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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248화 (248/252)

248화

성현의 시선이 손바닥에 놓인 돌멩이를 향해 틀어졌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돌멩이다. 조금 반짝거리기는 하지만, 그 외에 특별한 것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게 에느가인이라고?’

-너로서는 신의 힘을 느낄 수 없을 거다.

아무리 강한 인간이라 해도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속도를 느낄 수 없고 아무리 똑똑한 인간이라 해도 우주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신의 힘도 그렇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다. 노력한다 해도 그 아득함은 이해를 허락하지 않는다.

-삼켜라! 먹어서 흡수하라!

성현의 신체는 한계에 도달해 있다. 지금도 죽어 가는 중이다. 그러니 이 이상의 힘을 담으면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마법사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어차피…… 넌 죽는다. 꿈틀대기 위해선, 기적을 바라기 위해선 그 한계를 깨야 한다.

성현은 자신도 모르게 끌끌끌 웃었다. 지금 마법사의 말은 폭탄에 맞아 죽어 가는 사람이, 기적을 바라기 위해 터지기 직전의 폭탄으로 달려가라는 것과 같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지 않아도 안다. 이 돌을 삼키면, 죽는다.

하지만 마법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먹지 않으면, 패배한다. 하지만 먹는다면…… 자폭이라도 할 수 있겠지.

성현의 눈동자가 앞으로 향했다. 지연우와 함께 존재들이 다가서고 있다. 놈들은 성현을 장난감처럼 바라보며 짓궂게 웃는 중이다.

성현의 시선이 놈들을 스쳐 위로 옮겨졌다. 하늘을 까맣게 수놓은 존재들이 보인다. 앞의 놈들을 죽인다 해도 그다음은 저들을 상대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의 너로서는 저들 전부를 죽일 수 없다.

성현은 양피지뿐만 아니라 지난 회귀자의 힘까지 모두 흡수했다. 한 명, 한 명은 박살 낼 수 있겠지만 저 많은 존재를 상대할 힘은 없다.

-먹어라.

성현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손바닥 위로 눈동자를 틀었다.

-지르힐의 힘도 약해지는 중이다. 어쩌면…… 플로르에게 당할 수도 있겠지.

그것은 성현도 느끼고 있었다. 성현이 가진 힘의 바탕은 지르힐이다. 그녀와 계약한 후, 그녀에게서 전해지는 마력을 빌려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녀의 존재감이 흐려지고 있었다.

이런 일은 그녀가 쇠사슬에 구속되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것, 그녀와 연결된 힘이 흐려진다는 것은 그녀의 신체에 어떤 이상이 생겼다는 것. 순간, 성현의 머릿속에 지르힐이 했던 말이 스쳤다.

“얼굴을 보기 위해 기다렸다. 눈을 마주했으니 됐다. 난 이제 가 보겠다. 그동안 고생했다. 넌 이제 쉬어라. 다음은 내가 한다.”

그 말이 꼭 작별 인사처럼 느껴졌다. 그 목소리를 떠올리던, 성현이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같이 밥 먹자니까…….’

성현은 지르힐과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그녀가 얼마나 괴로운 시간을 보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오랜 시간 만난 지르힐과 얼굴을 마주한 시간이 그 잠깐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성현이 돌멩이를 집어삼켰다. 지연우와 존재들이 성현의 머리 위로 칼을 휘두르는 것과 동시였다. 성현의 몸에서 번쩍, 빛이 흘렀다.

* * *

성현의 무의식.

팔짱을 낀 마법사의 앞으로 뿌연 안개 같은 것이 서리더니, 로안과 게히얼의 모습이 나타났다. 두 신은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른 채 자신들의 형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신 게히얼이 중얼거렸다.

“벌써…… 보름이 되었는가?”

동시에 여신 로안이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왜! 박상문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었지? 왜 힘을 더해 주지 않았지?”

이 둘의 의식은 박상문 하사의 자폭과 함께 끝나 있었다. 여신 로안은 마지막 순간에 자폭을 돕지 않은 게히얼을 탓했다.

“넌 언제나 그랬어! 내 의견이면 일단 반대하고 보는 거지!”

게히얼이 고개를 저었다.

“반대한 게 아니야! 내 힘으로 박상문을 죽이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그게 이기적인 거야! 박상문은 희생의 맹세를 했어! 우리는 그것을……!”

