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도박 한 번 걸어봤습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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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도박 한 번 걸어봤습니다!
천민들이 거주하는 곳과 유흥가들이 밀집된 경계인
대로가 보이자 남쪽 구역에서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검을
아공간에서 꺼내 허리에 찼다.
대로를 넘자 아직 해가 지지 않았음에도
술에 취해 있는 이들이 보였고,
건물 안쪽에서 다소 민망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누가 봐도 부잣집 도련님 같은 옷차림의 나와,
아름다운 얼굴의 리아,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리먼의 등장을
신기하게만 쳐다보고 있을 이들이 아니었다.
"흐흐흐 천민 체험이라도 하러 오셨나?
아니면 같잖은 유흥이라도 즐기러 오셨나?"
슥.
나는 접근해온 놈의 물음에 대한 답으로 검을 휘둘렀다.
툭.
"꺄아아악!"
"살인이다!"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목이 떨어져 나간 놈 대신
구경하던 이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 새끼가 미쳤나?!
여기가 어딘지 알고 칼을 함부로 휘둘.."
슥.
"컥!"
"형님! 뭐해 이 새끼들아! 저 찢어 죽일 새끼 족쳐!"
순식간에 모여든 20여 명의 남자.
"리아. 다 죽여."
"충!"
리아가 검을 뽑고 달려드는 남자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와.."
"아름답지?"
"헉! 네..
누군가의 검을 보고.. 누군가가 검에 죽는 장면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제가 미친 줄 알았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거.. 기분이 참 더러워..
하지만 리아의 움직임과 검 동작은..
아름답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니.."
몬스터를 죽이는 것과 사람을 죽이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죽어 마땅한 이를 죽였음에도 사람을 죽였다는 것에
말로 표현하지 못한 무언가가 마음에 남는다.
나도 리먼도 살인을 즐기는 살인마가 아니다.
솟구치는 피와 떨어져 나가는 목을 볼 때면 언제나 역겹다.
그런데도 리아가 검을 들고 움직이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리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먼과 이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리아가 덤벼들었던 모두를 정리하자 주변이 적막에 싸였다.
"이봐."
입을 벌린 채 멍하게 리아를 따라 고개를 돌리던
남자를 지목했다.
"네? 저요? 헉! 살려주세요!"
"나는 적의를 보이지 않는 이들까지 죽이는
살인마가 아니다.
`필라`의 남부 중, 대로 위를 관리하는 자가 누구냐?"
"아! 지젤 두목과 페트로 점주입니다!"
"주군. 두목이라 하는 것으로 보아
양아치들이 이들을 보호하고, 점주하라는 사람이
이곳의 점포들을 대표하는 자로 보입니다."
나도 리먼과 같은 생각이었다.
"두목이란 자에게 안내하라."
"네? 그게.. 저기.."
"그가 두려운 것이냐?"
"저희 같은 놈들은 갈 수 없는 곳이라.."
"하.. 위치만 알려주어도 된다."
남자가 알려준 곳에 도착하자 어이가 없었다.
"가지가지 하는군.."
천민 구역의 집이라 볼 수 없는 저택.
그리고 그 저택을 등지고 각종 무기를 들고 있는
100여 명의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허? 꼬맹이와 돼지..그리고 계집?
야! 저 년놈이 확실해?"
"네! 두목! 특히 저년! 저년이 1조 애들을 다 죽였습니다!"
"쯧. 세상이 미쳐 돌아가나..
고작 계집 하나와 꼬맹이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두목의 말에 어이가 없어 피식 웃으며 다가갔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건 여기를 두고 하는 말 같은데?"
"참나.. 이새끼 말 짧은 거 보소?
하.. 내가 이런 꼬맹이를 상대로 뭐하는 건지.. 쯧..
캬악 퉷! 어이 꼬맹아.
보아하니 있는 집 자식 같은데 뒈진 놈들 보상만 해주면
지금까지의 재롱은 용서해 줄게."
"네가 두목이 맞아?"
"미치겠네.. 그래. 내가 지젤이고 두목이다."
"그래? 그럼 죽어. 리아!"
"충!"
