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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219화 (219/252)

219화

* * *

존재들의 세상에서 랑그레누스라 불리는 사막.

성현과 이서아는 머리에 터번을 두른 채 그 사막을 걷고 있었다. 걸음이 바쁘다. 해가 뜨기 전, 최대한 많은 거리를 걸어야 해서다.

처음에는 자갈이 많아 걷기가 편했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이내 푹푹 빠지는 고운 모래가 이어지며 이서아의 체력은 빠르게 고갈되기 시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힘든 것은 똑같네요.”

녹색 배낭을 짊어진 이서아가 거칠게 변한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성현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틀어 이서아를 바라봤다.

“조금 쉬었다 갈까?”

“네.”

이서아는 허리를 굽힌 채 호흡을 조절했고 성현은 사막의 끝을 바라보며 회귀 전을 떠올렸다.

지연우의 지시를 따라 마지막으로 행했던 임무였을 거다. 한 존재와 지독한 싸움을 벌이고 다시 인간 세상으로 향하던 그때.

성현과 구악의 동료들은 길을 잃고 사막의 한복판을 해매고 있었다. 아무리 걸어도 끝이 없는 사막, 물은 줄어 갔고 먹을 것은 바닥을 보였다.

‘그때, 이서아가 발견했었어.’

이서아의 붉은 눈은 신기루처럼 솟아난 절벽을 찾아냈다. 그곳에 물이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다 죽어 가던 성현과 구악의 동료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고 비르기우스라는 이름의 동굴을 찾을 수 있었다. 그곳에 시간을 되돌리는 양피지가 있다.

“그럼, 다시 갈까요?”

이서아가 허리를 펴며 힘차게 말했다.

“조금만 참아. 거의 다 왔으니까.”

잠시 쉬었다고 힘이 났는지 이서아가 성현의 옆으로 쪼르르 다가섰다.

“그런데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양피지는 왜 찾으려 하는 거예요?”

“뭘 것 같아?”

“글쎄요?”

이서아는 미래를 보는 눈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완벽한 미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현 상황을 토대로 가장 확률 높은 미래를 떠올리는 것. 물론 그것만 해도 엄청난 적중률을 보이지만, 지금부터 성현이 할 일은 절대 맞힐 수 없을 거다.

“양피지에 있는 힘을 흡수해 보려고.”

“……네? 뭐라고요?”

“얼마 전에, 유르라헬의 성을 공격했는데, 그중에 생체 에너지를 흡수하는 놈이 있었어.”

처음으로 유르라헬의 성벽을 침공하던 날, 기습을 막기 위해 기동대가 내려왔고 그중에 생체 에너지를 흡수하는 놈이 존재했다.

덤벼들던 사체가 빨려 들어가듯 놈의 손에 달라붙었던 일.

성현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너도 할 수 있냐고.’ 마법사에게 물었었다. 당시 마법사의 대답은 시원했다.

-이 세상에 펼쳐진 권능 중에 내가 못 할 것은 없어. 지르힐의 번개 역시 펼칠 수 있지. 위력은 떨어지겠지만.

앞으로 성현이 움직여야 할 사체가 몇이 될지 모른다. 수 만, 수십만 어쩌면 수천만을 넘어선 숫자.

그것들을 제어하기 위해선 많은 마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사용해도 몸이 부풀어 터질 것처럼 솟구치는 마력.

성현은 그 마력을 얻기 위해 며칠이나 고민했고 단순히 노력으로 얻을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마력을 얻는 방법은 하나야.”

훔치는 거다. 남의 마력을 자신의 것으로 채워 넣는 것뿐이다.

그래서 또 고민했다. 어떤 마력을 훔쳐야 할까, 계약자를 모아 놓고 싹 쓸어버릴까, 아니면 군주급 존재를 찾아다니며 약탈을 감행할까.

“그런데, 티끌 모아 티끌이라고 하잖아. 강령술을 사용할 만큼의 마력은 모이지 않을 것 같더라고.”

“……그래서 가는 거예요?”

“어.”

시간을 되돌리는 양피지, 그 안에 담긴 마력이 얼마가 될지 예상조차 할 수 없다.

