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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243화 (243/252)

243화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도심 곳곳에 사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징그러운 짐승이 그것을 뜯어 먹었다. 하늘에서 비행기가 떨어져 도로에 처박혔고 고층 빌딩의 창문을 뚫고 지네와 뱀이 들어갔다.

이곳저곳 짐승이 인간을 씹어 먹는 소리가 으적으적 들려왔다. 그 잔인한 소리에 사람들은 도망치지도 못했다. 무너지는 것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아 귀를 막고 비명을 질러 댔다.

“꺄아아아악!”

몇몇의 남자들이 나섰다. 그들은 짐승을 막기 위해 야구방망이와 각목 등의 초라한 무기를 들고 목숨을 걸었다. 하지만 그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그것만으로 짐승을 막아 내기는 불가능했다. 그들은 몇 번 방망이를 휘두르다가 짐승의 먹이가 되며 인생을 마쳐야 했다.

“살려 줘! 사람 살려!”

그리고 그들의 지시를 받는 계약자들이 계속해서 사람들을 찾아냈다. 음식물 쓰레기통에 숨어 있던 사람이 나왔고 자동차 밑에 있던 사람이 잡혔다. 그리고 한 계약자가 어느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나와 사거리 한복판에 세웠다. 여자는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살려 주세요. 살려만 주시면…….”

“살려만 주면?”

계약자가 기름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여자가 살았다고 안도할 때다. 계약자는 손에 든 칼을 휘둘러 사정없이 그녀의 잘랐다. 팔과 다리가 분해되었고 아름다웠던 얼굴이 땅을 굴렀다. 그 모습은 끔찍했다.

그러자 정치인이 나섰다. 그들은 직접 참혹한 현장에 나서지 않고 전광판과 도심 곳곳에 있는 방송 시설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내비쳤다.

치직, 치직 화면이 움직이더니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사람이 얼굴을 보였다. 그리고 그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워,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우리는 당신들에게 협조할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이어지지 못했다. 화면 안으로 쥐가 나타나 그의 머리를 씹어 먹었기 때문이다.

콰득! 콰득!

화면에 정치인의 피가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사람들의 위에 서서 고고하게 서 있던 정치인이 처참하게 죽어 가고 있었다.

이제 대항하는 사람은 없다. 싸워 봤자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을 느낀 거다. 그래서 종교를 가진 자들은 기도를 시작했다. 이 지옥이 끝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함께 두 손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은 채 중얼거렸다. 그들의 염원을 하늘에 있는 신이 들어주기를 바라는 거다.

“신이시여, 저희를 이 절망 속에서 구원해 주시…….”

하지만 하늘에 떠 있는 것은 플로르의 지시를 받고 이곳에 온 존재다. 그 존재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나뒹구는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이 세상에 이계의 문이 열리고 짐승이 나타났을 때, 인간은 무기를 드는 대신 존재와의 계약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 덕에 존재와 계약자가 어려운 상황을 해결해 줄 거라 믿게 되었고 말도 안 되는 평화에 찌들었다. 자신의 목숨을 다른 누군가에게 맡긴 것이다. 지금 상황은 그 선택의 대가다. 결국은 짐승의 음식이 되어 죽어 가야 하는 거다.

그리고 한 존재의 목소리가 세상을 울렸다.

“유성현!”

그 목소리가 모두의 귀에 박혔다. 짐승을 피해 도로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자, 지하실에 숨어 있던 자, 귀를 막고 몸을 떨던 사람도 모두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인간의 멸종을 두 눈으로 보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 나와라!”

성현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존재가 손을 휘저었다. 땅에 있던 인간들이 둥실둥실 허공으로 떠올랐다. 갑작스레 하늘에 떠오른 사람들이 발버둥 쳤다. 시선을 내려 바라본 아래는 아찔했다. 이곳에서 떨어지면 즉사다. 머리가 수박처럼 터지고 사지가 기괴하게 꺾여 죽고 말 거다.

존재가 그들의 겁먹은 눈동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유성현, 어디서 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네가 나올 때까지 이 모두를 죽일 거다.”

