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이창민 중사가 자주포에 올라 기관총을 잡고 있는 낭인들을 향해 몸을 틀었다.
“현혹되지 마라!”
그 목소리가 컸다. 멍한 눈동자로 지연우를 바라보던 낭인들의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다. 이창민 중사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저놈은 신이 아니라 지연우다!”
“……!”
“유성현에게 죽은 시체일 뿐이다!”
“……!”
“저놈은 그저 좀비다. 지연우가 죽던 그날을 기억하라!”
모두들 지연우가 죽던 그 마지막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연우는 성현에게 처참할 정도로 맞아 죽었다. 그리고 그놈의 마지막은 히어로가 아니라 추악한 벌레였고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인간을 팔아먹으려던 쓰레기였다.
“저놈이 또 우리를 농락하려 한다! 또 당할 것인가?”
낭인들이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한 번 속았으면 됐다. 또 속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준비!”
포탑이 ‘지이이잉!’ 소리와 함께 틀어지며 지연우가 내려오는 빛의 기둥을 향해 맞춰졌다. 이곳저곳에서 무전 소리가 들려온다.
-직사 준비 끝.
원거리 공격이 아니라 직접 조준 사격을 위한 준비가 끝났다. 신호가 떨어지면 포신은 불을 뿜으며 지연우와 빛의 기둥을 공격할 거다.
‘하…….’
이창민 중사가 긴장된 한숨을 내뱉으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주차장에 방렬된 수백 문의 포들이 보인다.
‘이길 수 있어.’
한 발에 50m의 살상반경을 가진 인간의 무기. 그것들이 수백, 수천 발 쏘아질 준비를 끝냈다. 지연우의 신체를 차지한 좀비는 흔적도 남지 않은 채 갈기갈기 찢길 게 분명하다. 아무리 좀비라 해도 인간의 신체는 포탄을 이겨 낼 수 없다.
그리고 이창민 중사가 다시 담배를 입으로 가져갈 때였다.
“쏴!”
그 소리와 동시에 포신이 불을 뿜었다. 거센 후폭풍에 이창민 중사의 머리가 흔들렸고 ‘콰콰콰콰쾅!’ 하고 대지가 흔들릴 정도의 굉음이 들려왔다.
꽝! 꽝! 꽝! 꽈아앙!
포탄이 빛의 기둥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이창민 중사는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사라질 지연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김칫국이었다. 곧 입을 크게 벌릴 수밖에 없었다.
후우우우웅!
포탄은 빛의 기둥으로 빨려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폭발하지 않은 채 바람에 휩쓸려 그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이창민 중사는 눈을 찡그렸다.
‘젠장.’
최악의 상황이 이뤄진 것 같았다.
* * *
그 시각, 플로르의 성.
대부분의 신하가 인간 세상으로 떠난 뒤였다. 그곳은 고요했다.
그런데 플로르의 앞에 신하 한 명이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그 신하는 지연우의 신체를 플로르의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연구하던 자였다.
“성공적입니다.”
플로르는 만족한 미소를 그리며 신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인간 세상에 나타난 것은 지연우였다. 꼬마가 탑에 오를 때 인형을 움직였던 것처럼, 지연우의 몸에 플로르의 마력을 넣어 꼭두각시로 만든 거다.
“그 인형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연우는 어머니의 지시에 절대복종하지만, 개인의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놈의 뇌 세포를 복원했고 조작했죠.”
신하의 입에서 잔인한 미소가 흘렀다. 그리고 놈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각 존재의 사체를 이용해 놈의 피부에 이식했습니다. 그 덕에 놈의 몸은 쉽게 찢기지 않을 겁니다. 인간의 마력 이상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었고 조금만 더 손을 보면 어머니께서 직접 들어갈 수도 있을 겁니다.”
플로르가 다리를 외로 꼬았다.
“내가 직접 들어갈 수 있는 때는 언제가 되겠느냐?”
“인간 세상에서의 실험이 끝나면 곧바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그런데 지금 상태에서 문제는 없는가?”
신하가 입술을 쓸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나…… 우려되는 게 있습니다.”
“말하라.”
“말씀드린 것처럼 놈의 뇌세포가 복원되었습니다. 죽은 시간이 오래되어 상당량의 기억이 소실되었지만 ‘유성현’이라는 이름 석 자는 그 기억 속에 또렷이 박혀 있었습니다.”
플로르의 눈이 가늘어졌다.
“유성현의 이름이?”
“몇 번의 실험을 거쳤지만, 유성현이라는 이름이 들릴 때마다 이성을 잃고 폭주하는 현상을 보였습니다. 그때는 제 지시도 따르지 않았죠.”
“그럼 지연우의 앞에 유성현이 나타난다면…… 계획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게냐?”
신하가 고개를 저었다.
“우려되는 것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지금의 지연우를 막을 수 없습니다. 설령 유성현이 나타난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연우의 몸은 존재의 신체가 이식되어 있고 어머니의 마력이 담겨 있습니다. 유성현을 만나면 잠시 폭주하겠지만, 죽이면 곧 안정을 찾을 겁니다.”
지연우와 탑에 나타난 인형은 달랐다. 인형의 몸에 들어간 마력은 정말 미약했지만 지연우의 신체에는 플로르의 마력이 10%가량 들어간 상태. 이들은 성현이 나타난다 해도 지연우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 * *
다시 인간 세상.
지연우는 자신의 주변을 돌고 있는 포탄을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에는 어떤 감정도 없었다. 그저 한심하다는 느낌으로 포탄을 바라볼 뿐이다.
“고작…… 이 정도로 꿈틀거렸단 말인가?”
