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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236화 (236/252)

236화

마법사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각 회귀자의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사진처럼 박히고 있었다.

수천 명이 가졌던 권능, 그들이 가졌던 힘, 그것을 얻으면 성현은 인간을 초월하게 된다. 불가능할 것이라 여겨지는 플로르와의 싸움에서 승리라는 단어를 적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방법은 쉽지 않다.

성현 이전에 있었던 회귀자, 그들의 마력과 능력은 성현과 비교해서 뒤처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성현보다 훨씬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놈들의 힘이 수천 개가 모여 있다. 그걸 흡수하려면 엄청난 마력을 소모해야 했고 버틸 수 있는 정신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법사는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성현의 몸과 의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마법사다. 자신의 힘이라면 그 의식을 치를 수 있고 성현이 갇혀 있는 동안 멋대로 그 힘을 손에 쥘 수 있다.

하지만 마법사는 망설였다. 머뭇거리기까지 했다. 섣불리 의식을 치르지 않았다. 그리고 마법사가 쓴웃음을 지으며 성현에게 말을 걸었다.

‘듣고 있나?’

-말해.

‘지난 회귀자들의 권능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의식을 치르면, 네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무슨 말이야?

‘넌 인간이다. 양피지에서 흡수한 힘조차 담을 수 없다.’

양피지의 마력은 성현의 그릇으로 담기 어려웠다. 그 힘은 넘쳤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중이다.

‘지난 회귀자들의 권능까지 몸에 담는다면, 네 몸은 무너질 거다.’

지금 성현의 몸은 물을 모으는 댐과 같다. 댐은 물이 한계까지 차오르면, 그런데도 계속 비가 쏟아지면 아무리 많은 물을 방류해도 결국 무너진다. 성현의 몸 역시 마찬가지다. 그 한계에 치달았다.

‘죽을 수 있다. 넌 견디기 힘들 거다. 당장은 버티겠지만 결국, 부서지고 말 거야.’

* * *

무의식의 공간.

성현은 팔짱을 낀 채 마법사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죽는다…….’

이미 한 번 죽었다. 그리고 언제든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싸워 왔다. 플로르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 끝이 보인다. 성현도 평온한 생활을 꿈꾸고 있었다. 전쟁이 없는 세계, 존재가 간섭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끼리 티격태격하며 싸우는 그런 세상. 성현은 어머니를 모시고 개 한 마리를 키우며 유유자적 살고 싶었다.

-그 세상에 네가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성현이 끌끌 웃었다.

“가능성이지?”

-거의 확실하다.

“어쨌든, 가능성인 거잖아.”

-……그렇다.

“하나 묻자. 지금 내가 플로르를 이길 확률은? 지르힐이 자유가 되고 마법사 네가 내 의식을 차지하면, 완벽하게 이길 수 있나?”

-…….

마법사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마법사도 지금껏 회귀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봤다. 본신의 힘을 끌어낸 플로르는 강했다. 마법사와 지르힐의 불완전한 힘으로는 그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성현이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해.”

성현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삶을 초월한 목소리는 씁쓸했다.

그때였다.

-안 돼.

지르힐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이어졌다.

-그리피네의 피로 구속된 사슬을 끊을 수 있다. 내가 나가면, 플로르를 죽일 수 있다. 그대가 목숨을 걸 필요는 이제 없다. 그러니까…….

성현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것도 가능성이잖아?”

-그대!

성현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마법사의 눈을 통해 봤어. 수천 명의 회귀자, 그들은 지금까지 플로르에 대항해 싸웠고 죽었지. 그리고 그들이 살던 행성은 멸했어.”

-그만!

“지르힐…… 난 지구를 지키겠다는 거대한 욕심은 없어. 하지만 내 친구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 하나만 생각하고 지금까지 달려왔는데, 머뭇거릴 수 없잖아?”

성현은 빙긋이 웃었다.

회귀 전, 마지막을 떠올리는 거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동료.

그리고 지금 현재 그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 중에는 아기를 가진 자도 있었고 존재와의 계약과는 상관없이 일상을 즐기는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억겁의 시간을 외롭게 지내 온 이서아는 이제야 부모님을 만났다.

