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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230화 (230/252)

230화

서은서는 이서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질투가 심해서 죽는다고요?”

이런 뜬금없는 말이 있나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되물었다.

“그게 무슨……?”

하지만 대답을 듣기는 어려웠다.

두 사람의 옆으로 다가온 남자,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는 짐승의 땅에 살던 낭인, 그들의 지휘관이다.

“언제 시작하죠?”

낭인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하나, 이창민 중사는 성현이 군대를 제대한 후 계속해서 짐승의 땅을 토벌했다. 그리고 꽤 많은 낭인과 손잡았다.

무기를 얻은 후에는 이들을 훈련시켰고 전차와 자주포 등을 조작하는 방법을 익히게 했다.

물론, 현역 군인들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장비를 운용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름 수준급이다. 전투에서 꽤 훌륭한 역할을 할 거다.

“우리는 준비 끝났어요.”

“잠시만요…….”

서은서가 시선을 틀어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박상문 하사를 향했다.

박상문 하사는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 진지한 눈동자로 어둠을 응시하며 담배 연기를 내뱉는다. 그 눈빛이 조금은 슬퍼 보인다.

“박 하사님?”

서은서가 몇 번 불렀지만 박상문 하사는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서은서가 그 앞으로 다가가서 옷깃을 살짝 쥐고 나서야 몸을 틀었다.

“네?”

“저기…… 저분들이 묻네요, 언제 시작하는지?”

서은서도 이 작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박상문 하사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서은서가 옆에 선 사내를 가리켰고 박상문 하사가 그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창민 중사의 권능에 의해 사체가 이동해 오는 중이다. 깔끔했던 사막에 사체가 쌓였고 피 냄새와 썩은 내가 진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성현은 놈들의 사체가 수만 구가 넘는다고 말했었다. 그 숫자를 계산하며 박상문 하사가 입을 열었다.

“새벽 1시에서 2시는 되어야 할 것 같은데요.”

“4시간 정도 남았네요.”

“조금 쉬고 계세요”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돌아가지 않고 박상문 하사를 향해 물었다.

“약속했죠? 이 싸움에서 이기면 다음은 인간과의 전쟁인가요?”

“아뇨, 다음도 존재와의 전쟁일 거예요. 하지만 그 다음은…… 우리가 원하는 싸움을 하겠죠.”

이들이 원하는 싸움은 인간의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자다.

이들이 낭인이 된 이유, 살던 터전을 버리고 척박한 짐승의 땅으로 들어갔던 것, 그 모든 것은 권력자들의 욕심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그들의 땅을 빼앗았고, 죄 없는 자를 죄인 취급했으며,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이들의 생명을 빼앗으려 했다.

그들과 싸울 수 있다는 말에 사내의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사내가 눈동자를 움직여 사막에 놓인 병장기를 바라봤다.

가득 쌓인 자주포와 전차, 그리고 사방에 놓인 기관총.

낭인들은 이제 저 무기를 들고 존재를 부순 후 권력자를 공격할 거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한다.

권력자의 자식이란 이유로 남들의 노력을 짓밟을 수 없는 세상, 권력자의 목소리에 기죽어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 적어도 상식이 통하는 합리적인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잠시 후, 성현과 이창민 중사가 돌아왔다.

이창민 중사는 파김치가 된 얼굴로 모랫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박상문 하사를 향해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뻗었다.

“물 좀 줘라.”

박상문 하사가 물을 건네며 고개를 갸웃 거렸다.

“소환해서 드시지 그랬어요?”

“야…… 내 꼴을 봐. 그럴 힘이 있겠어?”

박상문 하사가 주변을 슥 둘러봤다.

사체가 가득하다. 1만, 2만…….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체가 있는지 셀 수도 없다. 저 많은 사체들을 이동시켰으니 이창민 중사의 마력이 바닥나는 것도 당연하다.

이창민 중사가 거친 숨을 토해 내며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기를 슥 닦은 뒤 철퍼덕 모랫바닥에 누워 버렸다.

“30분 동안 잘 거니까, 그 전에는 깨우지 마. 존재가 기습을 해도 난 깨우지 마. 네가 다 막아. 알았지? 네 권능 사용하는 거 허락할게.”

“진짜요? 진짜 사용해요?”

이창민 중사가 슬쩍 박상문 하사를 흘겨봤다. 그리고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사용하면 죽는다.”

“예, 충성입니다. 어서 주무세요.”

이창민 중사는 쯧, 혀를 차며 눈을 감았다.

