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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220화 (220/252)

220화

* * *

성현은 한 손으로 이서아를 둘러업은 채 동굴 안을 달리고 있었다. 한 발, 두 발 땅에 내디딜 때마다 점점 속도가 붙는다. 곧 일반 사람의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액!

“오른쪽요!”

이서아가 다급히 외쳤고 성현의 눈동자가 다급히 틀어졌다. 동굴 벽에 구멍이 숭숭 뚫리더니 화살이 드러나고 있다. 그 숫자가 수만 발은 되어 보인다.

“피할 수는 없어요!”

화살을 피하려면 수천 미터를 더 전진해야 한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저 먼 거리를 벗어날 수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막아야 해요!”

성현이 창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자 창이 곧 방패로 바뀌고 동시에 동굴 벽의 구멍에서 화살이 쏘아졌다.

터터터터텅!

분명 화살이다. 그런데 포탄을 막는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큽!”

그것도 한 발이 아니라 수십 발. 빠른 속도로 달리던 성현이 주르륵 밀려났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이번엔 위!”

이서아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동굴에 설치된 함정은 쉬지 않고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성현은 방패를 머리 위로 옮겼고 터터터터텅, 방패에 맞으며 튕긴 화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직 멀었나?”

“잠시만요.”

이서아가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 동굴은 미로처럼 꼬여 있어요.”

이 동굴은 미로다. 그것도 시시각각 방향을 바꾸며 공간 지각 능력에 혼란을 준다. 길을 찾았다 해도 그곳에 도달했을 때는 막다른 길이 되고 만다. 이서아의 미래를 보는 눈이 없다면 길을 찾는 게 불가능하다.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아요.”

“어디?”

“좌측요!”

그때 ‘드르르륵!’ 소리와 함께 공간이 뒤틀리며 좌측에 길이 생겼다.

“저기!”

성현은 몸을 틀어 그 길을 향해 달렸다.

“늑대가 나타날 거예요!”

“몇 마리?”

“글쎄요. 하도 많아서 세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성현의 팔에 매달린 이서아가 어깨를 으쓱거렸고 곧 동굴의 끝에서 거대한 늑대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이서아의 말대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무리가 많다.

성현은 한숨을 내뱉으며 이서아를 내려 뒀다.

“뭔가 이상해.”

성현은 잠시 회귀 전 이곳을 찾았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 늑대의 무리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함정으로 놓인 기관이 골치 아팠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한 마리, 한 마리가 엄청난 마력을 가진 늑대. 저런 놈이 수백 마리가 있다.

잠시 놈들을 지켜보던 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저런 놈들이 이곳에 왜 있는지 궁금해할 때가 아니다. 어떻게 싸워 이겨야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정상적인 힘으로 늑대와 싸워 이길 수는 없어.’

성현의 몸이 갑주로 뒤덮였다.

“간다.”

성현이 지면을 박차고 콰아아앙, 늑대의 무리로 몸을 날렸다.

잘린 늑대의 머리가 동굴 벽에 처박혔고 성현의 다리를 늑대가 물어뜯으며 사방에 피가 튀어 올랐다. 하지만 성현은 계속해서 창을 휘두르며 늑대를 베고 찔렀다.

성현이 싸우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이서아는 다시 성현을 위해 기도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다.

-눈을 감아라.

낯설고 냉랭한 여성의 목소리가 이서아의 머릿속을 스쳤다. 이서아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감으라고 했다.

명백한 명령조,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죽일 것 같은 살기, 이서아는 마른 입술을 핥으며 눈을 감았다.

-눈을 떠라.

이서아가 다시 눈을 떴다. 그러자 시야가 바뀌었다. 온 세상이 검게 변해 있다. 위도 아래도, 좌와 우도 모두 검다. 그리고 그 앞에 금빛 눈동자가 보였다. 태양처럼 이글거리며, 자신도 모르게 숭배할 것 같은 그 눈빛.

이서아는 눈동자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지, 지르힐 님을 뵙습니다.”

이서아는 무릎을 꿇은 후 고개를 숙였다. 상대는 지르힐이다. 모든 것을 감정적으로 대하며 세상 모든 것에 두려움을 준다는 버림받은 악.

그 지르힐의 눈동자가 이서아를 향해 스르륵 다가왔다. 그리고 이서아의 몸을 살피던 그 눈동자에 의문이 사렸다.

-날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어떤 생명체고 지르힐의 눈빛을 처음 마주하면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어 대고 공포에 짓눌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다.

그런데 이서아는 달랐다. 두려워하지 않았다. 성현의 존재가 지르힐이며, 소문과 달리 친절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 지르힐 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 이야기? 그래, 유성현이 날 보고 뭐라 하더냐?

“……소문과 달리 마음이 넓은 분이라 했습니다.”

이서아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르힐의 금빛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봤다. 지르힐이 깔깔깔 웃었다. 그리고 금빛 눈동자가 가늘게 떠지며 이서아를 바라봤다.

-틀렸다.

“……네?”

-난 유성현에게만 마음이 넓다.

이서아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물러섰다. 이제 보니 지르힐의 눈빛은 살벌하거나 살기등등하지 않다. 그저 무심하다. 백상아리가 먹잇감을 바라보는 것처럼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생명체에게는 가차 없지.

지르힐의 눈빛을 마주한 이서아의 표정, 평온했던 그 얼굴이 겁에 질려 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지르힐의 금빛 눈동자가 기분 좋게 휘어졌다. 두려움에 가득 찬 생명체를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됐다. 편히 있으라. 묻고 싶은 게 있어 너에게 왔다.

