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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222화 (222/252)

222화

8개의 동상이 성현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왔다.

크기는 약 5m.

놈들이 성현을 에워쌌다.

-창조주는 말씀하셨다. 생명체의 가운데 내 종이 있으라. 그 종은 찾아온 너희가 아니니, 이곳을 지키는 우리가 너를 죽이리라.

놈들이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일 때였다. 성현은 이서아를 향해 손짓했다. 위험하니, 비켜서라고.

놈들은 위험하다. 에워싼 게 전부인데, 압도적인 위험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후웅!

거친 소리와 함께 석상의 주먹이 휘둘렸고 성현은 발을 뒤로 움직이며 놈들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무리다. 놈들의 숫자는 여덟, 뻗어진 주먹도 여덟, 그 모든 것들의 속도와 파워가 만만치 않다. 피할 수 없다. 성현은 다급히 몸을 웅크려 급소를 보호했다.

콰직! 콰직! 콰직!

8개의 주먹이 일제히 성현의 몸을 강타했다. 갑주가 우그러졌고 성현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한 방, 한 방이 트럭에 부딪힌 것 같다. 뼈가 으스러진 것 같다. 갑주를 손에 얻은 후 처음 느껴 보는 충격이었다.

‘큽!’

놈들의 첫 공격이 끝났을 때, 성현은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너희가 좀 도와줘야겠어.’

그러자 지금껏 함께했던 늑대의 사체들이 석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카아아아악!

강령술에 지배된 늑대는 두려움을 모른다. 그저 성현의 손짓에 꼭두각시처럼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그 앞을 한 석상이 막아섰다.

-난 창조주의 뜻에 따라 죽음의 권능을 받은 야마라자. 창조주께 여쭈어봅니다.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이 어린 생명을 어찌하오리까? 나의 축복으로 영면을 허락하게 하소서.

그 말과 동시에 늑대의 몸이 부풀어 올랐다. ‘퍽!’, ‘퍽!’ 소리와 함께 터졌다. 사방에 늑대의 살점과 내장이 쏟아졌다. 그리고 성현의 얼굴에도 늑대의 피가 튀었다. 그 피가 흐를 때, 또 다른 석상이 앞으로 나섰다.

-나는 물을 관장하는 바루나. 넌 고통 속에 몸부림칠 것이다.

석상의 손에 검은 마력이 휘몰아쳤다. 곧 거대한 물방울이 만들어졌고 성현을 향해 쏘아졌다. 성현은 동굴의 벽을 타고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끝까지 성현을 뒤쫓았고 성현은 결국 ‘퍽!’ 소리와 함께 물방울 안에 갇혀야 했다.

-호흡하지 못하는 고통. 폐부에 물이 차오르는 순간을 맞이하라.

석상은 거만하게 말했다. 그리고 성현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상대는 성현이다. 고통을 참는 것에는 이골이 난 사람.

‘쫑알, 쫑알 시끄럽네.’

성현은 인상을 구기며 자신을 ‘바루나’라고 말한 석상에게 달려들었다. 놈의 눈이 반짝였다.

-참고 움직인다는 게냐? 그래, 끝까지 발버둥 쳐라. 너의 그 춤에 창조주는 즐거워하실 게다.

성현은 놈에게 달려들며 나모르와 싸우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 나모르를 숭배하던 신자들. 그들이 외치던 ‘영생’이라는 단어. 지금 앞에 있는 석상도 그 신자들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성현이 땅을 박차며 놈의 목에 매달렸다. 그러자 석상 바루나가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크게 웃었다.

-고작…… 나에게 달라붙기 위해 달려든 게냐? 그런데 네가 내 몸에 오를 수 있는 것은 내가 허락했기 때문이다. 네 여린 손으로 내 목을 꺾을 수…….

‘안 꺾어.’

속으로 한 말이다. 그런데, 석상은 그 목소리를 들었다.

-뭐?

‘창조주가 너희를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최초에 만들어진 것은 지르힐과 마법사야.’

