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저건, 뭐지?’
아로드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전장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해골.
아로드나는 처음 보는 것.
게다가 뭔가 이상하다.
마녀와 짐승이 거침없이 달려들어 몸통과 다리를 물어뜯는데, 죽지를 않는다.
계속해서 재생하며 저돌적으로 싸우고 있다.
아로드나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설마…… 불사의 존재?’
그것밖에는 답이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상태로 싸우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짐승의 이빨에 팔이 씹히는 도중에 다시 팔이 만들어지고 있다.
머리가 으깨졌는데 움직인다.
불사의 존재다.
아로드나는 눈을 찡그리며 창을 쥔 손에 힘을 줬다.
후우우웅!
아로드나의 창끝에서 구체로 만들어진 마력이 둥실둥실 떠올랐다.
‘저 불사의 존재는 미끼다.’
아로드나는 빠르게 판단했다.
저 해골의 불사 능력은 신기했지만 그게 전부다.
전투 능력은 거기서 거기.
즉, 저런 놈을 먼저 보냈다는 것은 유성현이 이쪽의 세력을 확인하려 한다는 뜻.
‘잔머리를 쓰는군.’
아로드나는 웃었다.
그리고 곧장 오미로 베루스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제아무리 불사의 존재라 해도, 끝없이 재생한다고 해도 두렵지 않다.
세상에 완벽한 권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포까지 찢어 죽이면 재생할 수 없다.
‘상대가 계략을 세우면 그 계략을 박살 내는 게 최고의 전법.’
그 생각을 끝으로 아로드나는 창끝을 움직여 오미로 베루스를 겨눴다.
그러자 떠올랐던 마력의 구체가 오미로 베루스를 향해 쏘아졌다.
쐐애애애액!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마력의 구체가 닿기 전 오미로 베루스가 손에 쥔 무엇인가를 땅에 집어 던졌다.
그리고 오미로 베루스의 모습이 처음부터 그곳에 없던 것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저, 저게 뭐지?’
아로드나는 오미로 베루스가 집어 던진 물건에 집중했다.
그것은 연막탄.
사방이 연기로 뒤덮이는 동시에 구체가 그곳에 닿았다.
꽈아아아앙!
구체의 폭발로 일어난 모래 먼지와 연막탄의 연기가 한꺼번에 치솟았다.
모든 시야가 가려지며 하늘로 쏘아 올린 불꽃은 불필요하게 됐다.
전투 현장은 아수라장.
아로드나는 속았다는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젠장!’
이어서 마녀와 짐승의 비명과 함께 뼈와 살이 썰리는 소리가 썩둑썩둑 소름 끼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꺽!”
성현이 움직인 거다. 연막탄이 터진 연기 속으로 몸을 날려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죽이고 있었다.
‘젠장!’
아로드나는 입술을 씹었다.
인간의 잔머리에 당했다는 게 치욕스러웠다.
벌레는 벌레처럼 꿈틀대다 죽어야 하는 법.
이런 식의 반항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곧 아로드나의 몸에 검은 마력이 피어올랐다.
‘5초 전으로.’
아로드나가 시간을 되돌리는 권능을 사용했다.
스르르륵.
비디오테이프가 거꾸로 되감기는 것처럼 세상이 움직였다.
그렇게 5초 뒤로 돌아왔다.
피어올랐던 연막이 사라졌고 죽었던 짐승과 마녀도 되살아났다.
아로드나가 다급히 외쳤다.
“저 해골의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지 확인하라!”
오미로 베루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먹질만 하고 있었다.
몸통과 다리를 물어뜯겨도 온 힘을 다해 손은 보호하는 중.
“아니! 저놈의 손목부터 베어라!”
마녀가 칼을 휘둘렀고 짐승이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며 아가리를 벌렸다.
오미로 베루스는 손을 보호하려 했지만 그 많은 적을 상대로 버티기 힘들었다.
-카아아아악!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둔탁하게 들려왔다.
팔이 뽑히고 짐승들이 그 팔을 씹어 먹고 있다.
‘됐어.’
아로드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연막탄은 사라졌고 성현의 전략은 무너졌다.
이제 성현이란 놈을 찾아 비참하게 죽이면 된다.
그 시각, 성현은 오미로 베루스가 연막탄을 터뜨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오히려 마녀와 짐승에게 씹혀 먹히고 있다.
