간이다.

* * *

그 시각, 플로르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인간 몇 마리쯤 죽는 것은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연우, 그 죽음은 플로르의 예상과 달랐다.

‘하…….’

플로르는 고개를 저었다.

‘지나간 일에 연연할 수는 없어.’

시간은 뒤로 가지 않는 법.

지금은 앞만 바라봐야 한다.

“시신을 수습하라. 이곳에 가져오라.”

일단 그 시신이라도 이용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플로르의 지시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유성현의 다음 목적은 지르힐일 게다. 지르힐을 풀어 주기 위해 다시 이계로 들어올 게 분명하다.”

성현이 모든 계약자를 죽이는 것을 보고 플로르는 확신했다.

성현이 전쟁을 대비한다고.

그리고 그 대비의 첫걸음은 지르힐의 해방일 것이라고.

물론 지르힐을 풀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인간 따위가 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는 성현이다.

지금껏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냈다. 지르힐을 해방시키는 것 역시, 성현이라면 가능할 것처럼 여겨졌다.

“탑으로 가는 길을 막아라. 이번에는…… 반드시 죽인다.”

플로르는 전쟁에 준하는 수준으로 대비 후 성현을 죽이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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