곧 파직거리는 전기가 성현의 온몸을 휘감았다. 성현의 몸은 물방울에 갇혀 있고, 석상의 몸은 물에 젖은 상태.

‘석상에도 통하나 궁금하네.’

-……!

파지지지직!

전기는 석상의 온몸을 타고 내렸다. 그리고 그 충격은 석상에도 통했다. 놈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크으으읍!

놈은 신에게 직접 권능을 받았다고 자부심을 토해 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토해 내는 것은 고통을 참는 신음이다. 보잘것없는 성현의 권능 앞에 철저히 고통을 느끼고 있다.

‘통한다.’

놈들이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지르힐의 권능이 통한다는 것은 이길 수 있다는 것.

성현이 들고 있던 창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자 그것이 너클이 되어 손에 쥐였다.

“이제 죽어라.”

성현이 주먹을 휘둘렀다. 그때마다 ‘쩌어어억!’ 둔탁한 소리가 들리며 석상의 피부가 으깨졌다. 그 돌이 사방으로 튀었다.

석상은 성현을 떼어 내기 위해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성현은 고목나무에 매달린 매미처럼 딱 달라붙은 채 계속해서 주먹을 찍었다.

성현은 갑주를 입어 온몸이 마력으로 가득 찬 상태였고 너클은 고대의 무기가 변한 것이다. 아무리 석상이라 해도 그 충격을 이기기는 힘들었다.

쩌억! 쩌억! 쩌억!

석상이 눈을 찡그리자 성현을 감싸고 있던 물방울은 어느새 사라졌다. 놈의 정신력이 흔들리고 있는 거다. 자신만만해하던 석상이 비틀거렸다.

-이런 개새×가!

결국 석상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그 꼴을 볼 수 없었던 다른 석상이 성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석상의 손에서 불꽃이 화르륵 타올랐다.

-나는 아그니, 뜻에 따라 불의 권능을 얻었으며…….

하지만 이미 물방울에 당했던 성현이다. 놈들의 마력에 순순히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성현은 석상의 몸을 밟으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너클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 대더니 다시 창으로 바뀌었다.

“아그니라고? 난 유성현.”

허공에 선 성현이 창을 빙그르 돌리며 자신을 ‘아그니’라 밝힌 석상을 겨눴다.

“라이트닝…….”

하지만 성현은 권능을 사용할 수 없었다. 갑자기 날아온 주먹 때문이다.

꽈지지지직!

성현은 복부를 가격당하며 중심을 잃었고 동굴 벽에 맞고 튕겼다.

콰당탕탕!

요란한 소리가 들리며 성현은 입술을 씹었다. 입에서 핏물이 흐르고 있다. 제대로 맞은 주먹에 내장이 터진 것 같다.

‘하…….’

성현이 고개를 저으며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석상은 성현을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성현을 때린 석상에게 주목하는 중이다. 그 석상이 나머지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착각하지 마라. 우리는 유희를 즐기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지금 하는 말을 들으면, 물을 사용하는 석상이나 불을 사용하는 석상이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 즉, 성현을 가지고 놀았다는 뜻이다.

그 석상이 계속 말했다.

-우리는 이곳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거다. 생명체 따위와 놀 생각 하지 말고 박살 내라.

모든 석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차가운 시선들이 다시 성현에게 틀어졌다. 성현이 빙긋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조금 더 잡담 나눠도 괜찮아. 나도 좀 쉬게.”

한편, 이서아는 긴장된 숨을 내뱉고 있었다. 전투의 권능과 상관없는 그녀도 석상이 얼마나 강한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아무리 적게 생각해도 최상급 귀족. 하나하나가 군주급에 가까운 권능.

‘정말 창조주가 만들었다고?’

이서아의 눈동자에 의문이 들었다. 회귀 전, 성현과 구악의 멤버가 이곳을 찾았을 때 저런 석상은 없었다. 이곳을 지키는 것은 그저 기관이 전부였다.

‘그런데 저런 것들이 왜 있는 거지?’

