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섬뜩할 정도의 고요함, 지연우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며 치아를 꽉 다물었다. 이제 곧 ‘쾅!’ 소리와 함께 몸이 산산조각 날 거다. 기껏 죽었다가 깨어났는데, 또 죽어야 한다.
“놔! 놓으라고!”
지연우는 시뻘겋게 변한 눈으로 발악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하지만 무리였다. 박상문 하사의 결박은 신의 권능이다. 지연우의 몸에 플로르의 마력이 10%나 담겨 있다 해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씨×…….”
지연우의 입에서 욕설이 내뱉어질 때, 그 귓가에 박상문 하사의 목소리가 살벌하게 들려왔다.
“……이제 가자.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는 착하게 살아라.”
그리고 박상문 하사의 몸에서 빛줄기가 촤아아아악 펼쳐졌고 지연우가 비명을 질렀다.
“안 돼!”
“…….”
그런데 조용했다. 박상문 하사의 몸은 터지지 않았다. 그 적막함 속에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왜?”
박상문 하사가 눈을 깜빡일 때다. 지연우가 어이없다는 듯 낄낄낄 웃기 시작했다.
“하…… 안 터지는 거야? 안 터진 거 맞지? 쪽팔리게……. 괜히 겁먹고 있었네.”
“……!”
박상문 하사는 다시 힘을 줬다. 몸속에 있는 신의 권능을 깨우고 자신의 희생을 약속했다. 자신의 한 몸을 불사질러 지연우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다. 어디에서도 폭발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왜? 왜? 왜!”
박상문 하사가 악을 질렀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로안과 게히얼의 목소리가 스쳤다.
-우리는 널 죽일 수 없다. 널 죽이고 싶지 않다.
-널 도와줄 수 없다. 미안하다.
‘지, 지금 뭐라는 거야?’
박상문 하사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지연우를 죽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지구상의 생명이 멸종될 수도 있다. 그 안에는 박상문 하사의 부모가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며,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 모두를 구하려 하는 것인데, 신들은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생명체의 몸을 오가며 죽음을 경험했다. 그중에는 억울한 죽음, 숭고한 죽음, 어처구니없는 죽음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죽음은 죽음이다. 그 뜻이 무엇이든 죽은 자는 죽은 자다. 살아라. 우리는 너를 살리고 싶다.
‘……갑자기? 갑자기 나를 살리고 싶다고? 미쳤어?’
-우리는 반성하고 있다. 그래서…… 너를 지키려 한다. 넌 이제 다른 곳으로 이동할 거다. 그리고 살아남을 거다. 네 수명을 다 쓰고 살 수 있도록 돕겠다.
-상문아…… 넌 착한 아이다. 우리의 손으로 널 죽게 하지 말지어다. 우리는 너의 행복을 바란다.
박상문 하사의 손이 파르르르 떨려 왔다.
“왜…….”
그때 지연우가 자신의 몸을 붙잡은 박상문 하사의 팔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들며 말했다.
“그만하지? 이제 안 된다는 것 알고 있잖아?”
지연우는 한껏 박상문 하사를 비웃고 있었다. 그 목소리에 박상문 하사는 피가 나올 정도로 입을 거세게 다물었다. 그리고 신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혼자 살아서 뭐하나? 만약, 나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면, 내 스스로…… 내 배를 가르고 죽을 거다. 헛된 시간 만들지 말고 터트려, 이 개새×들아.’
그사이 지연우의 손이 날카로운 칼날로 변했다. 그리고 박상문 하사의 팔목을 자르려는 듯 그 손목을 툭툭 건들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서걱, 소리가 들릴 거야. 아프겠지. 하지만 내 귀에 대고 비명을 지르지 마. 시끄러우니까.”
“…….”
“그 전에 풀어 주면 안 아프게 죽여 줄 생각인데, 어때? 내 나름의 자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나?”
지연우의 칼로 변한 손이 박상문 하사의 손목을 꾹 눌렀다. 그러자 그곳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지연우가 입꼬리를 비틀며 말을 이었다.
“인간의 살과 뼈는 연약해. 툭 하면 부러지고 잘리거든. 비명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게, 이빨 꽉 악물어라.”
계속 말하던 지연우의 눈이 커졌다. 박상문 하사의 손목에 흐르던 피가 하얗게 변한 것을 봤기 때문이다. 곧 그 상처에서 은색의 빛줄기가 뻗어 나왔다. 그 빛이 곧 지연우와 박상문 하사를 휘감았다.
하지만 지연우는 거세게 웃었다. 이미 한번 봤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요란만 떨다가 어떤 일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지연우의 웃음소리는 미친 것 같았다.
“피를 하얗게 바꾸는 권능도 있었나? 그런데 어쩌지? 이제 안 속아! 터질 수 있으면 터져! 같이 죽자고! 크핫핫핫핫!”
꽝!
그 순간, 짧은 폭발음과 함께 그 자리에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지연우와 박상문 하사의 살점이 이곳저곳으로 튀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폭발은 압축된 것처럼 딱 그 자리에서만 일어났다. 그 외의 피해는 없었다.
그리고 후우우웅, 바람 소리가 사라졌을 때, 이창민 중사는 울면서 땅바닥을 기었다.
“사, 상문아…… 상문아……. 상문아!”
땅 바닥을 기는 바람에 이창민 중사의 손톱이 부러졌다. 녹아내린 살이 아스팔트에 갈려 뜯겼다. 하지만 이창민 중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이창민 중사의 눈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 입에서 절망에 가득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아아악!”
박상문 하사가 지연우를 안고 있던 그곳에 남은 흔적은 어떤 것도 없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손톱만 한 검은색 돌덩이 두 개가 전부였다.