‘오미로 베루스의 손을 공격했다고?’
성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오미로 베루스는 자신의 손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공격했다는 것은 놈들이 성현의 전략을 알아챘다는 것.
‘시간을 되돌렸구나.’
성현은 아로드나의 권능을 알고 있다.
5초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사기급 능력.
하지만 사용하면 마력은 3분의 1 정도 떨어진다. 그것도 1분이나.
‘네 꾀에 네가 당할 것이다.’
성현은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갑주를 입은 상태, 마력은 폭주하고 있었고 그 움직임은 소리보다 빨랐다.
어느새 아가리를 쩍 벌린 짐승을 지나 아로드나의 앞에 도착했다.
뱀의 머리 위에 팔짱을 끼고 고고하게 서 있던 아로드나는 갑자기 나타난 성현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너…… 너는?”
성현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주먹을 내질러 아로드나의 얼굴을 가격했다.
콰직!
보라색 피가 허공에 퍼졌다.
성현은 계속해서 팔을 움직였다.
콰직! 콰직! 콰직!
갑작스러운 습격.
아로드나는 성현의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창을 휘둘렀다.
부아아악!
성현은 허리를 젖혀 놈이 휘두른 창을 피했다.
동시에 다리를 움직여 놈의 머리에 정타를 먹였다.
퍼억!
아로드나의 신체가 흔들렸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쩌정!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치며 아로드나의 머리에 꽂혔다.
고통의 신음을 내뱉지 않기 위해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아로드나의 입에서 끄으읍, 소리가 흘렀다.
이어서 아로드나의 눈이 분노로 타오르며 시뻘겋게 충혈됐다.
“죽여 버린다!”
아로드나가 핏물로 가득한 입을 벌리며 외쳤지만 성현은 상관하지 않았다.
권능을 사용해 마력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성현의 공격을 충분히 피하고 막을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놈의 마력은 3분의 1로 떨어져 있었고 성현은 마음껏 공격을 이어 갔다.
퍼퍼퍼퍼퍽!
놈은 성현의 공격에 대응하는 것을 포기한 채 자세를 낮추어 급소를 보호했다.
막고 피하는 것에 집중하며 마력이 다시 채워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성현은 놈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그 시간이 다 되었을 때, 성현은 다시 뱀의 머리를 박차며 뛰어올랐다.
‘어?’
아로드나의 눈동자가 떨려 왔다.
지금 성현의 행동을 보고 느꼈다.
‘저 새끼, 나를 알고 있어.’
그게 아니면, 이렇게 정확한 시간에 품에서 도망칠 수는 없는 법.
‘……어떻게?’
궁금했지만 지금 그걸 확인할 시간은 없다.
짐승의 머리 위로 도약한 성현이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하늘이 검게 물들며 포악한 번개를 품기 시작했다.
“막아! 뛰어올라서 저 새끼를 죽여!”
아로드나의 지시에 짐승들이 성현을 물기 위해 뛰어올랐다.
날카로운 이빨을 내보이며 아가리를 벌린다.
하지만 이것조차 늦었다.
폭격 같은 번개가 떨어지고 있었다.
꽈르르르릉!
번개에 맞은 짐승의 머리가 터졌고 뇌수가 땅으로 쏟아졌다.
타 죽은 놈의 비명이 세상을 채웠다.
비에 젖은 놈들의 모습이 초라했다.
하지만 놈들은 계속해서 뛰어올라 성현을 공격하고 있었다.
성현은 그중 한 놈의 머리를 밟으며 다시 위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 높은 하늘로 치솟은 성현이 손에 쥔 창에 마력을 집어넣었다.
‘섬멸.’
창이 수백 개로 분열되었고 그것들이 땅으로 쏟아지며 마녀와 짐승의 머리 위로 꽂혔다.
콰콰콰콰콱!
한 마녀의 정수리에 분열된 창이 꽂혔다.
몸이 세로로 쩍 갈라지며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흔들거린다.
“으아아아악!”
“저게 인간이야?”
“살고 싶어!”
마녀도 생명체, 죽음의 공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성현의 손에 자비는 없었다.
계속 쏘아지는 마력에 비명만 들려올 뿐이다.
‘슬슬…….’
성현은 품에서 연막탄을 꺼냈다. 그리고 투투툭 땅으로 떨어뜨렸다.
