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눈을 감지 않은 기사들을 죽여.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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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눈을 감지 않은 기사들을 죽여.
어두운 본채 쪽에서 밝은 별채로 들어온 이는
집사장 케인이였다.
"라이거 가문의 집사장 케인이 라이거 가문의.."
"됐습니다."
케인의 입에 어머니를 담는 것이 역겨워
예를 올리는 것을 끊어버렸다.
"저도 목이 떨어질까 봐 예를 올리려던 것입니다."
"그것을 따지기 위해 식사를 방해하는 겁니까?"
"따진다라..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겠군요.
페페 자작님으로부터 전갈입니다."
그 짧은 시간에 페페 자작에서 소식이 전해지고
답신까지 왔을 리가 없다.
라이거 영지에서 페페 자작을 대신할 수 있는
이자벨 부인의 뜻일 것이다.
"라이거 가문의 수습 기사들에 들어가는 비용은
가문끼리의 협약에 따라 페페 가문에서
지급하고 있으니 죽은 셋을 양성하기 위해
그동안 들어간 비용을 카온 라이거에게 청구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예전 삶에는 전혀 몰랐던 부분이고,
포르테님의 은혜와 시조님들의 댓가로 돌아와
토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아버지와 조금 편하게 대화를 나눌 때가 오면
물고 보고 싶은 것 중에 하나 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이만 별채에서 나가 주시죠."
"네?"
"라이거 가문에서 배상하라가 아니라
나에게 배상 요청을 한 것 아닙니까?
내가 하겠으니 이만 나가보란 말입니다.
고기가 식고 있어서 말이죠."
케인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그럼.. 기.."
"자! 식은 고기 맛없어! 어서 먹자!"
케인이 별채를 나가자 어색했던 분위기가 다시 돌아왔다.
논공 회의가 있는 날이 밝았다.
회의 시간에 맞춰 별채를 나서니
여전히 수습 기사들이 별채를 감시하고 있었지만,
어제처럼 나의 앞을 막아서는 이는 없었다.
본채에 들어서 회의실로 가는 동안
집사들과 시녀들이 예를 올리기 바빴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존경이 아니라
공포에 가까웠다.
아무도 없는 회의실에 앉아 있으니
출정 호의에 참여했던 인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상석에 앉은 아버지가 회의의 시작을 알리려던 순간
이자벨 부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논공과는 상관없지만 중요한 안건이 있어 왔어요."
"그럼 그것부터 처리하도록 하지.
말해 보시오. 부인."
이자벨 부인은 회의에 참여하고 말을 허락한
아버지가 아닌 나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라이거 가문을 이끌어 가는 분들은 다들 아실 거예요.
저는 라이거 가문의 제 1 부인이면서
아버지이신 페페 자작님의 전
권을 위임받은 사람이기도 해요.
오늘은 제 1 부인이 아닌, 전권을 위임받은 사람으로
온 것임을 먼저 알았으면 해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수습 기사를
한 명의 기사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어가요.
그 비용을 가문의 협약에 따라
페페 가문에서 지원하고 있죠.
페페 가문에서 지원받아 훗날 라이거 가문의 기사가 되는,
즉, 두 가문의 협력과 화합의 증거라 할 수 있는
수습 기사 셋이 죽었어요.
예를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귀족 모독죄를 범해 죽은 것은 이해해요.
하지만 그들에게 들어간 비용은 별개의 문제요.
저는 그들의 목을 벤 카온 라이거에게
그 비용을 청구하려고 해요."
"라이거 가문에 청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주님.
이 문제는 카온 도련님이 해결하는 것이 맞습니다."
아버지의 물음에 답을 한 것은 케인 집사장이었다.
"3년 차 둘과 5년 차 하나의 수습 기사입니다.
1인당 그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매년 백 금화 씩입니다.
측 천백 금화라는 비용을 지급해야 합니다.."
"크크크"
케인이 구구절절 내가 그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려 하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출정 회의 때부터 계속 자신의 말을 끊는 나를
케인이 인상을 구기며 노려보았다.
