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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250화 (250/252)

250화

하지만 플로르에게 큰 타격은 없었다. 그저 자신의 주변을 날파리처럼 오가는 성현과 회귀자들을 보며 짜증을 내뱉었다.

“이것들이!”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인간이 만든 병기가 플로르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처음은 미사일이었다. 다음은 전투기였다. 그것들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와 플로르를 요격했다.

콰르르르릉!

하지만 그것 역시 플로르에게 타격을 줄 수는 없었다. 인간의 병기는 플로르의 몸에 닿기 전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터져 버렸다.

그것들 역시 플로르에게는 귀찮은 대상이었다. 플로르는 가볍게 손짓을 흔들었다. 그녀의 마력에 전투기가 건물에 처박혔고 헬리콥터의 프로펠러가 아스팔트를 갈며 바닥을 쓸었다.

그리고 플로르가 땅을 세게 밟았다.

쿠우우웅!

땅이 흔들리며 갈라졌다. 갈라진 틈은 절벽과 같았고 그 안은 붉은 용암이 넘실됐다. 그 안으로 빌딩이 무너져 들어갔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빨려 들어갔다.

“꺄아아아악!”

그들의 비명이 세상을 채웠다. 그곳은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지 않았다. 아이와 노인,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돈이 많은 자와 없는 자, 권력을 지난 자를 구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집어삼켰다.

끝이 아니었다. 플로르의 몸에서 솟아난 마력이 하늘을 뒤덮으며 빛줄기 하나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 이곳은 지옥이었다.

플로르가 인간의 비명을 들으며 시선을 틀었다. 그리고 자신을 공격하는 회귀자를 손에 쥐었다.

“끄아아아악!”

회귀자는 몸이 녹는 것을 느끼며 악을 질렀다. 그 회귀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플로르가 입을 쩍 벌리더니 한입에 집어삼켰다.

성현이 플로르를 향해 튀어 갔다. 플로르의 손바닥이 파리를 잡는 것처럼 휘둘렸다.

쩌억!

성현이 바닥에 튕기며 수백 미터를 굴러갔다. 곧바로 플로르의 몸에서 만들어진 불덩이가 성현을 향해 쏘아졌다.

콰콰콰쾅!

플로르가 입술을 뒤틀며 웃었다.

“널 죽이지는 않을 거다. 넌 인질이 되어야 하거든. 하지만 다리 정도는 망가뜨려 놔야겠다.”

플로르의 손이 쓰러진 성현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콰지지지직!

그 모습을 전 세계의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느끼는 중이었다. 그들은 회귀자들의 활약으로 잠시 승리에 대한 희망을 가졌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 회귀자들 역시 간식거리가 되는 것을 보며 절망적으로 울부짖었다.

그리고 플로르가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너희의 신이다!”

“……!”

“살고 싶은 자는 나를 믿어라!”

살아남은 자들은 털썩털썩 무릎을 꿇었다. 플로르를 향해 절을 했고 손을 비비며 살기 위해 기도했다. 그들은 플로르가 아닌 신을 모시고 있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그들은 변절했다.

플로르가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봤다.

“내 이름은 플로르, 내 이름을 연호하라. 나를 따르는 자는 죽지 않는다.”

그때 이곳저곳에서 존재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군주급의 존재가 병력을 끌고 세상에 내려왔고 어머니급의 존재가 플로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플로르 님을 돕겠습니다.”

그들은 플로르가 자유를 얻은 것을 봤다. 그리고 플로르의 자유가 만들어 낼 미래를 두려워했다. 플로르가 인간 세상을 멸망시킨 후 어떤 행동을 할지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플로르는 싸움을 돕지 않은 존재를 죽일 거다. 그들을 적으로 간주한 후 잔인하게 씹어 먹을 게 당연하다.

‘그 전에 꼬리를 치며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야 해.’

그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타난 존재의 숫자는 처음 이곳에 왔던 플로르의 대군보다 많은 숫자였다.

“싸워라. 내게 충성을 보여라.”

플로르의 지시와 동시에 한 군주가 회귀자를 향해 돌진했다. 목표는 곰의 머리를 가진 회귀자다. 그가 총알처럼 날아오는 군주를 보며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미처 방어를 하기 전이었다. 군주는 그 회귀자의 머리를 잡고 땅에 처박았다.

콰지지지직!

회귀자의 두개골이 으깨지는 소리가 세상에 울렸다. 사방에 피와 뇌수가 튀었다.

“별것 아니네?”

그리고 존재와 회귀자의 싸움이 시작됐다. 회귀자들은 어떻게든 싸워 보려 했다. 하지만 숫자부터 차이가 났고 가진 권능은 발악하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콰직! 콰아앙! 꽈앙!

이곳저곳에서 죽어 가는 회귀자의 고통이 들려왔다. 그 모습을 보며 플로르가 흡족하게 웃었다.