“박상문은 누구보다 살고 싶어 했다! 희생을 결심했지만, 흔들리는 마음을 느끼지 못했는가? 그런데 내가 그 죽음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나?”

순간, 싸우던 두 신은 자신들을 쏘아보는 살기를 느꼈다. 두 신의 시선이 그쪽을 향해 틀어진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둘의 눈이 커졌다.

“……!”

그곳엔 마법사가 묘한 미소를 그리며 두 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인데,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겠다. 관리자의 놀이라는 것을 한번 해 보고 싶어졌거든.”

“마, 마법사?”

“마법사가 맞아? 그, 그럼…… 여기는 누구의 몸이야?”

로안과 게히얼은 눈을 깜빡이며 마법사를 바라봤다. 태초의 전쟁 이후 망령이 된 자가 이곳에 있다니. 신들의 눈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하지만 마법사는 그 의문을 풀어 줄 생각이 없었다.

“인사할 시간은 없다. 세상의 균형을 위해 너희 두 신에게 지시한다. 이 몸에서 죽어라. 그리고 너희의 힘을 더하라.”

“뭐라?”

마법사가 주먹을 꽉 쥐며 말을 이었다.

“억울해하지 마라. 너희의 희생은 내가 기억한다. 그리고 관리자로서 세상의 균형을 위해 플로르를 산 채로 뜯어먹어 주마.”

로안과 게히얼은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이곳이 성현의 몸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게히얼이 입술을 움직였다.

“죽어 가는 중이었나?”

무의식의 세계는 이런저런 힘이 뒤덮여 끔찍한 공간이 되어 버렸다. 상처 입은 마력이 넘실되며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쪼개지고, 박살 나고 있었다. 마력이 마력을 집어삼키고, 토해 내는 것처럼 검은 물을 쏟아 냈다.

“저…… 저건?”

게히얼은 그 검은 마력 중에 양피지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창조주가 만들어 낸 양피지, 생명체에게 기회를 준다며 만들어 둔 것.

“저, 저게 왜 이곳에?”

성현이 양피지까지 흡수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돼…….”

양피지는 시간을 되돌리는 마력이 있다. 인간은 시간이라는 개념에 속한 생명체, 그 마력을 견딜 수 없다. 그리고 그 결과로 성현의 무의식은 무너지는 중이다.

“죽을 거야…….”

게히얼은 성현의 남은 시간을 떠올려 봤다. 길어야 며칠이다. 그 안에 유성현이라는 사람은 죽고 말 거다.

“또……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가?”

“아니, 너희가 죽는 거다.”

“……!”

마법사의 입가에 흉악한 웃음이 지어졌다. 그리고 그 손에서 날카로운 창이 만들어졌다. 마법사가 창을 툭툭 털며 두 신을 향해 계속 걸었다.

“창조주가 너희에게 걸어 둔 제약, 생명체가 죽어 가는 것을 무책임하게 지켜봐야 하는 것, 너희 스스로 싸움의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것, 즉…… 나와 싸운다면 너희는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다는 것.”

두 신은 마법사의 짙은 살기를 느끼고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바닥을 채운 마력이 꿈틀대더니 두 신의 발목을 잡아챘다.

마법사의 손이 게히얼의 머리를 잡아 땅에 처박았다.

콰지지지직!

마법사가 살벌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너희의 나태함으로 세상이 이 꼬라지가 됐어. 죽어서 양분이 되어라.”

바닥에 채워진 검은 마력이 게히얼의 몸을 휘감았다. 게히얼이 발버둥 치며 외쳤다.

“내 마력이 들어가면, 이 몸의 주인은 몇 시간 살 수 없을 거야! 지금 몸으로 서 있는 것도 기적인데, 나까지 흡수한다고? 말도 안…… 크아아아악!”

마법사의 손에서 붉은 빛이 번쩍이며 게히얼의 몸이 녹아 내렸다.

그리고 마법사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로안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저었다.

“마법사…… 우리가 이렇게 죽는다 해도 보름이 되면 또 살아날 게다. 우리에게 원한을 심어 둘 생각인가? 그건 너에게도 도움이 안 돼. 그리고…… 우리가 이런 식으로 사라지면, 세상의 룰이 또 한 번 깨질 거야. 그건 재앙…….”

“상관없어.”

