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만 판단하지 마라.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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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만 판단하지 마라.
3월 10일.
라이거 영지를 떠나 성도 `일라인`에
한 달 하고 이틀 만에 도착했다
입학식까지는 4일이 남은 시간,
하루는 여관에서 보내고,
성도 내에 주택을 구매하기 위해 상업 길드를 찾았다.
딸랑.
모든 부과 권력이 집중되어있는 성도인 만큼
귀족가의 자제처럼 보이는 차림의 내가 들어와도
별다른 눈길을 주지 않았다.
대기표를 받아들고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 보았다.
용병들이 이름을 올리고 활동의 발판이 되는
용병 길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상인들과 상업, 주택과 건물들의 매매는 물론,
자체적으로 건설부라는 것을 운영하며
집을 짓는 것을 비롯해 대대적인 공사까지
용병 길드의 일을 제외한 경제 활동 대부분을
관리 담당하는 상업 길드인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리먼이 엄청난 양의 물품을 사들여 빠르게
`필라`의 상업 구역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상업 길드와의 관계가 좋았다는 것이
한몫한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페페 가문의 상인들로 인해 라이거 영지에서
길드 지부를 철수해야 했던 길드도
노예 상단이라 많은 세금이 부과되지만
한 번도 금액을 속이거나 미루지 않았고,
자신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리먼의 도움으로
라이거 영지에 다시 지부를 설치 할 수 있어
반겼다고 들었다.
"2541번 고객님. 7번 창구로 모시겠습니다."
"소리 증폭 아티팩트인가.."
천장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안내해준 7번 창구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7번 창구를 담당하는 아샤입니다."
"주택을 구매하고 싶습니다."
"주택 말씀이시죠?
어떤 용도의 주택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지난 삶에서보다 잘 먹고, 꾸준한 운동과 수련 덕분에
또래들 보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지만,
아직 성인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내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자 직원이 물었다.
"혹시 제가 뭔가 실수했나요?"
"아닙니다. 저를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라 보지 않고
한 명의 고객으로 대해 주는 것이 신기해서 그랬습니다."
"호호. 여기는 상업 길드랍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드나들죠.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만 판단하지 마라.
이게 저희 길드의 생각이랍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판단하지 마라인가..
간단하지만 중요한 것을 배웠네요.
주택의 크기는 크지 않아도 상관없는데
넓은 지하실이 있거나 수련을 할 수 있는
마당 같은 곳이 있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아!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몇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네."
"혹시 귀족 자제이십니까?"
"네."
"감사합니다. 귀족가들이 모여있는 곳이여 합니까?"
귀족 중에서는 평민들과 섞이기 싫어하는
이들도 있기에 한 질문일 것이다.
나는 이런 배려심이 마음에 들었다.
"아뇨. 상관없습니다.
귀족가 보다는 아카데미와 가까우면 좋겠네요."
"아! 그럼.. 음.. 괜찮은 곳이 두 곳 있어요!"
직접 안내해 주겠다며 창구를 다른 이에게 맡기고
길드를 나선 아샤를 따라 나도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 가격 같은 건 안 물어 보시나요?"
"호호 저도 눈치가 있답니다~
처음 하신 `말이 주택을 구매하겠다.`였죠.
적어도 왕도 내에서 주택을 구매할
자금이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가 `수련할 공간이 필요하다.` 맞죠?
생활하는 공간 이외에 다른 공간을 원한다는 것은
또 그만큼이 자금이 있다는 것이죠.
세 번째가 `아카데미와 가까웠으면 좋겠다` 였어요.
보통은 가격이 나와야 하는데
고객님께서는 가격을 묻는 것이 아닌
조금더 정확한 위치, 특히 귀족가 만큼이나
땅값이 비싼 아카데미를 찍어 말씀해 주셨죠."
"아.."
"헤헤 저도 아카데미 출신이랍니다~"
내 마음속에서 인재에 대한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유추 같지만
이 단순한 것이 지나고 나서야 알고,
지나고 나서야 단순한 것이지
막상 해보라고 하면 잘되지 않는 것이다.