이번에는 마법사의 눈을 통해 본 책을 떠올렸다.

플로르는 대항했던 모든 행성을 부숴 버렸다. 성현이 막지 못하면 인간 역시 마찬가지 미래를 보게 될 거다. 성현과 함께했던 그 모든 사람이 사라지게 된다.

“그건 싫어. 난 조금이라도 더 높은 확률을 향할 거야.”

-안 된다고 했다!

“지르힐, 약속할게. 난 안 죽어.”

-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약속 안 지키는 거 봤어?”

-그, 그럼…… 오지 마라.

“응?”

뜬금없는 말에 성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르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렇게 멋대로 행동할 거면, 내게 오지 마라. 난 그대의 뺨을 때릴 거다.

“그건 좀…… 아프겠네.”

성현이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마법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마법사, 시작해.”

* * *

“안 된다고 했다!”

지르힐이 몸부림을 쳤다.

철컹! 철컹! 쇠사슬이 뒤엉키는 소리가 탑의 내부를 울렸다.

성현의 몸에는 회귀 후 지금까지 이어 온 싸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동안 지르힐이 계속해서 치료했지만 만신창이다. 지르힐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난 회귀자들의 힘을 받는 것은 고장 난 차에 고성능 엔진을 박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금은 달리겠지만 차체는 견딜 수 없다.

결국은 ‘꽝!’ 하고 박살 나고 말 거다.

* * *

성의 밖이었다.

이창민 중사가 기관총을 들어 올리자 총에서 불꽃이 뿜어졌다.

투투투투투!

성벽을 지키던 존재의 몸에 총알이 박혔고 그 신체가 너덜거렸다.

하지만 이창민 중사는 멈추지 않았다. 탄환이 떨어질 때까지 방아쇠를 당겼다.

덜컥!

탄이 떨어지며 총구의 불꽃이 멎었다. 동시에 이창민 중사가 외쳤다.

“지금!”

그 순간, 존재의 뒤로 서은서가 섰다. 존재는 서은서의 등장을 느끼고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늦었다. 그녀의 손에서 나타난 붉은 마력이 존재의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컥!”

존재는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붉은 마력은 목구멍으로 들어가 기도를 막아 버렸다.

“으으으읍!”

기다렸다는 듯 박상문 하사가 돌격했다. 손에 든 칼로 존재의 가슴을 쑤셨다.

푹! 푹! 푹!

살기 위해 몸을 비틀던 존재의 행동이 멎었다. 축 늘어진 채 그대로 사망했다. 그리고 공간이 적막해졌다. 처음 입을 연 것은 이창민 중사였다.

“……이걸로 끝인가?”

이창민 중사가 긴장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존재의 사체가 여기저기 보인다. 낭인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고 내리는 빗줄기에 핏물이 흐르고 있다.

이제 적은 없다. 모두 죽였다. 이들은 승리한 거다. 하지만 누구도 기뻐하지 않는다. 성현이 나오고 있지 않아서다.

박상문 하사가 이창민 중사의 옆으로 다가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들어가 볼까요?”

“방해만 돼. 기다리라고 했잖아. 그리고 들어간다고 해도 내가 간다. 넌 절대 안 돼.”

“그래도, 걱정…….”

“제가 들어가 볼게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서아가 나섰다. 그녀가 하늘에서 내리는 빗줄기를 멎게 한 후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전 조금이나마 미래를 볼 수 있으니까, 큰 위험은 없을 거예요.”

“그럼, 저도 같이 가요.”

서은서가 이서아의 옆에 섰다. 두 사람은 진심으로 성현을 걱정하고 있었다.

박상문 하사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유성현, 걱정해 주는 사람도 많고 부럽네.”

하지만 이창민 중사는 고개를 저었다.

“누구도 들어갈 수 없어요. 지금은 성현이를 믿으세요.”

