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네가 고개 숙일 일이 아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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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부터 하루에 1화씩 올리려 했으나..
조금 늘어지는 부분이 있어 금일은
오후, 저녁, 밤 총 3화를 올립니다. >
32. 네가 고개 숙일 일이 아니다.
아침 식사 후 리아와 메이를 데리고
동쪽 상업 구역으로 향했다.
"정말요? 칠흑 기사님들 갑옷과 검을
우리 영지 대장간에서 만들었다고요?
기사단의 것과 너무 다르던데..
그럼 도련님의 갑옷도 그 대장간에서 만든 건가요?"
"내 것은 아니야.
음.. 아무튼, 리아나 칠흑 기사들의 장비는
재료가 다르긴 해.
하지만 그것들을 만들 때 장인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망치질을 했냐가 더 중요해."
"어떤 마음.. 요리 할 때 최선을 다하는 것과 같은 건가요?"
"크크 그렇게 비교가 되나?
같은 이치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하하."
상업 구역에 도착해 내가 찾아간 곳은 시장도 아니고
대장간 철의 숨소리도 아니었다.
철의 숨소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
리먼이 마련한 3층짜리 건물.
리먼 상단이 아닌 내 이름 앞글자인 `카`와
가문의 이름 앞글자인 `라`를 따서 만든
`카라 상회` 란 간판이 붙은 건물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온갖 상품들이 진열되어있다.
"주군!"
이제는 뚱뚱에서 통통이 된 리먼이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많이 힘들었나 봐? 살이 많이 빠졌는데?"
"하하하 말도 마십시오.
여기 텃세들이 어찌나 강한지.. 어휴.."
페페 자작령에서 넘어온 상인들이
독점하고 있는 구역이라 리먼의 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그래서 손님들이 뜸한가?"
"그래도 조금씩은 늘고 있습니다. 하하"
리먼이 그동안의 일과 수입 등을 보고 하려는 것을 말렸다.
"리먼. 너를 믿고 맡긴 일이야. 네가 알아서 하면 돼.
그나저나 내가 구매해 달라고 했던 건?"
"아! 잠시만요!"
리먼이 다시 위층으로 향하고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는 메이를 불러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리먼이 가지고 온 붉은 보석이 박힌 반지.
"리먼 한번 저장하면 며칠이나 가?"
"가득 채우면 한 달 정도 유지 될 겁니다."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고 갸웃거리는 메이에게
주머니를 건넸다.
"메이님. 이건 아공간 아티팩트라는 겁니다.
들어는 보셨죠?"
"헉! 네!"
리먼은 황급히 들었던 반지를 테이블에 내려놓는
메이에게 마나나 오러 사용자가 아닌 이가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방법에 관해 설명했다.
"엥? 도련님? 벨트나 귀걸이를 주셨을 때에는
이런 말 없지 않았어요?"
"어떤 마법사가 어떤 마법진을,
그리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져."
"헤헤헤 모르겠어요.
그런데 왜 저에게 설명해 주시는 거예요?"
"네 것이니까."
"네?"
"이 반지 주인이 너라고."
"헐.. 미친! 흡!"
황급히 입을 가리는 메이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사용할 때마다 따끔거리는 어쩔 수 없지만 필요할 거야."
메이가 별채에 필요한 것들을 편하게
사 나르게 하려고 준 것이 아니었다.
장을 보러 나간 메이가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는다면
더 이상해 질 뿐이다.
내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메이의 일도 늘어나게 된다.
오늘은 같이 왔지만,
내 말과 서신을 리먼에게 전하는 등의 일도 하게 될 것이다.
작게는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게는 비밀을 지키기 위한 도구의 의미가 강했다.
이런 설명을 해주자 메이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리먼님! 다시 설명해 주세요!"
"메이 잠깐만."
리먼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고
리아만 데리고 상회를 나와 대장간으로 향했다.
"리아."
"네. 주군"
"여기."