“방해하는 것은 없다.”

플로르는 잠시 후 지르힐이 나타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존재, 그것도 군주급의 존재가 가득한 상황에 지금의 지르힐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완벽했던 지르힐도 이 숫자를 이기지 못하고 탑에 감금되었었다.”

그런데 지금의 지르힐은 팔이 하나 없으며 마력이 소진되는 중이다.

“이번에는 죽일 수 있겠구나.”

하지만 플로르의 생각 중 어긋난 게 있었다. 모든 존재가 그녀의 편을 들어 줄 것이란 착각이다. 곧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플로르를 돕는 존재와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서은서와 계약한 존재인 카디르버가 있었고 탑에 남아 체력을 회복한 꼬마도 있었다.

“플로르에게 머리를 숙이느니, 죽는 게 낫다!”

“넌 신이 아니야!”

플로르는 자신을 향해 칼을 들이민 군주들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플로르의 시선에 그들 역시 벌레일 뿐이다.

“내게 대항하는 모든 것을 죽여 버린다.”

플로르가 가볍게 손을 흔들자, 불덩이가 떨어졌고 그것들은 괴물의 모습이 되었다.

“내 아이들아, 이 어미에게 덤비는 자들을 처단하라.”

수만 마리의 괴물이 네발로 뛰었다. 놈들이 뛸 때마다 떨어진 불똥이 또 다른 괴물이 되어 움직였다. 그리고 그것들이 상대 군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인간들의 세상은 존재의 전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인간은 그들의 싸움에 힘없이 죽어 나갔으며 살기 위해 바동거렸다.

그리고 성현은 잠시 전장에서 벗어나 있었다. 갑주는 사라졌고 몸은 만신창이였다. 플로르에게 당하며 화상을 입은 몸이 징그러울 정도로 흉측했다. 숨을 토해 낼 때마다 뜨거운 불덩이가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때 머릿속에서 마법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나를 꺼내라! 회귀자의 형상을 만든 것처럼, 내 형상을 세상에 만들라!

성현이 한숨을 내뱉었다. 회귀자를 만들어 내며 쏟아 낸 마력으로 살점이 말라붙은 모래처럼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성현의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몸이 붕괴되며 죽음에 이르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상황에 마법사까지 끄집어내면 성현의 몸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남은 방법이 없다!

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존재들과 플로르, 저들을 막을 방법은 마법사다. 물론, 확률은 낮다. 마법사를 만들어 낸다 해도 그 본질은 망령이다. 성현의 마력으로 일시적인 신체를 가지는 게 전부다. 플로르를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때 플로르의 시선이 성현에게 틀어졌다.

“아직 네가 있었구나?”

“……!”

“나를 믿는 신자들아, 유성현을 잡아라. 다리를 찢고 팔을 빼앗아도 좋다. 목숨만 붙어 있게 하라. 그럼 그 용기 있는 자는 내 품에서 보답을 받으리라. 하지만 겁을 내는 자는 꺼지지 않는 불속에서 신음하리라.”

성현과 싸우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뜻이다. 인간들이 성현을 향해 달렸다. 그 안에는 계약자도 있었고 평범한 사람도 보였다. 그들은 지금껏 성현이 자신들을 위해 싸운 것을 봤지만, 플로르의 지시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성현의 몸은 이미 죽어 가고 있다. 잡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죽일 거야!”

그들이 용암이 흐르는 아스팔트를 뛰었다. 그런데 그들의 걸음은 곧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앞에 서은서와 이서아 그리고 페이트 길드가 섰기 때문이다.

“한 걸음만 더 움직이면 모두 죽일 거야.”

서은서의 목소리가 무섭게 흘렀다. 하지만 그들은 잠시 멈칫거리는 게 전부였다.

“비켜!”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 벌어졌다.

그 모습을 성현은 암담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마법사의 목소리가 스쳤다.

-나를 꺼내라. 저들도 죽여 주자. 이기적인 생명체는 모두 죽어야 한다.

성현이 손을 뻗었다. 마력이 채워졌고 그곳에서 마법사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어둠처럼 보이는 검은 머리카락, 암흑을 담고 있는 검은 눈동자, 마법사는 성현을 뒤로한 채 곧장 플로르를 향해 쏘아지듯 날아갔다.

그런데 마법사의 표정이 어둡다. 신체가 만들어졌다지만 어디까지나 성현의 마력으로 이뤄진 것, 그는 예전의 힘을 손에 쥐지 못했다.

‘그럼 방법은 하나야.’

마법사의 눈에 실핏줄이 터지며 벌겋게 변했다. 그리고 몸에서 피어오른 마력이 하늘을 뒤덮었다. 땅에 있던 돌덩이가 중력을 무시하며 솟구쳤다. 급기야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세상이 흔들렸다. 그 엄청난 마력을 느낀 존재들이 싸움을 멈춘 채 마법사를 바라봤다.

