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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234화 (234/252)

234화

꽈직!

꽈지직!

성현의 주먹이 계속해서 그리피네를 내리쳤다. 그 주먹이 강타할 때마다 그리피네의 머리가 있는 바닥이 움푹움푹 패었고 금이 쩍쩍 그려졌다.

평범한 존재였다면 이미 즉사했을 거다. 코뼈와 광대뼈가 무너지고 그 피가 사방으로 튀었을 게 분명하다. 머리뼈가 짓이겨졌어야 한다.

하지만 상대는 그리피네였다. 그녀는 눈을 부릅뜬 채 성현의 주먹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리 때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가 성현을 향해 팔을 잡으려 했다.

‘예상했다!’

성현은 이미 그녀의 몸짓을 예측하고 있었고 피하기 위해 몸을 틀었다.

쉬익!

그리피네의 손이 성현의 뺨을 스치며 허공을 쥐었다. 이것은 성현이 기다리던 순간이다. 성현이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긴 머리카락은 싸움에 도움이 안 돼!”

“……!”

성현이 그리피네를 성안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피네의 약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혼자가 편하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게 낫다.

성현이 재빨리 이창민 중사에게 말했다.

“들어오지 마세요! 잔당을 처리해 주세요!”

성현은 이창민 중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허벅지에 힘을 꾹 주며 성안으로 뛰어들었다.

콰아아아아!

성현이 달려 들어가며 공기 찢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이창민 중사는 주변으로 시선을 틀었다.

“들었죠? 잔당 처리!”

그 말에 지금껏 멍하니 있던 낭인들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압도적인 살기를 뿜어내던 그리피네가 없어지자 다시 힘을 내기 시작한 거다.

“죽여!”

그들이 거인 그리고 남은 존재를 향해 달렸다. 거인의 발가락을 잘랐고 발등에 칼을 쑤셔 넣었다. 서은서의 손에서 붉은 연기가 일렁이며 남은 존재의 목을 휘감았다. 그리고 이서아의 반지에서 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쏴아아아!

쏟아지는 굵은 빗방울이 붉은 핏물과 함께 바닥에 흘렀다. 병장기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고 이곳저곳에서 총구가 불을 뿜었다.

이창민 중사는 성현이 뛰어 들어간 구멍을 바라봤다.

“너도 살아라…….”

* * *

그리피네가 한숨을 내뱉었다.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감히…….”

그녀는 자신의 옷깃에 묻은 먼지를 느꼈다. 자신이 쓰러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뺨에 느껴지는 통증. 성현의 주먹에 얻어맞은 그 느낌. 억겁의 시간을 살아왔지만 처음 겪는 경험이다.

“감히!”

그리피네의 눈이 붉은 빛이 뿜어졌다. 동시에 바닥에서 검은 손이 뻗어 나왔다.

“죽여 버리겠어!”

그녀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그곳에 주먹을 꽉 쥔 채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성현이 보였다.

“잡아라!”

바닥에서 나온 검은 손이 성현의 다리를 잡았다. 그리고 성현을 채찍처럼 휘둘러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꽈아아아앙!

성현은 등이 으깨지는 통증을 느끼며 바닥을 굴러야 했다.

“죽여! 죽여! 죽이라고!”

그리피네의 목소리가 소름 끼치게 울렸다. 그러자 검은손이 인간의 형태가 되어 성현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그것들이 성현의 살점을 뜯어먹는다.

“끄으으윽!”

성현은 치아를 앙다문 채 고통을 참았다. 놈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사이 그리피네가 성현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왔다. 성현의 앞에 선 그녀가 단도를 쥐더니 스산하게 웃었다.

“성스러운 피가 너의 더러운 피를 정화할 게다. 그 무엇도 너의 고통을 대신해 주지 않을 게다. 그게 유르라헬이다.”

그녀가 손에 쥔 단도로 자신의 팔목을 그었다. 피가 후드드득 떨어진다. 그 피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더니 성현의 허벅지에 올라탔다.

치이이이익!

성현의 살에 손가락이 쑤셔진 것처럼 구멍이 숭숭 뚫렸다. 뼈가 보였고 녹아내렸다.

“끄아아아악!”

