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희망이라는 놈을 줄 거야.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16. 희망이라는 놈을 줄 거야.
라이거 백작령의 서남부 요새 마을.
라이거 백작령 내의 마을 중에서
무기와 방패의 이름이 붙은 마을 중 하나였다.
창의 마을
몬스터 숲에서 내려오는 몬스터들을 키지는
거대한 성벽 아래, 상주 병사와 그들의 가족이
마을 주민의 중심이었고,
몬스터 부산물을 목적으로 찾아오는 용병들이
점점 늘면서 상인들도 덩달아 늘어나며
마을에서 도시로 발전했었다.
하지만 라이거 가문이 공작가에서 백작가로 떨어지며
힘을 점점 잃어가는 동안
창의 도시 또한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몇 대의 영주들이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하는 바람에
혼란스러웠던 해가 몇 년이며,
또 몇 대의 영주들은 내부 반란과
몇 년에 걸친 영지전의 결과로 두 영지를 잃고
정신없이 보낸 해가 몇 년이었고,
이후 영주들은 기울어져 가는 가문을
이끌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반란이 일어나고 영지전을 치르는 동안
요새 도시들은 지원이 끊기면서,
점점 병력이 줄어들어갔고,
결국 영지전이 끝나는 해 겨울
몇백 년을 굳건히 버티던 성벽 일부가 부서져 버렸다.
성벽의 보수와 병력의 지원을 기대했던
창의 도시의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반란과 영지전으로 재정이 바닥나고
많은 기사와 병사를 잃은 라이거 가문이었지만,
남쪽 몬스터 숲과 그와 바로 마주하고 있는
개의 주요 도시도 버릴 수 없었다.
남부의 방패의 도시
남서부의 창의 도시
남동부의 검의 도시
결국, 라이거 가문의 선택은 병력의 상주가 아닌,
일부 파견 및 겨울 몬스터 범람 시 중앙의 지원이었다.
라이거 가문은 그 약속을 지키기는 했다.
하지만 파견 병사는 1년만 버티다가 겨울 본 병력과 함께
철수하면 된다는 생각뿐이었고,
그 수도 고작 50명뿐이었다.
또한, 겨울 토벌을 위한 기사단과 병사들이
도시를 지키고 몬스터를 물리쳤지만,
3할만 가져가던 몬스터 부산물의 양을
영지 안정화를 이유로 7할까지 올려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상황은 점점 더 악화하였다.
불안감에 떠는 주민들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주민 대표는 영주에게 나이가 많은 이들과
어린 아이들만이라도 본성 또는 안전한 마을에
이주시켜 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마저도
방어와 보급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명으로 거절되었다.
몬스터 부산물의 질이 좋아 돈벌이를 하던 용병들조차
겨울을 버티기 힘들어지자
하나둘 도시를 떠나기까지 했다.
결국, 이렇게 창의 도시는 마을로 변했고,
파견 나온 병사들은 파견이 아닌
천이라 생각하며 오늘날까지 왔다.
그런 마을의 입구를 바라보며 이곳의 흥망성쇠를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을 때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며칠 이곳에 있었지만.. 참 어두운 곳이더군요."
"오래 기다렸어?"
"어제 도착해서 도련님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버려진 요새로 모두가 도착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운 좋게 도망쳤든, 죽었든,
도착하지 않은 인원들의 정리와
고생해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먹고 마실 것을 주기 위해
리먼이 필요했다.
"덩치는 그대로인데.. 뭐가 변했군?"
"모두가 제 모습이지만 도련님께는
조금 더 저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로 했습니다."
"말투는 예전이 더 정감이 가는데?"
"하하하"
"이곳 뿐만이 아니야.. 이와 같은 곳이 두 곳이나 더 있지..
몬스터 숲을 지키는 세 곳이 특히 심할 뿐
다른 마을들도 마찬가지야.
타 영지보다 높은 세금 속에서도 살아가고 있지.
그나마 그렇게라도 살아가는 게 영주님의 은혜라 생각하는
착한 영지민들이라.."
리먼이 말없이 살짝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진 자들이 보기에 무지한 사람들이지만
그들도 생각이 없는 건 아니거든.