라이거 가문의 문장이 그려진 팔찌 하나를 리아에게 건네며
끼고 있던 반지를 보여 줬다.
"이 반지는 라이거 가문의 시조님의 무덤에서 발견한 거야.
지금까지 사용했던 금화나 마나석,
내 갑옷도 여기에 들어있지."
같이 들어가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기에
지난 삶의 일과 시조님들과의 만남 등을 뺀 내용을
꿈이라 표현하며 간단히 무덤과
비밀 공간에 관해 설명해 줬다.
"꿈을 꾸셨고.. 그것이 진실이였다니.."
"응.. 그 꿈..
그 꿈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지..
어쨌든. 그 팔찌는 2대 선조님이 사용하셨던
아공간 아티팩트야."
우뚝.
리아의 발걸음도 행동도 멈춰 버렸다.
"크크. 칠흑 기사단의 갑옷을 입은
리아의 보습이 멋있기는 한데..
너에게는 훈련용 갑옷도 없고..
아무리 기사라지만 온종일 갑옷만 입고 있을 수는 없잖아?"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아."
지금은 별채 내에서도 안전의 문제로 갑옷을 입고 있지만
언제까지고 그렇게 둘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번 일에서는 칠흑 기사단의 갑옷은 도움이 안 돼."
내가 만나야 하는 이들은
귀족만 보면 바닥에 엎드리기 바쁘고,
기사만 보면 도망치기 바쁜 남쪽 구역의 천민과 빈민들이다.
"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할 테니 아공간에 넣어둬.
그리고 봄이 오면 난 아카데미로 가야 해.
메이에게 맡기기 힘든 물건들은
네가 보관해야 하지 않겠어?"
정확히 그런 물건에 어떤 것이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으나
메이나 리먼에게 맡기기 힘든 것들이 있을 것이다.
"주군의 명을 받습니다."
"크크 명이라.. 그래 일단 명으로 하자."
대화를 나누는 동안 도착한 대장간 철의 숨소리.
"카온 도련님!"
"브람스. 오랜만입니다."
"토벌에서의 활약 대단하셨다 들었습니다!"
"만들어준 갑옷과 검 덕분이었습니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브람스. 인사 하세요.
칠흑 기사단의 단장 리아입니다."
"오! 이제야 단장님을 뵙는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철의 숨소리를 운영하는 브람스라 합니다."
"리아입니다."
"크크 브람스. 리아가 좀 무뚝뚝하니 이해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리아의 훈련용 갑옷과 경갑옷을 좀 마련했으면 하는데.."
호위 기사들은 어느 자리에서든 정식 갑옷을 착용하지만
그 외의 기사들은 격식을 갖춘 자리 또는,
전투 때만 정식 갑옷을 착용한다.
훈련 시에는 가슴만 보호하는 가죽으로 된 갑옷을 입고,
그 외에는 가슴만 보호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철과 가죽이 섞여 있는 경갑옷을 입는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음?"
"카시오스님이 필요하시다 해서
기사단 것과 단장님 것까지 준비해 놨습니다."
"내가 카시오스보다 한발 늦었군. 크크"
"훈련용 갑옷은 아무래도 험하게 입을 것이라
오크의 가죽으로 만들었고, 경갑옷은 카시오스님이
이번에 가져온 오우거의 가죽에 철과
소량의 미스릴을 넣어 만들었습니다."
보통 훈련용 갑옷에는 가문의 문장을 넣지 않지만,
칠흑 기사단의 훈련용 갑옷에는
중앙에 칠흑 기사단의 문장이 크게 막혀 있고,
경갑옷의 왼쪽에도 같은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따로 주문하신 것도 작업을 마쳤습니다."
"그래? 리아! 우선 이것부터 착용하고 나와봐."
기사가 된 리아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남자와 여자가 같은 형식이 갑옷을 입는 것인가?