“위험해요.”

이서아는 단호히 말했다. 그녀는 그 양피지를 직접 사용했던 자. 생각만 해도 위험하다. 인간의 몸으로, 칼만 대도 상처가 나는 연약한 피부로 담을 수 있는 마력이 아니다.

“그건 최고위급 존재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에요. 견딜 수 없어요.”

“그래?”

하지만 성현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어떻게 보면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막무가내. 이서아가 한숨을 내뱉었다.

“막 태어난 갓난아기가 지구를 손에 쥐어 부술 수 없죠? 계란 하나를 던져 태산을 무너뜨릴 수 없죠? 이건 지연우나 플로르를 상대로 싸우는 것과 달라요. 거기는 작게나마 확률이라도 있지만, 이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에요.”

성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해 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잖아.”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 봐야 아는 게 아니잖아요!”

“가자.”

성현은 다시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이런 식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릴 뿐, 성현은 직접 해 보기 전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 * *

“전과 조금 다르네.”

“우리가 여기 온 시기가 다르니까요.”

성현과 이서아는 바위틈에 숨어 비르기우스 동굴을 살펴보고 있었다.

회귀 전 이곳에 왔을 때, 동굴 앞에는 어떤 것도 없었다. 그저 내부에 살벌한 기관 장치가 숨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보이는 게 있다. 인간과 비슷한 외모, 그렇다고 존재는 아니다. 존재는 인간이 이상적으로 그릴 만큼 아름다운 모습으로 생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갈색의 피부에 귀가 긴 짐승, 키는 약 2m 50cm, 창을 손에 쥔 채 병사처럼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따금 높아 보이는 짐승이 오갔고 횃불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사회화가 진행된 것처럼 느껴진다.

“숫자가 몇이나 될까?”

성현의 속삭임에 이서아가 동굴을 또렷이 바라봤다. 그녀는 동굴 앞의 상황을 살피고 과거에 들어갔던 내부를 떠올리며 안에 있을 병력을 가늠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3천 정도예요.”

“3천…….”

성현은 다시 힐끔 동굴을 살폈다. 3천이라는 숫자는 부담이 된다. 하지만 동굴의 크기를 보면, 놈들이 한꺼번에 나타날 수는 없다. 한 번에 3천의 병력을 상대할 일은 없다는 거다.

“양피지는 있을 것 같아?”

“네. 있어요.”

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 전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양피지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서아는 양피지의 존재를 확신했다.

이서아가 계속 입을 열었다.

“저들은 양피지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짐승이에요. 태초의 시간부터 이곳에서 양피지를 지켰죠.”

“그런데, 우리가 갔을 때는 왜 사라진 거야?”

“글쎄요. 그것까지는 모르겠네요.”

“뭐, 됐어.”

짐승이 왜 사라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저곳에 양피지가 있다는 게 중요한 거다. 성현이 몸을 일으켰다.

“지켜보고 있어.”

“네.”

이서아는 품에서 과자를 꺼내 입에 물었다. 소멸의 바다에서 나온 이후, 이서아의 권능은 과거와 똑같이 미래를 보는 눈만 남았다. 전투는 성현의 몫이다.

파아앙!

성현이 부채를 창으로 바꾸며 놈들을 향해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지키고 있던 짐승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삐이이익!

절벽에 달려 있던 횃대에 불꽃이 화르륵 치솟아 오르며 대낮처럼 밝아졌다. 이어서 동굴 안에서 놈들이 쏟아져 나왔다. ‘두두두두!’ 땅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모래 먼지가 ‘확!’ 일었다. 놈들은 어떤 망설임도 없이 성현을 향해 달렸다.

“와라.”

성현은 창을 빙글빙글 돌리며 살벌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짐승을 바라봤다. 그리고 창의 공격 범위를 설정했다. 한 놈이 그 범위 안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서걱!

성현의 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휘둘러졌고 놈의 머리가 허공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어서 성현의 몸 주변에 수십 개의 스파크가 공처럼 만들어졌다.

파지지직!