대대로 라이거 영지에 뿌리를 두고 살아온 이들이야.
부모에게, 그 부모도 그들의 부모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거야..
라이거 백작가도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정말 착한 영지민이군요.."
"착하고 순박하지..
그래서 난 이들에게 잊고 있던 희망이라는 놈을 줄 거야."
"솔직히..
떠난 민심을 다시 잡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난 라이거 가문을 향한 민심을 되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야.
나는 나를 향한 민심을 얻을 거야."
나를 바라보는 리먼의 눈에 경악이 물들었다.
"상당히 많은 양이군."
리먼의 뒤에 있는 마차에는 각종 먹을 것과 식재료,
술이 담겨 있었지만, 짊어지고 가기에는 양이 많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것들을 구매할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쯧."
"참! 구해 달라고 했던 것은?"
"그것을 구하는 비용이 가장 많이 들었지요. 하하"
나는 리먼을 한번 바라보고는 마차에 다가가 손을 뻗었다.
말을 제외한 모든 것이 사라졌다.
"억!"
"어찌.."
"상단주님! 물건이.."
놀라서 엉덩방아를 찍는 종업원들과 달리
리먼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아공간 아티팩트군요."
"리먼도 하나쯤 가지고 있을 텐데?"
"네.. 하나가 아니라 세 개가 있지만.. 용량이.. 허.."
반대로 이번에는 내가 놀랐다.
아무리 작은 아공간 아티팩트라도 그 가격이 엄청나다.
그것을 세 개가 가지고 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출발하지."
"네. 이놈들아 정신 차려! 출발한다!"
나는 리먼 일행을 이끌고
터 숲으로 향하는 성문으로 다가갔다.
"멈춰라! 이곳의 통행은 당분간 금지되어있다!"
"라이거 가문의 카온이다."
"충!"
명패를 확인한 병사 릭이
왼쪽 가슴에 주먹을 올리며 예를 취했다.
"토벌에 앞서 조사할 것이 있어 왔으니 성문을 열라."
"충!"
문을 열라고 한 이가 백작의 피를 이은 카온이 아니었다면
상관에게 보고를 올리는 것이 먼저였으나
이번에는 선 조치 후 보고가 맞다고 판단한 릭이
성문을 열었다.
병사에게 카오스와 상단의 말을 부탁하고
성문을 나서자 헛웃음이 나왔다.
"아.."
"허.."
"리먼.. 이참에 살 좀 빼자.."
"빼고 싶지 않아도 빠질 것 같네요.."
성벽과 몬스터 숲 초입까지의 거리는
생각하지 못했던 카온과 왠지 카온이라면
자신을 보호해줄 것 같은 생각에 따라나선 리먼,
모종의 이유로 따라나서야만 했던 종업원들이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한 해의 끝이 오면
몬스터와 인간의 전투가 벌어질 한복판에서
`실드의 장벽`이라는 아티팩트를 사용해 하룻밤을 보내고
마침내 몬스터 숲 초입에 도착했다.
이후 다시 반나절 산을 오른 후에야
버려진 요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헉..헉.. 도련님.. 헉.."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헉.. 헉.. 네.."
선별된 인원이 정해진 날째에 무
사히 도착했다는 가정을 한다면
저 싸움의 원인은 버려진 요새를 점거하고 있던 몬스터와
선별 인원 간의 전투일 것이다.
라이가 가문이 공작가이던 시절.
몬스터 숲 정벌을 위해 세워졌던 작은 요새에서
오크와 선발 인원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의 전투를 보면서 입을 벌리고 있는
리먼의 표정과 내 표정이 비슷할 것이다.
고작 열흘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다.
검도 처음 잡아본 이들이다.
내가 알기로는 리아를 제외하고
고블린과 싸워본 적도 없는 이들이다.
그랬던 이들이 불과 열흘 만에 혼자 오크를 죽이고 있다.
오러 홀을 열기 적합한 이들이지
연공법을 통해 오러 홀을 연 오러 유저가 아니다.
그런 이들이 오크를 학살하고 있다.
"도..도련님?
저들이 저렇게 강하다는 것을 알고 선발한 겁니까?"
"아니.. 갑옷으로 방어하고
살기 위해 어떻게든 검을 휘두르면..