이서아의 눈에 수백 가지의 상황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리고 가장 높은 확률의 두 가지를 염두에 두었다.

하나, 성현의 회귀로 현재가 완벽하게 뒤틀어졌다는 것.

지금 벌어지는 일은 과거 있었던 것과 모든 것이 달라졌다. 지연우가 죽었고 인간 세상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마법사의 망령이 나타났고, 어쩌면 지르힐까지 풀려날 수 있다.

그렇게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나비효과가 이 동굴에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는 거다.

‘그리고 또 다른 가능성은…….’

회귀 전과 비교하면 성현과 구악의 멤버가 이곳에 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후다. 당시 이런 석상과 짐승이 없었던 것은.

‘우리가 오기 전에 다른 존재가 이곳을 찾았을 수 있어. 그 존재가 모든 것을 박살 낸 거야.’

하지만 두 번째 가능성 역시 의문이 남는다.

‘다른 존재가 찾았다면, 그 존재는 왜 양피지를 가져가지 않았지?’

양피지는 난해하지 않다. 과거로 회귀할 수 있는 방법이 친절하게 적혀 있다. 석상마저 박살 냈던 존재가 그것을 놓고 갈 이유는 없다.

‘대체 뭐야…….’

이서아의 눈에 의문이 가득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이서아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창조주가 만든 석상, 석상은 그것을 지키고 있어. 에느가인이 있을 것이라며 오해할 수 있는 거야. 에느가인을 광적으로 원하는 존재는…….’

존재 중에 에느가인에 미쳐 있는 것은 둘이다. 바로 플로르와 그리피네. 그중에 플로르는 갓난아기의 배를 찢으면서까지 에느가인을 찾으려 한다.

‘플로르가 여기에 왔었던 것일까?’

생각을 마친 순간, 이서아의 눈에 그 당시가 보였다.

* * *

또각또각. 동굴 안에 하이힐 소리가 울렸다.

날아오는 화살과 늑대의 공격이 이어졌지만 플로르는 고고하게 걷는 게 전부다.

화살도 늑대의 이빨도 플로르에게 닿기 전에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플로르는 어떤 위협도 받지 않은 채 동굴의 입구에 섰다.

그리고 지금과 똑같다. 석상이 움직였고 플로르를 공격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성현은 석상의 공격에 고전하고 있지만 플로르는 손짓 한 번으로 끝냈다. 그녀의 마력에 8개의 석상들이 그대로 굳어 버린 거다.

플로르는 건조한 눈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제단에 놓인 양피지를 향해 또각또각 걸어갔다. 양피지를 손에 쥔 플로르가 눈을 찌푸렸다. 에느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플로르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그녀에게 과거는 지옥과 같다. 지르힐을 두려워했고 마법사의 보복을 걱정했다. 플로르는 그런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당시보다 행복한 지금이 낫다. 이런 물건은 없는 게 속편한 거다.

플로르는 양피지를 쫙쫙 찢었다. 그리고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플로르가 사라진 제단, 찢긴 양피지가 빛을 내며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양피지에는 마력이 담겨 있고 찢어져도 다시 복원될 수 있도록 장치되어 있었다.

* * *

이서아의 생각이 멎었다. 흩어졌던 퍼즐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서아는 양피지에 담긴 그 엄청난 마력을 봤다.

‘양피지에 담긴 마력을 온전히 흡수할 수 있다면, 어쩌면…… 군주급의 마력을 얻을 수도 있을 거야.’

그럼 존재와의 전쟁에서 승률이 조금 더 올라간다. 하지만 그것은 석상을 이겼을 때, 그리고 성현이 양피지의 마력을 견뎠을 때에나 가능한 일.

지금은 8개의 석상도 이기기 어렵다. 갑주는 이미 우그러져 있고 벌어진 틈으로 피가 뚝뚝 흐르고 있다. 성현의 몸에 가득했던 마력도 구멍 난 독에 물이 부어진 것처럼 줄줄 새어 나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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