성현이 전쟁을 준비하는 동안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해야 한다. 마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소환 능력을 사용하는 동안 계속해서 회복제를 먹었지만 그것만으로 모자랐다. 지금은 쉬는 게 최고였다. 그래야 민폐가 되지 않는다.

“30분.”

이창민 중사가 잠에 들고 있을 때, 성현은 일행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손을 하늘로 뻗었다. 곧 검은 마력이 일렁거렸다. 이곳은 빛줄기 하나 없는 어둠 속이다. 성현의 마력은 그 어둠에 스며들었다. 성현이 어떤 권능을 펼치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하면 되나?’

성현의 질문에 마법사가 대답했다.

-아니, 조금 더 파장을 넓게 하라. 농도가 짙을 필요는 없다.

성현은 그리피네의 통신 마법을 끊는 중이었다. 전투가 일어난 후 그리피네는 고립되어야 한다. 그녀의 지시에 전장에 나갔던 군대가 복귀하면 그야말로 낭패.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은 사막의 주검이 되어 목숨을 잃을 거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피네의 목소리는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할 거다. 통신 마법을 방해하는 것은 간단하지.

통신 마법을 방해하는 것, 통신이 이어지는 마력의 선만 끊으면 된다. 하지만 그리피네는 그 선을 연결하기 위해 꽤나 노력을 해야 할 거다.

-그리피네는 고립되었다.

마법사의 말을 들으며 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다음으로…….’

성현은 하늘로 올렸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사체들을 향해 이동시켰다. 그러자 사막에 쌓인 사체들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전장에서 끌고 온 수만 구의 사체들. 얼마 전, 그리피네의 성문을 공격할 때 숨겨 뒀던 그 사체들. 그 모든 것들이 일어섰다.

마력은 충분했다. 양피지를 흡수하며 저절로 빠져나가는 마력만으로 놈들을 움직일 수 있었다.

머리가 떨어져 나간 마인이 두 발로 땅을 딛고 섰으며 배에 구멍이 난 마녀가 몸을 일으켰다. 배 속에 담겨 있던 내장이 후드득 쏟아졌고 다리가 꺾여 나간 마물이 비틀비틀 걸어 성현의 앞에 섰다. 그 광경은 끔찍했다. 보는 것만으로 눈을 찌푸릴 정도였다.

하지만 성현은 웃고 있었다. 이것들은 그리피네와 존재를 이길 수 있는 훌륭한 무기다.

*

한편, 지르힐이 갇힌 탑.

지르힐은 탑에 난 창문을 향해 시선을 틀었다.

눈이 붕대로 가려져 있어 밖을 볼 수는 없지만 그 사이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느낄 수는 있었다. 지르힐이 중얼거렸다.

‘내가……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이곳에 갇힌 시간이 얼마가 되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세는 것을 포기했으며 그저 하루하루 지루한 삶을 이어 왔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성현이 그리피네를 죽이고 그 피를 가져온다면, 지르힐은 자유를 되찾을 수도 있다.

물론 성현이 그리피네를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피네의 성에 남은 병력이 얼마 되지 않는다 해도, 그리피네는 최상위 존재. 인간의 힘으로 그리피네를 죽인다는 것은 개미가 코끼리를 물어 죽이는 것과 같은 일.

‘그런데 난 왜 기대하고 있는 가?’

지르힐은 스스로에게 또 물었다.

‘왜 그대를 말리지 않고 바라보는 것인가?’

지르힐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존재의 세상을 없애는 것. 그리고 성현을 실제로 한번 보고 싶었다. 얼굴을 마주한 채 대화를 나누고 싶을 뿐이다.

‘……이것도 욕심인 겐가?’

* * *

늦은 시각이다.

하지만 그리피네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서성거렸다.

‘플로르…….’

그리피네의 머릿속은 플로르로 가득했다.

‘세상을 이따위로 만든 원흉!’

태초의 세상은 아름다웠다. 곳곳에 꽃이 가득했고 거리를 걸으면 시냇물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피네의 어머니였던 유르라헬은 그런 세상을 참 사랑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었다. 지금 세상은 말라 죽은 것처럼 시들거렸다. 사막의 퍼석거림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 모든 것이 플로르의 탐욕 때문이다. 플로르는 창조주와 같은 자리에 서기를 원했고 그 누구도 탐하지 말라 했던 에느가인을 손에 얻으려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거다. 존재의 세상은 사막이 되었다. 낮에는 서 있기도 힘들 만큼의 뜨거움, 밤에는 몸을 얼려 버릴 것 같은 추위.

