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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233화 (233/252)

233화

그들은 자신의 이마에 새겨진 낙인을 더듬더듬 만져 봤다. 깊게 팬 상처, 그 문양은 흉측했다. 하지만 문제는 문양의 모양이 아니었다.

낙인은 그리피네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것, 그녀의 힘은 저주에 가까우며, 새겨진 낙인을 없애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지워지지 않을 거다.

즉, 이곳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평생 낙인을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한다. 오늘의 지옥을 영원히 기억할 수밖에 없다. 동료를 배신한 대가는 컸다.

그 사실을 깨달은 그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아…….”

하지만 늦었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

그때 그리피네의 목소리가 공간을 울리며 낙인이 새겨진 자들을 재촉했다.

“저들을 죽이라고 명했다! 시련을 이기고 승리한 자만이 영광의 의자에 앉을 수 있는 법이다!”

그들의 시선이 그리피네에게 틀어졌다. 그리피네의 손에서 검은 마력이 일렁이고 있었다. 상대를 싸우지 않으면 그들을 죽이겠다는 엄포였다.

그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은 낙인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그리피네의 지시를 받들어 함께했던 동료를 죽여야 한다.

“싸워라!”

그리피네의 목소리에 그들의 시선이 틀어졌다. 그 시선에 낙인이 새겨지지 않은 자들이 보였다.

“미, 미안…….”

그들이 더듬더듬 중얼거리자 낙인을 받지 않은 자들은 당황했다.

“왜, 왜 그러는 거야? 설마…… 진짜 우리와 싸우겠다는 거야?”

“새끼야! 우리는 존재를 죽이기 위해 온 거야!”

사람들은 외쳤다. 하지만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그리피네를 상대하는 것보다 동료를 죽이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라 여겼다. 그리피네라는 존재가 뿜어내는 공포를 등지고 사람을 베는 게 덜 무서웠다. 그것은 현 상황에 대한 외면이다.

촤악!

그들이 칼을 휘둘렀다. 동료의 팔이 베였고 뼈까지 깨끗하게 잘린 팔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촤아아악!

“끄아아아악!”

그 핏물이 낙인이 찍힌 자의 얼굴에 튀었다. 낙인이 찍힌 자가 입술을 뒤틀며 히죽 웃었다.

“어쩔 수 없다는 거 알잖아?”

사람들이 당황했다. 뒤로 물러서며 낙인이 찍힌 자들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왜 그러는 거야! 환각을 본 것도 아니잖아!”

“싸워야 할 상대는 우리가 아니야!”

“미안하다고!”

낙인이 찍힌 자들이 악귀처럼 달려들었다. 방금 전까지 함께 담배를 피우고 밥을 먹었던 기억은 모두 잊었다. 지금은 상대를 죽여야 한다. 그래야 그리피네가 그들을 죽이지 않는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챙! 채챙!’ 하고 울렸고 한쪽에서는 비명과 원망의 소리가 이어졌다.

“개×끼야!”

“씨×!”

“으아악!”

그리피네의 손에 일렁이던 마력이 스르륵 사라졌다. 그녀는 인간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인간들을 한 번에 죽이는 것보다 이렇게 지켜보는 게 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가 중얼거렸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고, 몇 년 남지 않은 삶을 연명하기 위해 친구였던 저의 목을 베고……. 그게 인간이다. 역시 너희들은 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때였다. 사체들이 움직였고 낙인이 찍힌 자들의 앞에 섰다.

-크르르르…….

지금껏 동료를 도륙하던 낙인이 찍힌 자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산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죽은 자를 상대하는 게 어려운 일이다. 사체는 팔과 다리가 떨어져 나가도 끝까지 움직인다. 그리고 그것들을 움직이는 것은 당연히 성현이다.

“죽여라.”

성현의 목소리가 낮게 울리자 낙인이 찍힌 자들이 고개를 홱홱 돌려 성현을 향했다. 그 눈에 원망이 가득하다.

“네, 네가 우리를 이곳에 끌고 왔잖아!”

“그런데 우리를 죽여?”

“방해하지 말고 비켜!”