"케인 집사장님. 어제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얼마라고요? 천백 금화라 하셨습니까?"
"으득. 네. 도려님.
정확히는 천백 팔십 금화입니다."
케인의 이가는 소리가
왜 이리 경쾌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아공간을 활성화하고 손을 집어넣었다.
툭.
"금화 백 개가 들어간 주머니입니다."
"아..공간?"
"어머니와 프레시아.
그리고 시녀들을 위해 아티팩트를 선물했는데
아공간 하나에 놀라시면 안돼죠."
툭. 툭. 툭. 계속 나오는 주머니.
"하나, 둘, 셋.. 열둘. 총 천이백 금화네요.
어제 별채의 식사를 아주 흥미롭게 보시던데
남는 거로 집사부 식사라도 하시죠."
동네 꼬마에게 용돈 던져 주듯 툭툭 내려놓은
금화 주머니였지만 천이백 금화는
라이거 가문에서는 상당한 돈이었다.
매년 3월 페페 가문에게 빌린 자금의
이자로 나가는 금액인 천 금화보다 많은 돈이
내 아공간에서 나오자
아버지뿐만 아니라 모두가 경악했다.
"이 많은 돈은 어디서 난 것이냐?!"
"제가 그것을 이자벨 라이거님께
설명할 이유가 있습니까?"
"건방지구나! 카온!"
이자벨 부인이 묻고 내가 답했으며
호리페 형님이 화를 낸다.
"그만! 회의는 30분 뒤로 미룬다!"
아버지의 호통에 눈빛이 표독스럽게 변한 이자벨 부인.
"후.. 됐어요! 제가 나가죠!
케인 집사장님.
주머니는 회의 끝나면 제방으로 옮겨 주세요."
"네. 아자벨님."
이자벨이 부인이 나가자 벌떡 일어난 호리페 형님에 의해
논공 회의가 다시 산으로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산행은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아버지! 논공 회의 전에
반드시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후 호리페 형님은 예전에 말했고 내가 예상하던 말들을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공론화시켰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카온과 그들은
이번 토벌에서 분명 도움이 되었다."
"결과만 보면 그렇지요.
하지만 카온이 가문과 기사단을 모욕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보십시오! 천이 넘는 금화가 있음에도
가문과 영지! 영지민들을 위해 내놓지 않았습니다!
용병을 모집할 돈과 그들이 치장한 아티팩트를
우리 기사들을 위해 썼어야 합니다!"
"그대들의 생각도 그런가?"
"저는 저들의 검을 직접 보았습니다.
또한, 카온 도련님과 여기사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믿기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제 1 기사 단장 아키의 답.
"저는 못 믿습니다.
기사라고 스스로 말하는 이들의 나이가
가문의 수습 기사들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단장이라고 하는 이는 여자며,
심지어 이제 해가 바뀌었으니 스물 한살일 뿐입니다.
호리페 도련님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
제 2 기사단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2 기사 단장 폴리오의 답.
호리페 형님의 뜻대로 주제는 나와 칠흑 기사단이
토벌에 도움이 됐는지 되지 못했는지가 아니라,
아티팩트의 사용 여부와 이로 인한 모욕,
그런 아티팩트와 자금이 있었다면
라이거 기사단에 썼어야 한다는 것으로 변해있었다.
"저는 그들과 카온 도련님의 무위는 보지 못했지만,
그런 물건과 자금이 있었다면
올바르게 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케인 집사장의 답.
"저는 카온 도련님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랬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유야 어찌 되었든..
토벌에 공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유일하게 내 편을 들어주는 이카인 총관의 답.
"저는 아직 어려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호리페 형님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겁니까?"
모두의 예상을 벗어난 아이젝의 답.
아이젝의 말에 가장 놀란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집사장 케인과 총관 이카인 이였다.
"아이젝.."
"제가 이번 토벌에서 세운 공이 없기에
말할 처지가 될지 모르지만..