성현은 누구도 들어오지 말라고 전했다. 지금껏 기적을 보여 줬던 성현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을 거다. 이창민 중사는 그렇게 생각하며 두 사람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때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고 모두의 시선이 틀어졌다. 성의 무너진 구멍에서 성현이 나오고 있었다.

이서아의 눈이 커졌다.

“대장!”

그녀는 누구보다 빨리 성현을 향해 뛰어갔고 와락 안겼다.

“다친 곳은요? 괜찮아요?”

이서아는 이곳에 남아 잔당을 해결하고 있었지만 누구보다 성현을 걱정하고 있었다. 언제든 성안으로 들어가 성현을 돕고 싶었다. 성현이 그 마음을 느끼며 이서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그리고 서은서와 이창민 중사가 성현의 앞에 섰다. 이창민 중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리피네는?”

“죽었어요.”

담담한 목소리에 이창민 중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진짜 이긴 거야?”

“네.”

“괴물이네, 괴물이야.”

이창민 중사가 크게 웃을 때, 성현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낭인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리고 손으로 그리피네의 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2시간 정도 드릴 수 있어요. 꽤 괜찮은 보물과 아이템이 많은 것 같으니까, 원하는 만큼 가져오세요. 시간은 맞춰야 해요. 아침이 되면 플로르의 대군이 이쪽으로 올 거예요.”

낭인들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긴장된 전쟁을 끝낸 후 약탈 행위는 그 스트레스를 푸는 보상이다. 더군다나 어머니급의 존재가 머물던 성이다. 어떤 보물이 있을지 예상하기도 힘들었다.

그들이 우르르 성안으로 들어갈 때, 이서아가 성현의 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성현의 얼굴을 빤히 보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다친 곳은 없어요?”

“치료하고 왔어.”

“그런데, 뭔가…… 피부가 퍼석퍼석해요.”

“그래? 난 모르겠는데…….”

성현은 마법사를 통해 지난 회귀자들의 권능을 얻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신체가 망가지기 시작했다. 피부가 떨어져 나갔고 시간이 더 지나면 뼈와 내장이 녹아내릴 거다. 하지만 이서아에게 그 말을 전하지 않았다.

“피곤해서 그럴 거야.”

* * *

플로르의 성.

왕좌에 앉은 플로르는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들려온 반가운 소식 때문이다.

사막에서 일어난 대전투, 그리피네의 대군을 몰살시켰다는 것.

물론 플로르의 군대도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었다. 많은 존재가 뜨거운 사막의 바닥에서 죽고 말았다. 하지만 플로르는 상관하지 않았다. 죽은 것들은 하찮다. 새로 출산하면 되는 거다.

그때 한 신하가 플로르의 앞에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지금 그리피네의 성으로 우리의 대군이 향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면, 도착해서 점령할 수 있을 겁니다.”

플로르는 자신의 앞에 머리를 조아릴 그리피네를 기대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피네를 죽이지는 말라. 내게 필요한…….”

플로르의 목소리는 이어지지 못했다. 갑자기 달려온 또 하나의 신하, 그가 절을 하듯 몸을 납작 업드렸기 때문이다.

플로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냐?”

“그, 그리피네의 성이…….”

“성이?”

“이미 함락되었습니다.”

“……!”

플로르의 눈동자가 공허했다. 자신이 진실을 들은 것인지, 아니면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

“도착했을 때, 성은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리피네의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고…….”

플로르의 대군이 그리피네의 성에 도착했지만, 그리피네의 성은 불에 타고 있었다. 무너진 성벽이 살벌했던 싸움이 있었음을 보여 줬지만 그곳엔 사체도 없었다.

플로르의 대군은 헛걸음을 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플로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 * *

그 시각, 성현은 사막의 끝에 도착했다.

사막의 끝은 바다와 닿아 있었다.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수평선 너머의 그 어떤 것도 보여 주지 않는다.

성현의 옆에는 이서아와 서은서는 물론이고 이창민 중사와 그 일행도 없었다. 성현은 홀로 이곳에 온 거다.

밀려오는 파도를 지켜보던 성현이 중얼거렸다.

“이 바다 한가운데에, 탑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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