“마, 마법사? 망령이 된 게 아니었어?”

그들은 마법사를 두려워했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가늘게 떴다. 이 상황에 지르힐까지 나타나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마법사의 마력이라면, 지르힐과 함께 그들을 몰살시킬 능력이 있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플로르는 달랐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마법사를 보며 눈을 살짝 찌푸린 게 전부다. 마법사는 껄끄러운 존재다. 하지만 그뿐이다. 플로르는 마법사를 요리하는 법을 알고 있다.

플로르가 입술을 뒤틀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 앞에 거대한 시험관이 나타났다. 안에 있는 것은 마법사의 아들이다. 마법사의 눈이 부릅떠질 때, 플로르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내 방패로 사용하려 하는데, 어떻게 보이는가?”

마법사의 행동이 멎었다. 화상을 입어 피부가 녹아내린 아들이 바동바동 움직이는 걸 보며 입술을 씹었다. 억겁의 시간 동안 참아 내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마법사가 시험관에 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그 모습을 보며 플로르의 입술이 죽 찢어졌다.

“관리자가 사랑에 빠지면 이렇게 되는 거란다.”

플로르가 손을 휘둘렀다. 손바닥으로 멈칫거리는 마법사를 후려쳤다. 마법사가 멈칫거리는 사이 때려죽일 생각이다. 그리고 그 손바닥이 마법사를 강타했다.

쩌어어어억!

그런데 마법사는 튕겨 나가지 않았다. 인상을 구기며 플로르의 손을 막아 내고 있었다.

“플로르!”

마법사가 창을 휘둘렀다.

콰지지지직!

그런데 창이 노린 것은 플로르가 아니었다. 창끝이 시험관을 부수며 휘둘렸다.

“아, 아들을 죽이려는 게냐!”

플로르의 눈이 기겁할 때였다. 마법사는 플로르를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같이 죽자, 플로르.”

플로르는 마법사의 결의를 느꼈다. 마법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플로르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마법사!”

“같이 죽자고 했다.”

마법사는 세상이 이렇게 된 이유가 자신의 행동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세상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을 거다. 지금도 평화로운 일상이 스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아내도 아들도,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했을 거다.

“다시, 되돌려 놓는다.”

마법사는 이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지기로 했다.

“이런 미친놈이!”

플로르가 마법사를 떼어 내기 위해 다급히 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마법사는 그 자리에 없었다. 쉭 하고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어디야! 어디에 있는 게야!”

플로르가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뒤늦게 마법사를 찾을 수 있었다.

마법사는 시험관이 깨지며 땅으로 떨어지는 아들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사뿐히 땅에 내려오며 아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많이 아팠지?”

아직 갓난아기, 억겁의 시간 동안 시험관에 갇혀 목숨만 연명해 오던 아들이다. 마법사는 숨이 꺼져 가는 자신의 아들을 잠시 바라봤다. 마법사의 눈이 벌겋다.

그리고 잠시 후, 마법사는 정말 소중하게 아들을 바닥에 내려 둔 채 다시 플로르를 향해 튀어 올라갔다.

“몸이 만들어지고 느꼈다. 내가 너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치명상은 줄 수 있지. 다음은 지르힐이 해결해 줄 거다.”

다가오는 마법사를 보며 플로르가 비명을 질렀다.

“아, 안 돼!”

플로르가 마법사를 막기 위해 손을 뻗었다.

콰아아앙! 쾅! 콰콰쾅!

플로르의 손에서 연이어 마력이 쏟아졌다. 하지만 마법사는 그 모든 마력을 뚫고 플로르를 향했다. 그리고 플로르의 몸에 마법사가 꽂혔다.

꽈아아아앙!

성현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벽에 등을 기댄 채 무너지고 있었다. 몸의 상태는 더 최악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오른팔이 썩은 나뭇가지처럼 툭 떨어졌다. 마법사의 신체를 만들어 내며 마력을 소진한 탓이다.

“아…….”

상처에는 은빛이 휘몰아쳤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저 마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성현이 허탈하게 웃으며 앞을 바라봤다. 플로르와 함께 폭발하는 마법사의 섬광이 눈동자에 담겼다. 그리고 후폭풍에 마법사의 아들이 공중에 떠서 바람과 함께 날아가는 게 보였다. 그 아기가 향하는 곳은 건물이 녹으며 튀어나온 철골, 아기는 곧 죽을 거다.

성현은 눈을 감았다. 회귀를 했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더 비참한 이야기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늦었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힘겹게 눈을 떠 보니 지르힐이 나타나 성현의 앞에 서 있었다. 그녀가 마법사의 아기를 안은 채 성현을 향해 살짝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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