이번에는 리아만 혼자 싸우게 두지 않았다.
*
카온과 리아가 백여 명의 왈패들을 향해 뛰어가자
리먼은 재빨리 나무 뒤에 숨었다.
"주군.. 리아님의 검이 아름다웠던게..
주군을 닮은 거였습니다.."
리먼이 카온의 검을 정확히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 만났던 날에는 어두웠기에 잘 보이지 않았고,
몬스터 토벌도 지원만 했을 뿐,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오늘에서야 카온의 검을 본 리먼은
리아의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검이 누구를 닮았으며,
리아가 왜 그런 검을 쓰는지 알 수 있었다.
"천민들에게는.. 약속이니 뭐니 했으면서..
여기서는 왜 대화도 없이 죽여버리는 거지.."
카온과 리아가 지지 않을 거로 판단한 리먼이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온갖 비명이 난무하는 와중에 생각에 잠겼다.
천민들이 주거하는 곳을 방문한 3주 동안
한 번도 검을 든 적 없으며,
오늘도 리아에게 처리를 맡겼으나 죽이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이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검을 꺼내 허리에 찼으며,
좋지 않은 의도로 다가오는 이들을
일체의 대화 없이 죽여버렸다.
지금도 두목의 말을 말로 받은 것이 아닌,
그가 두목이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두목에게 뛰어가 그의 목부터 베어버리고
왈패들을 처리하고 있다.
순간, 이런 궁금증을 풀어줄 유일한 사람인
카온의 외침이 들렸다.
"리먼!"
모두가 죽었기에 전투 후의 비명과 시름의 소리는 없었다.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는 카온을 향해 리먼이 뛰어갔다.
"네! 주군!"
*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리아를 불렀다.
"리아. 고생했다. 괜찮아?"
"괜찮습니다."
"솔직히."
"솔직히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는..
밤에 잠을 이루기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죽어 마땅한 이, 죽여야 하는 이,
죽일 수밖에 없는 이에 대해
잠들지 못한 날 새벽에 오러 홀을 운용하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답은 찾았어?"
"네. 주군."
"그게 너만의.. 검과 생명에 대한 신념이야."
"저는 주군의 검일 뿐입니다."
"나의 검, 때로는 나의 방패..
칠흑 기사이자 기사단의 단장으로서는 좋은 답이야.
하지만 검을 쥐고 검을 휘두르는 것은 리아 네 자신이지.
네가 어떤 답을 찾았는지 모르지만 너를 믿어.
검에 실린 생명의 무게가 가져다준 너만의 신념이
내가 내린 명이 부당하다 여겨지면 그때도 말했듯
너의 신념의 검이 나의 목을 향했으면 좋겠어."
"아.."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리아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 주고 있으니 리먼이 다가 왔다.
"주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리먼.. 너무 한 거 아냐?
다친 곳은 없나? 괜찮냐? 라고
먼저 말해야 하는 거 아냐?"
"흐흐흐 괜찮아 보이십니다."
"야이.. 일단 저 저택 안에 뭐가 있는지 봐야겠으니
가면서 물어봐."
리먼이 물어 온 것은 대로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다른 내 행동의 의미였다.
"간단해.
저놈들은 죽어 마땅한 놈들이었기 때문이야.
점주들을 대상으로 보호비를 받고
술에 취해 개판을 치는 모지리들을 처리해 주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쳐.
도박판에서 돈을 잃은 이들을 대상으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쳐.
하지만.. 도박에 빠져 고리대를 쓴 그놈에서 끝났어야지..
그의 부인과 딸을 향략가에 팔아
몸을 판 돈을 가져간다든지,
보호비를 내지 못하는 점포를 박살 내고
점주를 죽이는 건 아니라는 거야.
저들을 모두 죽인 리아는 생명의 무게로
잠을 못 이루고 스스로 답을 찾았지만
막상 죽은 저들에게 살인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고 방법일 뿐이야.
그런 자들에게 주민들과 같은 기회? 웃기는 소리지"
"아.."
리먼의 물음에 답을 주고 저택의 문앞에서 서자
리아가 문을 열었다.