고통에 익숙한 성현도 참기 힘들었다. 마치 달궈진 숯이 허벅지에 올라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피네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아플 게다. 참지 말고 악을 질러도 좋다. 곧 네 혀를 자를 테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어서 하거라.”

성현은 치아를 부서질 듯 깨물며 그리피네를 바라봤다. 그리고 긴장된 숨을 내뱉었다. 그리피네의 모습이 점차 변하고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창조주가 내린 또 하나의 저주…….’

존재는 아름답다. 세상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한 모습이다. 그 어떤 꽃을 가져다 두어도 존재의 앞에서는 초라하다.

하지만 마력을 최대한으로 개방할 때 그들은 아름다움을 버리고 추악한 모습으로 변해야 한다.

성현이 회귀 전 마지막으로 싸웠던 플로르를 기억해도 그렇다. 당시 플로르의 모습은 끔찍한 불덩이였다. 온몸에서 불씨를 뚝뚝 떨어뜨리며 세상을 집어삼키려 하는 악귀일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리피네도 변하고 있다. 온몸에 시퍼런 핏줄이 솟았고 입에는 송곳니가 짐승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그녀는 지금의 모습을 잃어버릴 거다.

‘거의 다 왔어.’

성현은 다급히 몸을 데굴데굴 굴려 그리피네의 앞을 벗어났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복도를 향해 달렸다. 그 모습을 보던 그리피네가 입술을 뒤틀었다.

“도망쳐도 소용없다.”

그리피네가 성현의 뒤를 쫓았다. 성현은 온 힘을 향해 달렸지만 허벅지에 구멍이 난 상태다. 움직일 때마다 피가 꿀렁거렸고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속도는 느렸다. 그녀가 몇 걸음 이동하자 그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젠장!”

성현이 눈을 찌푸릴 때, 그녀의 손에 맺혀 있던 핏방울이 뻗어 나와 성현의 등에 닿았다.

“끄아아아악!”

성현의 눈에 핏발이 섰다. 등이 녹는 통증을 느끼며 바닥에 쓰러져야 했다. 그리피네가 미소를 그리며 성현의 머리를 발로 밟았다.

“다리에 힘을 주면, 네 머리가 터지겠지? 그럼…… 네 피가 복도의 벽을 물들일 테고……. 그래, 난 이 벽지를 치우지 않겠다. 내게 손을 댄 인간을 예우해 주마.”

“미친!”

성현이 바닥의 틈을 손으로 짚고 그녀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우드드득!

얼마나 힘을 줬는지, 손톱이 부러지고 피가 튀었다. 하지만 성현은 계속해서 움직이려 했다.

성현은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멈추는 순간은 단 두 가지 상황뿐이라고.

하나는 플로르가 죽었을 때.

또 하나는 자신이 죽었을 때.

아직은 멈출 수 없다.

“어마? 아직도 발버둥 칠 힘이 남아 있는 게냐?”

그리피네의 발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성현의 손이 그리피네의 하얀 발목을 잡았다. 성현의 손에 다시 양피지로부터 얻은 기운이 모였다. 그 손이 비대칭적으로 커지며 그리피네의 발목을 으스러뜨릴 것처럼 꽉 쥐었다.

“끼아아악!”

그리피네의 비명 소리가 복도를 울릴 때, 성현을 짓밟고 있던 발에 힘이 빠졌다.

성현은 바닥을 기며 그녀의 발을 벗어났다. 그리고 계속해서 기어갔다. 그 모습이 마치 지렁이가 꿈틀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피네가 입술을 씹으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쥐새끼 같은 놈.”

그녀의 얼굴은 이제 아름다움을 완벽히 잃었다. 몸에 솟았던 심줄이 시퍼런 촉수가 되어 늘어져 있었다. 머리카락은 뱀이 되어 혓바닥을 날름거린다. 눈은 붉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다.

손목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이 하나둘, 인간의 형상이 되어 몸을 일으키고 있다.

그녀가 성현을 향해 자박자박 걸어갔다.

성현은 헉헉거리며 계속해서 복도의 끝을 향해 기어갔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손에 머리카락이 잡혔다. 그녀의 몸에 난 촉수가 성현의 뺨을 훑었다. 그 촉수가 성현의 귀를 뚫고 들어갔다.