“마, 말씀하십시오.”

-회귀…….

“네?”

-그게 무엇이냐? 정말 가능한 일이더냐?

이서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회귀’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지르힐의 금빛 눈동자가 성큼 다가섰다. 이서아의 모든 것을 살피듯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너희는 정말 시간을 되돌렸느냐?

이서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지르힐은 세상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 시간이 되돌아갔다는 것은 창조주의 룰에 어긋나는 것, 그 규칙을 어겼다는 것을 알게 되면, 지르힐은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 이서아의 미래를 보는 눈에도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말하라.

지르힐이 재촉했다. 이서아는 여전히 갈등했지만 거짓말을 하기는 어렵다. 지르힐의 금빛 눈동자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그러니까…….”

* * *

그 시각, 플로르의 성.

플로르는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막에 심겼기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말라비틀어진 꽃, 플로르의 눈에 상심이 가득했다.

“어머니! 어머니!”

탁탁탁 빠른 발소리가 들리며 신하 한 명이 다급히 달려왔다. 그리고 그가 플로르 앞에 서서 빠르게 입을 열었다.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전황을 말씀드리면, 우리 측 창병이 그리피네의 기마병에 무너졌고! 원거리 마력을……!”

전쟁의 초반, 플로르의 군대는 밀리고 있었다. 먼 사막에서 시작된 비명이 이곳까지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플로르는 신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안쓰러운 눈으로 꽃을 바라볼 뿐이다.

“또 실패야…….”

“네?”

“실패라고.”

“아, 아직 초반이라 시간이 지나면…….”

신하는 플로르가 말한 ‘실패’의 뜻을 전쟁에 연관 지었다. 하지만 플로르의 관심은 꽃에 집중되어 있다. 그녀의 손이 말라붙은 꽃을 향해 뻗어졌다.

“또 실패야…….”

플로르는 이 성에 갇히면서부터 지금껏 사막에 꽃을 심으려 했다. 창조주의 저주에 따라 가장 척박한 땅에 감금된 이후 계속해서.

하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모든 식물과 작물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이제야 그 뜻을 이해한 신하가 긴박하게 말했다.

“어머니! 지금 중요한 것은 꽃이 아니라, 우리 측 군대가……!”

그런데 플로르는 이번에도 신하의 말을 듣지 않았다. 뻗었던 손으로 마른 꽃을 쥔다. 그러자 꽃은 사르륵 바스라지며 사라져 버렸다. 플로르의 눈매가 씁쓸하게 휘어졌다.

“내 백성은 꽃을 사랑했지. 도심 어느 곳을 가도 정원을 볼 수 있었어. 그런데 이게 무엇이냐?”

“어, 어머니…….”

“이 모든 것이 창조주의 변덕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우리가 저주받을 짓을 한 게 있더냐? 우린 룰을 지켰고 관리자가 룰을 어겼어. 우린 관리자를 막기 위해 에느가인을 원했던 게야.”

플로르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하얀 손에 쥐였던 꽃은 흔적도 없다.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간 거다. 플로르가 아쉬운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손을 툭툭 털며 신하를 바라봤다.

“그래, 뭐라고 했느냐?”

“우, 우리 측 부대가…….”

“밀리고 있다고?”

“아, 네.”

“그게 어쨌다는 거냐?”

“네?”

신하는 이제야 봤다. 플로르의 눈동자에는 어떤 감정도 들어 있지 않다. 저 눈빛은 태초의 전쟁에서 싸웠던 지르힐처럼 느껴진다. 누가 죽든 말든 상관없는 눈빛, 자신의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생각.

“그, 그러니까…….”

그 순간, 플로르의 얼굴에서 감정 없는 눈빛이 사라졌다. 이내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길 게다. 걱정하지 마라.”

“아, 네. 어머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런데 내게 보고할 말은 그게 끝이더냐?”

“하나 더 있습니다. 존재의 계약자들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인간들이 전쟁을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

성으로 들어가던 플로르의 걸음이 뚝 멎었다. 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신하에게 틀어졌다.

“인간들이 전쟁을?”

“네.”

“자기들끼리 싸우는 게냐?”

“아닙니다.”

“그럼?”

“우리에게 대항할 것 같습니다.”

신하의 말과 동시에 플로르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정말 순수한 미소를 활짝 그렸다.

* * *

성현의 주먹이 휘둘렸고 ‘콰직!’ 소리와 함께 늑대의 머리가 짓이겨졌다.

사방으로 늑대의 뇌수가 비산하며 성현의 투구에도 팍, 핏물이 튀겼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동굴은 적막했고 성현의 갑주에서 핏물이 떨어지는 소리만 뚝뚝 들려왔다.

성현이 창을 툭툭 털어 내며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바닥을 채운 수많은 늑대가 보인다.

성현이 사체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늑대의 사체 중 100여 마리가 몸을 일으켰다.

“이놈들을 앞세우면 기관이 어디에 장착되어 있는지 더 쉽게 알 수 있겠어.”

동굴은 함정으로 가득하다. 이서아의 미래를 보는 눈이 있어도 모든 것을 피하기는 어렵다. 성현은 늑대를 먼저 보내 함정을 예측하기로 계획했다.

그리고 갑주의 투구 부분만 벗으며 이서아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그런데 이서아가 겁에 질려 있다. 늑대와 싸운 것은 성현인데, 눈동자에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다. 마치 죽음을 경험한 것처럼 몸을 파들파들 떠는 중이다.

“왜 그래?”

성현의 질문에 이서아가 억지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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