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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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나는 이미 알고 있듯 C반에 배정되었으며
기숙사 또한 이에 맞게 배정되었다.
기숙사에 배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C반 인원이 30명이고,
4명이 한 방을 사용하는 기숙사임에도
나와 함께 방을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오래 있을 것도 아니라 상관없었지만,
혼자라 더 편했다.
호위와 집사, 시녀들을 대동한
제 2 왕자가 2학년으로 들어왔고
왕자의 등장과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학생들은 왕자를 중심으로 한 국왕파와
서스 파실리온을 중심으로한 귀족파로 나뉘었다.
교수도 학생도 정신없는 일주일을 보내고 다시 월요일.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같은 반 학생 하나가 쪽지를 건넸다.
< 마치고 정치 학부 A반 기숙사 앞으로 오도록
- 서스 파실리온 - >
마치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듯 자연스러운 명령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벌컥!
쪽지의 내용을 무시하고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허? 여기 있어? 내가 보낸 쪽지 못 받았던 거야?"
서스 파실리온.
명령조의 쪽지를 보낸 당사자이며,
과거 내 목을 베었던 이가
16살의 모습으로 내 앞으로 다가왔다.
으득.
나도 모르게 갈리는 어금니.
"하? 이 새끼 표정 보게?
네 할아버지가 미리 교육 안 해줬어?
파실리온 가문의 장남에게
알아서 기어라고 하지 않았냐고?!"
나에게는 친가든 외가든 할아버지가 없다.
서스가 말하는 할아버지는 페페 자작을 말하는 것이었다.
서스의 말에서 파실리온 가문과 페페 가문 사이에
나에 관한 대화가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긴..
나 때문에 망신 톡톡히 당한 걸 말할 자작이 아니지..`
라이거 가문의 기사가 반으로 줄었고,
페페 가문과의 인연이 끝이 났다는 것을
파실리온 가문이 알게 된다면,
라이거 가문을 삼키고 남부의 패자가 되겠다는
페페 자작의 야심이 파실리온 가문에 의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았을 것이고,
아버지도 또 다른 적이 움직이는 것을 막고자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았을 것이다.
"하.. 됐고.
이번 주 토요일에 우리 별장에서 파티가 있으니까
와서 심부름이나 좀 해."
"지랄한다."
"뭐?!"
"지랄한다고. 심부름 같은 소리 하네.
헛소리할 거면 그냥 꺼져라."
"하.. 새끼 꼴에 백작가라고 자존심 있다는 거지?
왜? 국왕파 쪽에서 오길 기다리냐? 쯧쯧..
제퍼트 왕자님이 남쪽은 쳐다보지도 않기에
같은 남쪽 출신이라 돌봐 주려고 했더니.
후회하기 전에 그냥 내 말 듣지?"
"후회?"
"우리 가문과 페페 자작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답 나오잖아?"
딱 그 나이, 그 수준이 맞는 생각과 말이었다.
서스나 서스에게 꼬리를 흔드는 귀족의 자제나,
그 자제들의 뒤에 있는 가문에 눈치보며
명령에 따르는 교수들이나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보다 더 한심한 것은
지난 삶에서 대책 없이 멍청하고 바보 같았던 나였다.
"파실리온과 페페 가문 사이의 일은 두 가문이 알아서 해."
"푸하하하 그래? 큭큭 그래 그럼.
나중에 후회하고 질질 짜지나 마라."
누가 나중에 질질 짤지 두고 보면 알게 될 일이지만
유치한 서스의 말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배를 잡으러 방을 나가는 서스는 분명
내가 자신의 말을 거절했음을 가문에 알릴 것이다.
하지만, 알려진다 해도 파실리온 가문이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페페 가문이 폴리아리스 남작가와
인연을 맺으려 했다는 것을 파실리온이 알고 있다.