하지만 성현의 눈동자에는 그 어떤 감정도 스며 있지 않다. 배신자는 조금이라도 빨리 죽이는 게 이득이다. 싸움에 감정을 섞으면 죽음이라는 찌꺼기가 나오는 법. 성현이 손을 까딱거렸다.

“가라.”

사체가 낙인이 찍힌 자들을 향해 달렸다.

“끄아아아악!”

다시 비명 소리가 울린다. 칼에 베여 땅에 떨어진 머리가 낙인이 찍힌 자의 다리를 물어뜯었고 그 살점을 씹어 먹었다. 낙인이 찍힌 자가 사체의 배를 갈랐지만, 그것 역시 무리였다. 사체는 배에서 내장을 쏟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콱! 콱! 콱!

사체의 손에 쥐인 단검이 낙인이 찍힌 자의 가슴과 목을 마구잡이로 쑤셨다.

그들을 지켜보던 성현의 시선이 그리피네에게 향했다. 성현의 눈에 분노가 타올랐다.

‘그리피네…….’

성현은 자세를 낮추고 창을 쥔 손에 힘을 꾹 줬다. 창끝이 향하는 곳은 당연히 그리피네다.

‘죽인다.’

성현의 몸에서 마력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양피지에서 흡수했던 그 마력을 한곳에 모으는 중이다.

그리고 그 마력을 그리피네도 느꼈다. 그녀의 눈동자가 천천히 성현에게 틀어졌다. 그녀가 붉은 입술로 웃었다.

“말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라고.”

“할 수 있다.”

“넌 그 능력이 없으며 자격도 없다.”

그리피네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동시에 ‘퍽! 퍽! 퍽!’ 소리와 함께 낙인이 찍힌 자들의 머리가 터졌다. 뇌의 조각과 뇌수 그리고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많은 사람이 한 번에 머리가 터져 즉사했다. 아직 죽지 않은 자들도 있었지만, 곧 죽을 거다. 그들의 얼굴에 징그러울 정도로 심줄이 솟아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흔들고 있다.

성현의 눈이 찌푸려졌다. 그리피네는 자신의 편에 선 인간을 죽이고 있다. 문제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거다.

순간, 머리가 터진 인간들이 꾸물꾸물 한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몸이 기괴할 정도로 꺾이며, 접착제로 붙인 것처럼 서로 엉겨 붙었다. 그들의 살점이 녹으며 완벽한 하나가 되었고 그들이 변하는 모습은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그리고 그것은 수십 미터의 키와 덩치를 가진 거인이 되었다.

그리피네가 느긋하게 뒷짐을 진 채 성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너 따위 것과 손을 섞을 것이라 생각했나? 네 상대는 이거다.”

성현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거인을 바라봤다. 그 신체에 달라붙은 사람의 모습이 징그러웠다. 그리고 거인의 손이 움직였다.

콰아아아아!

엄청난 속도로 이동한 놈의 손이 성현의 몸을 쥐었다. 살이 녹는 냄새와 피 냄새가 역하게 느껴졌다. 그것이 성현을 터뜨려 죽일 듯 꽉 쥐고 있었다.

하지만 성현은 팔을 벌리며 놈의 힘을 견뎠다.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그리피네, 언제까지 웃나 보자.”

그때 기관총 소리가 들렸다.

투투투투투!

이창민 중사가 기관총을 소환해 거인의 몸에 쏘아 댄 거다. 거인의 몸에 숭숭 구멍이 뚫렸고 그곳에서 꿀렁거리며 피가 솟아났다.

그리고 서은서 역시 움직였다. 그녀의 손에서 일어난 붉은 연기가 거인의 다리를 움켜잡았다. 붉은 연기는 촉수처럼 변해 거인의 몸에 난 구멍을 찾아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도 있다!”

낭인들이 달려들었다. 그들의 손에 쥔 칼과 창 그리고 각종 둔기 들이 거인을 때렸다. 거인의 몸에 상처가 생겼고 엉겨 붙었던 인간들이 떨어져 나왔다. 거인이 괴로움을 토해 냈다.

-그어어어어억!

거인이 그 통증을 이기지 못한 채 주춤주춤 물러섰다. 이창민 중사가 외쳤다.