리아나 몇몇은 혼자 오크를 잡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
"리아님과.. 몇몇이 아닌 것 같은데요..?"
"어.. 확실히.. 나머지는 살고 싶다면
둘,셋 팀을 짜서 싸우며 올 것이라 예상했지.."
둘 또는 셋이 팀으로 오크를 처리하는 것은
훈련받은 병사들이 쓰는 방법이다.
나는 병사들의 훈련 기간을 생사를 넘는 공포와 경험으로
조금 앞당기려 했을 뿐 저 정도까지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리아님과.. 저 남자.. 헉! 카시오스?"
리아 다음으로 실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은
여자들을 구하기 위해 얻어맞았던 카시오스였다.
"도련님!
저.. 여자들 넷다 살아 남..을 수 밖에 없었겠네요..
하.하.하."
솔직히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여자 넷도
카시오스 못지않게 오크를 죽이고 있었다.
저들의 모습이 가져다준 충격이 가시자
내 입꼬리는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누구도 믿지 못할 예상을 뛰어넘는 성장.
그런 성장이 리아만 경험 삼아
대규모 몬스터 토벌에 참여키고 나머지는
조금 더 수련을 시킨 뒤,
세상에 내보이겠다는 생각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생각이 바뀌었기에 내 행동에도 변화가 있었다.
나는 아공간에서 종이와 펜을 꺼냈다.
"리먼! 내가 지목하는 이들의 이름을 알려줘!"
"네? 네! 아! 잠시만요!"
리먼도 품에서 그들의 인상착의가 적힌 서류를 꺼냈다.
그리고 리아를 시작으로 각자의 장단점을
하나씩 빠르게 적었다.
전투가 끝나갈 때쯤 글을 적던 내 손도 동시에 멈췄다.
"리먼. 빠진 인원이 있나?"
"음.. 처음 인원에서 누구누구가 없는지 정확하지 않아
확실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나중에 확인하면 되겠지.
우선 전투가 끝난 것 같으니까 가보자!"
이제 막 전투가 끝나 정신없는 와중에도
리아가 나를 발견하고 환한 미소를 짓더니 달려왔다.
뚝.
갑자기 달려오는 것을 멈추고 서더니
두 무릎을 꿇은 리아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리아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두 무릎을 꿇는 것이냐?"
앞으로 나의 기사가 될 인물이기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면 이해가 갔다.
하지만 죄를 청하는 의미인 양쪽 무릎을 꿇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련님의 명을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죽어도 살아라` 라는 명에 버려진 요새까지
무사히 도착한 것도 모라자,
엄청난 실력 향상이라는 선물까지 가져온 리아였다.
리아의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카시오스가 입을 열었다.
"카시오스가.. 그.."
카온이 어떤 가문의 자제인지 몰랐기에
귀족에 대한 예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카시오스를
손을 들어 말렸다.
"예는 됐다. 설명부터 해라."
"네. 저는 카시오스라고 합니다.
우리의 대장.. 아니.. 리아는.."
카시오스는 일행들 간의 대립부터 톰의 죽음,
지도를 벗어나 직선으로 이곳까지 오게 된
모든 것을 설명했다.
참으로 우직하지만 바보 같은 리아가 아닐 수 없었다.
"리아. 묻겠다."
"네."
"톰은 네가 생각하기에 죽어 마땅한 자였느냐?"
"오로지 제 생각을 묻는 것이라면 맞습니다."
"톰을 죽이고 이렇게 벌을 청하는 것을 후회하느냐?"
"한 점의 후회도 없습니다."
나는 한 번씩 스스로에게 궁금했었다.
어째서 일면식도 없던 리아에게 기대를 하는 것일까..
어째서 리아가 나의 기대에
보답할 것이란 믿음이 생길 것일까..
도적에 습격당한 상단을 구하고 상인에게 속아
노예가 된 리아와 만났을 뿐이다.
그 우연한 만남과 짧은 인연 속에서
왜 리아에게 믿음이 갔던 것일까..
솔직히 아직도 그 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답을 찾을 이유가 사라졌다.
그냥 리아여서 믿음이 간다로 정의했다.
"일어나라."