그리고 에르제에 대한 습격이나 암살 시도가
다시 없는 것으로 보아,
약혼이 성사되지 않았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로 페페 가문의 야심을
파실리온 가문이 확실히 알게 되었을 것이고,
내가 서스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으면
라이거 가문과 페페 가문의 일도 조만간 알게 될 것이다.
결국, 라이거 가문의 전력에 손실이 생겼다는 사실이
파실리온 가문의 귀에 들어가겠지만,
라이거 영지로 군을 움직일 명분이 없고,
귀족파의 힘을 빌려 억지 명분을 얻어도
영지를 맞대고 있는 페페 가문의 야심을 알게된 이상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에르제의 목숨 갚은 이미 받은 거네? 크크"
에르제나 폴리아리스 가문은 모르겠지만,
분명히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입학을 하고 이 주의 시간이 다 흘러가지만,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같은 방을 쓰는 이도 없고,
국왕파나 귀족파 학생들은 서로 짠 듯 나를 무시했다.
귀족 자제들의 무시에 몇 안 되는
평민 출신 장교 학부 학생들도 나와 멀리했다.
시간이 흘러 금요일 오후,
휴일을 보내기 위해 기숙사에서 나와 주택으로 가는 길.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에르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온님"
"에르제님?"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폴리아리스 남작 가문의 삼녀 에르제 폴리아리스가
라이거 백작 가문의 차남
카온 라이거님께 인사 올립니다."
내 가문에 대한 것은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현명한 그녀라면 나와 거리를 둘 것 여겼건만
기다리고 있던 것도 모자라
정식 인사까지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늦었지만 저도 인사 올립니다.
라이거 가문의 차남 카온 라이거가
폴리아리스 가문의 삼녀
에르제 폴리아리스님께 인사 올립니다."
살짝 미소 짓는 것과 다르게 에르제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길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그러니.. 근처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가자는 말을
끝까지 내뱉지 못했다.
아카데미와 조금 떨어진 곳이지만,
누군가의 눈에 띄어 에르제가 귀족 자제들 사이에서
곤란해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근처에 카온님의 집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나 혼자 사는 곳이고
에르제도 혼자 있었다면 거절했겠지만,
주택에는 고용인들도 있고 에르제 옆에
마들린과 벨라도 함께였다.
"썩 좋은 곳은 아니지만 그게 낫겠네요."
집에 들어가자 에르제 일행을 발견한
헤르니스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머!"
"헤르니스. 뭐가 어머인가요?"
"도련님께서 아리따운 여성분을.. 호호"
"허.. 아카데미 동기일 뿐입니다."
"처음에는 다 그렇게.."
"헤르니스?"
"호호호 네네~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나와 고용인들 사이도
2주 사이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좋아졌다.
"음.."
"마들린님 몸이 안 좋아지신 겁니까?"
성도에 도착해 헤어지기 전,
마들린은 완벽히 회복한 상태였지만,
묘한 표정을 짓는 마들린에게 혹시나 물었다.
"아닙니다.
몸은 카온 도련님 덕분에 예전보다 더 좋습니다.
조금 전 그분은 귀족가의 시녀는 아닌 것 같은데..
도련님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것 같아
조금 의아해했을 뿐입니다."
"아.. 하하
상업 길드를 통해 고용한 이들입니다.
어떻게 고용되었든 저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인데
서먹하게 지내거나 과한 격식을 따질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요.
아! 에르제님께는 큰 실례를 범했네요..
나오면 주의하라고 하고 사과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고용주로서 사과드립니다."
"아뇨. 아뇨! 괜찮아요! 오히려 보기 좋아요.
그렇죠 마들린?"
"네. 저도 보기 좋아서 그런 것이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싱글싱글 웃는 헤르니스가 내어온 차를 앞에 두고
에르제가 머뭇거렸다.
*
에르제는 이틀 전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정치 학부 B반으로 배정받은 에르제.