"진짜.. 가지가지 한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기가 찼다.
"너희는 누구냐?"
20대 초중반의 여자 5명이 나체에 가까운 모습으로
한곳에 모여 떨고 있었다.
"아니.. 리아.
저 여인들을 데리고 가 제대로 된 옷을 입히고
이야기들 들어봐."
"네. 주군."
여자들의 존재가 대충 짐작이 가기에
남자인 나나 리먼이 아닌 리아에게 지시했다.
"주군. 혹시 숨어있는 놈들이 있지 않을까요?"
"없어.
있었다 해도 밖에서 그 난리가 났는데 도망갔겠지."
저택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어떠한 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가로 보이는 가족 의자에 앉아있으니
리아가 여자들이 나왔다.
"리아. 네가 설명하는 게 빠를 것 같다."
"네. 주군.
저 여자들은 도박 빚을 갚지 못한 아비 때문에
잡혀 온 볼모입니다."
"돌려보네."
"그게.. 그녀들이 먼저 종이라도 좋으니..
거두어 달라고 했습니다.."
"음? 아무나 좋으니 직접 말해보라."
이들을 종으로 거두는 것은 나에게 일도 아니다.
또한, 도박으로 가정을 파탄 나게 하는 것도 모자라
딸을 볼모로 잡히게 한 아비에게
돌아가기 싫은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자신의 원하는 바를 직접 입으로 말하지 못하는
용기 없는 이는 필요 없다.
"살고 싶어요.."
"자세히 말해야 할 것이야."
두서없이 정리되지 않은 말을 요약하면 이랬다.
각자 다른 이유로 어머니가 없고
홀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는 것.
저택에 들어온 날짜는 다르나,
도박에 빠져 빚을 진 아비가 돈을 갚을 때까지
볼모로 있으면서 저택의 청소와 요리 등을 했다는 것.
두목이 지정한 날짜가 이미 지났고,
조만간 환락가로 가게 되리라는 것을 들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돌아가면 볼모가 아닌 팔려 갈 수도 있다는 것과
그것이 싫어 도망가더라도 갈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이 저택에서 지낼 것이니
내일 해가 밝거든 답을 주겠다."
"네.."
"혹시 페트로라는 자를 아는 이가 있느냐?"
"제가 알고 있어요.. 몇 번 심부름한 적이 있어서.."
가장 마른 체형의 여자가 손을 들었다.
"지금 그자에게 가서 살고 싶거든 당장 오라고 전해라."
"네?!"
깜짝 놀라며 되묻는 여자에게 답을 주었다.
"이미 모든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내가 찾아올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먼저 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니
그렇게 말하면 알아들을 것이야.
너의 안전은 리아가 지켜 줄 테니 걱정말거라."
리이가 동행한 것이 안심되었는지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화려하기만 할 뿐 실속 없는 저택의 내부를 둘러보고
다시 거실로 나오니,
때마침 리아의 호위를 받으며 나갔던 여자가
20대 후반의 남자와 함께 들어왔다.
"헉! 페트로가 라이거 가문의 카온 도련님께 인사 올립니다!"
내 얼굴을 본 남자가 매우 놀라더니
바로 거실 바닥에 엎드렸다.
"너도 나를 알고 있군."
"남쪽에서 칼부림하고,
단 두 명이 지젤과 그 동료들을 세상에서 지운 이가
카온 도련님이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처음 놀라던 모습과 달리
차분한 모습으로 답을 하는 페트로를 가만히 응시했다.
"너는 정보군."
"어..어찌.."
다시 놀라는 페트로에게 일어나라 명하고 답을 주었다.
"어느 도시든 그 형태만 다를 뿐
정보들이 모이는 곳이 존재해.
너처럼 술집을 운영하든, 평민들에게 섞여 있든,
심지어 고아원을 세워 아이들을 돌보기도 하지..
겉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그들이 다루는 것은 정보라는 무기지.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남자가
그 왈패들과 함께 이곳을 대표한다?
그런데 여자 둘을 보냈고..
네 말대로 칼부림을 한 이가 부른 위험한 곳에 순순히 왔다?