“유성현! 가라! 여기는 우리에게 맡겨라!”

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거인의 팔을 밟고 뛰었다. 놈의 어깨 그리고 머리 위로 이동해 발을 박찼다. 이어서 그리피네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언제까지 웃을 수 있나 보자고 했다!”

성현이 창을 고쳐 잡았다. 그대로 휘둘러 그리피네의 머리를 박살 낼 생각이다.

후우우우웅!

성현의 창에서 금빛 기운이 연기처럼 흘렀다. 그것은 지르힐의 힘, 그리고 양피지에 담겨 있던 창조주의 힘. 이것은 지금까지의 공격과 다르다. 그리피네라 해도 상처를 입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리피네는 지금도 느긋했다.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피네의 앞에 우주가 펼쳐졌다.

“넌 그대로 우주에 빠져 버릴 거다. 영원히 헤어 나오지 못한 채, 공간의 끝을 찾다 죽고 말 거다.”

성현이 자신의 앞에 펼쳐진 검은 공간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동시에 창을 거두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검은 공간을 주먹으로 때렸다.

쩌어어어엉!

그 충격파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돌덩이가 튀었고 세상이 흔들렸다. 금이 갔던 성벽이 우르르 무너졌다.

성현은 공간을 부순 후 그대로 그리피네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그리피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공간을 부수는 인간. 그것은 분명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 성현은 이제 인간이 아니라 존재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리피네의 놀라움은 거기까지다. 여전히 웃고 있다.

“발버둥을 쳐도…… 인간은 인간이다.”

성현의 앞에 또다시 검은 공간이 나타났다.

쩌엉!

부숴 버리자 또 나타난다.

쩌어어엉!

이번에도 또.

꽈아아앙!

성현은 그렇게 몇 번이나 검은 공간을 부순 후 그리피네의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간을 부수느라 속도가 현저히 줄어든 상태다. 이미 그리피네는 대비하고 있었다. 성현이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 그리피네의 손에서 찬란한 금빛이 나타났다. 그 빛줄기가 그리피네의 온몸을 감쌌다.

성현은 상관 않고 주먹을 뻗었다. 하지만 성현의 주먹은 그리피네에게 닿지 않았다. 주먹을 휘두르는 동시에 그리피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성현이 눈에 힘을 줬다. 그리피네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아야 했다.

그때 푹, 성현의 배를 찢고 그리피네의 손이 튀어나왔다.

“……!”

성현의 배를 쑤시고 들어오며 피를 머금은 그 손이 까딱까딱 움직인다.

“안 된다니까?”

그리피네는 뒤에 있었다. 성현의 등에 손을 쑤셔 넣은 거다. 그리피네가 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그만 편히 쉬어라. 내 너에게 누울 자리를 선물해 주겠…….”

하지만 그리피네가 예상 못 한 게 있었다. 성현은 고통에 익숙하다. 죽이지 않으면 끝까지 움직인다. 성현을 향해 여유를 부려야 할 때는 성현이 죽었을 때다.

성현이 핏물을 토해 내며 허리를 틀었다.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백스핀 블로.

콰지지지지직!

그리피네는 예상 못 한 공격을 그대로 받아야 했다. 그녀의 얼굴이 반대 방향으로 틀어졌다. 그녀가 처음으로 물러섰다.

성현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몸을 낮게 낮춘 후 그대로 그리피네의 무릎에 어깨를 대며 태클을 걸었다.

촤아아아아악!

그리피네가 바닥에 엎어졌고 성현이 그 위에 올라탔다. 모두 한순간에 벌어진 일.

그리피네는 잠시 멍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얼굴에 느껴지는 통증, 자신을 올라타고 내려다보고 있는 성현.

성현이 주먹을 까딱까딱 움직이며 말했다.

“인간을 올려다보는 느낌이 어때? 새롭지?”

“너…….”

“지금부터 좀 맞자.”

성현의 손에 검은 기운이 모였다. 양피지에 얻은 기운을 모두 그 손에 집중한 거다. 손이 부풀어 오르며 비대칭적으로 커졌다. 그리고 그대로 그리피네의 안면을 강타했다.

꽈지지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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