“귀가 멀 거다. 듣는 게 없어지는 거지. 다음은 눈이다. 보이는 게 없어질 거다. 그리고 혀를 자르고 폐를 찔러 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들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목의 신경을 끊어 통증을 느낄 수 없게 해 주마. 넌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게 아닌 거다. 내 너를 죽이려 했지만, 지금 그 마음이 바뀌었다. 영원히…… 그렇게 살아…….”

말을 이어 가던 그리피네의 목소리가 잠시 멎었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웃고 있지?”

“네 약점…… 추악한 괴물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 마지막까지 고고하게 있고 싶은 그 욕망.”

“……뭐?”

성현은 다시 회귀 전 플로르를 떠올렸다. 당시 플로르는 수백 미터에 가까운 덩치를 가진 괴물이었다. 하지만 그리피네는 그 모습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끝까지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성현이 입술을 뒤틀며 웃었다.

“내가 하나 알려 줄까? 싸움에서 이기고 싶으면 똥물에라도 들어가야 하는 거야. 싸움이란 것은 더러운 건데, 점잔 빼고 있으면…… 반드시 지게 되는 거야.”

“닥쳐!”

그리피네의 촉수가 성현의 귀를 뚫었다.

푹! 푹! 푸우우욱!

성현은 아찔한 통증을 느끼는 와중에 비대칭적으로 커진 손으로 그녀의 뱀처럼 변한 머리카락을 잡았다. 잡힌 뱀의 모가지가 끊어졌고 나머지 뱀이 성현의 팔을 물어뜯었다. 하지만 성현은 상관 않고 그녀를 집어 던지며 외쳤다.

“내가 벌레처럼 기면서, 왜 이곳까지 왔는지 생각했어야지!”

그리피네가 가진 또 하나의 약점. 그피리네는 이 성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어머니급과 군주급의 존재는 창조주의 저주를 받았다. 각각의 저주의 종류는 다르지만 크게는 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런데 그리피네가 받은 저주는 조금 더 컸다. 성안에서도 그녀가 오갈 수 있는 곳은 정해져 있다.

지금 던져진 곳은 그녀가 들어갈 수 없는 방!

창조주가 빚은 최초의 생명체, 유르라헬의 서재.

콰지지직!

문을 뚫고 그 방으로 들어간 그리피네가 데굴데굴 굴렀다. 이어서 비명을 질렀다.

“끼아아아아아악!”

그리피네의 귓가에 두려운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또다시 창조주의 지시를 어긴 자, 그 끝은 죽음이리라.

“안 돼, 안 돼, 안 돼!”

그리고 성현이 몸을 일으켰다. 저벅저벅 안으로 들어갔다.

서재는 거대했다. 학교의 운동장만큼 컸고 천장은 하늘만큼 높았다. 그 모든 곳에 책이 가득했다. 그리피네는 그 한가운데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아아악! 나가야 해! 나가야……! 잘못했어요! 잘못했다고!”

그리피네의 살이 녹고 있었고 몸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꿈틀대던 뱀과 촉수는 힘을 잃었다.

그리피네가 네 발로 기며 문을 향해 기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나갈 수 없었다. 성현이 다시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잡았기 때문이다.

“살려 줘……. 제발…… 제발…… 제발!”

억겁의 시간을 살아온 존재다. 하지만 죽음은 두려웠다. 그것은 미지의 세상. 경험해 볼 수 없던 일.

“제발…….”

그리피네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손을 비벼 빌기 시작했다. 그녀의 모습을 건조하게 바라보던 성현이 고대의 무기인 부채를 단도로 바꾸며 입을 열었다.

“고막이 나가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성현은 그리피네의 촉수에 고막을 찔렸다. ‘삐-’ 하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쏘리.”

성현이 단도를 움직여 그리피네의 목에 가져갔다. 섬뜩한 쇠붙이를 느낀 그리피네가 발악했다.

“살려 달라고! 이 미친 새끼야!”

“네 피는…… 지르힐을 풀려나게 할 거다. 거룩하게 죽어라.”

그리피네의 눈이 커졌다.

“……지르힐? 안 돼! 지르힐이 풀려나는 것은 안 돼! 그 여자는 미쳤어! 이 세상은 종말을……!”

하지만 그리피네의 목소리는 이어질 수 없었다. 성현이 단도를 쥔 손에 힘을 줬기 때문이다.

촤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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