‘이곳이 지옥이야.’

창가에 선 그리피네가 한숨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이 지옥을 끝낼 시간이 다가왔어.’

플로르를 죽이고 그리피네는 직접 에느가인을 손에 쥐려 한다.

‘난 세상을 바꿀 거야.’

에느가인은 창조주와 비견될 힘을 얻게 해 준다고 한다.

‘그 힘을 얻으면…….’

세상을 다시 예전처럼 바꿀 수도 있을 거다.

‘다시 꽃을 볼 수 있겠지.’

그리피네는 청사진을 그리며 작게 웃었다. 그녀의 입술이 휘어졌고 얼굴에 맺힌 미소는 아름다웠다.

‘모두 행복해할 거야.’

그리피네는 창조주의 힘을 얻은 즉시 생명체의 욕망을 없앨 생각이다.

모든 것은 욕심에서 비롯된 것. 그녀의 생각대로 된다면 생명체는 멍청하게, 생각 없이, 그리고 그리피네의 말만 따르고 복종하게 될 거다.

‘생각이란 것은 필요 없지.’

생명체는 순종적인 로봇처럼 노동만 하며 살게 될 거다.

‘그렇게 주어진 시간이 끝나면 죽으면 되는 게야.’

생각이 없다면 욕심도 없다. 죽음에 대한 공포도 없다. 자신이 왜 노동만 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나 불만도 존재하지 않을 거다.

‘모두 행복할 거야.’

물론 그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그리피네일 것이 당연하다.

그리피네가 거울을 꺼냈다. 그리고 전장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마력을 넣었다.

‘뭐지?’

거울에 어떤 모습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그리피네의 얼굴만 비치고 있다.

그리피네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마력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다. 거울에서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피네는 순간 불안해졌다. 뭔가 잘못되어 가는 것을 느낀 거다.

‘마력 방해?’

그리피네는 커튼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리고 밖을 살피며 결계가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꽈아아아앙!

괴음이 울렸다.

불이 번쩍하더니, 성벽이 흔들거렸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꽝! 꽝! 꽝!

포탄이 떨어지고 있었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세상을 부숴 버릴 것처럼.

“습격입니다!”

신하가 다급히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그리피네가 그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플로르냐!”

“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이, 인간들인 것 같습니다.”

“……인간?”

그리피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인간 따위가?”

그리피네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미물이다. 그런 미물 따위가 그리피네의 성을 공격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하지만 그리피네가 간과한 것이 있다. 인간의 역사는 병장기의 발전과 함께 이뤄졌다. 존재들이 마력을 갖고 으스댈 때, 인간은 ‘대포’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 쏘아 댈 수 있는 무기. 살상 반경은 한 발 당 50미터. 그것들이 하늘을 가득 채운 채 성벽에 떨어졌다.

쐐애애애액!

꽈아아아앙!

성벽이 부서지며 돌이 튀었다. 흙먼지가 일었고 비명이 들려왔다.

성에 남은 그리피네의 병력이 성벽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빠르게 마력을 펼치고 보호막을 만들었다. 그리고 성벽을 수호하는 지휘관이 외쳤다.

“불꽃을 쏘아라!”

병력들이 하늘로 불꽃을 쏘아 올렸다. 저것은 인간들의 조명탄 같은 역할을 해 줄 거다.

파아아앗!

세상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지휘관은 어둠이 걷힌 것을 안심하며 성벽 아래를 살폈다.

“인간이라고 했지?”

이제 적을 확인하고 죽이면 된다. 자근자근 짓밟아 찢어서 먹어 버릴 생각이다.

하지만 지휘관의 얼굴은 다시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저…… 저게 다 뭐야?”

성벽 아래에는 사체가 가득했다. 성벽의 끝에서 끝까지, 그것들이 바퀴벌레처럼 채운 채 성문을 부수고 있다.

“가, 강령술입니다!”

“강령술이 맞습니다!”

부하들의 목소리에 지휘관은 마른침을 삼켰다. 강령술인 것은 그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저 숫자는 말이 안 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냐?’

지휘관은 당황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생각했다. 좀비가 된 사체, 그들을 없애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바로 화염이야.’

사체는 화염 공격에 약하다. 뜨거운 열기는 근육을 녹여 버리고 피를 증발시킨다. 좀비는 그 안에 서 있을 수 없다.

“원거리 공격자들이 앞으로 나서라! 불을 쏴서…….”

하지만 이번에도 지휘관의 목소리는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쏴아아아아!

때아닌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바로 정령과 계약한 이서아의 능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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