붕대로 한번, 갑옷으로 한 번 더 가슴이 압박된 여기사들이
과연 그것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여기사들에게 기사는 남자들의 몫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편견과 차별은 아닐까?
리아가 체형에 맞는 갑옷을 입는다 해서
그녀에게 강함이 느껴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의 끝에 리아와 별채 호위 기사들의 갑옷을
다시 제작하게 하였다.
갑옷을 입었음에도 한눈에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갑옷을 착용하고 나온 리아.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면 조금 마른 남자처럼 보였던 리아가
머리카락을 올리고 투구를 쓰고 있음에도 여자로 보였다.
"음.. 리아. 어때?"
"솔직히.. 이 갑옷이 더 편합니다.
붕대와 갑옷이 주는 압박감이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습니다."
"도련님.
단장님의 같은 형태로 만든 경갑옷도 준비해 놨습니다."
"그래? 잘됐네."
지금까지 없었던 갑옷의 형태라 이것이
어떻게 평가될지는 나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착용자가 만족하고 그로 인해 효율이 올라간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만족이다.
"리아. 갑옷만 봐도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어.
실력을 알지 못하면서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할 수 있어."
"상관없습니다."
맞다. 리아의 실력도 모르고 여자라는 이유로
덤비는 놈이 있다면 명복을 빌어줄 뿐이다.
기존 갑옷으로 아공간 아티팩트를 연습한 리아가
새로운 갑옷을 아공간에 넣고 경갑옷을 착용하고 나왔다.
이번에도 리아의 선택은 두 번째 경갑옷이었다.
철의 숨소리를 나와 다시 리먼의 상회로 돌아오자
가장 먼저 메이가 반응을 보였다.
"우와! 이런 갑옷도 있어요?
여성스러움이 느껴지면서도 강해 보이고!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음.. 아무튼! 너무 멋져요!
어머! 리먼씨! 어딜 뚫어져라 쳐다봐요!?"
리먼이 리아의 가슴 부근에서 눈을 못 떼고 있자
메이가 버럭 했다.
"주군.. 이건.."
리먼과 리아에게 이 갑옷이 나오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자
갑자기 뛰어나가는 리먼.
"주군! 저는 권리 등록부터 하고 오겠습니다!"
"야! 나 가야 해!"
"네! 알아서 하십쇼!"
"저이 씨.. 하.. 우리도 나가자."
상회를 나와 남부 천민들의 구역으로 이동하는 중
리아에게 물었다.
"리아. 어색하지?"
"네.. 지금까지 갑옷만 입어서 그런지 몰라도
몸이 가벼워서 좋기는한데.. 어색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보는 나도 어색한데
그것을 착용하는 리아는 더 그럴 것이다.
"전 지금이 더 좋은데요? 헤헤
그럼! 별채의 호위 기사 언니들도 입는 건가요?"
"지금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안정되면."
"아~ 빨리 그런 날이 왔음 좋겠어요~"
이런저런 메이의 조잘거림을 들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동쪽과 남쪽의 경계에 도착했다.
"리아. 메이.
여기서부터는 내가 어떤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그로 인해 이곳의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든 화를 내거나 검을 뽑지 마."
"도련님을 무시하고 해도요?"
"네. 주군."
내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리아와
따르기는 하지만 의문을 품은 메이의 답이 겹쳐졌다.
"응."
"네.. 하지만! 위험.. 하지는 않겠네요.. 헤헤"
나와 리아의 실력을 떠올린 메이가 머쓱하게 웃었다.
대로의 오른쪽 술집과 유흥가를 뒤로하고
남쪽 구역의 중심을 향해 걸었다.
돌로 만든 집은커녕 정상적인 나무로 만든 집도 없다.
거리는 온통 오물들로 가득하고
갑자기 나타난 우리의 모습에 경계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보는 천민들은 중에는
신발조차 신고 있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작은 공터에 비치된 등받이 부서진 벤치에 앉았다.