이 스파크는 공격용이 아니다. 성현의 주변에 맴돌며 놈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방어하기 위함이다. 놈들의 주 무기는 창이지만, 성현의 창보다 길이가 짧다. 거리를 두면 손쉽게 이길 수 있다.

게다가 방금 목이 떨어져 나가며 쓰러졌던 사체가 몸을 일으켰다.

‘강령술.’

적이 많을수록 강령술을 빛을 낸다. 주변에 사체와 비명이 쌓일수록 강령술은 강해진다.

성현은 사체가 싸우고 있는 사이 바닥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놈들의 머리 위에 번개가 떨어졌다.

콰르르르릉!

놈들의 창끝에 번개가 닿았고 사방이 지옥으로 변했다. 번개는 놈들의 몸을 뚫고 지나 땅에 분산된 후에도 여전히 파직거렸다.

“크아아아악!”

번개에 맞은 놈이 시커멓게 타 죽었다. 성현의 창에 닿은 놈은 팔다리가 분리됐다. 쓰러진 놈은 다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동료였던 자의 어깨를 물어뜯는다.

썩둑!

성현의 창이 한 짐승의 몸을 양단했다. 주먹에 맞은 놈은 뼈가 으그러졌다.

성현의 전투는 점점 더 거칠어졌다. 어느새 사막의 바닥에 피 웅덩이가 생겼고 그곳에 번개에 맞아 타 죽은 짐승이 엎어졌다.

이서아가 숨어 있는 바위에도 ‘철퍼덕!’ 짐승의 내장이 떨어졌다.

랑그레누스 사막의 밤은 춥다. 낮에는 살이 익을 것처럼 해가 내리쬐지만 밤에는 영하로 떨어진다. 내장에서 김이 모락모락 흘러나왔다.

이서아는 힐끗 참혹한 현장을 바라보며 다시 과자를 아삭 씹었다. 관심 없는 것처럼 애써 연기하는 거다. 하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제발…….’

이서아는 이런 게 싫었다. 짐승을 상대로 싸우며 짐승이 되어 가는 성현을 보는 것도 마음이 아팠다.

그나마 회귀 전 성현은 그저 건조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회귀 후 어떤 끔찍한 일을 겪었는지 점차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게 느껴진다. 전투를 지켜볼 때면 인간이 아닌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제발!’

이서아는 기도하듯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 모를 창조주를 향해 외쳤다.

이 세상을 방관하지 말아 달라고.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 달라고.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이서아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짐승의 비명은 사라졌다.

고요한 사막, 역겨운 피 냄새가 없었다면 평온하게 느껴질 정도다.

“됐어. 나와.”

성현은 입구를 지키고 있던 수백의 짐승을 일순간에 몰살시켰다.

이서아는 어두웠던 표정을 지운 채 밝게 미소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과자를 ‘아삭’ 씹는다.

“벌써요? 역시 대단하세요.”

“들어가자.”

* * *

또 다른 사막의 한복판.

그곳이 짐승과 존재로 새까맣게 채워져 있었다. 그 숫자가 몇이 될지 모른다. 셀 수도 없다. 수억, 수십억…….

그런데, 그 많은 것들이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팽팽한 긴장감만이 그 사이를 가르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플로르와 그리피네의 병력, 그들이 사막을 빽빽할 정도로 채운 채 서로를 노려본다.

그리고 서로는 알고 있다, 전쟁의 신호가 울리면 서로를 죽여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비장한 눈으로 앞을 바라봤지만 후들후들 떨리는 몸을 멈춰 세울 수는 없었다.

그리고 ‘둥둥둥둥둥!’ 그들의 심장 소리에 맞춰 북소리가 울렸다. ‘뿌우우우!’ 나팔 소리가 세상을 채웠다. 짐승이 포효하고 적막했던 사막이 축제가 난 것처럼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동시에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던 그들이 중얼중얼 기도했다.

어딘가에 봉인되어 있을 여신 로안에게 전하는 기도.

자신들의 죽음을 소멸의 바다로 보내지 말아 달라는 애원.

그 모든 것은 전쟁이 시작된다는 신호.

“창!”

그 말에 가장 앞줄을 차지하고 있던 마인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체중을 앞으로 실으며 창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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