존재가 주먹을 꽉 쥐었다. 하늘에 떠 있던 자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퍽! 퍽!’ 소리와 함께 사람이 땅에 떨어졌다. 도로에는 인간의 머리에 있던 피가 가득했다. 배 속에 있던 내장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그때였다.

꽈아아아아앙!

거친 폭발음과 함께 존재들을 향해 무엇인가가 날아왔다. 바로 포탄이었다.

“발악하는가?”

존재들이 눈을 가늘게 뜨고 포탄을 막아 냈다. 하나의 포탄을 막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포탄은 하나가 아니다. 그것들은 쉬지 않고 쏘아졌다. 인간이 만들어 낸 무기, 초당 800m를 날아가는 포탄 수백 발이 그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콰쾅! 쾅! 꽈앙!

바로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가 중심이 된 낭인들의 부대였다. 이계에서 돌아온 그들은 성현의 말을 듣고 곧장 존재와의 전쟁을 대비했다.

존재들에게도 포탄은 걸리적거렸다. 터진 파편이 그들의 살을 찢고 지나갔다.

쉭! 쉭!

등급이 약한 존재는 인간의 그 파편에 뱃가죽이 갈렸다. 팔이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걸쭉한 핏물을 주르륵 쏟아 내기도 했다.

존재들의 입에 분노가 흘렀다.

“이런 개 같은 것들이!”

존재들의 시선이 포탄이 날아오는 것을 향해 틀어진 것은 당연하다.

“놈들을 죽인다.”

그런데 도심 아래에서도 예상과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짐승과 인간의 유전자로 만들어진 병기, 그들이 계약자와 싸우기 시작한 거다.

그리고 서은서를 중심으로 이뤄진 페이트 길드, 그중에서 플로르의 의지를 따르지 않는 자들도 싸움에 개입했다. 그중에는 지연우를 따르던 오즈도 있었다.

오즈가 깔깔 웃으며 칼을 들고 플로르의 계약자를 도륙했다. 그녀의 손은 매서웠고 적들은 힘없이 죽어 나갔다.

그 모든 모습을 지켜보던 존재가 있었다. 바로 플로르를 따르는 놈들 중 2인자, 다비즈였다. 놈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도심 한복판에 생전 처음 보는 짐승이 나타났다.

전체적인 모습은 거대한 공과 같다. 지름이 30m쯤 되는 것. 그런데 그 공 전체에는 작은 눈동자가 빼곡히 박혀 있고 몸에는 거친 털이 듬성듬성 보인다.

다비즈가 놈을 향해 입을 열었다.

“모두를 죽여라. 네 배를 채울 때까지 먹어 치워라.”

놈이 그 말을 알아들은 듯 포효했다.

-기이이이이익!

그 소리가 유리를 긁는 것 같았다.

* * *

그 시각 이계, 성현이 양피지를 찢었던 그 동굴.

그 어두침침한 곳에 성현이 죽은 것처럼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있다. 심지어 온몸은 상처투성이다. 가슴에 난 끔찍한 구멍과 찢긴 살을 보면 죽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 상처가 난 것은 존재와 싸울 때였다. 성현은 탑으로 향하는 통신을 근절했고 그 많은 존재가 쏜 마력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성현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 거센 마력을 버텨 내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성현의 앞에는 클로이가 있었다. 그녀는 플로르의 딸, 성현을 손에 얻어 어머니급이 되고 싶은 욕망을 품은 존재였다. 그녀가 성현을 구해 이곳으로 데려온 거다. 그녀가 성현의 상의에 손을 대며 입을 열었다.

“그 정도 공격은 피할 수 있었지 않나? 그런데 왜 안 피하고 다 맞은 거지, 바보처럼?”

클로이는 먼 곳에 서서 그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성현은 바람처럼 빨랐고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공격을 모두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통신 마법을 끊으려 했던 게 문제다. 그 순간 성현은 피하는 것을 멈추고 그 권능을 사용했다.