`나도 할 수 있어`, `간단하네.` 같은 말뿐인 사람들보다.
몇 마디 말을 듣고 상당히 정확한 유추를 실행하는
아샤가 훨씬 나았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 아샤를
라이거 가문에 등용하는 것을 제안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여기예요."
주택이라기보다 저택에 가까운 곳이었다.
"조금 크긴 한데..
두 번째 소개해 드릴 곳과 가격은 같아요.
아카데미 교장이셨던 분이 왕도를 급히 떠나면서
싸게 나온 곳입니다.
지하실이 있고 저택 뒤에는 수련실이 따로 있어요.
들어가 보실래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혼자 살기에는 커도 너무 컸다.
주택을 관리해 줄 사람을 구할 생각이지만
그래도 너무 컸다.
내가 거부 의사를 밝혀도 아샤는 밝게 웃으며
다른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여기는 생활 공간은 첫 번째 봤던 곳보다 작은데
마당이 넓고 지하실은 없지만,
뒤편에 수련할 수 있는 자리도 있어요."
첫 번째 저택보다 아카데미에서 더 떨어진 곳이지만
이곳이 외형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아샤의 안내에 따라 내부를 확인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세 개의 방과 하나의 욕실과 주방, 적당한 크기의 거실,
거실과 통하는 문을 지나면 저택의 뒤편이 나오고
혼자서 검을 휘두르며 수련하기 딱 좋은 공간도 있었다.
"여기로 할게요."
"호호호 끝까지 가격은 묻지 않으시네요?"
"음.. 여기는 성도고..
귀족가는 아니지만 땅값이 비싼 아카데미와 가까운 곳.
하지만 아카데미와 거리가 조금있으니..
한.. 3천 금화쯤 하지 않을까요?"
"어머! 정확히는 2천8백 금화입니다!"
"크크 길드로 가서 계약하죠.
참! 아카데미를 나오셔서 아시겠지만
주말밖에 사용하지 못합니다.
이곳을 관리해줄 사람을 셋 정도 고용하고 싶은데.."
"길드를 통해 채용 가능해요.
혹시 등급이란 걸 알고 있나요?"
내가 정확하게 모른다고 답하자 아샤가 설명했다.
가문에 속한 시녀나 집사와 다른,
용병 길드에 속해있는 용병들처럼
상업 길드에 속에 있는 사람들 있었다.
이들은 가문에 대한 충성이 아닌
돈과 계약에 따라 움직이며,
이들의 의복과 식비 같은 복지는
길드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귀족들의 갑자기 생긴 연회에 동원되기도 하고,
자금의 여유가 있는 귀족 가문의 경우에는
일 년에 몇 번 찾지 않는 별장의 관리를 위해
고용하기도 했다.
귀족 가문의 일을 제외하면
대부분 상회의 종업원으로 고용되거나,
일부는 관광지로 파견을 나가기도 했다.
특이한 점은 등급이 나뉜다는 것이었다.
능력이나 외모로 나눈 등급이 아닌
중요도에 따른 등급이었다.
이 중요도라는 것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비밀엄수였다.
"비밀엄수..?"
"네.
그들은 충성심으로 일하는 귀족가의 시녀와 집사와 다르죠.
사람의 믿음을 얻는다는 것..
믿을 수 있다는 사람과 같이 일한다는 것..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돈과 계약에 움직이는 이들이 적대하는 상단이나 귀족에게
작은 정보라도 넘기지 않은 다는 보장이 없는 거죠."
"아.."
이러한 이유로 최고 등급인 1급과
그 아래 2급의 사람을 고용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고용하는 비용이 많이 드는 대신
비밀엄수에 관한 마법 계약서를 작성해야 했다.
아샤의 설명이 이해가 가고, 이에 동의하는바
고개를 끄덕였다.
"1급의 여자 두 명과 남자 한 명을 고용할게요."