* * *

성현의 머리 위로 지연우의 칼날이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성현에게 그 모습은 너무도 느렸다. 아니, 느리다는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마치 멈춘 것처럼 보였다.

갑작스레 몸에서 솟구친 마력, 성현의 오른쪽 눈동자가 금빛으로 변했고 왼쪽 눈동자는 은빛으로 바뀌었다. 찢어진 살갗에서는 이제 검은 마력이 아니라 은빛이 새어 나오는 중이다.

‘이게…… 에느가인의 힘?’

성현의 시선이 다시 앞을 향했다. 가장 앞에는 지연우, 그 뒤로 수많은 존재들.

성현은 자박자박 앞으로 이동해 지연우의 뒤에 있는 존재의 몸에 창을 쑤셨다. 놈의 몸이 들썩인다. 하지만 시간이 느린 탓인지, 찢어진 뱃가죽에서 내장이 쏟아지지 않는다. 성현은 한 놈, 두 놈, 세 놈…… 계속해서 그들의 몸을 도륙했다. 모두 멈춰 있기에 어렵지 않았다. 정말 간단한 일이었다.

그렇게 모든 놈을 가격한 후 천천히 시선을 틀었다. 그리고 창을 휘둘러 지연우의 몸을 찢었다. 그러자 시간이 평소처럼 흘렀다.

촤아아아아악! 콰콰콱!

둔탁한 소리가 이어졌고 허공에 떠 있던 지연우와 존재들의 몸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얼굴이 잘려 나갔고 복부가 찢어졌으며 핏줄이 끊겨 사정없이 피를 쏟아 내는 놈이 보였다. 그리고 그 입에서 고통으로 가득한 신음 소리가 이어졌다.

“끄아아아악!”

그들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고 있다. 고속의 시간에서 움직인 성현의 행동을 눈으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겁을 집어먹은 눈으로 성현을 바라봤다.

“이, 인간이 아니야…….”

인간이 이런 식으로 고위급 존재를 죽일 수 없다. 이런 힘은 지르힐이나 마법사, 신이어야 가능한 거다.

“괴, 괴물이야…….”

마지막으로 지연우의 몸이 정확히 세로로 갈려 갈라지고 있었다.

쩌저저저적!

놈은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그놈 역시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천천히 무릎을 꿇을 뿐이다. 그리고 양분되어 옆으로 갈라지며 쓰러졌다. 찢어진 몸에서 놈의 내장이 역겨울 정도로 흘러나왔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보던 이창민 중사는 눈을 크게 떴다.

‘이, 이게 뭐야?’

성현이 돌멩이를 삼킨 직후, 지연우와 존재들의 몸이 썰려 나갔다. 눈으로 볼 수 없던 것은 당연하고 그 기운조차 느낄 수 없었다.

성현이 강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의 모습은 그 예상을 뛰어넘었다. 지금의 성현은 인간이 아니다. 존재라는 말도 부족하다. 말 그대로 압도적이다.

이창민 중사의 얼굴에 지연우가 찢어지며 튄 핏물이 질질 흐를 때, 성현은 몸을 틀어 지연우의 앞으로 다가섰다.

이창민 중사가 성현의 변한 눈동자와 입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입을 열었다.

“서, 성현아?”

이창민 중사가 봐도 성현의 상태는 좋지 않다. 핏기가 사라진 창백한 피부는 지금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성현아!”

성현은 이창민 중사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런저런 말에 답해 줄 시간이 없다. 성현이 재생이 시작된 지연우의 몸에 창을 푹 박아 두며 입을 열었다.

“죽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지금부터 알게 될 거야.”

성현의 창에서 스파크가 파직거렸다. 그것이 지연우의 신체를 휘감았다. 전기는 끊이지 않고 흐를 거다. 지연우는 고통 속에서 몸이 찢어지고 태워지는 느낌을 영원히 느껴야 한다.

“끼아아아악!”

지연우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흘렀다. 발버둥을 치며 땅을 박박 기었지만, 손톱만 부러질 뿐이다. 놈은 이제 플로르가 죽어 마력이 끊길 때까지 끔찍한 고통을 이어 가야 한다.

성현의 시선이 천천히 하늘로 향했다. 하늘을 꽉 채운 존재 그리고 땅으로 떨어지는 검은 구체, 이제는 저것을 박살 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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