인간이 언제까지 하늘에 있을 수는 없는 법, 이제 땅으로 내려가 놈들과 직접 병장기를 맞대고 싸워야 할 시간이다.
취이이이익!
연막탄이 터지며 마녀와 짐승의 시야를 가릴 때, 성현은 가볍게 착지했다.
살육의 시간.
앞을 가로막는 것은 모두 적.
그저 휘두르고 찌르면 된다.
성현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마녀를 향해 창을 찔러 넣었다.
‘퍽!’ 소리와 함께 마녀 셋의 얼굴이 꼬치처럼 꿰뚫렸다.
“인간 따위가!”
또 다른 마녀가 손에 검을 든 채 발악하며 달려들었다.
“죽어!”
하지만 마녀의 눈은 곧 기겁했다.
마녀가 휘두른 검.
그것이 성현이 손에 잡혀 있었다. 이어서 ‘콰직!’ 하고 그대로 분질러졌다.
“아…….”
마녀는 공포에 질린 눈동자로 성현을 바라봤다.
그녀는 인간을 음식으로 생각하던 자.
먹잇감으로 여겼고 예쁜 여자를 미식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앞에 진정한 포식자가 서 있었다.
“아아아악!”
성현의 손이 움직였다.
마녀의 배를 찢고 들어가 내장을 뽑기 시작했다.
마녀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다.
그저 바동바동 고통에 몸부림칠 뿐이었다.
그때 마녀의 얼굴에 자신의 쓸개가 툭 던져졌다.
“꺄아아아악!”
하지만 그 비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성현이 마녀의 심장을 손에 쥐고 터뜨렸기 때문이다.
“미, 미쳤어…….”
연막탄이 터졌다 해서 바로 앞도 못 보는 것은 아니다.
성현이 내장을 뽑아낼 때, 근처에서 보고 있던 마녀들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방금 죽은 마녀의 모습은 정말 끔찍했다.
쩍 벌어진 갈비뼈, 흉부와 배 속의 내용물은 없다.
혈관과 근섬유만 축 늘어져 삐져나왔을 뿐.
“계속해야지?”
성현은 건조한 목소리를 내뱉은 뒤 다시 몸을 움직였다.
마녀의 머리와 팔다리가 허공에 비산하기 시작했다.
아로드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렇게 대군을 끌어 본 적 없는 아로드나에게 지금 상황은 혼란일 뿐이었다.
마력은 되돌아왔지만 연막탄으로 가려진 저곳에서 어떻게 성현을 찾아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비명 소리가 끔찍하게 들릴 뿐이다.
그때, 아로드나의 옆으로 클로이가 양탄자를 탄 채 나타났다.
“당하고 있네?”
클로이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놀리려고 왔나?”
“내가? 왜?”
“됐다.”
클로이는 입술을 삐죽이며 연막으로 가려진 전투 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클로이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이 있었다.
‘……왜?’
아로드나는 분명 강하다.
서열 7위라는 계급이 그 강함을 증명한다.
‘하지만…….’
성현의 강함은 또 다른 영역이다.
일대일로 싸운다면, 순수한 힘의 전투라면 아로드나가 이기겠지만, 다수의 전투는 변수의 연속.
성현은 그 변수를 모두 계산한 채 싸우는 놈.
하지만 아로드나는 그 변수를 계산해 싸울 능력이 없다.
‘아로드나에게 시련을 주는 것일까? 아니면…….’
생각을 이어 가던 클로이의 눈이 반짝였다.
‘설마, 일부러 유성현을 죽이지 않기 위해?’
클로이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쓸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수많은 계산이 오가기 시작했다.
성현이 이길 확률.
아로드나와 그 대군이 성현을 짓밟을 확률.
‘아니야, 결국 죽을 거야. 살아남을 수 없어. 가능성은 제로야.’
아무리 유성현이라 해도 홀로 1만에 달하는 짐승과 5천의 마녀를 죽일 수는 없다.
아무리 허접해도 마녀도 존재.
지금은 성현이 압도하는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어느 순간 마력이 바닥나고 말 거다.
게다가 아로드나까지 이곳에 있다.
생각을 이어 가던 클로이가 양탄자에 벌러덩 누웠다.
‘무슨 생각이야?’
클로이는 플로르의 생각이 궁금했다.
플로르의 영역을 넘어 그 이상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고개를 틀어 다시 성현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유성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