이후의 일은 간단했다.
길드에 다시 가서 주택에 대한 계약서와
고용한 이들에 대한 계약서를 작성하고
모든 금액을 지급하는 것이 끝이었다.
다시 구매한 집으로 와 둘러 보고 있는데
고용한 이들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말보르라고 합니다."
"헤르니스 입니다."
"마야라고 합니다."
30대 초반의 마당 관리와 시설 관리를 담당할 남자 말보르,
20대 중반의 청소와 빨래 등을 담당할 여자 헤르니스와
요리를 담당할 마야였다.
"카온이라고 합니다.
업무는 서로 의논해서 해주시면 됩니다.
들어서 아시겠지만 저는 주말에만
이 집을 이용하게 될 것이고,
주말에도 자리를 비우는 날이 많을 겁니다.
평일 동안 이곳에서 생활하셔도 상관없습니다.
마법 계약서에 명시했던 부분만 지켜주시면 됩니다."
내가 마법 계약서에 적었던 부분은,
저택 내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해
무엇하나 발설하지 말 것. 이거 하나였다.
"네. 호칭은 무엇으로 하면 좋겠습니까?"
호칭도 상의해서 정하되 통일만 하라고 했다.
3월 14일.
아카데미 입학식이 있는 날이 밝았다.
아카데미 근처에 도착하자 교복을 입은 재학생들과
아직 교복을 지급 받지 못한 신입생들로 인해
붐비고 있었다.
입구에 다다르자, 입구를 지키고 있는 듯한 모습의
남자 몇 명이 서 있었다.
귀족임을 상징하는 교복 위의 망토와 왼쪽 팔에 두른 완장.
이들의 존재는 지난 삶에서도 경험했기에 알고 있었다.
`아카데미 수호단`
귀족들의 작은 모임에서 시작한 이 단체는
시대를 거듭해 아카데미에서 인정받았고,
교칙에 어긋난 학생들을 단속하거나,
징계위원회를 열어 처벌할 힘이 있는 단체였다.
`너무나 사사로이 운영된다는 것이 문제였지..`
그들을 본 내 첫 행동은 깊은 한숨이었다.
취지는 좋으나 정해진 교칙에 따르는 것이 아닌
그들이 정한 법과 규칙에 따라 행동했으며,
귀족과 평민을 대하는 잣대에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귀족임을 상징하는 망토 또한
아카데미를 세운 유진님의 뜻과 반하는 것이었다.
배움에 있어 귀족과 평민을 구분하지 않는다 했던
유진님과 달리, 시대를 지나오면서
자연스럽게 귀족과 평민이 구분되었고,
시녀들이 귀족 출신과 평민 출신을 구분하기 위해
장신구를 이용하듯 아카데미에서 귀족과 평민을
구분하기 위해 망토를 사용하였다.
아카데미 학생의 인원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총 9백여 명.
이들 중 망토를 착용하는 귀족은
백 명이 조금 넘을 뿐이었다.
즉. 처음부터 다수의 평민을 소수의 귀족이 지배하는
사회의 축소판이라 볼 수 있었다.
아카데미 수호단.
보통 수호단이란 불리는 이들을
한심한 눈으로 지나가려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기사 학부 3학년을 나타내는 상의 왼쪽 가슴에
세 개의 검이 수 놓인 교복을 입은 남자.
"이름이 뭐지?"
"카온입니다."
"쳇. 평민인가?
아카데미를 무사히 졸업해서 귀족님들 밑에서 일하려면
그 천한 눈빛부터 버려야 할 거야."
일부러 가문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역시나 귀족이란 허영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말이 돌아왔다.
"네. 알겠습니다."
"쳇.. 이래서 평민 신입생들은 재미었어..
자존심이 없으니.. 쯧쯧.. 가봐."
`무엇이 자존심이고.. 무엇이 재미란 말인가..`
나는 입구부터 아카데미의 썩은 일부분을 경험하고
강당으로 향했다.