이창민 중사가 그 돌덩이 두 개를 손에 쥐었다.
“상문아! 상문아!”
그런데 그때였다. 이창민 중사는 자신의 뒤에서 거대한 마력이 휘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바닥에 놓여 있던 살점이 그곳으로 모인다. 그리고 다시 인간의 형태가 되어 갔다. 그것은 지연우였다.
“하…… 죽는 줄 알았네.”
지연우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창민 중사가 눈을 부릅뜬 채 지연우를 노려봤다. 지연우가 조용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는데, 폭발하는 순간에 신의 음성을 들었어. 여신은 권능을 도와주겠다고 말했고 남신은 그럴 수 없다고 말했지. 여신의 권능, 반쪽짜리 힘…… 그걸로 날 죽일 수는 없었나 봐. 그래서…… 하나 예상한 게 있는데, 방금 날 잡고 터져 죽은 그 멍청한 놈, 계약자가 두 신이었나? 인간이 신의 권능, 그것도 두 신과 계약하다니…… 대단한 일이야.”
지연우가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계속 말했다.
“그런데 신은 봉인됐다고 하지 않았나? 어떻게 인간과 계약한 거지?”
“…….”
“뭐, 나랑 상관은 없지. 난 죽지 않는 몸을 가졌으니, 신 따위는 필요 없거든.”
지연우가 이창민 중사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무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 네가 죽을 시간이야. 먼저 죽은 놈이 기다리고 있으니, 서둘러 가도록…….”
지연우의 목소리는 이어지지 못했다.
콰직!
지연우는 갑자기 날아온 발 차기에 머리를 맞고 수십 미터나 땅바닥을 구르며 튕겨 나갔다.
콰당탕탕탕!
요란하게 자빠진 놈이 느릿하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느긋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끝까지…… 덤빈다는 것인가?”
지연우는 자신이 절대 강자가 된 것처럼 여유롭다. 기습 공격을 당했지만, 언제든 짓밟아 죽일 수 있다고 여긴 거다.
놈이 자신을 공격한 누군가를 향해 눈동자를 옮겼다. 그리고 그 눈이 빠르게 충혈됐다.
“유성현!”
지연우는 이창민 중사의 앞에 서 있는 성현을 봤다. 자신을 공격한 것이 성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지연우의 목소리는 피가 터질 것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죽인다! 죽인다! 너만은 반드시 죽여 버린다!”
지연우의 광기 어린 목소리를 들으며 성현은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지연우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다정히 말했다.
“와라. 또 죽여 줄게.”
지연우의 눈빛이 돌변했다. 느긋하던 모습은 이제 없다. 그저 광기 어린 눈동자로 노려볼 뿐이다. 그리고 놈이 성현을 향해 튀어 나갔다.
“이 개새×가!”
“또 살아나라, 끝없이 죽여 줄 테니.”
성현 역시 지연우를 향해 돌격했다. 두 사람의 몸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콰아아아앙!
그 시각, 서울을 공격하던 존재들도 성현의 마력을 느꼈다.
“유성현이다.”
“유성현이야!”
그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성현이었다. 성현을 잡아 인질로 삼는다. 그래서 지르힐을 다시 봉인시킨다. 그것이 그들의 계획이다. 하늘에 박혀 있던 그 많은 존재들이 일제히 과천을 향해 이동했다.
* * *
“로안과 게히얼? 신이…… 인간의 몸에 숨어 있었다고? 계약을 한 게냐?”
플로르의 성이었다. 플로르의 질문에 신하는 고개를 저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로안과 게히얼 역시 창조주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아마 생명체들의 몸을 오가며 세상을 지켜본 게 아닐까 싶습니다. 조금 더 확신이 생기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플로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로안…… 게히얼…….”
그들은 창조주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신이다. 생명체를 관장하고 남과 여, 음과 양의 조화를 지켜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태초의 시간에 그들은 나태해지며 남과 여의 갈등을 만들어 냈고 세상의 파멸에 일조했다.
“설마…….”
플로르는 그 둘이 에느가인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 갔다.
“창조주의 힘을 나눠 받은 두 신, 그 힘, 매월 보름 인간의 몸에 들어간다고 했어…….”
플로르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신하에게 지시했다.
“방금 죽은 그자의 생일을 찾아오라!”
박상문 하사의 생일이 보름이라면, 예언서에 드러난 일이 맞는 거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다음 보름에 태어날 아기! 그 안에 에느가인이 있을 게다!”
플로르는 다음 보름에 태어날 모든 갓난아기의 뱃가죽을 찢어 에느가인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진정한 신이 될 수 있는 시간이…….”
하지만 플로르의 목소리는 이어지지 못했다.
타박, 타박, 타박.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낯선 발소리에 플로르의 눈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끼이이익!’ 하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존재, 지르힐이었다.
“……!”
플로르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하얀 로브를 입고 온 지르힐이 천천히 시선을 들어 높은 계단 위에 선 프로르를 바라봤다.
“지, 지르힐…….”
“많이 바뀌었네? 그때, 네가 앉은 자리는 이렇게 높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르힐!”
플로르가 벼락같이 외쳤지만 지르힐이 금빛 머리를 휘날리며 밝게 웃었다. 플로르에게는 지르힐의 그 아름다운 미소가 살벌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르힐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내려와. 너한테 그 자리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
“사지를 찢어 죽여 줄게.”
지르힐의 목소리는 즐거웠다. 하지만 내뱉은 말의 의미는 살벌했다.
플로르는 왕좌에 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꽉 잡은 팔걸이가 으스러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