“그렇게까지 지르힐을 구하고 싶었나?”

부욱! 성현의 상의가 찢어지고 맨살이 드러났다. 그리고 성현의 상체를 바라보던 클로이의 눈이 찌푸려졌다. 성현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였다. 방금 존재들에게 당한 상처를 제외하고도 찢기고 메꿔진 흉터가 가득 보였다. 생사를 넘는 싸움으로 생긴 것이다. 지르힐이 계속해서 치료했지만 한계가 있었고 그 기억은 고스란히 몸에 남았다.

하지만 클로이에게 성현의 상처는 관심 밖이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직 성현이 가진 유전자. 끊임없이 강해지는 성현의 유전자를 받아 완벽한 자식을 만드는 거다.

클로이가 성현의 바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넌 죽을 때까지 이곳에 갇혀 있을 거야. 계속해서 내 자식을 만드는 일을 돕겠지. 지르힐도 플로르도 이곳을 찾지 못할 거야. 이곳 전체를 천 년 동안 봉인했기 때문이지. 그 어떤 탐색 마력을 펼쳐도 찾을 수 없게 만들었으니 안심해라. 내 품에서 쾌락을 느끼며 죽어 가거라.”

천 년이면 성현은 죽는다. 하지만 클로이는 그 상황을 상관하지 않았다. 오직 성현과 만든 자식들이 성장해서 강한 존재가 되기를 기다릴 생각이다.

클로이가 다정스러운 표정으로 성현의 뺨을 훑으며 중얼거렸다.

“넌 내 남편이며 내 자식들의 아버지가 될 거다. 네가 죽어도 네 이름은 영원히 내 아이들의 머릿속에 새겨질 거다. 잊히지 않을 테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클로이의 손에서 투투툭 쇠사슬이 떨어졌다.

“널 가만히 놔두기에는 위험하다. 그래서, 네 마력을 잡아 둘 것을 찾아냈다. 지르힐을 구속했던 것을 구하고 싶었지만 그건 이제 세상에 없더구나.”

지르힐을 잡고 있던 쇠사슬을 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성현은 인간이다. 이 정도의 쇠사슬로도 충분히 그 마력을 잡아 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클로이의 몸에 스르륵 검은 연기가 흘렀다. 그러자 그 옷이 사라졌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클로이의 몸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두운 공간이었지만 그녀의 흰 살결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클로이의 손이 쇠사슬을 향해 뻗어졌다. 쇠사슬이 둥실둥실 떠올라 성현을 향해 이동했다. 그것들은 이제 성현의 손목과 발목 그리고 목을 채울 거다.

클로이가 붉은 입술을 핥았다. 요염하게 웃으며 성현의 몸을 쓰다듬었다. 그사이 쇠사슬이 이동해 성현의 위에 떠올랐다.

“채워라.”

클로이의 말과 동시에 쇠사슬이 그대로 내려갔다. ‘덜컥!’ 소리와 함께 성현의 몸이 구속당하는 순간이었다.

서걱!

이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클로이는 그 소리에 눈을 부릅뜨고 천천히 시선을 틀었다. 그 자리에 지르힐이 서 있었다.

“어, 어떻게?”

이곳 지역 전체는 봉인되어 있다. 그 누구도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르힐의 능력을 우습게 생각한 것이었다.

지르힐이 벌레를 보는 것처럼 클로이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뭐 하니?”

클로이가 입술을 씹으며 몸을 일으켰다.

“방해하지…….”

하지만 그 말이 끝이었다. 클로이의 얼굴이 목과 분리되며 땅으로 툭 떨어졌다. 그녀가 들었던 ‘서걱’ 소리는 지르힐의 창이 그녀의 목을 베고 지나간 소리였다.

지르힐이 클로이의 머리를 밟고 지나며 성현의 앞에 섰다. 그리고 안쓰러운 눈으로 성현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그대…… 미안한데, 자고 있을 시간이 없어.”

지르힐의 손에 검은 연기가 일렁이더니 채워졌던 쇠사슬이 풀리며 성현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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