그리고 그 시선이 주차장에 선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 그리고 낭인들을 향했다. 그 섬뜩한 눈빛에 이창민 중사는 등골이 오싹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연우가 그들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러자 주변을 돌던 포탄이 그들을 향해 돌아갔다.
쉬이이이익!
수천 발의 포탄이 되돌아오는 것을 보며 이창민 중사가 눈을 부릅떴다.
“어, 엎드려! 숨어!”
이들은 인간이다. 계약자로 살고 있지만 인간의 살과 뼈는 연약하다. 저 포탄이 땅에 떨어지면 몰살이다. 그리고 그 많은 포탄이 일제히 처박혔다.
꽈르르르릉!
아스팔트가 쪼개졌고 포탄의 파편에 나무가 꺾였다. 그뿐만 아니라 미처 피하지 못한 낭인들의 몸이 처참할 정도로 찢겼다.
휘몰아쳤던 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보인 것은 자주포의 위에 인간의 팔과 다리, 그리고 각 내장이 걸려 있는 풍경이었다. 아스팔트를 굴러다니는 인간의 머리는 눈조차 감지 못했다. 자신이 죽은 것도 모른 채 눈을 크게 뜨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씨×…….”
바닥에 엎드려 있던 이창민 중사가 욕을 내뱉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세상을 이렇게 만든 지연우와 플로르를 반드시 죽여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일어나라.”
이창민 중사의 눈이 부릅떠졌다. 뒤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네가 이곳의 대장인가?”
이창민 중사가 바닥에 엎어진 동안 어느새 지연우가 그 뒤에 나타나 서 있었다.
이창민 중사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어떤 기운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머릿속을 스친 것은 ‘죽음’이라는 두려운 단어였다.
이창민 중사가 천천히 고개를 틀었다. 지연우가 무심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창민 중사는 몸에 힘을 주며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공포에 짓눌린 심장이 신체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다. 뱀 앞의 개구리처럼 몸이 바짝 굳어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이창민 중사가 피가 흐를 정도로 입술을 씹었다.
“쪽팔리게…….”
겁을 먹고 있는 자신이 창피했다. 개구리처럼 바짝 엎드려 조금이라도 더 살기를 원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창민 중사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죽어!”
이창민 중사가 두려움을 이기고 주먹을 콱 쥐었다.
콰아아아앙!
그 옆으로 자동차가 나타나 날아왔고 지연우의 몸을 때렸다. 지연우의 몸이 몇 바퀴 땅을 구를 때, 이창민 중사는 바삐 몸을 일으킨 후 다시 손을 휘저었다.
이번엔 하늘에서 비행기가 나타나 폭격이 일어난 것처럼 지연우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죽으라고!”
세상의 물건이 계속해서 허공에 나타나며 지연우를 공격했다.
꽝! 꽝! 꽈아아앙! 꽝!
이창민 중사의 입에서 검은 피가 흘렀다. 한계를 넘어선 마력을 사용하며 신체에 무리가 온 거다. 이창민 중사의 머릿속에서는 계약 존재가 계속해서 위험 신호를 알렸다.
-그만하라! 그만하라!
하지만 이창민 중사는 멈추지 않았다.
후우우웅!
이번엔 허공에서 기차가 나타났다. 그 기차가 지연우가 있던 곳을 향해 그대로 곤두박질 쳤다.
꽈아아앙!
“이건…… 제법이었다.”
그런데 뒤에서 또 지연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창민 중사의 일그러진 눈이 지연우를 향했다. 지연우는 여전히 무심했다. 그리고 이창민 중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만 죽어라.”
콰콰콰콰쾅!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지며 이창민 중사를 후려쳤다. 이창민 중사는 막아 보려 했지만 그 몸이 불길에 휩싸이는 것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크아아아악!”
이창민 중사의 온몸이 활활 타올랐다. 물을 소환해 뿌리며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피부가 녹아내렸고 이미 의식은 흐려지고 있었다.
지연우가 이창민 중사의 앞으로 저벅저벅 다가섰다. 이창민 중사의 머리를 부숴버리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때였다. ‘콱!’ 지연우의 몸을 누군가가 부둥켜안았다.
“헤이!”
지연우의 목이 ‘빠드득’ 소리와 함께 뒤로 틀어지며 자신을 안은 사람을 살폈다.
“같이 죽자.”
박상문 하사였다. 그가 억지로 웃으며 지연우를 꽉 안고 있었다. 하지만 지연우는 여전히 어떤 동요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무시하는 말투로 물었다.
“네가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박상문 하사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죽일 수 있어.”
그 말과 동시에 이창민 중사가 몸을 바동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흐려지는 의식을 붙잡으며 마지막 목소리를 내뱉는 것 같았다.
“안 돼……. 안 돼……. 상문아, 하지 마……. 안 돼…….”
지연우도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을 줬지만 단단히 결박된 것처럼 풀려나지 않는다.
박상문 하사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내 권능이 자폭이다. 이 개새×야.”
“……!”
지연우는 박상문 하사의 몸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을 펼쳐 단도를 소환했다. 그리고 그걸로 사정없이 박상문 하사의 허벅지를 쑤셨다.
푹! 푹! 푹!
“크억!”
박상문 하사가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었지만 지연우를 잡고 있는 팔은 여전히 견고했다.
박상문 하사가 크게 외쳤다.
“이창민 초소장님! 덕분에 군 생활 잘하고 갑니다! 전역해서 형이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그건 못하겠네.”
박상문 하사의 살결이 마른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지더니 그 안에서 빛줄기가 새어 나왔다. 그것은 지연우가 나타날 때 보였던 은빛과는 결이 다를 정도로 눈부셨다.
“안 돼!”
이창민 중사가 외쳤고.
“놔! 놔!”
지연우가 발버둥 쳤다. 하지만 박상문 하사는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