솔직히 저도 제 눈을 보고도 믿기 힘듭니다.
그 의문을 풀려면 카온 형님께서 증명하셔야 하는데
그 증명 방법은 형님께서 제시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아이젝의 의도가 이해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젝으로서는 누가 되었든 상관없는 것이었다.
자신도 후계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말과 행동에서 나타냈지만,
이번 토벌에서의 공은 없다.
후계 순위 1순위이면서
나의 등장으로 조급해진 호리페 형님과
지지 기반이 없는 나와 달리
아이젝에는 지지기반도 있고 나이도 어리다.
내가 증명하지 못한다면,
기사들의 신임을 얻지 못한 호리페 형님과
시간을 두고 경쟁하면 되고.
내가 증명한다면,
형님에게 갔던 이자벨 부인의 기대를
자신에게 가져오면서 지지 기반이 없는 나와
경쟁하면 된다.
아이젝 입장에서는 누가 되었든,
둘 중 하나만 확실히 신임을 잃으면 되는 것이었다.
"좋습니다. 증명하죠."
"분명. 내가 생각하고 말하라 했다. 카온."
"충분히 생각하고 말한 겁니다."
"후회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 기사전을 신청합니다!"
기사전.
영지전의 경우에는 영지민과 병사들의 목숨을 위해
영주 또는 그를 대변하는 기사가 나서
일대일로 겨뤄 승리한 자가 있는 가문이
영지전의 승리를 가지는 것이며,
이번 일처럼 서로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
기사전을 통해 이기지 못한 자의 입에서
이긴 자의 주장이 맞다고 인정하게 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형재끼리의 기사전은 용납할 수 없다!"
진검을 사용하며, 대결 도중 누군가가 죽어도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제가 호리페 도련님의 대리 기사가 되겠습니다!"
말이라도 맞춘 듯 폴리오 단장이 일어섰다.
"카온 받아들이겠느냐?"
"리아!"
문을 향해 부르자 리아가 들어왔다.
"출정 회의 때도 느낀 것인데..
회의실을 지키는 이가 하나 없어
제가 세워 놨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공표되는 것과 소
문으로 퍼지는 것과는 다르니까요.
혹시 압니까? 일하는 이들 중에 타 영지 첩자가 있을지?
아무튼. 리아. 다 들었지?"
"주군의 명을 받습니다."
"아니. 네 생각은 어떠냐고."
"제가 주군의 대리기사가 되겠습니다."
"그렇답니다 아버지."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쉰 아버지.
"허락하겠다."
"단!
사전에 관한 법에 따라 형님이 기사전을 신청했으니
제가 하나 더 요구하겠습니다."
"허락한다. 총관은 신관을 불러와라."
마법 계약서가 작성되고 신관이 주신 포르테의 이름으로
증인이 되면서 기사전이 성립되었다.
자연스럽게 논공 회의가 미뤄지고 세 시간 뒤 연무장.
임시로 만든 천막이 설치된 단상 중앙에
아버지가 앉으셨고, 아버지의 왼쪽으로는
이자벨 부인과 호리형 형님, 아이젝이 앉았으며
오른쪽으로는 어머니와 내가 앉았다.
그리고 단상의 양쪽으로는
총관을 중심으로 한 총관부 사람들이,
집사장을 중심으로 시녀, 집사는 물론 하인 하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두 기사단은 반원을 만들며 기사전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고,
메이가 불러온 칠흑 기사단은 내 앞에 서 있었다.
잠시 뒤.
기사가 된 이후 처음으로 갑옷을 벗고
일상복 상태로 사람들 앞에 선 리아와
훈련용 복장 차림의 폴리오가 연무장 중앙에 섰다.
"준비된 갑옷과 검을 지급하라."
정식 기사전에는
개인 소유의 무구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나,
이번 기사전 자체가 아티팩트와 관련되어있다 하여
호리페가 주장에 따라 리아에게
라이거 기사단의 갑옷과 검이 지급되었다.