나를 보자 내 존재와 내 이름까지 알았다?"
페트로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이봐. 페트로. 연기는 그만하지?
넌 내가 주거 지역을 드나드는 순간부터 나는 물론,
리아와 리먼의 존재까지 알고 있었어.
들어올 때 나를 보고 놀란 눈빛과 표정?
조금더 나이가 들면 완벽했을 거야."
페트로의 얼굴과 연령대를 확인한 순간부터
이질감이 느껴졌다.
북쪽의 농업 구역이거나 동쪽의 상업 구역의 대표였다면
자금이 있다거나 능력이 좋은 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무법지대에 가까운 남쪽이다.
너무나 평범하게 생긴 얼굴에
고생과는 멀게 보이는 매끈한 손,
놀라는 눈빛과 행동과 다르게 겁을 먹지 않았다는 점과
여기까지 순순히 온 그의 행동이 무기와 폭력의 힘이 아닌
정보의 힘을 가진 자라는 것을 유추하게 했다.
"이런.. 들켰네요.
정식으로 인사 올리겠습니다.
메턴강의 은혜를 입은 페트로가
라이거 가문의 카온 도련님께 예를 올립니다."
"메턴강의 은혜라.."
"제가 딱 10살 때의 일이지요.
그때의 일로 이곳의 사람들은
메턴강의 은혜를 입에 담지 않으나..
그건 카온 도련님의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됐고. 왜 연기를 한 것이지?
"도련님께서 제 가치를 판단하시고자 하는 것처럼
저 또한.. 윽!"
페트로의 뒷말은
내가 목에 겨눈 검 때문이 이어지지 못했다.
"나를 평가하기 위해 연기를 한 것이다?
아주 용감하구나. 그 알량한 용기가
네 명줄을 끊는다는 생각을 못 했던 거이냐?"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도박 한 번 걸어봤습니다!"
"도박을 걸었다?
"도련님의 검술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저 기사 단장을 비롯한 뛰어난 실력의 기사단이 있습니다.
또한, 리먼이란 자가 `필라`에 세운
카라 상회 또한 도련님과 연관이 있습니다.
즉, 무력과 자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 도련님이 가장 천한 자,
더욱이 등을 돌린 자들의 마음을 얻고자 움직이고 계십니다!
하지만 도련님에게 없는 것이 있죠!
바로 사람과 정보입니다!
그 중, 정보를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허나! 도련님께서는 제가 어떤 인물인지 모르고
단순히 이곳의 대표 중 하나라는 이유로 불렀습니다.
만약 저의 연기에 속아 존재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제 목을 걸고 도련님과 거래를 했을 것이고
저의 존재를 알아채시면 도련님께서 가시는 길이
어떤 길일지 모르나!
같이 간다는 도박 한번 걸어 보려고 했습니다!"
마지막 말은 거의 발악에 가까웠다.
"크크크 푸하하하 너 재밌는 놈이구나?
그래. 네가 판단한 나는 어떻더냐?"
"제가 흘린 몇 가지 정보만으로
제가 정보를 다루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분입니다.
또한, 품은 그릇이 작았다면 제가 연기한 것이 들킨 순간
제 목은 지금 지젤과 함께 있겠죠."
"크크 밤이 길어질 것 같으니 저녁부터 먹고 보자."
내 입에서 저녁이란 단어가 나오자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택에 있던 여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준비해준 차와 함께 나눈
페트로와의 대화는 상당히 유익했다.
페트로 밑에서 활동하는 정보원의 수가 상당했고,
그들이 일하고 활동하는 영약 또한 다양했다.
심지어 리먼이 마노 영지에서 활동하는
노예 상단의 주인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었으며,
페페 영지의 정보 또한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었다.
새벽에서 끝난 대화는,
"정보조직 `소리샘`의 단주 페트로가
라이거 가문의 카온 도련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주군. 저도 저렇게 충성을 맹세할 걸 그랬습니다.
페트로 단주. 한배를 탄 것을 축하하네."
`소리샘`이라는 정보조직을 운영하는 프트로의 충성 맹세와
이를 축하하는 리먼의 말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