이런 나를 말리려 한 메이를 리아가 오히려 말렸다.
"주군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도.."
"리아.
아까 받은 주머니에 리먼이 빵을 담아 줬을 것이다."
"네! 도련님."
리아가 주머니에서 빵을 꺼내는 순간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빛을 향해 빵을 흔들 때 마다 조금씩 다가오는 아이.
동생 프레시아와 비슷한 나이의 남자아이가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이 빵이 먹고 싶은 것이냐?"
끄덕끄덕.
"말을 못하는 것이더냐?"
도리도리.
"그럼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 말해 보아라."
"배고파요.. 먹고싶어요.."
"내가 너에게 시킬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을 해낸다면 이 빵을 주마."
빵에만 고정되어있던 시선이 이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깨끗한 옷의 메이를 보고 반짝이는 눈빛을 한 아이가
검을 찬 리아를 보더니 떨기 시작했다.
"해치지 않을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
너에게 시키는 일 또한 네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니
그 또한 걱정할 것 없다."
끄덕끄덕.
"말을 하여라."
"네.. 죄송해요.. 할게요."
"좋다.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에 무엇이 있느냐?"
벤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못이요.. 녹이 슨.."
"그래. 네가 너에게 시킬 일은
저 녹이 슨 못을 나에게 가져오는 것이다.
할 수 있겠느냐?"
"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너무 쉬운 일이라 생각한 아이가
금세 뛰어갔다 왔다.
"여기 있어요."
"잘했구나. 여기 약속했던 빵이다.
하나밖에 없는 빵이니 여기서 먹고 가거라.
네가 심부름을 하고 얻은 빵인데
다른 이에게 빼앗기면 안 되지 않겠느냐?"
"네! 감사합니다!"
허겁지겁 빵을 먹는 아이를 보며 다시 말했다.
"내일도 나는 이 시간에 여기에 올 것이다.
빵을 먹고 싶거든 오너라."
"정말요?!"
"한 번뿐이지만 나는 너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더냐?"
"네! 내일 꼭! 오세요! 저도 올게요!"
일주일 동안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델로아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와 만났다.
나는 델로아에게
주변의 쓰레기나 오물을 치우는 것을 요구했고
델로아는 그것들을 매일 치우고 빵을 얻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 주일째 접어든 날.
오늘은 메이가 아닌 리먼을 데리고 델로아를 만나러 갔다.
"주군. 델로아라는 아이 한 명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응. 델로아 하나였지. "
자신들을 보고도 우리가 더는 발걸음을 옮기지 않자
델로아가 먼저 우물쭈물하며 다가왔다.
"저기.. 죄송해요.."
"무엇이 죄송한 것이냐?"
"허락도 없이 모두 데리고 와서.. 저는 안된다고 했는데..
물어본다고 했는데.. 그러니까.."
"괜찮다.
오늘쯤 너에게 친구들을 데리고 오라고 할 참이었다."
"정말요? 그럼 계속 빵을 먹을 수 있는 건가요?"
"혹시나 해서 넉넉하게 준비하길 잘했구나."
"와아! 얘들아!"
델로아가 소리쳐 부르자 쭈뼛쭈뼛 다가오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델로아에게 물었다.
"어른들은 모르는 것이냐?"
"아빠에게 말은했는데..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고.. 안 믿어서.."
"네가 고개 숙일 일이 아니다."
오늘은 델로아를 포함한 11명의 아이가
주변을 청소하고 빵을 얻어갔다.
이날을 시작으로 빵을 얻기 위해
일을 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렇게 일주일을 지나고 삼 주째 하고 이틀이 지난날.
같은 시간 공원을 찾아왔으나
그 많던 아이들은 물론 델로아 조차 보이지 않았다.
"주군. 왜 아무도 없죠?"
리먼의 말에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드디어 어른이란 작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네?"
"저길 봐."
늘 델루아가 뛰어오던 방향에서
건장한 남자 셋이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