강당 1층에 놓인 3백여 개의 의자 중
비어있는 적당한 곳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1층은 신입생들로, 2층은 재학생들로 채워졌다.
교장의 축사로 시작된 입학식.
귀족과 평민을 나누어 말하는 축사 속에서
학생들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수장의 생각 또한
썩어있음을 또 한 번 느꼈다.
"학년을 막론하고 학생들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도미니크다.
이것으로 입학식은 종료한다.
바로 반 배정 평가가 있을 예정이니
학부 시험장으로 이동한다.
학부 시험장은 강당 입구로 가면 알 것이다.
시험이 종료되면 입학 성적에 따라
반과 기숙사가 배정될 것이니
이에 관한 것은 학부 시험관의 지시에 따르길 바란다."
도미니크 교수.
교장과 교감에 이어
아카데미 서열 3위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친분을 쌓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사람 중
하나이기도 했다.
내가 신청한 학부는 장교 학부.
아카데미는 총 다섯 개의 학부가 있었다.
내가 3년간 몸담아야 하는 장교 학부는
기사 수업은 물론, 정치와 전술, 전략 등을 공부하기에
가장 힘든 곳이지만, 졸업만 하면 중앙 군 또는
대 귀족의 군에 들어가기 쉽다는 장점도 있었다.
기사 학부.
아카데미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있는 곳이며,
오로지 기사로의 자질과 실력에만 중점을 둔 곳이다.
다음으로 소수지만 결코 무시하지 못하는 마법 학부.
소수이다 보니 마법 학부 학생들은 자부심이 강한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좋은 성적의 학생은 왕실 마법사 또는 왕실 마법단에
들어갈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상을 그렇지 않았다.
일라인 왕국에서 '마법'하면
왕실보다 테슬린 공작 가문을 꼽는다.
왕실과 힘이 비슷한 가문, 더 좋은 대우와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가문,
이런 가문인 테슬린 가문으로 졸업생들이 몰렸다.
테슬린 가문에 뽑히지 못한 졸업생도
왕실이나 마탑, 다른 가문에서 중히 쓰이고 있었다.
그리고 가문의 후계자와 여자들이 많은 정치 학부.
라이거 가문이나 테슬린 가문처럼
검이나 마법에 특화된 가문이 아닌 일반적인 가문의
후계자들 정치 학부의 핵심이였으며,
가문의 차남이나 차녀 등이 그 뒤를,
가신을 꿈꾸고 가문의 지원을 받는 평민들이
또 그 뒤에 있었다.
가장 평민의 수가 많은 상업 학부.
지난 삶에서는 나는 기사 학부를 선택했다.
원래라면 다음 주에 있을 졸업식에 참여했을 호리페가
교육받은 장교 학부는 허락되지 않았고,
가문의 후계자들이 모여있는 정치 학부 또한
허락되지 않았다.
마법 학부야 전혀 상관없는 곳이었고,
당시 병신같은 상황 속에서도 귀족의 자부심을
놓지 않았던 나는 상업 학부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옛 생각들을 떠올리며 도착한 장교 학부의 편성 시험장.
오로지 실력으로 세 개의 반으로 나누는 기사 학부와 달리
장교 학부는 왕국의 역사, 중급이상의 수학,
체력 검증, 검술 실기, 이 네 가지 것을 종합하여
성적순으로 반을 나눴다.
역사와 수학 시험에서 가장 먼저 시험지를 제출했고
이어지는 체력 검정 시험.
"다음은 카온. 앞으로."
시험관의 부름에 일어서 나가려는데
뒤에서 속닥이는 소리가 들렸다.
- 저 새끼.. 가장 빨리 시험지 낸 놈 아냐?"
- 야. 제대로 풀었겠냐? 대충 풀었겠지.
- 어디 가문이지?
- 카온.. 카온이라 들어 본 적 없는데..
- 덩치는 좋네. 머리 쓰는 것은 대충하고
체력으로 승부 보겠지 뭐.