에르제가 B반이란 말에 마들린과 벨라는
뭔가 잘못된 것이라며 화를 냈지만,
A반의 학생들을 보고 짐작한 에르제는
C반이 아니라는 것에 만족했다.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향했던 에르제의 앞을
같은 정치 학부 A반인 서스 파실리온이 막아섰다.
에르제는 자신을 죽이려 한 가문의 장남인
서스를 보자마자 온몸이 떨려왔다.
아카데미 내에서는 시녀도 호위도 함께할 수 없기에
마들린도 벨라도 옆에 없어 그 떨림이 더해졌다.
"에르제. 토요일에 파티가 있을 것이다.
주체자인 나의 파트너 자리에 약혼자인
그대의 언니가 있어야 하나 아카데미에 없다.
있더라도 나의 왼편이 아니라 오른편이겠지만..
아무튼, 그대가 언니 대신 나의 오른편에 서라."
귀족이 주체하는 파티에 혼자 참석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파트너와 함께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주체자는 반드시 파트너가 있었으며,
파트너가 없는 주체자는 파티의 주인공으로서도,
귀족으로서도 자각이 없는 것으로 여겼다.
서스가 말한 왼편은
결혼한 귀족인 경우에는 제 1 부인이,
결혼하지 않은 귀족이거나 자제일 경우에는
약혼자이거나 연인 사이의 여자에게 허락된 곳이었고,
오른쪽은 결혼한 귀족의 경우,
제 1 부인과 함께 참석한 제 2 부인이,
결혼하지 않은 귀족이나 자제인 경우에는
정식으로 요청하고 그 청을 받은 여자가
서는 것이 관례였다.
아직 제 1 부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 오를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정식 약혼도 하지 않은 언니를 벌써부터
제 2 부인이라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하는 서스의 말.
그러면서도 언니가 신경 쓰여
언니 대신 동생인 자신과 함께 파티에 함께할 것을
요청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정식 요청이 아니라 명령에 가까운 서스의 말.
어이없고 모욕적인 서스의 말에
겁에 질려있던 떨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생각은 무슨.
너도 라이거 가문의 호리페 때문에
파트너 구하는 게 힘들잖아?"
"호리페 라이거님과의 약혼은 가문에서 거절했어요."
"그래? 큭큭 하긴..
거절하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가만히 있지 않았겠지..
뭐.. 난 네 언니 체면을 봐서라도
내 오른편에 서는 게 낫지 않겠어?
아무래도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언니에게도 가문에게도 도움이 될 테니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쯧. 라이거나 폴리아리스 가문이나
도와주려고 해도 지랄이야 지랄이..
가문의 자제로.. 특히 여자로 태어났으면
가문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지.. 쯧쯧.."
서스의 계속되는 모욕에
에르제의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튼, 파티에는 무조건 참여해야 할 거야.
다른 가문도 아니고 파실리온 가문이 주체하는 파티니까.
너도 알지?
어느 가문이 아카데미의 귀족파를 움직이지? 큭큭.
알아서 처신 잘해라."
서스가 뒤 돌아 가자 에르제는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금요일 수업이 마치자마자
아카데미 3년 동안 머물게 된
첫째 언니의 집으로 뛰어갔다.
왕실에서 일하는 형부가 아직 퇴근하지 않아
언니와 상담했으나 언니도 답답해할 뿐
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에르제의 눈을 반짝이게 한 것이
시녀 마들린의 말이었다.
"저기.. 카온 라이거님과 상의해 보는 건 어떨까요?"
에르제는 벌떡 일어나 다시 아카데미로 정신없이 뛰었다.
뛰어가면서도 왜 자신이 뛰고 있는지,
왜 카온이라면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아카데미 입구에 다다랐을 때 카온이 나오는 것이 보였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카온의 집에서 그와 마주 앉게 되었다.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지 입술만 오물거리는
에르제를 향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에르제님. 제 성격상 답답한 것을 싫어합니다.
아카데미 내에서의 분위기를 모르는 것도 아니실 테고..