리아가 갑옷을 착용하려 하자 호리페가 손을 들었다.
"저년의 옷 속에 아티팩트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호리페! 억측이 심하구나!"
"저 또한 중요한 것이 걸려있는 기사전입니다!"
"기사이기는 하나! 여성이다!"
"허나!.."
호리페 형님의 말은 리아가 옷을 벗기 시작하면서 끊겼다.
가슴을 가린 붕대와
하체를 가리는 속옷만 입고 서 있는 리아.
집사부와 총관부 여성들 사이에서는
같은 여자로서의 안타까움과 가여움의 목소리가 나오고
기사이면서도 기사전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망각 한 채
휘파람을 부는 몇몇 기사도 있었다.
리아의 눈빛이 담담할수록 나는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시작하기도 전부터 엉망이 되어버린 기사전.
하지만 이어지는 호리페의 말에 아자벨 부인마저 놀랐다.
"다들 조용히 하지 못할까!
폴리오! 너도 벗어라!
기사에 여자와 남자가 어디 있느냐!"
폴리오가 속옷까지 전부 벗자
여자들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닥치거라!
네년도 벗어야 할 거야!
그 속에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신관들은 폴리오와 저년의 옷을 확인하고 신께 맹세하라!"
기사전의 의미를 퇴색시킨 것도 모자라
귀족 자제로서 보이지 말아야 할
모든 것을 보인 호리페 형님.
도가 지나치다 못해 추하기까지 한
호리페 형님의 모습에 한 명의 기사이기도 한
아버지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호리페!"
"네! 이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리아가 호리페의 말에 하늘을 바라는 순간
카시오스와 아담이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몇몇 칠흑 기사들의 손에서는 꽉 쥔 주먹에 의해
피가 흐르기도 했다.
"카시오스. 아담. 가까이."
냉기가 느껴지는 내 목소리에
어머니와 뒤에 있던 시녀들이 움찔거렸다.
"리아는 분명 벗을 거야.
벗는 순간 고개를 돌리지 않거나 눈을 감지 않은
기사들을 죽여."
""충!""
"도리아 가까이."
뒤에 서 있던 도리아가 다가왔다.
"리아가 나머지도 벗는 순간 고개를 돌리지 않거나
눈을 감지 않은 집사부와 총관부 사람들을 죽여."
"충!"
"카온. 나는 모든 것을 지켜볼 것이다."
내가 싸늘한 눈빛으로 무언가를 지시하는
모습을 본 어머니가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네. 어머니."
"꺄아악!"
누군가의 비명과 함께 리아는 나체가 되었고,
"모두 고개를 돌려라!"
아버지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신관의 외침.
"두 사람의 옷에 아무것도 없음을
주신 포르테님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호리페! 되었느냐! 이제 만족하는 것이야?!"
"네.. 아버지."
호리페 형님은 끝까지
든 것이 아티팩트 때문이라 믿었다.
그리고 리아의 옷 속에서 무언가가 나올 것이라 믿었다.
이런 믿음이 깨지자
이제 불안감이 조금씩 차오를 것이다.
눈으로 본 것이 진실이 아닐까 하는 사실이.
"두 사람은 검을 들고 거리를 벌리시오!"
리아와 폴리오가 벗었던 옷을 입고 갑옷을 착용하자
기사전의 증인이 되었던 신관이 외쳤다.
"주신 포르테님을 모시는 신관 아킬라우스가
왕국법에 의한 기사전의 증인임을 모두에게 알리며!
이 금화가 땅에 떨어지면 기사전이 시작될 것이오!"
핑그르르 툭.
신관이 동전을 던지고 재빨리 빠지는 것과 동시에
폴리오가 검에 오러를 실어 리아에게 다가왔다.
자신을 향해 달려는 폴리오가 아닌 나를 바라보는 리아.
많은 것이 담겨 있는 리아의 눈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리아의 검에 새하얀 오러가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