아무리 기억해 내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니
정식 교육이 시작되는 이틀 뒤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일라인 왕국의 제 2 왕자, 제퍼드 일라인을
중심으로 하는 국왕파의 핵심 인물도 아니고,
나의 목을 베었던 서스 파실리온이 중심이 되는
귀족파의 핵심 인물도 아니었다.
당시 나는 라이거 가문이라는 이유로
호리페에 의해 국왕파에 속했었다.
아무튼, 저들의 말은 틀렸다.
역사고 수학 시험에서는 틀린 것이 없었고,
체력과 실기에서 승부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 있었을 뿐이었다.
체력 검증까지 마치고 마지막 시험인 검술 실기.
"나는 장교 학부의 베르트 미케라고 한다.
너희들이 몸으로 하는 모든 것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베르트 미케.
일라인 왕국 동부의 미케 자작 가문의 차남으로
아카테미를 졸업하고 왕실 기사단에 들어갔으나
이른 나이에 그만두고
아카데미에서 교수로 일하는 자였다.
도미니크 교수가 친분을 쌓아도 좋겠다 생각한 교수라면
베르트 교수는 가능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교수였다.
과거 기사 학부인 내가
장교 학부 교수의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베르트는 유명했다.
자신의 소개하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자작이라는 높지 않은 작위임에도
귀족이라는 것에 엄청난 자부심이 있었고,
학생들 학생이 아닌 귀족 도련님과
평민 놈으로 부를 만큼 차별이 심했다.
"카온은 앞으로 나오도록."
그런 그가 나를 카온 라이거가 아닌 카온이라 불렀다.
어쨌든 교수가 나오라 해 나가자
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만
조금더 지켜볼 문제였다.
"실력 평가에 대해 시험관의 재량으로
평가 방법을 변경하겠다.
목검으로 하는 대결이며 한쪽이 항복하거나
더이상 진행이 어려울 때 승패가 결정된다.
승자 승 원칙과 다승의 원칙이라는 것은 같지만,
앞선 대결에서 승리한 자가 계속 대결을 치르며,
대결에서 승리 한자는 앞서 승리한 자의 승리 개수의
반을 차지하게 된다.
각자 주어진 기회는 두 번이다."
장교 학부의 신입생은 50여 명.
승의 개수를 늘릴수록 반대로 체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을 노리고 도전한 이가 이긴다면 몇 번을 승리해도
반을 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적의 상태를 파악하고
기회를 잡는 것도 지휘관을 능력은 맞다.
조금 어이없는 방식이지만 이때 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베르트의 말에
오로지 나만을 위해 방식을 변경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카온과 알크 자브레의 대결이다."
`이 새끼가..`
나는 카온이였지만 상대는 알크 자브레였다.
분명 신상이 적혀있는 종이에는
내가 라이거 가문이라는 것이 적혀 있다.
하지만 나는 평민처럼 이름만 불렀고
상대는 성을 붙여 귀족처럼 불렀다.
과거의 들었던 것들이 소문이 아닐까,
장교 학부이기에 실력 평가도 다른가, 하는 생각이
완전히 지워졌다.
귀족주의의 베르트가 백작 가문인
나를 저격하는 이유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자작 가문이 백작 가문을 건드릴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 뿐이다.
페페 자작처럼 백작 가문 따위 무시할 정도로 부유하거나,
페페 자작처럼 백작 가문보다 더 위의 가문이 뒤를 봐주거나.
자브레 가문 또한 미케 가문과 같은 자작 가문이다.
같은 자작 가문의 자제를 성을 붙여 부르는 것으로 보아
백작위를 무시할 정도로 부유해 보이지는 않는다.
결론은 하나다.
베르트 뒤에 누가 있거나,
미케 가문의 뒤에 어떤 가문이 있거나.
누가 있고 무엇 때문에 나를 저격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걸어온 싸움을 피하는 성격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베르트의 뒤에서 누가 무엇 때문에
입학 첫날부터 이런 짓을 하는지 알아야겠기에
그의 수작질에 어울려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