서로 피해자이기는 하나 가문의 일 때문에
저와 엮이는 것도 에르제님에게는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찾아왔다는 것은 분명
뭔가 일이 생긴 것이겠지요."
"네..
카온님이나 라이거 가문과는 상관없는 일이기는 한데.."
에르제는 서스 파실리온과의 만남과
그때 나눈 대화들을 이야기했다.
"음.. 에르제님께서 고민하시는 게
당시 받았던 모욕적인 부분이 아니라,
서스의 말을 듣지 않았을 때
가문에 어떤 해가 갈지 걱정되는 것이죠?"
"네.. 제가 받은 모욕 따위는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끝이에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파티에 파트너로 참여해도 문제고,
참여하지 않아도 문제예요."
"파트너로 참여하면 에르제님도 폴리아리스 가문도
파실리온과 뜻을 같이하는 것처럼
다른 귀족에게 보일 것이고..
파티에 참여하지 않으면 귀족파 자체에 찍힐 것이며..
파트너 없이 참여해도 파실리온은
어떤 식으로든 에르제님에게 모욕을 주거나
폴리아리스 가문에 압박을 가하려 하겠죠.."
"네.. 맞아요.."
"한가지 먼저 물어볼게요.
언니 분의 약혼.. 어느 쪽에서 먼저 제의한 것인가요?"
"먼저 제안한 것은 파실리온 가문이었어요..
아버지도 가문을 위해 어쩔 수 없지.."
"폴리아리스 가문의 상황과 남작님의 마음이
어떤지 알 것 같으니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단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약혼의 무게 추가
어떤 가문에 있으며, 폴리아리스 가문이 파실리온과
뜻을 함께하려는 것인지 알고 싶어 여쭤봤던 겁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네? 네!"
거실과 수련장을 연결해 주는 문을 열고 나왔다.
어차피 2.3년 안에 페페 가문과 라이거 가문은 부딪힌다.
두 가문의 격돌에 파실리온 가문은
어떤 방식으로든 끼어들 수밖에 없다.
페페 가문과의 분쟁에는 파실리온 가문이 끼어들지 않더라도
귀족파의 중심인 파실리온 가문과는 분명 검을 맞대어야 한다.
그러나 폴리아리스 가문은 다르다.
내가 그 가문을 벌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혈연으로 묶여 파실리온 가문의 옆에서
나에게 검을 겨눈다면 죽여야 하는 것은 같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은 폴리아리스 가문이
파실리온이 혈연을 맺지 않고 라이거 가문의 편에 서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중립을 지키는 것이다.
문제는 폴리아리스 가문이 파실리온 가문과 혈연 없이
2, 3년을 버틸 수 있는가였다.
파실리온 가문이 먼저 약혼을 제의 했고,
제 1 부인이 없는 상태에서 제 2 부인으로 말을 했기에
작위로 찍어 누르지 않는 이상,
약혼에 관한 우선권은 폴리아리스 가문에 있다.
이 모든 것을 에르제는 물론 폴리아리스 가문에서
스스로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나는 답을 주기 전 조금더 에르제에게 솔직해 지기로 했다.
다시 거실로 들어와 에르제의 맞은편에 앉았다.
"에르제님. 에르제님의 고민에 대한 답을 드리기 전,
지금부터 저와 라이거 가문이 어떻게 할지 말 할 거예요.
그것을 먼저 말하는 이유는 에르제님의 선택을
도와주는 것이기도 해요.
무엇을 선택하든 그 선택을 존중할 겁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 중요한 사항이기에
이 집을 나가기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말하지 않겠다는
마법 계약서를 작성하겠다 하시면 말을 시작하겠습니다."
에르제가 마른 침을 한번 삼키고 입을 열었다.
"카온님과 라이거 가문의 미래에
저희 폴리아리스 가문이 들어있는 건가요?"
"네."
"좋아요. 마법 계약서를 작성하겠어요."