마치 내가 일어나라고 했기에
당연히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한 리아가 일어났다.
와락!
나는 몬스터의 피가 묻고 한동안 씻지도 못해
냄새나는 리아를 끌어안았다.
"도..도련님! 옷에.. 피가.."
몬스터의 피에 내 옷이 더럽혀지고,
안은 리아의 몸에서 나는 역한 냄새 따위는
리아라는 검을 얻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련님.."
리아의 작은 떨림과 젖은 내 어깨가 느껴지니
무언가 울컥 올라올 것만 같았다.
"리아. 자세한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자."
"네! 도련님!"
나와 리아의 대화를 움찔움찔하며 듣던 카시오스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뒤돌아 외쳤다.
"이놈들아!! 리아 대장과 안 싸워도 된다!"
- 와아아아!
카시오스의 말과 이어서 들려오는 함성이 조금 이상했다.
"리아와 싸워?"
"아.. 그게.. 하하. 도련님이 리아를 죽이려했다면..
애들이 도련님을 죽여버릴 거라고.. 하하하
그럼.. 리아는 도련님을 지킬테니.. 결국.. 하하"
어처구니없는 말일 수 없었다.
하지만 기분은 아주 좋았다.
리아는 내 바람대로 열흘 사이
완벽히 저들의 마음을 얻고 저들의 위에 서 있었다.
"하하하하."
"하.하하. 우선 정리부터 하겠습니다!
야! 저 돼지 새끼들부터 치워!"
돼지 새끼란 말에 몸을 부르르 떨던 리먼이
깜짝 놀라더니 카시오스를 말리기 시작했다.
"정지! 잠깐! 그만! 잠시만! 그게 다 돈이야!"
"푸하하하 리먼.
내가 보상해 줄 테니 일단 이곳 정리부터 하자."
"네.. 도련님.."
"넌 노예상이면서 몬스터 부산물에도 욕심이 나?"
"도련님! 노예상도 상인입니다!
돈이 저렇게 쌓여있는데.."
리먼에 대한 인식도 점점 변해가는 나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카시오스를 중심으로 선별 인원들이
오크 시체들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리아와 리먼을 이끌고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어디인가요?"
궁금증을 참지 못한 리먼이 물었다.
내가 말하기 전에 먼저 입을 연 리먼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리아가 뭐라 말하려 하자 내가 말렸다.
"리아. 괜찮아.
왠지 리먼도 우리와 한배를 탄 것 같거든. 큭큭.
그리고 신분이 어떻든 간에 내 사람들은
나와 편하게 대화했으면 좋겠어."
"네. 도련님."
"한 배를 탔다라.. 그럴거라 예상은 했지만,
어느새 저도 타버린 뒤군요.."
"스스로 타 놓고 무슨. 하하
아무튼, 이 버려진 요새는 과거 정찰대가 사용하던 요새야.
그때 당시에는 고블린과 오크는 크게 문제가 없었나봐."
"저도 들었습니다.
왕국 초기에는 기사도 마법사도 지금보다 강했다고.."
"리아의 말이 맞아.
한꺼번에 쳐들어오면 문제가 되었던 것이 오우거부터였지.
이 요새에서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오우거 지역이거든."
"아! 그들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곳이 여기였군요?"
"응. 그리고 이 건물이..
정찰대 대장이 쓰던 건물이라고 알고 있어."
"아.. 그런데.. 여기 뭐가 있기에.."
건물 안쪽.
이제는 방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뫼비우스의 고리를 천천히 회전시킨 뒤.
왼쪽 바닥에 난 작은 틈에 손을 넣어 들어 올렸다.
끼이익.
녹이 슨 거친 소리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조금씩 나타났다.
리아가 말린 틈도 없이 내가 먼저 내려가자 둘도 뒤 따랐다.
내려온 지하 작은 공간에는 커다란 마나석 다섯 개가
마치 제단의 모습으로 사방으로 하나씩 놓여있었다.
"헐.. 이게 뭐야.."
"마나석."
"마마마나석요? 저렇게..큰..게 마나석요?"
"응. 마나석."
"세상에.. 저걸 팔면.. 하.. 부르는게 값이겠네.."
"뭐. 하하하"
나는 하나의 마나석에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