라이거 가문과 페페 가문과의 관계,
페페 가문과 파실리온 가문과의 관계,
2, 3년 뒤 라이거 가문과 페페 가문과의 영지전을 시작으로
파실리온 가문을 무릎 꿇린 뒤,
라이거 가문이 남부의 패자가 되는 것까지 우선 이야기했다.
이후에 사사님의 가문인 쇼페라 가문의 복원과
일리인 왕국을 바로잡는 것은
나도 아직 정확한 계획이 나오지 않았고
조금은 먼 이야기라 하지 않았다.
"아.. 카온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이 일어난다면..
저희 가문은 그 소용돌이에 들어가겠군요..
"파실리온의 옆에서 공을 세운 가문이 되거나..
라이거 가문에게 파실리온과 같이 무릎 꿇는 가문이 되거나..
중립을 지키고 잃는 것도, 얻는 것도 없는 가문이 되거나
셋 중에 하나가 될 겁니다."
"그것과 파티에 대한 답이.. 아! 설마.."
"네. 제가 어떤 말을 하든 선택은
에르제님이 하는 건 분명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폴리아리스 가문의 안타까움과
남작님의 노력을 알기에 파실리온 가문과
혈연관계를 맺는 것을 중지하고,
지금부터라도 거리를 두는 것을 추천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폴리아리스 가문이
2, 3년을 버틸 힘이 있냐라는 것이죠..
아무튼, 첫 번째. 서스의 파트너로서 파티에 참여하시면
아카데미에서의 3년은 서스와 귀족파의 보호 아래
편하게 지낼 겁니다.
하지만 라이거 가문과 영지전이 벌어지면
파실리온과 함께 전장을 나설 수밖에 없겠죠.
"편하게가 진짜 편한 것은 아니지만요.."
에르제의 중얼거림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둘째, 파트너가 아닌 파티만 참여한다면
에르제님 입장에서 가장 좋습니다.
서스는 파트너 제의를 거절한 것을 가문에 알리겠지만,
서스의 예상과 달리 파실리온 가문은
폴리아리스 가문에 사과할 것입니다."
"네? 압박이 아니라 사과요?"
"네. 제가 먼저 여쭤본 것이
누가 먼저 약혼 제의를 했냐 였습니다.
파실리온 가문으로서는 폴리아리스 가문은 상
당히 중요합니다.
페페 자작과의 균형이 달려 있으니까요.
에르제님을 죽이려 한 만큼..
아직 혼사를 치른 것도 아니고, 약혼을 한 것도 아닌
약혼의 말이 긍정적으로 오가는 도중입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고
딸의 모욕을 아버지가 참는 것에도 한계가 있죠.
약혼을 없던 것으로 하고 페페 자작과 손을 잡는 것만큼은
막아야 할 겁니다.
즉. 서스의 서신은 가문 전체로 봤을 때는
징징거림이며 악수일 뿐이 거죠."
"아.. 이해했어요.."
"그럼 세 번째..
파티 자체를 참여하지 않는다..
이것이 에르제님과 폴리아리스 가문에 가장 위험하죠..
굳이 위험한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그러나..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점만 있는게.. 아니다.."
"저와 저의 기사단과
검을 겨루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모든 과정을 떠나서
카온님께서 하신 말을 종합하면..
제가 파티에 파트너로 참여하면 적이 될 확률이 높은 것이고,
혼자 참여하면 당장은 아니라 가문의 결정에 따라
적이 될 수 다는 것이며..
참여하지 않으면 적어도 카온님과는..
적이 되지 않는다는 거군요."
"네. 저와 에르제님,
저와 폴리아리스 가문만 따지면 그렇다는 겁니다."
고민에 빠진 에르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녀의 결정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 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결정이 에르제에게도
에르제의 가문에게도 중요한 결정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내 입에서 그녀와 폴리아리스 가문을
도와주겠다는 말은 아직 나오지 하지 않았다.